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방] ‘김갑생할머니김’의 ESG 경영

‘스티브 잡스 이후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이다!’ 페이스북을 하다가 누군가 올려놓은 유튜브 영상에 눈길이 멈췄다. 어느 기업 담당자가 자기 회사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해당 게시물에는 연사를 칭찬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대체로 ‘최고’라는 반응이었다.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는 댓글도 있었다. 영상을 클릭했다. ’2021 P4G 서울 정상회의’라는 글자가 화면에 떠올랐다. 5월 30일부터 이틀간 열린 이 행사는 한국 정부가 최초로 개최하는 기후환경 분야 정상회의다.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해 세계 각국이 협력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행사다. 스티브 잡스의 PT와 견줄 만하다는 그 영상은 P4G 사전 행사로 진행한 강연인 듯했다. 앞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이 P4G 사전 행사에서 강연을 했기 때문에 기대가 됐다. 이번엔 누굴까.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미래전략실 본부장이 발표 무대로 뛰어올랐다. 시가총액 500조원, 코스피 1위 기업인 김갑생할머니김은 그동안 APEC 정상회담, G20 정상회의 등 국내외 주요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옥류관 평양냉면 옆에도 김갑생할머니김이 있었다. 이호창 본부장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업이 자사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며, 투명하고 윤리적인 지배구조를 갖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ESG 경영이라고 설명했다. ESG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친환경 ‘업사이클링’ 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도 밝혔다. 금빛 김 포장지를 활용해 ‘딱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호창 본부장은 ‘김갑생 김딱지’를 통해 그 옛날 골목을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겠다고 말했다.

[진실의 방] 최재천과의 대화

최재천 교수님 말이야, 참 멋진 사람인 것 같아. 인터뷰를 마치고 택시를 기다리면서 후배에게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인터뷰에 동석했던 후배는 구체적으로 어떤 면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글쎄, 일단은 재밌잖아. 1953년 강원도 강릉 출생. 최재천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를 따고 하버드대에서 행동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 전임강사와 미시간대 조교수를 거쳐 1994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2006년부터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통섭’ ‘호모 심비우스’ 등 수십 권의 책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방송과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스타 과학자다.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와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한마디로 누구나 인정하는 이 시대의 석학이다. 최재천 교수에게 질문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태학’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석학은 잠시 고민하더니 ‘흡혈박쥐’ 이야기를 들려줬다. 흡혈박쥐 하면 동물의 몸에 구멍을 뚫어 피를 쭉쭉 빨아먹는 섬뜩한 장면을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동물의 피부를 긁어 상처를 낸 뒤 피를 살살 핥아먹는 다소 비굴한 모습이라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조차도 얻지 못한 박쥐들이다. 며칠만 흡혈하지 못해도 굶어 죽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배를 채운 박쥐들이 동굴로 돌아와서는 쫄쫄 굶고 있는 친구 박쥐에게 제 피를 토해 나눠주는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석학은 말했다. ‘지구상에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고. 나누고 되갚는 연대를 통해 흡혈박쥐 집단이 살아남은 것처럼 코로나 시대의

[진실의 방] 장혜영만 저주를 피했다

‘행운의 편지’라는 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다.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실제로는 행운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내용이다. 편지를 그대로 베껴 쓴 뒤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행운이 찾아오지만, 그러지 않으면 엄청난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경고이자 협박이다. 국정감사 기간, 국회로 행운의 편지가 배달됐다. 발신인은 청소년들. 수신인은 제21대 국회의원들이었다. 영국이 시작점으로 표기된 ‘원조’ 행운의 편지와 달리, 이번 편지의 출발지는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모국인 ‘스웨덴’으로 설정돼 있다. 내용은 이렇다. “이 편지는 스웨덴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따라 지구를 8바퀴 돌았으며, 35일 안에 당신 곁을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당신은 그 기간 안에 편지 말미에 적힌 지시를 충실히 따라야만 기후위기가 가져올 저주를 피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가 기획한 ‘행운의 편지 캠페인’이다. 국민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도록 노력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기후위기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게 편지의 주된 내용이다. 저주를 피할 방법은 두 가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임기 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건지 피켓에 적어 사진으로 찍어 보내고, 받은 편지를 주변 의원 3명에게 전달해야 한다.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미래 유권자인 청소년들의 불안과 절박함을 모른 척한 대가로 다선(多選)의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의원직에서 내려온 뒤에는 ‘기후 역적’으로 역사 교과서에 남겨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청소년들은 이 행운의 편지를 국회의원 15명에게 보냈다. 기후위기와 관련 있는 산업통상위·환경노동위·기획재정위 소속 의원들과 각

