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회공헌과 NPO 파트너십, 선순환 되려면

최근 NPO 친구들이 많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불이 났다. ‘구글 임팩트 챌린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는 소식 때문이다. 구글이 시작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인데, 국내 비영리단체들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선발해, 한 단체당 5억원씩 최대 30억원의 지원금과 1년 이상의 멘토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실제 진행과정이 어떨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과 지난 몇 년 동안 해외에서 시행해온 프로젝트 과정을 보면, 한국 기업과 참 많이 다른 NPO 접근방식이 있다. 우선 구글이라는 기업이 낸 사회공헌 기금 30억원의 성격이다. 한국 기업은 대부분 이 돈을 ‘우리 회사 돈’이라고 생각해, 기금의 사용처에 대한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쥐려고 한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 실행하는 단계마다 개입하고, NPO와의 파트너십 과정에서도 삐걱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 기부금이긴 한데, ‘꼬리표가 붙은’ 기부금이다. 반면, 글로벌 기업의 경우 오로지 사회문제 해결이나 공익적 목적으로 쓰이는, ‘꼬리표 뗀’ 기부금이 많다. 구글의 이 기금 또한 그렇다. 예전에 만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재단(아멕스 재단) 티머시 제이 매클리몬 이사장이 들려준 사회공헌도 그랬다. 3년 동안 사람들에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수천 개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아서, 이를 실행할 비영리단체와 타 기업을 연결해주는 사회공헌 프로젝트에 수백 억 달러의 지원금을 내놓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NPO 분야의 리더를 키우는 일이 시급함을 알고, 지금은 NPO 차세대 리더를 대상으로 조직경영, 고객서비스, 마케팅 등을 가르치는 아카데미 사업에 3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 매년 4000여명의 리더를 배출한다고 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공헌 현황은 겉으로 드러난 3조원이라는 액수에 비해

저성장 시대, 기업과 NPO의 윈윈전략

여기저기서 다들 아우성이다. 장기 불황과 저성장 시기로 접어들면서, 올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대폭 축소됐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D기업의 경우, 파트너단체와 하던 8억원 규모의 대표 사회공헌 사업을 5분의 1 규모로 삭감할 정도다. 기업과 함께 사업을 하던 비영리단체들 또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업후원뿐 아니라 개인후원 증가율도 꺾이고 있다. 소수의 대형 글로벌 비영리단체의 경우 매년 TV나 온라인, 모바일 광고 등에 사용되는 금액이 수십 억원에 달하지만, 예전만큼 광고효과가 크지 않다고 한다. 기부금 총액이 연 20~30%씩 증가해왔던 월드비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등 대형 비영리단체 또한 기부금 증가율이 정체이거나 소폭 증가하는데 그치고 있다. 가끔 필자에게 ‘비영리단체의 미래가 어찌될지’ 혹은 ‘이제 한국에서 기부금 성장은 포화상태인지 아닌지’ 등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를 예언하긴 힘들지만, 아직 성장 여력은 남아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왜냐 하면, 아직 한국에선 흔히 말하는 ‘제3섹터’(정부와 기업이 아닌)의 생태계 자체가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기에, 그만큼 가능성도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섹터에서 외연 확장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달려있다. 최근 ‘더나은미래 포럼’에 초청한 어완 뷜프(Erman Vilfeu) 네슬레코리아 대표와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솔직히 감동을 받았다. 연매출 888억스위스프랑(108조원)을 지닌 회사 네슬레의 150년 성장 비결을 알 것 같았다. 한국 기업에서 배워야 할 게 무엇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해관계자 소통’이었다.    “1930년대 대공황 직후 커피가격이 폭락하면서, 브라질 투자은행이 네슬레를 찾아왔어요. 네슬레의 커피 산업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 물었죠.

