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줍던 손에 카메라를…’미디어 전문가’ 키워 빈곤 끊는다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print

케냐 단도라 ‘필름메이커 프로젝트’

굿피플, 프로젝트 3년차…올해 유튜버 양성
기획·촬영·편집 기술, 1대1 과외로 알려줘

케냐, 뉴스·대국민 발표도 SNS 활용
크리에이터 사업, 청소년 자립 모델로 적합

케냐 나이로비에는 거대한 쓰레기 무덤이 있다. 나이로비는 인구 300만명의 아프리카 최대 도시지만,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극빈촌과 마주하게 된다. 지난달 26일 찾은 단도라(Dandora) 지역은 나이로비 도심 쓰레기들의 종착지다. ‘세계 최대 쓰레기 매립지’라는 타이틀로도 설명이 부족할 만큼 현실은 참혹했다. 오전 11시가 되면 각종 폐기물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줄지어 이곳에 집결한다. 현지 드라이버는 “매일 100여 대의 쓰레기 차량이 들락거린다”며 “비 오는 날이면 악취 때문에 근처에 갈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매일 쏟아붓는 쓰레기는 이미 산을 이룰 만큼 높게 쌓였고, 동네 꼬마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 산을 오른다. 아이들은 힐턴호텔과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에서 오는 차량을 기다린다. 포장을 뜯지 않은 음식과 비교적 깨끗한 물건이 많기 때문이다.

단도라는 키베라, 마타레와 함께 나이로비 3대 슬럼으로 꼽힌다. 1975년 쓰레기 매립지가 생기면서 고물을 주워 생계를 잇는 사람이 몰렸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면서 인구 30만명의 슬럼이 됐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한 채 도로 건설 노동자나 공장 잡부 등 일용직을 전전한다.

국제구호개발기구 굿피플은 단도라 학생들을 ‘영상 콘텐츠 전문가’로 키우기 위해 지난 2017년부터 3년째 ‘필름메이커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사업 첫해인 2017년에는 단도라 청소년과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지난해에는 6개월간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제목의 웹 드라마 6편을 제작하며 실습수업을 진행했다. 올해는 유튜브 채널 운영을 통한 자립모델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노경오 굿피플 케냐지부 사무장은 “케냐 정부는 임시 공휴일 안내 같은 대국민 발표 자료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으로 전달할 정도로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최근 유튜브 이용자도 눈에 띄게 늘었다”며 “크리에이터 사업은 현지 상황에 가장 적합한 청소년 자립 모델”이라고 말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진행 중인 ‘필름메이커 프로젝트’에 참여한 단도라 출신 교육생 6명이 지난 4일(현지 시각)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파울러스

폐기물 들던 손에 쥐어진 카메라

지난달 26일 단도라 크리에이터 양성 워크숍 1일 차. 소수 정예로 선발된 단도라 출신 청소년 6명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주제로 한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날아온 유튜브 전문가들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질문이 쏟아졌다. 교육생들이 개설한 ‘단도라 히어로즈(Dandora Heroes)’ 채널이 왜 구독자 48명에 불과한지, 영상을 올려도 조회 수가 왜 안 나오는지, 시청자들의 이탈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질문은 구체적이었다.

이어진 영상 제작 교육은 기획(pre-production), 촬영(production), 편집(post-production) 등 세 파트로 나뉘어 일대일 과외 식으로 이뤄졌다. 집중 교육이 가능했던 건 굿피플, 광고프로덕션 파울러스, CJ ENM 다이아TV 등 세 기관이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굿피플이 미디어 전문가로 양성할 청소년을 선발하고 사무실과 촬영 장비를 마련하면, 파울러스가 3주간 케냐에 머물며 영상 촬영·편집 기술을 교육하기로 했다. 국내 최대 MCN(멀티채널네트워크)인 다이아TV는 국내 유튜브 크리에이터 ‘에그박사’ 제작진과 채널 운영 전문가를 현지로 파견해 실전 팁을 전수한다.

이튿날 현장 교육에서는 셸드릭 코끼리 고아원, 지라프 센터(Giraffe Center) 등을 방문해 직접 기획한 내용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고, 이후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에서의 기억을 되짚으며 편집 작업을 진행했다. 박영구(33) 파울러스 PD는 “미디어 구호개발사업은 시설·장비 관리가 어렵고 집중적인 교육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잘 시도되지 않는 편”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프로덕션을 운영하게 된다며 케냐에서는 최초의 성공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케냐 나이로비에서 안정기 다이아TV 대리(오른쪽 상단)가 단도라 출신 교육생을 대상으로 유튜브 알고리즘과 채널 생존전략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파울러스

꿈을 찍고 편집하다

아프리카 자립지원 사업의 경우 대개 농촌은 농업자립 지원이다. 이 경우 주민들이 기존에 해오던 업(業)을 키우면 되지만, 도시 빈민은 딱히 구제할 방법이 마땅찮다. 특히 빈부격차가 극심한 나이로비의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전수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케냐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일용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영상 제작 기술을 배우면서 목표가 생겼어요.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를 차려서 돈을 많이 벌 거예요. 학교 친구들과 동생들도 같이 일할 수 있게요. 약자를 착취하는 부자와 그들 편에 선 정부를 비판하는 영상도 꼭 찍어보고 싶어요.”

3년째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클린턴 리운구(19)는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카메라를 잡아본 적 없던 클린턴은 이제 6명의 영상제작팀을 이끄는 리더다. 컴퓨터 마우스를 어색하게 감아 쥐던 손으로 카메라 렌즈를 조율하고 영상편집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룬다.

실제 나이로비 도심을 걷다 보면 케냐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가정에 TV는 없어도 스마트폰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한다. 케냐의 국영방송사 KBC를 비롯한 여러 방송사가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뉴스를 내보낸다. 시청자들도 유튜브로 영상을 소비하는 편이다. 최근 케냐의 최대 이동통신사인 사파리콤(SAF-COM)은 유튜브와 협약을 맺고 전용 데이터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20케냐실링(약 230원)에 유튜브 전용 데이터 20MB를 제공하는 식이다.

굿피플은 이번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우선 교육생 이탈을 막기 위해 올해 교육 사업에 인턴십 개념을 접목했다. 김소연 굿피플 케냐 봉사단원은 “지난해 프로젝트에서 당장 생계가 급한 졸업생들이 돈을 벌러 중도에 하차하는 경우가 많아 올해는 교육생에게 나이로비 최저임금인 1만4000케냐실링(약 16만원)을 매달 지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교육을 마치고 현장에서 철수한 뒤에도 자체적으로 기술을 익히고 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도 마련했다. 나이로비에서 미디어 콘텐츠 사업을 하는 ‘우사니 랩(Usani Lab)’과 계약을 맺고, 전문가 멘토 2명으로부터 교육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필름메이커 프로젝트를 통해 클린턴 리운구(맨 왼쪽)는 영화감독을 꿈구게 됐고, 스테판 은데모 주니어(맨 오른쪽)는 또 다른 케냐 아이들에게 영상 제작 기술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파울러스

단도라 청소년들의 독립 프로덕션 설립은 이뤄질 수 있을까. 김소연 단원은 “교육생들이 쏟아지는 관심과 지지에 무거운 책임감마저 느끼고 있다”며 “6명의 청소년이 리더 역할을 하면서 지역 사회의 변화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교육에 참여한 유일한 대학생인 스테판 은데모 주니어(20)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케냐멀티미디어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는데, 영상 전문가 양성 코스까지 받을 수 있어서 기쁘다”며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배워서 더 많은 케냐 아이들에게 영상 제작 기술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로비=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