[진실의 방] 소셜 임팩트 기업?

인터넷 검색을 하다 못 보던 용어를 발견했다. 소셜 임팩트 기업? 처음 보는 말인데 어딘지 익숙하다. 더 검색해봤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소셜 임팩트 기업 들을 모아 포럼을 만들겠다”는 선언을 한 모양이었다. 지난달 21일 서울 명동에서 ‘소셜 임팩트 포럼’ 창립식도 가졌다고 했다. 소셜 임팩트 기업. 직역하면 ‘사회적(social) 임팩트(impact)를 창출하는 기업’ 정도가 될 것 같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미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가 있다. 해외에서는 둘 다 ‘소셜 엔터프라이즈(Social Enterprise)’로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구분해서 쓴다. 정부의 인증을 받은 곳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지 않은 곳은 소셜벤처라고 부른다. 제도상의 이런 구분 때문에 기사를 쓸 때 설명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비슷한 용어가 또 생겼다.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었다. 알아야 기사를 쓰든 뭘 하든 할 게 아닌가. 업계 전문가들에게 소셜 임팩트 기업에 대해 물었더니 “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다행히 김 전 부총리가 어느 인터뷰에서 직접 뜻을 설명해 놓은 게 있었다. “소셜 임팩트 기업은 사회적기업보다 차원이 높다. 정부 지원을 받아 장애인을 돕는게 사회적기업이라면, 소셜 임팩트 기업은 경제활동을 잘하면서 사회적 가치도 추구하는 기업이다.” 사회적기업이 들으면 좀 섭섭할 소리였다. 자활기업에서 출발한 사회적기업들 가운데 비즈니스가 약한 곳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차원이 낮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비즈니스가 약한 기업일수록 오히려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들 중에

[진실의 방] 사과 없는 사과문

  “고(故) 최숙현 선수가 제 길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뒤통수 한 대를 (때린 것을) 인정합니다. 이런 신체접촉 또한 상대방에게는 폭행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저의 안일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다시 한번 반성하고 깊이 사죄드립니다.” 사건·사고의 주인공들이 올리는 ‘사과문’이라는 게 대체로 형편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기대 이상이었다. 감독과 동료에게 가혹행위를 당하고 지난 6월 극단적 선택을 한 최숙현 선수. 그를 괴롭혔던 동료 선수가 얼마 전 써서 올린 자필 사과문은 뉘우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허술한 변명들로 가득했다. 문장을 곱씹어보자. 우선 ‘뒤통수 한 대’라는 말로 일회적이고 예외적인 사건이었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사안을 축소하는 건 ‘거짓 사과문’에 흔히 등장하는 수법이다. ‘때렸다’는 말을 생략한 것도 흥미롭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때렸다는 표현만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음 문장에서 바로 드러난다. 가해자는 그날 자신이 했던 행동을 ‘신체접촉’이라고 표현했다. 접촉은 ‘닿았다’는 뜻이다. ‘퍽’ 소리 날 정도가 아니었음을 넌지시 알린 셈이다. 고인과 유족을 향한 사과문에 감히 신체접촉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는데,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그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아무래도 매뉴얼이 있는 것 같다. 세간에 떠도는 사과문들을 찾아 읽어보면 유형과 패턴이 거기서 거기다. 책임질 말은 쏙 빼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유형,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 본질을 흐리는 유형, ‘잘못한 건 별로 없지만 사과할게요’라고 이야기하는 대인배 유형도 있다. 지난 2018년 12월 16일, 태안화력발전소 운영사인 한국서부발전이 발표한 사과문은 ‘거짓 사과문’의 전형적인 문법을 보여준다.

