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마네킹이야!”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print

지난 26일 명동서 ‘몸 다양성’ 보장을 위한 퍼포먼스 열려

여성환경연대, 민우회 등 7개 여성단체 참여

퍼포먼스 기획자 경진주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지난 26일 서울 명동역 6번 출구 앞. 독특한 마네킹들이 시선을 끌었다. 일반 마네킹보다 키도 작고 배도 나왔으며 팔다리도 짧다. ‘보통 몸’에 더 가까운 듯 한 마네킹이다. 

이날 여성환경연대 및 7개 단체는 여성의 건강권과 몸 다양성 보장을 위한 ‘문제는 마네킹이야’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다양한 여성의 실체 체형을 본떠 만든 ‘커스텀 마네킹’과 패션업계에서 사용하는 ‘일반 마네킹’을 비교하는 자리였다.

지난 26일 명동역 6번출구 앞에서 여성환경연대, 민우회 등 여성단체 7곳이 ‘문제는 마네킹이야’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는 의류업체 마네킹이 실제 여성들의 체형과 얼마나 동떨어졌는지 보여주고자 마련됐다. ⓒ박민영

국가기술표준원의 7차 인체지수조사(2015년)에 따르면, 한국의 20~24세 여성 평균 키는 161㎝, 허리둘레는 71㎝다. 반면 마네킹의 사이즈는 이와 동떨어진 키 178㎝에 허리 61㎝의 사이즈로 제작됐다고 여성단체들은 주장했다.

여성환경연대는 “‘마네킹 같은 몸매’를 칭송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상과 노동환경에서의 몸매 압박, 외모 품평, 자기 몸에 대한 불만족과 혐오를 만든다”며 “이는 여성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여성에게 길고 마른 몸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여성의 인권ㆍ노동권ㆍ건강권을 확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냈다.

지난 26일, 퍼포먼스가 끝난 후 명동의 한 카페에서 퍼포먼스 기획자인 경진주(34)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부터 여성의 몸 다양성 보장을 위한 캠페인 ‘외모? 왜머!’를 진행해왔다.

 

 

◇31개 여성 의류 브랜드 중 23곳이 사이즈 3개만 구비

 

“마네킹 퍼포먼스 또한 ‘외모? 왜머!’ 캠페인의 일환인데요. 한 후원자의 제안으로 시작됐어요. 어느 날 마네킹이 입은 옷이 예뻐서 샀는데 대부분 작아서 못 입었다는 거예요. 좀 더 큰 사이즈를 찾아봤지만 없었고요. ‘문제는 내 몸인가, 마네킹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제 제기를 해보고 싶더래요.”

‘문제는 마네킹이야’를 기획한 경진주 여성환경연대 활동가. ⓒ박민영

이후 후원자의 문제 제기를 구체화, 실행하는 것은 여성환경연대의 몫. 이달 초부터 약 20여일 동안 여성 의류 브랜드의 사이즈 다양성을 조사한 ‘여성의복 사이즈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조사 대상은 2017년 한국브랜드파워조사에서 여성 의류 분야 상위를 차지한 업체들과 서울의 대표적 상권인 명동, 홍대 등지에 매장을 둔 여성복 취급 업체 31곳으로 선정했다. 조사는 반팔 상의, 블라우스, 청바지, 치마, 원피스 5개 품목의 의류 사이즈를 엑스스몰(XS)부터 엑스라지(XL)까지 7단계로 분류해, 각 업체 온·오프라인 매장이 어떤 사이즈를 판매하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엑스라지(XL)이상 사이즈를 판매하는 곳은 조사대상 31곳 중 8곳에 그쳤고, 온라인 공식 사이트의 사이즈 기준 안내에 XL사이즈 자체가 없는 브랜드가 6곳이었다. 또 조사 대상 가운데 5곳이 ‘프리(free)’ 사이즈라고 표시한 옷은 실제로는 스몰(S)과 미디움(M)에 해당했다. 의류 업체들이 여성들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여성 표준 신체와 마네킹을 비교한 자료. ⓒ여성환경연대

