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반복 ‘프랙탈’이 전통예술로 거듭나다

‘수학 공식과 IT기술이 만나 전통 예술을 살린다?’ 얼핏 들으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 여기 도전장을 내민 사회적기업이 있다. 인도네시아 사회적기업 ‘픽셀 인도네시아(Pixel Indonesia)’가 그 주인공.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수학의 ‘프랙탈(fractal)’ 개념을 활용해 인도네시아 전통 무늬인 ‘바틱(Batik)’을 디자인한다.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몇 번의 클릭으로 나만의 문양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2D평면은 물론이고, 3D 입체적 문양도 가능하다. 창립자 세명의 전공은 각각 건축·수학·커뮤니케이션. ‘전통 예술’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 ‘바틱’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뭘까. 지난 6일, 영국문화원이 주최한 ‘인도네시아 창조·사회적기업을 만나다’ 행사에서 만난 픽셀 인도네시아(Pixel Indonesia)의 무하마드 루크남(Muhamad Lukman·사진) 공동창업자 겸 디자인 총괄책임을 인터뷰했다. -‘프랙탈’ 원리로 바틱 문양을 생산한다는 게 흥미롭다. 기존 바틱 시장의 문제가 무엇이었고, 프랙탈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나.   “‘바틱(Batik)’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염색 방식이자, 무늬를 일컫는다. 전통적으로는 ‘챤틱’이라는 얇은 도구를 이용해 녹인 밀랍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천연 염색 방식으로 색을 물들인 뒤 끓는 물에 밀랍을 녹인다. 인도네시아에서 ‘바틱’은 문화 그 자체다. 나이 많은 결혼식 같은 중요한 행사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이나 출근할 때도 바틱을 입었다. 그러나 바틱은 젊은이들에게 외면 받았다. 디자인이 너무 획일적이다. 몇 가지 디자인이 수십 년째 반복됐다. 개인이 새로운 문양을 만들기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시장에서 통하면 바로 복제 될 확률도 커서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할 유인이 적다. 게다가 전통 바틱 문양을 기록하고 축적한 자료도 많지 않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책임집니다, 단 공정하게!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g:ru) 황금빛 오일이 여성들의 삶을 바꿨다. 모로코 남서부 아가디르에서 남쪽으로 12km 떨어진 티라니민 지역, 척박한 사막지대에 산으로 둘러쌓인 이 곳에선 농사도 불가능했다. 일자리는 없고, 사람들은 가난했다. 2007년, ‘글자 공부’를 하러 모인 22명의 여성이 중심이 되어 협동조합을 꾸렸다. 모로코의 ‘공정무역 아르간 오일 생산조합’, 티라니민(Tighanimine) 조합의 시작이었다. 건조한 사막땅에도 야생 아르간 나무는 지천에 가득했다. 전 세계 유일하게 이 지역에서만 자란다. 수백 년간, 이 지역 여성들은 나무 열매에서 짠 오일을 피부에도 바르고 약으로도 썼다. 티라니민 조합에서는, 대대손손 물려오던 친환경 전통 방식 그대로 열매를 채취하고 오일을 생산한다. 생산하는 오일은 유기농 인증에 공정무역 인증까지 받았다. 프랑스, 스페인,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 거래하는 국가도 하나 둘 늘었다. ‘감히 여자가 나서서 돈을 번다’며 반대하던 지역 남자들도 늘어나는 소득 앞에 조금씩 태도가 달라졌다. 이제는 참여하는 지역 여성만도 60명 이상. 들어온 수입으로는 아이들도 교육시키고 집안 살림도 챙긴다. 함께 모여 글도 배우고 교육도 듣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됐다. “아르간 오일이 유명세를 타면서 많은 화장품 제조업체에서 모로코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과도하게 열매를 채취해 아르간 숲이 사라지거나, 오일 판매금에 비해 일하는 사람들은 쥐꼬리만한 돈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요. 그런데 ‘공정무역’은 매 단계마다 일의 양에 비례해 적정한 돈을 받습니다. 조합 전체에서 남은 소득은 조합원들과 배분하고요. 여성이 소득을 얻으면 아이들이 달라지고, 집안이 달라지고, 지역 사회가 달라집니다. 저는 거기에 미래가 있다고 봐요.” (나디아 파트미(Nadia Fatmi) 티라니민 조합