[진실의방] 자연재난은 없다

불어난 황토물이 세차게 휘몰아친다. 인간이 애써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가소롭다는 듯 유유히 쓸어버리는 힘. 물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위협적이고 공포스럽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이런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이달 초부터 이어진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이 물에 잠겼다. 산사태만 700건 가까이 발생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장마를 난감해하고 있다. 패턴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우리나라 여름 기후에 영향을 미치면서 극단적 기상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재난 분류 체계에 따르면 호우(豪雨)는 ‘자연재난’이다. 폭염·태풍·홍수·가뭄·지진 등도 자연재난에 속한다. 감염병 사태, 붕괴 사고, 침몰 사고 등 인간의 부주의나 고의로 발생한 재난은 ‘사회재난’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이런 유형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재난을 사회재난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로 자연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폭우나 폭염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는 것도 자연재난을 사회재난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쓴 ‘폭염 사회’라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1995년 여름, 단 일주일 만에 사망자 739명을 낸 ‘시카고 폭염 사태’를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시카고 폭염을 단순한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비극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혼자 사는 노인, 에어컨 없이 사는 빈곤층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소외 계층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호우라는 재난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재난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들이 무심코 밖에 나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고,

[진실의방] 일 잘하는 사람

코리아나호텔 주차장에 차를 대기 시작한 건 2011년이었다. 수개월간 회사 주차장을 비롯해 여러 주차장을 배회하다가 마침내 정착한 곳이었다. 월 주차비 12만원. 도심 한복판에 있는 주차장치곤 가격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차 관리하는 분들이 다 좋았다. 세 명의 관리자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책임이 많았던 그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소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계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업무를 했고 바쁜 와중에도 늘 단정하고 친절했다. 두 달 전쯤 주차장 입구에서 뚝딱뚝딱 공사를 하더니 차량 드나드는 시스템이 자동으로 바뀌었다. 예전 시스템이 참 구식이었단 걸 그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부스에 앉아서 차단기를 일일이 열어주는 방식이었으니까. 시스템이 바뀐 뒤에도 한동안 관리자분들이 보여서 별문제 없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모두 사라져버렸다. 소장님과 10년간 매일 얼굴 보며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하는 모습으로 그를 기억할 뿐이다. 일을 참 즐겁게 하는 사람. 그러므로 좋은 사람. 공익제보자 A는 기부금단체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사표를 썼다. 조직이 갑자기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 꼴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만뒀다고 했다. 새 직장을 찾은 그는 전 직장의 갑질 비리 의혹을 제보하겠다며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A를 만나러 나가는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좀 길게 했다. 우리가 궁금한 건 제보자의 개인적인 사연이 아니라 팩트다, 기사를 쓰는 이유는 개인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공익제보자라고 다 좋은 사람은