변화의 물결, NPO의 새로운 도전

해외탐방을 가거나 해외 유명인사를 인터뷰할 때면, 안타까운 게 하나 있다. 해외에서는 흔히 ‘필란트로피(Philanthropy)’나 ‘채리티(Charity)’, ‘제3섹터(The 3rd Sector)’ 등으로 불리는 NPO 영역이 국내는 정치 진영에 따라, 혹은 행정적 편의에 따라 몇 갈래로 쪼개져있다. 흔히 환경이나 소비자문제 등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어드보커시(Advocacy) 역할을 강조하는 시민사회단체, 정부의 보조금을 통해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단체, 행자부 산하 전국의 250여개 자원봉사센터를 주축으로 하는 자원봉사단체, 그리고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해외아동결연과 국제협력사업을 하는 글로벌국제구호NPO 등이 그것이다. 불행히도 이렇게 쪼개진 NPO단체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고 함께 만나는 네트워킹도 별로 없다.  1980년 이후 한국의 NPO들이 대다수 태동했다고 보면, 20년 넘게 이런 상황은 큰 변함이 없었다.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 보듯, NPO가 정부 정책의 전문성 있는 파트너이자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집단이라는 인식이 국내에선 매우 약하다. 그래서일까. 대형 글로벌NPO 사무총장을 하다 최근 소규모 NPO들의 협의체 대표를 맡은 한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서 이렇게 토로했다. “대형 NPO와 달리 소규모 NPO에게 미래가 있을까 싶어요. 정부가 찔끔찔끔 나눠주는 보조금 받아 사업하거나, 기업 사회공헌 자금에 기댈 뿐이지 후원회원이 거의 없어요.” 후원회원이 없거나, 줄어드는 건 거의 대부분의 NPO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시민사회단체의 위기감은 더 크다. 최근 서울시청에서 열린 ‘거버넌스 국제 컨퍼런스’에서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사무총장은 NPO의 역할에 대해 “예전에는 플레이어(player)였다면, 이제는 모더레이터(moderator)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고 등 예전 같으면 NPO가 사람들을 조직해서 언론이나

왜 지금은 협력이 중요한가

지난주 한 사회혁신 관련 포럼에서 발표를 했는데, 청중이 질문했다. “왜 예전과 달리 지금은 협력과 파트너십이 중요한가.” 그에 대한 답으로 저출산 고령화 대책에 관한 예를 들었다. 1996년 6월 5일자 각 언론사 사회면 톱에는 ‘정부 산아제한 정책 35년 만에 폐지’라는 기사가 실렸다. 1960년 6명이던 출산율이 35년 만에 1.75명으로 떨어져 정책목표가 달성됐다는 것이다. ‘딸아들 구별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와 같은 각종 선전구호가 말해주듯이, 당시 정부는 ‘공무원 3자녀 불이익’과 같은 강력한 정책까지 밀어붙였다. 지금은 어떨까. 지난 10년간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위해 무려 150조원의 정책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출산율은 1.2명으로 더 떨어졌다. 앞으로 2020년까지 198조원을 더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과연 정부 힘만으로 해결될까?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기업문화, 청년실업 해소, 주거비와 양육비 부담 해결 등 각종 실타래가 함께 풀려야 하는데, 이는 정부 혼자만의 힘으로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일찌감치 ‘정부 주도’가 아닌, ‘파트너십의 힘으로’라는 기조가 뚜렷하다. 영국은 캐머런 전 총리시절 이후 아예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를 표방하고 있다. 정부가 시민사회가 함께 나라를 끌고 가겠다는 협치와 ‘빅 거버넌스(Governance)’를 주장한다. 영국은 비영리단체 17만개, 사회적기업 19만5000개까지 합치면 제3섹터에 고용된 직원 수가 2382만명으로, 영국 국민의 절반(3100만명)이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한다. 제3섹터 전체 자산규모만 해도 318조원이다. 자선단체·사회적기업·기업의 사회공헌·공익재단·자원봉사단체 등을 통합 지원하는 ‘제3섹터청(이하 OCS·The Office of Civil Society)’까지 있다. 미국 또한 시민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비영리단체 수는 160만개가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숫자·돈이 아닌 사회 문제 해결의 진정성

