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공감’의 힘으로 집의 가치를 회복하다…일촌나눔하우징

박창현사진작가_일촌나눔하우징_사회적기업_사회투자_2016

“얼마 전 당고개 인근 달동네 가구에 시공점검을 간 적이 있어요. 오랜 기간 할머니 혼자 사시던 집인데, 저희가 수리를 해드린 뒤 자식들이 돌아와서 함께 살고 있더라고요. 집이 제 모습을 갖추면서 가정까지 회복된 거죠. 저희가 수리를 할 때 항상 바라는 것이 ‘집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 이거든요. 몸을 누일 수 있다고 다 집이 아니잖아요. 따뜻하고, 안전하고, 쉼이 있는 공간. 할머님께 그런 집을 돌려드렸단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박창수 일촌나눔하우징 대표·사진)

수리를 통해 ‘집’의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는 곳이 있다. 2010년 설립된 사회적기업 ‘일촌나눔하우징’이 그 주인공이다. 2011년 서울시 서울형 사회적기업에 선정된 일촌나눔하우징은 현재 연 매출은 50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서울시·노원구청이 발주하는 저소득가구 개보수공사, LH공사와 SH공사의 임대주택 환경 개선사업 등 소외계층의 집을 수리하는 예산사업을 주로 맡는다. 한국에너지재단의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인 ‘에너지효율개선사업’도 함께 한다. 이렇게 돌아가는 시공 현장만 매일 15군데가 넘는다.

발주기관마다 다르지만, 가구당 배정되는 주거환경 개선 지원 예산은 약 60~150만원 선. 도배지와 장판만 교체해도 100만원 가량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리창이 깨지거나 문이 너덜거려도 이를 함께 수리하기란 쉽지 않다. 예산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촌나눔하우징이 시공을 맡은 가구는 이런 고민을 한 시름 덜 수 있다. 일촌나눔하우징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거지원 사업이 모이다보니, 여러 곳의 자원을 활용해 꼭 필요한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LH공사의 전세 임대주택이 60만원 정도를 지원 받는데 방 한 칸 도배·장판하고 나면 예산이 바닥납니다. 그보다 큰 집은 자부담으로 수리를 해야죠. 공사를 할 때 한 번에 해야 비용도 아끼고 불편도 줄일 수 있는데, 단열이나 창호까지는 엄두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곳에서 지원을 받고 싶어도, 개별 가구에서는 어떤 지원사업이 있는지 잘 모르고요. 저희는 그 연결고리가 돼 드립니다. 오랜기간 노원구 지역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니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나 차상위계층에 속하지 않으면서 도움이 필요한 복지 사각 가구를 발굴해내기도 하고요. 저희의 고객에게 하나라도 더 해드릴 있다는 게 기쁘죠.”

박창현_일촌나눔하우징_직원_일자리_2016

◇경쟁력은 45명의 직원… 공감의 힘으로 크는 사회적기업

일촌나눔하우징이 바꾸고 있는 것은 공사를 하는 저소득가구 뿐만이 아니다. 일촌나눔하우징의 정직원은 31명. 개인 사정 때문에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는 일용직까지 합하면 45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노령자(55세 이상)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차상위계층, 장기실직자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일거리가 생기거나, 추가 채용이 필요할 때는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SH와의 협약을 통해서다.

