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특례법
미혼모 정책 따로, 입양 정책 따로 지원금보다 인식개선 우선해야

지난 2012년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아동이 친부모에게 양육될 권리를 최우선으로 보장하고 국내입양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지원체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개정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입양문제를 둘러싼 주체는 정부(보건복지부 및 여성가족부)·입양단체·가정법원 3곳이다. 전문가들은 “부처 간 칸막이 문제가 입양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고 입을 모은다. 입양대상 아동 부모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미혼모 문제는 여성가족부가, 입양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미혼모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장려하고, 불가피할 경우 국내입양을 유도하고, 그조차 어려우면 해외입양을 선택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정책의 우선순위는 거꾸로다. 여성가족부 따로, 보건복지부 따로다. 현재 미혼모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양육비는 24세 이하 청소년의 경우 매월 15만원, 성인은 7만원뿐이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박완주 의원이 작년 11월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 예산현황’을 분석한 결과, 사업비가 2010년 120억8000만원에서 2014년 22억8700만원으로 불과 4년 만에 80% 넘게 삭감된 사실도 드러났다. 한 입양 기관의 관계자는 “법이 바뀐 이후에는 미혼모들이 직접 아이를 양육하겠다는 비율이 과거(40%가량)에 비해 60% 이상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미혼모 자립과 양육을 돕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친다면, 선진국처럼 국내에서 입양할 아이를 찾기 힘든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미혼모 자립과 함께 정부는 국내 입양을 활성화해야 하지만, 정부의 인식개선 정책은 지지부진하다. 미숙아로 태어나 뇌수종, 뇌위축증, 언어·발달지체 등의 장애를 지닌 고(故) 현수군의 국내 입양이 실패했듯이, 장애를 지닌 남아는 국내입양 기피대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74.2%는 여아 입양을 원하고, 장애아동은 겨우 12.5%만

길고 복잡한 절차… 입양 전담 판사 필요해

‘특례법’ 실시 후 인천지역 첫 사례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 보셨죠? 닭이 청둥오리를 키우잖아요. 애들한테 그런 식으로 입양을 접하게 해주고 싶어요.” 인천에 사는 유진아(가명·35)씨는 지난달 16일, 5개월 된 미진(가명)양을 입양했다. 지난 8월 5일 ‘입양특례법’이 실시된 후 인천에서 입양 허가를 받은 첫 사례다. 개정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입양을 원하는 양부모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 4월 입양을 신청한 유씨는 “길고도 힘들었다”고 입양 과정을 설명했다. 개정 입양특례법에 따라, 유씨는 주민등록등본, 소득 및 재산 관계 서류 등 기본 서류 외에 범죄경력 조회 회신서, 심리검사 결과서, 알코올·마약 등 약물중독 관련 서류를 가정법원에 추가 제출해야 했다. “입양될 아이를 위한 법이라곤 하지만 절차가 매우 복잡해요. 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관련 기관의 이해와 협조가 부족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유씨는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취지에 맞게 정착하려면, 가정법원의 입양 전담 판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사 조사 끝나고 판사님 만나는 데 한 달 걸렸어요. 판사님 재판 일정이 빡빡해서요.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빨리 부모와 만나야 애착 관계가 생겨요. 입양을 담당하는 전담 판사가 없다 보니, 가정법원에서 이혼을 주로 담당했던 판사분들이 허가를 내려요. 아이를 위한 입양이니만큼 세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유씨는 지난 4월부터 한국입양홍보회 인천 지부 등 입양 가족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아이가 입양 사실을 받아들일지 제일 두려워요. 준비하려고 공부하는 거예요. 공개 입양 가정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배워요. 입양 사실을 숨겼다가 아이가 나중에 받는

“선진국형 입양 제도로 뿌리찾기 쉬워져요”

입양특례법이 바뀌었다, 비밀입양은 이제 없다 친부모는 반드시 출생신고 일주일 숙려기간 거쳐야 국내입양 우선 추진하고 양부모 자격심사도 강화 입양 정책 정착 위해선 사회 인식 변화 중요해 “나에 관한 정보인데, 당사자인 내가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어요.” 지난 6일 서울 시청역 인근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 인카스(InkAS) 사무실에서 만난 그레이스(가명·28)씨는 3년 전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스씨는 2009년 처음 한국에 왔다. 해외입양인들의 한국 방문과 정착을 지원하는 (사)해외입양인연대의 가족 찾기 여행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한국의 입양기관에서 넘어온 자료에 친생모의 이름이 남아있다”는 소식에,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왔다. “저는 생후 4개월 만에 미국 켄터키주로 입양됐어요. 백인 중산층 부모님에다, 백인들만 다니는 사립학교를 나왔죠. 나만 유일한 동양인이고,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안 이후 ‘내가 태어나던 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 궁금했어요. 열아홉 살 때 양부모님이 한국 여행을 보내주려고 했는데, 그때는 제가 ‘한국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어요. 버려진 아이였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힘들었거든요. 스물여섯 살이 되자 스스로 뿌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나 그녀의 기대는 무너져내렸다. 자신이 태어났던 경기도 구리의 병원은 이미 사라져버려 출생기록을 볼 수 없었다. 입양기관의 사회복지사는 “기록에 엄마 이름은 없다.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망과 분노 때문에 그녀는 나머지 여행 일정을 포기한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레이스씨는 “나중에 입양기관에서 받아본 원본서류의 복사본에는 가족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레이스씨는 이후 한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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