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엔지니어가 곧 혁신인 세상… 전 국민 ‘코맹 탈출’ 꿈꾼다

이두희 멋쟁이사자처럼 대표와 지난달 16일 서울 강남구 위워크에서 만났다. 그의 교육 철학은 ‘써먹을 때 의미 있다’이다. “거창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꺼내 놓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내 아이디어를 내 손으로 실현한다!’

컴퓨터 비전공 대학생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소셜 벤처 ‘멋쟁이사자처럼(이하 ‘멋사’)’의 슬로건이다. 돌이켜보면 파격적인 시도였다. 멋사가 설립된 2013년은 코딩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다. 멋사를 만든 이두희(36) 대표는 “‘문과생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서 무엇 하냐’는 비판이 많았다”고 했다.

7년이 흐른 지금 멋사의 위상은 180도 달라졌다. 멋사 수료생들은 카카오·네이버 등 IT 업체 곳곳에 진출했다. ‘멋사 출신’은 스타트 업계에도 돌풍을 일으켰다. 자기소개서 관리 서비스인 ‘자소설닷컴’은 가입자 35만명을 모았고, 축구 데이터 분석 서비스 ‘비프로일레븐’은 독일 분데스리가와 제휴했다. 입법자와 유권자를 연결하는 법안 홍보 플랫폼 ‘투정’은 국회의원이 먼저 찾아와 홍보를 부탁할 만큼 호응이 뜨겁다.

멋사는 지난달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호주·일본·홍콩 등 5개국 60개 대학에서 7기 교육생 1654명을 선발했다. 서울대생 30명으로 출발한 1기를 떠올리면 놀라운 발전이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위워크에서 만난 이두희 대표는 “사회 혁신의 주체가 되고 싶은 ‘코맹(코딩 문맹)’들에게 무기를 쥐여주고 싶었다”며 웃었다.

뚝심으로 버틴 7년, 프로그래머 4000명 길러내

이 대표는 백수 시절 멋사를 만들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밟다가 그만뒀을 때였다. 그는 “대학원생의 피땀으로 교수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질렸고, 스마트폰 시대에 ‘윈도 XP’를 가르치는 대학의 게으름도 견디기 어려웠다”면서 “내가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오기가 생겨 학교에 ‘코딩 무료 교육, 비전공자 지원 바람’이라는 공고를 붙였다”고 했다. 200명 넘는 지원자가 몰렸고, ‘백수의 왕’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멋쟁이사자처럼’이라는 이름을 지어 시작했다.

―이번이 벌써 7기다. 우여곡절이 많았을 텐데.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신기하다.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고민 많았다. 배우려는 학생은 느는데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까. 처음 4년은 직장 생활과 병행했는데, 월급을 다 쏟는 것도 모자라 차도 팔았다. 2016년 ‘구글임팩트챌린지’에서 우승 못 했다면 간판을 내렸을 수도 있다.”

―구글임팩트챌린지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우승했다.

“심사위원들 보기엔 비전공자에게 코딩을, 그것도 ‘거의 무료’로 가르친다는 게 신선했던 것 같다. 구글도 엔지니어 집단 아닌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엔지니어를 길러내는 시스템도 좋게 본 것 같다. 상금 5억원으로 숨통이 좀 트였다. 학생 1인당 교육비 5만원을 받는다. 10개월 교육과정을 고려하면 ‘사실상 무료’다. 전면 무료 교육을 한 적도 있지만, 10원이라도 제 돈을 써야 열정이 생기는 게 사람 마음인 것 같아 바꿨다.”

―비전공자에게 코딩은 왜 가르치는 건가.

“가치 있는 서비스를 만들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실현할 기술. 기술은 있는데 아이디어가 없는 집단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기술이 없는 집단 가운데 가능성이 큰 쪽은? 후자라고 본다. 코딩이 ‘외계어’처럼 보여도 인내심만 있으면 정복할 수 있다. 기수마다 다섯 팀은 창업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자소설닷컴도 1기 출신이다.”

이두희 대표의 취미는 자동차 운전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트랙을 달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한준호 C영상미디어 기자

 

“프로그래머 1000만명 배출하는 게 꿈”

이 대표는 ‘반골(反骨)’을 자처한다. 학부생 때 서울대 전산망의 부실함을 지적했는데 문제가 개선되지 않자 직접 해킹해서 연예인 사진을 걸었다. 국내 최초의 대학 강의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교수 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주의를 꼬집고 싶었다. 그는 “기득권이 판치는 세상은 재미가 없다”고 했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겠다. 코딩이 왜 중요한가?

“30년 전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역할이 갈렸다. 이제 컴퓨터 언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위치가 달라진다. 엔지니어가 혁신의 동력이 되는 사회다.”

―그 믿음의 뿌리는 무엇인가.

“2015년에 멋사 출신 2명과 ‘전국 메르스(Mers) 지도’를 만들었다. 정부에서 관련 정보를 숨겨 혼란이 극심할 때였다. 지도를 공개한 지 이틀 만에 정부에서 메르스 정보를 발표했다. 정치나 시민사회의 힘으로 풀지 못한 일을 엔지니어가 해낸 것이다.”

이 대표의 목표는 전 국민의 엔지니어화(化)다. 프로그래머 1000만명을 배출하는 것이 꿈이다. 이를 위해 최근 멋사는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지난해 6기 교육을 끝으로 비영리법인에서 영리법인으로 전환했다. 후원을 못 받으면 주머니를 터는 기존 시스템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학생 대상 비영리 교육은 계속하되 희망자를 대상으로 유료 강의를 열었다.

―수익은 나고 있나.

“유료 수업으로 벌어서 무료 수업에 쓰는 식인데 조금씩 수익도 난다. 예전처럼 새 기수 뽑으면서 대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좋다.”

―대출까지 받으면서 멋사를 끌어온 동력이 뭔가.

“학생들이다. 학생들을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다. 내가 기프티콘 부자다. 학생들이 커피 선물하면서 ‘고맙다’고 한다. 손 편지도 자주 받는다. 주로 남자한테서(웃음).”

오랜 시간 대표 감투를 썼는데도 그는 ‘대표’ 호칭이 어색하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항상 이렇게 이야기한다. ‘2년 안에 전문 경영인을 모셔오고, 개발팀으로 돌아가겠다’고. 프로그래머는 컴퓨터 앞에 앉아야 행복하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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