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력(力)이 큰다] ①열린소통포럼
서울·세종 정부청사, 온·오프라인 공간 마련
국민 제안 26건 추진 중… 온라인에 경과 공개
제도 도입뿐 아니라 미흡한 기존 정책 보완도
갑자기 눈 주위가 부어오르고 시야가 흐려진 임신부. 스위스 여행 중에 닥친 응급 상황이다. 다급하게 119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응급의학 전문의는 유행성 결막염으로 진단하고 스위스 현지 병원의 안과의사와 통화한 뒤 인공눈물을 처방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해외 체류 중인 국민이 119응급의학 전문의에게 의료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된 건 불과 1년 전부터다. 기존의 ‘재외국민 응급의료상담’은 원양 선원과 승객을 대상으로만 제공하던 해상 서비스였다. 지난해 5월, 국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공간인 ‘열린소통포럼’에서 “여행객을 비롯한 재외국민이 해외에서 질병에 걸리거나 부상당했을 때 응급의료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고, 소방청이 이를 받아들여 같은 해 11월부터 시행됐다. 소방청은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중앙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응급의학 전문의 4명을 채용했다.
주무 부처 관계자와 함께 국민 제안을 입체적으로 논의
열린소통포럼은 정부가 정책을 마련해 일괄 적용하는 ‘하향식 도입’에서 벗어나 국가 정책도 일반 시민으로부터 출발하는 ‘상향식 참여’를 유도한다. 시민이 정부 부처 공무원, 분야별 전문가와 함께 정책을 발굴하고 실제 도입까지 이어가는 것이다.
열린소통포럼이 마련된 건 지난해 5월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광화문1번가’ 운영 취지를 살려 국민 누구나 정책을 직접 제안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서울과 세종 정부청사에 공간을 만들어 국가 현안을 주제로 한 포럼을 상설 운영하고 있다.
비슷한 시민 정책 제안 창구로 국민신문고나 청와대 청원게시판 등이 있지만 정책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열린소통포럼의 경우 전문가를 비롯해 주무 부처 관계자가 한곳에 모이기 때문에 국민 제안을 좀 더 입체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개인 민원을 넘어 집단지성을 기반으로 정책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기존 제도와도 차별된다. 예를 들어 장애인 정책의 경우 활동보조금 정책은 보건복지부, 일자리는 고용노동부, 이동권은 국토교통부 등 여러 부처에 담당 공무원이 참석해 국민과 직접 정책 토론하는 식이다.
지난해 국민 제안 72개 중 38개가 정책에 반영
열린소통포럼에 접수된 정책 제안은 타당성을 따져 각 부처로 전달된다.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걸리기도 하지만, 추진 중인 정책에 대해서는 경과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소통포럼에서 발굴된 국민 제안 72개 가운데 38개가 정책에 반영됐고, 26건은 현재 추진 중이다. 올해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과 사회적 농업 정책을 연계하는 ‘농촌형 통합 돌봄’을 제안받아 보건복지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협업해 제도 마련에 나섰다. 또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범위에 방문서비스 종사자와 화물차주를 추가했고, 2021년까지 IT 업종 프리랜서, 돌봄서비스 종사자 등을 포함하기로 했다.
새 제도 도입뿐 아니라 기존 제도의 미흡한 점을 보완하고 촉진하는 제안도 이어진다. 대표적인 게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한 지적이다. 주민의 역할이 각 지방정부의 계획 수립 시 자문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시행 범위도 좁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지난해 주민참여예산제가 도입됐지만 아직 시행하지 않은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 제안은 행정안전부 재정정책과와 교육부 지방교육재정과로 전달됐고, 두 기관은 이를 수용했다.
포럼 주제는 복지·환경·교육 등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달 15일 열린 ‘2019 제7차 열린소통포럼’의 주제는 ‘정부의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 개선을 위한 제안’이었다. 지난 9월에는 ‘외로움에 대처하는 공동체적 해법’을 주제로 사회적 지원 체계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이재영 행정안전부 정부혁신조직실장은 “한국을 찾은 외국 공무원들이 ‘광화문1번가’에 대해 묻고 배우고 싶어한다”며 “지난해 오프라인 포럼 상설화에 이어 올해 온라인 플랫폼 구축을 통해 더 많은 국민이 정책 제안에 참여하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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