경 활동가는 “7단계 사이즈 가운데 3단계 이하의 사이즈만 구비한 브랜드가 31개 중 23개(74.2%)였다”며 “이 가운데 한 개는 해외 브랜드였고 나머지는 모두 국내 브랜드여서, 국내 브랜드가 상대적으로 사이즈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외모에 대한 압박과 잣대가 심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의류 브랜드가 제멋대로 정한 ‘표준 체형’ 이외의 신체는 삶의 필수품인 의복을 구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거죠.”

이에 여성환경연대는 여성의 몸 다양성과 퍼포먼스에 실제 여성들의 체형과 비슷한 ‘커스텀 마네킹’을 등장시켰다. 커스텀 마네킹은 실제 여성의 몸에 테이프를 여러 겹 붙이고 안을 솜으로 채워넣어 만든 수제 마네킹이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김지양 씨 등 기자회견에 나선 여성단체 회원들이 모델이 됐다.

경진주 활동가는 “세상에는 다양한 체형을 가진 수많은 여성들이 존재한다”면서 “오히려 잘록한 허리, 날씬한 배, 얇고 긴 팔다리 등… 규격화된 수치로 만들어진 쇼윈도의 일반 마네킹이 비정상적이며 표준체형과 동떨어졌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네 몸이 아니라 마네킹이야”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여성의 몸 다양성, 의복 결정권은 인간의 기본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획일화된 미의 기준은 외모에 대한 압박을 줘 노동권 및 건강권도 침해할 수 있다는 것.

실제 여성환경연대는 ‘몸 다양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비스직 노동자의 경우 남성 직원보다 여성 직원이 외모에 대한 지적을 훨씬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여성단체 회원이 마네킹과 비슷한 크기의 합판에서 힘겹게 빠져나오고 있다. ⓒ박민영

“서비스 업무를 맡은 직원에게 단정한 옷차림을 요구하는 건 많이 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여성 직원들에겐 이 수준을 넘어서 머리 스타일, 화장법까지 지정해주는 등 훨씬 규율이 엄격해요. 게다가 유니폼 사이즈는 어떤가요. 활동하기 편한 바지 대신 대부분 딱 달라붙는 치마와 셔츠를 입잖아요.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깔끔한 수준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요? 이걸 생각해보면 몸 다양성 문제는 여성 개인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란 걸 알 수 있죠.”

덧붙여 경 활동가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여성의 몸 다양성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가 국내에도 확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오는 10월 ‘포토샵 고지법’이 시행되는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고 했다. 포토샵 고지법이란, 포토샵을 이용해 광고 모델의 몸을 줄이거나 수정하면 수정한 것이라는 문구를 몇 포인트 이상 광고에 박아야 하는 법이다. 아르헨티나는 2005년 12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모든 가게가 ‘빅사이즈’ 옷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도 2007년 ‘빅사이즈’ 법안이 상정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참가자들이 다양한 체형의 마네킹 제작, 전시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박민영

여성환경연대는 조사 대상이 된 의류업체들에게 다양한 의복 사이즈 생산 요구 등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낼 예정이다. 그러나 경 활동가는 “이게 끝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여성들에게 마네킹과 같은 몸매를 요구하며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외모 차별을 합리화하고 있어요. 다양한 사이즈 구비가 답이 아닙니다. 외모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죠. 몸 다양성 캠페인, 토론회, 전시회 등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국내에도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를 확산시킬 겁니다.”

 

여성환경연대는?
1999년에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여성환경운동 단체. 여성의 관점에서 생태적 대안을 찾고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녹색사회를 만들고자 설립됐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녹색사회를 지향하며, 작고 소박한 일상으로부터 녹색의 대안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자연과 인간, 여성과 남성,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건강하고 평등한 세상,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여성환경연대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다.
관련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