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필요한 건… ‘한 고비’ 넘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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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사회 복귀 지원… 구로구공동희망학교 송경옥 시설장
텃밭 가꾸기·역사·작문 등 일상 생활 관련 프로그램 활용… 2년 전부터 직업 체험도 운영

전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수학자 존 내시, 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 시인 최승자. 각자의 분야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이들 네 사람은 모두 정신질환자라는 공통점을 갖고있다. 링컨 대통령은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고, 수학자 존 내시와 시인 최승자는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고통 받았다. 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는 조울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국내 18세 이상 74세 이하 성인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27.6%(보건복지부·2011년). 성인 4명 중 1명 이상이 평생에 한 번쯤은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4년까지 정신장애인에 등록된 이들은 불과 9만7000명. 장애 등록조차 하지 못한 채 변방에 남아 있는 정신질환의 현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수치다.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정신장애인 사회 복귀 활동 최전선에서 달려온 사람이 있다. 송경옥(51) ‘구로구공동희망학교'(이하 ‘희망학교’) 시설장이 그 주인공이다. 희망학교는 정신의료기관에서 정기진료를 받고 있는 만 19세 이상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사회 적응 훈련과 취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장애인 사회 복귀 시설이다.

송경옥(사진 아랫줄 가운데) 구로구공동희망학교 시설장과 직원들의 모습. /권보람 더나은미래 기자
송경옥(사진 아랫줄 가운데) 구로구공동희망학교 시설장과 직원들의 모습. /권보람 더나은미래 기자

◇그들의 눈에서 희망을 보다

“지금도 정우(가명)를 잊지 못해요. 술도 끊고 ‘새 삶을 살아보겠다’며 다짐했던 친구였는데, 너무나 갑작스레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정우 어머니와 장례를 치르면서 이 사람들을 제대로 도우려면, 알코올중독 치료나 상담보다 더 복합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사회복지사가 1년간 수련을 거치면 정신보건 전문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기에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수련을 다녔죠.”

2002년 인천알코올상담센터에서 근무하던 송 시설장은 정우의 죽음을 계기로 정신보건 사회복지 영역에 발을 들였다. 늦깎이 정신보건 사회복지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정신장애인 당사자 자체였다.

“현장에서 보니 ‘전문가는 많은데 당사자는 없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어요. 미국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정신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 운동이 일어났고, 정신장애인 서비스 연구의 책임자로 활동하는 사례도 빈번했는데 말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3년짜리 당사자 리더십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때가 2008년이었는데, 정신장애인은 의견 자체가 없는 것처럼 취급되던 시절이었어요.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안 될 거라며 고개를 저었죠.”

하지만 송 시설장의 뚝심으로 추진된 당사자 리더십 프로그램의 성과는 놀라웠다. 정신장애인의 사회 복귀, 자주적 활동에 대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가능할 리 없다”던 정신장애인의 가족들도 리더십 교육을 받은 당사자들의 강연을 듣고 마음을 돌렸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인 ‘한국정신장애인연합’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연합의 초대 회장을 맡았던 허진(52)씨는 현재 희망학교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허 사무국장뿐만이 아니다. 희망학교 곳곳에 걸려 있는 들꽃, 나무 사진을 촬영한 김주진(가명)씨 역시 동료지원가(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장애인을 지원하는 당사자 활동가) 출신으로 지금은 희망학교를 나와 인근 사회복지시설에서 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개인 사진관까지 운영했던 김씨는 송 시설장의 권유로 희망학교 회원들에게 사진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네가 정신장애에 대해 뭘 알아’ ‘정신장애인의 사회 복귀 같은 것은 어차피 불가능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분들은 누구보다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재능도 있고, 가능성도 있는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정신장애인과 함께할 창구 더 많이 생기길…’호랑이 선생님’의 바람

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송경옥 시설장이 2013년 문을 연 희망학교는 25명 정원의 주간재활시설이다. 정신장애인이 체계적으로 사회 적응 훈련을 받으려면 꼭 필요한 곳이지만, 희망학교가 생기기 전에는 구로를 비롯한 금천, 광명, 안양 일대까지 정신질환자 주간재활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송 시설장은 “일상생활에 스며드는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었다”고 문을 연 이유를 밝혔다.

송 시설장이 운영하는 희망학교는 ‘빡센’ 프로그램으로 명성이 높다. 매일 아침 9시, 한자·영단어 쪽지시험으로 시작해 텃밭 가꾸기, 프로 작가가 진행하는 작문 수업, 역사 수업, 예능 프로그램·웹툰 등을 활용한 토론 수업 등 주간 시간표에 따른 프로그램이 3개월 과정으로 진행된다.

2014년도부터는 직업 체험도 하고 있다. 인천계양체육관, 인천문학경기장 등의 청소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 임금을 비롯한 모든 근로조건은 비장애인 노동자와 동일하다. 직업 훈련과 사회 적응이 충분히 되지 않은 회원이 근로를 원할 경우, 희망학교 직원이 동행해 맡은 일을 반드시 책임지도록 체계를 다져놨기 때문이다. 송 시설장도 틈날 때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회원들과 함께 현장에 나가 청소도구를 잡는다. ‘정신질환자에게 일을 맡기면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다. 회원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나약한 소리를 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호랑이처럼 매섭게 변한다.

“현장에 나갈 때마다 스스로 높은 기준을 갖고, 제대로 일해야 한다고 못 박아요. ‘아픈 사람이니까 배려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넘겨버리면 ‘정신장애인과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할 말이 없으니까요. 처음 청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누구 하나 정신질환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지만 이젠 뒤풀이 회식을 함께할 정도로 깊은 동료 사이가 됐습니다. 청소용역 직원들 사이에서 ‘K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지원씨는 최근 상근인력으로 채용돼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송 시설장의 올해 목표는 희망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복지시설이나 일반 기업에 취업함으로써 자립에 성공한 사례를 단 몇 명만이라도 더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한 고비’를 넘기는 힘입니다. 일단 자기 안의 한계를 깨면 그다음부터는 넘어지더라도 본인의 동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고비를 넘기는 훈련을 잘하려면 희망학교 회원들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창구를 더 많이 만드는 게 급선무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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