코로나19 속 빛난 구호 활동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6개월째다. 그간 전 국민이 감염병 극복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였고, 국내 방역 시스템은 이른바 ‘K방역’으로 불리며 세계적 찬사를 받았다. 최근 정부는 “전 세계 110국에서 한국의 K방역·역학조사 노하우 공유를 요청받았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재난 대응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었던 건 민간 영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구호 활동 덕이 크다. 이들은 정부가 채우지 못한 빈틈을 메우기 위해 먼저 움직였고,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냈다.
긴급구호 키워드는 ‘속도전’
대한적십자사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흘 뒤인 1월 23일 긴급대응본부를 가동하고 비상 대책 수립에 나섰다. 국내 민간단체 중 가장 빨랐다. 선제적 조치는 긴급구호로 이어졌다. 본격적인 지역감염이 시작된 2월, 적십자사는 감염병 예방세트 12만개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보냈다. 화재·수해 이재민을 위한 기존의 재난구호품과 달리 마스크와 위생용품으로 구성된 별도의 물품이 이미 준비된 상태였다. 이광준 대한적십자사 재난안전교육팀장은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감염병 예방세트를 미리 마련해뒀고, 덕분에 큰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국제보건의료 NGO 글로벌케어는 대구·경북 확진자가 급증하던 지난 3월 초 코로나19의 최전방으로 알려진 대구동산병원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에크모와 인공호흡기 등 의료장비를 긴급 지원해 기존 3개 있던 중환자실 병상을 20개로 늘렸다. 당시 대구동산병원에 입원한 확진자는 400명에 달했다. 공영주 글로벌케어 나눔사업팀 과장은 “보건복지부에서 각 병원 지원 예산을 잡아놓은 상태였지만 실제 집행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면서 “재난 상황, 특히 의료 지원은 속도전이기 때문에 당시 중환자실을 확대하는 동시에 대한중환자의학회와 협력해 중환자 전문 의료 인력도 급파했다”고 했다.
지역 봉사원들, 구호물품 전달 맡아
이번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국민 성금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등 세 곳으로 집중됐다. 지난 13일 기준 세 기관의 코로나19 모금 총액은 2853억원이다. 기관별로는 공동모금회 1079억원, 재해구호협회 959억원, 적십자사 815억원 등이다. 집행 완료한 금액은 2399억원(84.0%)이다.
전국 각지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쏟아지는 기부금과 물품을 현장에 전달하는 일을 도왔다. 적십자 경북지사에서 구호 업무를 맡고 있는 김보근(38)씨는 “감염 우려 때문에 최소 인원으로 구호 업무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지역 봉사원들이 ‘물품 보내는 일이 시급한데 왜 연락을 안 주느냐’며 너도나도 돕겠다고 나섰다”면서 “제 일처럼 도와준 봉사원들 덕분에 코로나 구호 업무를 차질 없이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 방역에도 봉사원들이 나섰다. 적십자사에 따르면, 확진자가 급증하던 3~4월에 지방자치단체의 방역 요청이 쏟아졌고 전국 30만명에 이르는 봉사원과 RCY 단원이 이 일에 자원했다. 이들은 지하철 탑승장, 버스 정류장, 공중화장실 등의 방역 현장에 투입됐다. 확진자 동선에 대한 방역 작업에도 참여했다. 대구 지역에서 활용된 ‘드론 방역’도 적십자 봉사원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봉사원들이 직접 소독통과 분무기를 들고 동네 곳곳을 누비는 식이었기 때문에 넓은 지역을 수시로 방역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드론 방역은 공원 등 다중이용시설과 건물 주변을 소독하는 일에 활용됐다.
코로나 사각지대, 민간이 나서 돕다
코로나19 후폭풍은 소외계층에 더 가혹했다. 경기 침체로 위기에 내몰리는 가정이 늘었다. 비영리단체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했다. 지난 3월 월드비전은 쉼터에서 생활하는 ‘가정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마스크 2만장을 지원했다. 정부가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할 정도로 마스크 수급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굿네이버스는 코로나19 모금 캠페인으로 34억원을 모아 총 10만2575명의 아동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정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 아동이 8만1475명이었다.
이주민의 경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마스크나 긴급재난지원금에서도 소외됐다. 이주민 지원은 사실상 민간단체의 몫으로 남았다. 김영아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대표는 “이주민 지원단체는 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난민 등 분야별로 나뉘어 있고 소관 부처도 제각각이다 보니 단체들끼리 연대해야 했다”면서 “이를테면 한 단체가 마스크 기부를 받게 되면 전국 100여 개 소규모 지원단체가 우선 순위를 정해 나눠 쓰는 식으로 네트워크를 가동했다”고 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재난구호 활동의 범위와 방법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국경을 초월하는 글로벌 연대다. 국내 비영리단체들은 개발도상국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64개 개발도상국에 62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KCOC 소속 140여 구호개발 NGO가 300억원을 내고, 나머지는 정부·기업 등 외부 협력 기금으로 진행된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