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든다. ‘또 번아웃 이야기야?’ 하며 인상이 찌푸려지는 한편 ‘그래서 어떻다는 건데?’ 하며 귀가 쫑긋 세워진다. 정확한 형체도 알 수 없는 번아웃이 이곳저곳에서 무분별하게 언급돼 들려오는 것이 피곤하다가도, 언젠가는 이 전염병이 나를 찾아올 수 있으니 증상을 잘 알아둬야만 할 것 같다. 임팩트 생태계에서 일하며 얻는 가장 큰 수혜는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일하면서 사귈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옆집, 앞집, 옆 동네 동료들이 ‘번아웃’으로 퇴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누구보다도 몰입했던, 조직에 헌신했던, 성과가 보이던 사람들이기에 그 결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그 역병에 걸리기 전까지 말이다. 입사한 이래 모든 해가 쉽진 않았지만, 특히 작년은 보릿고개를 넘는 것만 같았다. 임팩트 생태계에 들어오는 자원들은 점점 축소돼 가고, 동료들은 떠나고, 함께 일하던 조직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마치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에 탄 것처럼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각오로 버텼다.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생존의 두려움은 가연성 높은 연료이기에 내면에서 활활 불이 잘 붙었다. 업무 엔진은 가열차게 돌아갔으며, 일의 결과들은 나쁘지 않았다. 몰입은 좋은 것이고,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기에 이 상태의 건강성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책 <번아웃의 종말>에서는 ‘번아웃’의 원인이 조직 사회의 현실과 우리의 이상 사이의 모순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에 임팩트 생태계 실무자들이 겪는 번아웃의 맹점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한다는 이상은 우리가 이 일을 하는 동력이자, 우리의 존재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