지난달 22일, 재클린 풀러 ‘구글닷오알지(Google.org)’ 대표와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필자를 포함한 국내 비영리 현장 전문가 5명과 함께였다. 그녀는 구글의 자선활동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구글닷오알지는 교육, 발전, 신재생에너지 등 혁신적인 기술을 만드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매년 1억달러(1100억원) 이상을 기부한다. ‘왜 갑자기 밥을 먹자고 하지?’ 궁금했는데, 2시간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됐다. 이것이 글로벌 기업이 말하는 ‘이해관계자 미팅’이라는 것을. 그녀는 다음 날 있을 구글 임팩트챌린지(비영리단체들의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선정해 지원하는 프로젝트) 결승을 위해 내한했는데, 자신들의 사회공헌을 설명하고, 외부 평판도 물어보며, 국내 상황에 맞는 발전 방향은 없는지 등이 자유롭게 공유됐다. “예전에는 비영리단체의 오버헤드(Overhead·운영비)에 상한선을 뒀는데, 하다보니 단체마다 상황이 다른 걸 알게 되면서 그런 상한선을 없앴다. 2~3년 주기로 선정된 비영리단체를 모니터링해서 성과가 좋은 곳은 재투자를 한다.” 놀란 건, 다음 날 구글 결승전에서였다. 원래 구글은 결승 진출 10개 프로젝트 중 4개 팀에 5억원의 상금과 1년의 멘토링을 제공할 예정이었으나, 선정되지 못한 6개 팀에 대해서도 2억5000만원의 깜짝 상금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구글 사회공헌이 흥행을 거두고 삼성도 100억원 규모의 혁신적 사회공헌 공모 방식을 시도하자, 기업 사회공헌 관계자들 또한 궁금함이 많은 모양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줬다. “사회공헌 공모 방식은 새로운 게 아니다. 기업이나 재단에서 한 번쯤은 다 시도한다. 근데 왜 구글이 화제가 됐을까.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잘 봐야 한다. 국내 기업의 경우 초기에 1~2년 공모전을 한 후 이 중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전기료,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내가 쓰는 전기는 어디에서 올까. 스위치만 누르면 불이 켜지는 우리나라에선 평소 생각하지 않던 이 의문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같은 개도국에 다녀오면 생긴다. 캄캄한 밤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게 소원인 필리핀 오지엔 태양광램프 하나에 행복해했고, 한창 경제성장이 진행 중인 몽골에선 석탄화력발전소가 내뿜는 매연으로 울란바토르 시내 하늘이 오염 띠로 가득했다. 전기는 분명 축복이지만, 공짜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기의 30%는 원자력발전소, 39%는 석탄화력발전소, 21%는 가스(LNG)에서 나온다. 원전이나 석탄 발전을 돌리면 전기료가 싸진다. 하지만 몇년 전 경주 원전을 방문했을 때 가득 차 있던 ‘방사능 폐기물’을 보고, 값싼 전기료가 우리 아이한테 부담을 물려줄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원자력발전소를 돌리고 나면 사용후핵연료라는 고준위폐기물이 발생하는데, 앞으로 이 쓰레기를 묻을 장소를 찾으려면 또 한바탕 나라가 뒤집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봄에 벌어진 ‘초미세 먼지’의 주범이자 기후변화를 앞당기는 석탄화력발전소도 대안이 아님을 안다. LNG는 발전 단가가 비싸다. 태양광이나 바람 같은 재생에너지에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좀체 쉬운 선택은 없다. 올바른 정권이자 정부, 정치인이라면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를 두고 국민과 대화해야 한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국민에게 묻고, 설득과 합의를 통해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왜 산업용에는 없는 누진제가 가정용 전기요금에 붙어야 하는지, 왜 우리나라 가정용 전력소비량은 OECD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되는데도 정부는 ‘국민의 전력 과소비’를 부르짖는지, 한전 당기순이익 10조원이 뭘 의미하는지 우리 정부는 왜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는가. 나는 무조건 값싼 전기만을 바라진 않는다. 내 아이에게 물려줄 안전하고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한국 공익 분야 나침반은?

