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한국도 록펠러 재단처럼 전략적 자선사업 펼쳐야”

허브 서울 공동대표 정경선씨
록펠러재단·아쇼카처럼 전문적 생태계 키우고자 자
선활동 전업으로 택해
업무와 카페가 결합된 코워킹 공간 ‘허브 서울’
멤버 간 네트워크 통해 정보 교류와 협업 꿈꿔
자선도 규모의 경제 필요
열정과 진정성 가지고 인재 선발 심혈 기울여야

업무공간을 공유(일명 코워킹)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난 2005년 영국 런던에서 이런 실험을 위해 설립된 ‘더 허브(The Hub)’는 현재 암스테르담·마드리드·샌프란시스코 등 전 세계 30여곳으로 퍼졌다. 지난 1월 초 한국에도 문을 열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문을 연 ‘허브 서울’이 바로 그것. 60평 규모의 공간은 카페와 회의실, 컴퓨터로 업무를 보거나 이벤트를 열 수 있는 공간 등으로 이뤄져있다. “이 공간이 소셜 섹터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허브 서울 공동대표 정경선씨
허브 서울 공동대표 정경선씨

‘허브 서울’에서 만난 정경선(27) 공동 대표의 말이다. 지난해 2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대가(家)의 3세다. “록펠러재단이나 아쇼카처럼 전략적이고 임팩트 있는 자선 활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며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고생길을 택한 이유는 뭘까. “2008년 무렵 일본의 한 보험 회사에서 인턴을 했는데, CSR팀이 기업의 전략을 세우는 데 상당히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더라고요. 그룹사에 CSR 본부가 따로 있어서, 이곳에서 기업의 사회공헌 전략을 짜고 협력사와 고객, 직원 등을 어떻게 챙기는지 관리하는 걸 봤습니다. 그때그때 어려운 이들을 돕는 걸 넘어서서,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는 이후 대학생 문화 기획 동아리 ‘쿠스파(KUSPA)’를 결성, 자선 파티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거나 아마추어 음악인을 돕기 위한 콩쿠르를 여는 등의 활동을 했다. 2010년에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모인 재능 기부 단체 ‘크리에이티브 셰어(Creative Share)’를 만들기도 했다. 이노션 월드와이드와 함께한 사회적기업을 위한 광고 공모전, 네이버 해피빈과 함께 한 기부 캠페인, 명사 초청 스피치 콘서트를 진행했다.

“재능 기부자들만 모여 단체를 운영해보니 한계가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바빠지는 데 반해, 이 단체는 법인격이 없으니까 흐지부지돼서 문을 닫았어요. 그때 ‘자투리 시간 기부하는 것으로는 안 되는구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일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2011년 11월부터 아산나눔재단 인턴 생활을 거친 후, 그는 진로를 수정했다.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지난해 7월 아예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 임팩트(Root Impact)’를 만든 것이다. 목적은 ‘비영리나 자선 활동, 사회 혁신 섹터의 전문성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세계 최대의 자선 자문 기관인 록펠러 자선자문단(Rockefeller Philanthropy Advisors)을 만나 공식 업무 협약을 맺었다. 록펠러 자선자문단은 100년에 걸쳐 록펠러 가문의 자선사업을 관리해온 곳으로, 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2002년 이후 지금까지 3조원의 자선 기금을 관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적기업가 지원 단체 ‘아쇼카(Ashoka)’와도 파트너십을 맺고, 아쇼카 코리아가 국내에서 출범할 수 있도록 물밑 작업을 도왔다.(1981년 빌 드레이튼이 설립한 ‘아쇼카’는 사회혁신을 꾀하는 아쇼카 펠로 3000여명을 배출했다.)

“미국은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과 같은 자선사업가들, 자선 활동이 전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싱크탱크나 중간 조직,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엔피오(NPO·Non Profit Organization)나 사회적기업 등이 다 존재합니다.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 생각하는 뇌, 몸을 움직이는 손발까지 3개가 골고루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NPO, 사회적기업 등 손발만 많은 열악한 상황이라, 전체적인 ‘생태계’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브 서울’은 그의 꿈을 위한 플랫폼이다. 20대 청년 3명이 그와 함께 의기투합했다.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수행하는 임팩트스퀘어(Impact Square) 박동천 공동 대표, 저가형 보청기 사업으로 성공한 소셜벤처 딜라이트(Delight)의 김정현·김정헌 공동 창업자, 소셜디자인 그룹 엔스파이어(Enspire) 김성민 대표 등이 참여했다.

“허브 서울은 업무와 카페가 결합된 코워킹 공간입니다. 사회 혁신을 꿈꾸는 멤버들의 네트워킹을 돕고, 강연회를 통해 지식 정보도 공유하고, 협업을 돕기 위한 곳입니다. 허브 서울에서는 소셜벤처 창업가, 벤처 투자자, 컨설턴트 등 전문가들과 함께 소셜벤처 육성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더 허브 LA 지점
더 허브 LA 지점

이곳을 이용하려면 월 10만~25만원까지 멤버십 비용을 내야 한다. 그는 “정부 주도형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센터는 사무실을 무상 지원하지만 정말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는 유료인 대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결국 사회문제 해결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기업 공모전이 많지만, 아이디어만 평가하는 것이잖아요. 아쇼카 펠로는 선발 과정만 9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고, 단계별 인터뷰만 5차례나 됩니다. 각 단계 인터뷰마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거쳐야 통과돼요. 우리나라는 한 달 안에 기획서를 내고, 몇 시간 만에 PPT 면접과 행사를 한 후,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많이 뽑아놓고 잘 되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이건 너무 소모적입니다. 정말 사회를 바꿀 사람을 지원할 진정성이 있다면, 선발 과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허브 서울을 플랫폼으로, 소셜벤처포럼과 임팩트 아카데미, 아산나눔재단의 NPO아카데미 등 다양한 인재육성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이와 함께 한국의 잠재적인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가이드북을 제작, 배포하는 일도 진행 중이다. 오는 2월 4~5일에는 록펠러가의 5세인 웬디 오닐(Wendy O’neill)을 초청, 콘퍼런스도 벌인다.

“자선사업도 규모의 경제가 필요합니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만명에게 1만원 돈을 나눠주는 것보다, 1000명을 고용할 수 있는 10명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듯이 말이죠. 이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굉장히 위험합니다. 진정성과 미션을 가진 자선사업가들이 아니면 하기 어렵지요.”

그는 “사람들이 너무 크고 추상적인 꿈을 꾼다고 하는데, 원래 청년은 야망을 크게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웃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