[진실의방] 라떼를 끓이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비영리 활동가 출신 ‘어른’을 만났다. 지금은 공공기관의 높은 자리에서 일하느라 말쑥한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매고 다니지만 조금만 대화를 해보면 빼도 박도 못하는 ‘현장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몸으로 때우고 싸워가며 속도감 있게 일하다가, 단계와 절차가 많은 큰 조직에서 일하려니 어려움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게 보였다. 저기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피’ 말이다. 한마디로 흙바닥에서 시작한 사람이다. 공익의 개념조차 흐릿하던 시절에 NGO 단체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며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느낌이 왔다. 라떼 이야기다.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런 종류의 무용담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독 라떼를 잘 끓이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 선배 중에 특히 많다. 마치 구비문학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청중의 호응이 좋으면 양념이 살짝 뿌려지면서 더 스펙터클해지는 스토리. 자세를 고쳐 앉고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공정무역이라는 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온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의도는 훌륭했으나 초창기에는 일반 커피보다 가격도 비쌌고 맛도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서 장사가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커피 농부들을 떠올리며 아침에는 교회에 가서 커피 팔고, 오후에는 절에 가서 커피를 팔았다는 웃기면서도 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기부금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기업들을 찾아다녔던 추억도 꺼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돈이 드니까, 라고 그는

[진실의방] 여전히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

  “쇼하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가 최근 사재를 털어 100억달러(약 12조30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싸늘하다. 그는 이른바 ‘베이조스 지구 기금(Bezos Earth Fund)’이라는 걸 조성해 이 돈을 기후변화 대응에 쓰겠다고 밝혔다. 칭찬받아 마땅할 일인데 되레 욕을 먹는 이유는 아마존이 ‘기후위기 악당 기업’으로 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사업과 배송 사업 등으로 전 세계 탄소배출량을 늘리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기업 운영 방식은 바꾸지 않고 기후변화 대응 기금을 만들겠다고 하니 거액을 내놓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것이다. 최근 SNS에서 번지고 있는 ‘나쁜 기업 사회공헌 활동 기금 거부 운동’도 흥미롭다. 국내 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의 기부금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릴레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 지목된 곳은 한국마사회다. 지난해 벌어진 문중원 기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한국마사회의 사회공헌 활동 기부금을 거부하는 운동을 진행 중이다. 아마존도 그렇고, 나쁜 기업들의 보여주기식 사회공헌 활동에 큰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세상이 바뀐 걸 모르고 여전히 수익만을 쫓는 기업들은 투자도 받기 어려워졌다. 올 초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앞으로 기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기후변화’와 관련된 대응을 하고 있는지를 주요 지표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석탄화력 등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에 대한 투자금부터 빼겠다고 밝혔다. 물론, 블랙록이 환경을 위해서 이런 결정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석탄화력 산업의 경제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진실의 방] 흩어지면 데이터, 모이면 임팩트

중학교 때였다. 늦은 여름날, 학교에서 단체로 야영을 했다. 다른 건 다 잊어버렸는데 친구들과 운동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같이 밤하늘을 올려다봤던 게 기억난다. 밤하늘을 그렇게 오래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또렷해지던 별들. 어쩌다 별똥별이 떨어지면 친구들과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밤하늘을 제대로 본 건 지난해 몽골 취재를 갔을 때였다. 저녁까지 비바람이 몰아쳐서 별 보긴 글렀구나 포기하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더니 까만 하늘 위로 별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밤하늘을 뒤덮은 별들을 보며 그저 작은 탄성만을 내뱉었다. 그때 알았다. 별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별을 보는 게 어렵다는 걸.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일행 중 한 분이 손가락으로 먼 하늘을 가리켰다. 북두칠성이 거기 있다고 했다. 찾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몽골의 북두칠성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또렷해서 단번에 국자 모양을 발견했다. ‘이번 건 좀 더 어려운 별자린데’라고 운을 떼더니 다른 곳을 가리켰다. 수많은 별이 정신없이 얽히고설킨 그곳을 한참 동안 헤맨 끝에 찾아냈다. 꼬리와 머리, 활짝 편 양 날개. ‘백조자리’였다. ‘코로나맵’ 서비스가 처음 나온 건 지난 1월 말이었다. 정부에서 내놓는 코로나19 확진자 데이터가 산발적이고 정돈되지 않아 시민의 불안감만 키우던 와중에, 한 대학생이 확진자 동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코로나맵을 만들어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 사람들의 제보 등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긁어모아 좌표를 찍고 그걸 선으로 이어 보여주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