“왜 공익 분야는 매번 사람이 없다고 하지? 공익 분야에도 ‘파워 100인’같은 기획특집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더나은미래’가 우리 사회를 이끄는 100대 공익법인 이사회 분석을 시작한 건 좀 단순한 이유였다. 공익 분야를 이끄는 인물지도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 공익 생태계를 키우는 나침반 역할을 해줄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를 진행하는 동안 기자들은 몇몇 장애물을 만났다. 우선 한국가이드스타로부터 100대 공익법인들의 이사회 자료를 받아보니, 국세청 공시자료에는 이사진 명단만 공개돼있었다. 100곳에 모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공익법인마다 정보공개의 수준과 내용이 모두 다르다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홈페이지에 이사진 명단과 약력, 임기까지 모두 공개해놓고, 이사회 회의록까지 업데이트돼있으며, 이사회 역할이 명확하게 규정된 공익법인은 가히 투명성에서 A+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외에 홈페이지에 이사진 명단 정도만 나와 있는 곳, 홈페이지엔 명단이 없었으나 ‘더나은미래’ 취재에 응해 관련 내용을 모두 공개한 곳도 있었다. 반면, 일부 공익법인에서는 “이사진의 개인정보라 밝히기 어렵다” “이사진들이 모두 조용히 봉사를 원하신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공익법인의 이사진은 매우 영광스러운 자리다. 적게는 수십억원부터 많게는 수천억원의 기부금을 집행하는 공익법인의 역할에 따라, 우리 사회의 수많은 복지 사각지대가 해소되고 다양한 사회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게다가 공익법인은 고유목적사업의 경우 법인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을 받는다. 몇 년 전 미국 재단센터(Foundation Center)를 방문했을 때, 담당자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사진 명단을 보여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홈페이지에는 이사진 명단과 약력은 물론, 전화번호와 이메일까지 모두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꿈을 잃은 시대 아직도 꿈꾼다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오피스텔 123채를 사들인 홍만표 변호사, 대우조선해양에서 5조원의 분식회계를 한 주역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1년만이라도 ‘더나은미래’ 섹션을 읽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에는 돈에 미친, 돈밖에 모르는 권력층이 너무 많다. 자신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준 국가, 사회, 환경까지 이런 모든 것들을 위해 받은 것 이상으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자기자신, 가족, 아니면 당장의 물질적 편안함이라는 사익(私益)의 테두리를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롯데 검찰수사에서 드러난 롯데장학재단 사태를 보면서, 공익재단이라고 이름을 내걸었던 기업재단까지 사익 추구를 위해 쓰이는 것이 통탄스럽다. 이런 1, 2세대 부모 밑에서 교육받고 자란 재벌가 3,4세들에게 ‘공익’이라는 개념이 생길리 만무하다. 근데 왜 우리는 이런 현상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 하는가. 왜 당연한 듯 여기고, 우리 아들딸들에게 ‘어쩔 수 없다’는 걸 가르쳐야 하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싶다. 우리 아이한테 언제까지 마크 저커버그, 빌게이츠 얘기만 해야 할까. 삼성, 현대차와 같은 재벌기업은 개인돈 대신 기업돈으로 기부하고, 수십억 연봉을 받는 전문경영인들은 ‘회장님도 안 하시는데, 우리 같은 월급쟁이가 어떻게 기부를 하느냐’고 하고, 국회의원이나 장관들의 1년 기부총액이 10만원도 안 되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선진국이 되길 바랄 수가 있을까. ‘더나은미래’가 할 일이 참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익 섹션’이라고 하면, 베풀기만 하는 존재로 본다. 콘텐츠를 제대로 생산하려면 종이도 필요하고, 인쇄도 해야 하고, 기자도 필요하다. 