이곳 직원들은 일촌나눔하우징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2011년부터 함께하고 있는 김직언(가명·69)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김씨는 개인 사업에 실패한 후 구직을 준비했지만, 평생을 경영만 해온 그가 고령에 새로운 직장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다가 노원구청에서 운영하는 자활근로 프로그램을 통해 저희와 인연이 닿았어요. 6개월간의 파견 근무를 마친 후, 정직원으로 함께하게 됐습니다. 본인 의지가 강했죠. 회사분위기도 좋고,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데다 어르신이 하기에 일도 어렵지 않다보니 여러모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지금은 도배사 자격증도 따고 목수 일도 배워서 저희 회사의 만능 일꾼 중 한 분이세요. 단열작업, 창호까지 혼자 못 하시는 게 없죠. 이 밖에도 평생을 공공기관에서 일하시다 노년에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기 위해 온 분, 젊었을 때 시공일을 하다 이 곳에서 처음 정직원이 된 분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일촌나눔하우징을 함께 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대상자에 공감하는 마음이다. 일촌나눔하우징에서 진행하는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의 절차만 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신청서 접수를 통해 적합한 가정이 선정되고 나면, 담당자가 먼저 해당 가정으로 전화를 건다. 방문 약속을 하고 나면, 전문가가 현장에 나가 직접 에너지 컨설팅을 실시한다. 외풍이 들어오는 곳은 없는지, 창호나 바닥 온열에는 이상이 없는지를 점검하는 과정이다.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공사견적이 확정되면, 시공 약속을 잡고 직원들이 방문해 공사를 진행한다. 공사를 마친 뒤에는 전화로 1차 만족도 조사를 하고, 최종적으로 대표와 임원들이 현장을 방문해 점검표 양식에 따라 시공 결과를 확인한다. 가구 1곳을 공사할 때, 최소 5~6회 이상의 방문과 접촉이 이뤄지는 셈이다. 짧은 시간에 가능한 많은 공사를 하려는 일반 시공업체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지만, 박 대표는 “집수리를 통해 고객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저희회사 사업 중 절반이 취약계층 대상 주거환경 개·보수 작업이다 보니 고객의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 혼자 사는 어르신이 대부분이에요. 일촌나눔하우징의 직원과 비슷한 상황인 분들이 많으니까 더 마음이 쓰이죠. 직원분들이 마치 내 집 처럼 정성스레 시공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시공업체는 수리만 하고 나오는데 저희는 공사 전에 가재도구 다 치우고, 원상복귀까지 싹 해놓고 나오거든요. 지금 고객의 마음이 어떨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아는 거죠. 종종 ‘공사는 다음에 하고 밥 먹고 좀 더 앉았다 가라’며 저희를 붙잡는 고객도 종종 있습니다(웃음).”

일촌나눔하우징의 공사현장. /박창현 사진작가
일촌나눔하우징의 공사현장. /박창현 사진작가

직원들이 한 마음으로 일하다보니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저장강박(물건을 과도하게 수집해 쌓아두는 강박증세) 가정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 있다. 민원접수나 복지관 사례 발굴 등을 통해 저장강박 가정이 파악되면 노원구청과 지역 복지관 사회복지사, 일촌나눔하우징 직원이 한 날 한 시에 현장을 방문한다. 구청 담당자는 가정을 도울 수 있을 만한 행정복지 서비스를 파악하고, 사회복지사는 가정의 정서적 치료와 회복, 사례관리를 전담한다. 일촌나눔하우징은 가구의 청결 상태와 개보수 견적 파악하고 이를 실행한다. 2014년 7개 가구를 시작으로 2개월마다 저장강박 가정 1가구 정도를 직접 손보고 있다.

“식구들도 살기 빠듯할 만큼 작은 집에 쓰레기가 발 디딜 틈도 없이 쌓여있어요. 오수가 고여서 냄새도 고약하고, 벌레나 쥐 때문에 주변 가구에까지 피해를 미치죠. 안에 있는 것들을 싹 들어내려면 1톤 트럭이 몇 대나 필요합니다. 청소와 소독을 끝내고 장판까지 새로 깔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요. 이웃에서도 좋아하고요. 구성원 모두가 가치에 동의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원구 내 ‘룸셰어링’ 가구에 무상으로 도배와 장판도 지원하고 있다. 룸셰어링은 집에 여유 공간이 있는 65세 이상 노인과 서울에서 자취해야 하지만 주거비가 부족한 대학생을 연결해주는 서울시의 주거공유 프로그램이다. 이삿짐센터를 이용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이사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 컨설팅도 실시한다. 겨울철 난방료 지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 가정을 방문해 외풍이 들어오는 벽, 단열이 필요한 창 등을 점검한다. 수리가 필요한 가정은 에너지재단의 사업과 연결해 직접 보수해주기도 하고, 서비스 대상이 아닌 가정은 노원구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최근에는 집을 수리하는 것을 넘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지난해 한국사회투자로부터 사업비의 70%를 대출받아 월계동에 4층짜리 다세대 임대주택을 지은 것. 주거환경이 열악한 이들을 넘어, 주거지조차 갖지 못한 이들까지 사회사업 영역을 확장해보자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산하기관, LH, SH 등에서 배정되는 공사 수주 외에 회사 자체에서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사업비가 총 12억5000만원 가량 들었습니다. 현재 주거환경이 불안했던 8가구가 입주해서 살고 있죠. 지금은 건설 후 구청에 매각하는 형태로 진행했지만, 경험을 쌓으면 앞으로는 금천구청 등으로부터 위탁을 받아서 직접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가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주택관리에 전문성이 있다 보니 거주민들이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고요. 이제 막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이지만, 사회투자기금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자본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빠른 시일 안에 더 많은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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