이런 일을 잘해내기 위해선 더 큰 투자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프런티어’들에게 씨앗도 뿌리고, 물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세계 시민으로서 눈높이를 갖는 법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지난달 30일부터 2박3일 동안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66차 유엔 NGO 콘퍼런스’ 의미를 퇴색시킨 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일까, 한국 언론일까. 100여개국에서 온 4000여명이 참석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비영리 포럼이 열린 첫째날 오전, 기자회견장에는 한국 언론사 기자 100여명이 진을 쳤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스콧 칼린 공동위원장, 크리스티나 갈라크 유엔 DPI(공보부) 사무처장이 자리에 앉았다. 한국 언론의 첫 질문은 반기문 총장에게 향했다. “왜 UN 관련 일정이 적냐, 개인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방문이라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어진 다음 질문은 이랬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 이후 3명 모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고, 거기서 기자회견은 끝났다. 행사장을 떠난 반 총장을 따라 기자들이 모조리 그곳을 떴다. 100명까지 이용 가능한 대형 기자실엔 오후 내내 적막감만 감돌았다. 3일 내내 현장을 취재한 매체는 ‘더나은미래’가 유일하다시피했고, 스콧 칼린 위원장을 정식 인터뷰한 매체도 우리뿐이었다. 스콧 칼린 위원장은 “왜 한국 기자들은 콘퍼런스에는 관심이 없느냐. 반기문 사무총장에만 관심이 있어 아쉬웠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후에 들려온 소식 또한 가관이었다. 콘퍼런스 마지막날, ‘경주 액션플랜’을 채택할 때 우리 정부에서 ‘새마을운동’을 넣으려고 엄청 노력했으나, 유엔 측에 의해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특정 나라의 개념을 글로벌 액션플랜 안에 넣을 수 없다”는 게 유엔 측의 입장이었다. 많이 부끄러웠다. 세계 GDP 순위 11위이지만, 우리 사회의 주요 시스템은 아직도 초고속 성장시대에 머물러있다는 자괴감은 지나친 걸까. 100명의 기자가 똑같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진짜’가 대접받는 공익 생태계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지난해였나. 한 사회복지기관 팀장과 저녁을 먹다가 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이 사회복지법인의 대표직을 4대째 세습하려고 해서, 내부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고 했다. 초대 회장은 희생과 열정으로 사업을 키웠지만, 이후 규모가 방대해지면서 가족이나 친인척이 운영을 독차지하는 ‘복지사업’이 된 경우도 많다. ‘공익(公益)’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사익(私益)’을 취하는 사례도 있다. 기부금으로 사업을 하면서, 일명 ‘돌려막기’를 하는 것이다. 친인척 명의 빌딩에서 대관료, 임대료, 식음료비 등을 받아 잇속을 챙기기도 하고, 외부 거래처와 짜고 물품 비용을 부풀린 후 차익을 되돌려받는다. 조직 구성원의 내부 고발이 있지 않는 한, 쉽게 드러나기 힘들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우리 사회의 ‘비영리 영역’이 하나의 산업 생태계, 혹은 직업 영역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좋은 일 하는 사람이니까 행복하겠다’ 혹은 ‘남의 돈 기부받아, 아무렇게나 쓰는 거 아냐’ 하는 이분법적 인식만 존재한다. 단적인 사례가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비영리법인을 만드는 데 정부 부처의 허가를 받는 나라다. 선진국에선 비영리법인을 만드는 데 규제를 하는 게 아니라, 법인 설립 이후에 기부금을 투명하게 잘 썼는지를 규제한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국세청으로부터 면세 혜택이 박탈된 비영리법인이 30만개에 달한다. 자정 작용 없고, 외부 감시도 없는 이 비영리 생태계에선, 진짜 선의(善義)를 갖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이 피해를 입는다. ‘가짜’는 가고, ‘진짜’가 대접받는 공익 생태계를 오늘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