네팔 대지진의 아픔도 커피 한 잔에 담았습니다

아름다운커피 2015년 4월. 네팔 땅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80년 만에 일어난 강도 7.8 규모의 대지진이었다. 8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1만6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도로와 통신은 끊어졌고, 86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생겼다. 아이들과 부모는 삶의 터전을 잃었다. 네팔 지진 직후, 여러 국제구호개발 단체들이 현장을 찾았지만, 한국의 공정무역 단체 (재)아름다운커피도 네팔을 찾았다. 아름다운커피는 2006년 공정무역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을 출시하면서 네팔의 신두팔촉 지역의 협동조합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었기 때문. 아름다운커피가 네팔 현지의 커피농가들과 협력 관계를 가진지 꼭 10년째였다. 하지만 네팔 대지진으로 생산지가 파괴되면서, 500여 가구의 조합원 중 35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커피 묘목과 농작물은 그야말로 황폐화됐다. “카페 사장님 대부분은 맛있는 커피보다 ‘균일한 맛’의 커피를 선호해요. 손님들이 그 맛을 기억하고 카페를 찾기 때문이죠. 하지만, 공정무역 커피는 생산자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이 원칙이기 때문에, 생산지 상황에 따라 맛이 다를 수 있어요. 더구나 일반 무역상이었다면,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네팔 지역의 커피 원두를 구매하지 않았겠죠. 원두 크기도 작아졌고, 작년보다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배소영 아름다운커피 상상마케팅팀 간사) 아름다운커피는 일반 무역상과 달랐다. 생산지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았다. 2015년 9월. 아름다운커피는 ‘성거이(네팔어로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이 함께 네팔의 아픔을 치유하겠다는 뜻이었다. 아름다운커피는 ‘성거이 프로젝트’로 약 1억여 원을 모금해 커피 농가의 자립을 지원했다. 피해 지역 아동들에게 미술치료 프로그램도 지원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네팔로부터 구매한 커피 생두만 100톤가량이다.   ◇ 커피 한 잔에 생산지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사회적기업 최초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 착한 여행의 대중화 이끌어

2009년 설립 후 국내외 300여개 공정여행 상품 개발  개도국 현지 법인 설립해 지역 주민 자립도 높이고 관광 비용도 낮춰 4년 간 전년대비 80%씩 성장, 올 해 35억 매출 예상돼 지난달 한 홈쇼핑사의 전남 장흥과 강진 여행상품이 새벽 방송에도 불구, 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주목을 끌었다. 특히 국내여행은 2~3만 원대 값싼 당일치기 상품만 팔리던 것과 달리, 1박 2일에 14만 원가량이라는 다소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예약이 폭주했다. 비결은 원치 않던 쇼핑 일정과 가이드 팁이 전혀 없는 데다, 현지 주민이 운영하는 민박에서 직접 키운 신선한 농산물로 만든 식사를 하고 지역 토박이들이 숨은 명소들을 가이드해주는 꾸밈없는 여행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덕분에 지역민들도 새로운 고소득의 부수입원이 생겼다. “50~60대 관광객들이 ‘여러 번 이 지역을 와봤는데 이런 여행은 처음’이라고 놀라더라고요.” 여행을 기획한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의 변형석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고 대표는 “지역에는 최선의 기여를, 자연엔 최소의 영향을 끼치며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공정여행’”이라고 했다. “여행 경험이 늘면서 대중들도 이제 관광 역시 ‘싼 것이 비지떡’이라는 걸압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차별화된 여행에도 관심이 커지면서 공정여행 개념도 이전보다 훨씬 익숙해졌죠.” 2009년 사회적기업 최초로 공정여행 사업을 시작해 이를 대중화시키기까지, 트래블러스맵의 성장은 곧 우리나라 공정여행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그 험난했던 여정을 자세히 들어봤다. ◇6개월 이상 현지 체류하며 지역 파트너십 다지고 공정 여행 기틀 마련  유엔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6% 이상이 오로지 여행 때문에 발생, 그

모링가 나무에서 빈곤의 해결책을 찾은 가나의 사회적 기업

영국문화원은 사회적 기업 월드포럼 행사 전야에서 사회적 기업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 시리즈를 공개했다. 영국문화원은 방글라데시, 가나, 인도, 파키스탄에서 사회적 기업이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영상을 제작했다. 이 영상과 ‘모링가커넥트(MoringaConnect)’의 대표 크와미 윌리엄씨(Kwami Williams)와의 인터뷰는 모링가커넥트가 이룬 가나의 영양실조 해결과 가난한 농민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활약상을 잘 보여준다. Q. MIT를 졸업한 항공우주 공학자와 하버드대학의 개발경제학 전공자가 어떻게 가나의 농부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시작하게 됐는가? A. 우스운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주에서 토지로, 경제 이론에서 식품과 화장품 브랜드로 온 것이 내가 걸어온 길이다. 공동창업자인 에밀리 커닝함(Emily Cunningham)과 나는 각자의 학위가 개도국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확산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이런 탐색의 과정을 거쳐 다방면의 학문으로 개발(Development)을 접근하는 D-Lab이라는 MIT의 과정을 등록했고, 개도국만을 위한 것이 아닌 수혜자와 공여자가 함께 누리기 위한 함께 만들어내는 솔루션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2012년 1월, 수업의 과정으로 모링가를 재배하는 가족들과 함께 일해보기 위해 가나를 방문했었다. 일정이 끝나갈 때 쯤, 소작농 가족들의 빈곤과 영양부족의 해결책이 그들 뒤뜰에 있는 모링가 나무에 놓여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때부터 모링가 나무에서 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해 애써왔다. Q. 왜 빈곤의 해결책으로 모링가 나무를 주목했는가? A. 가나 농부들이 우리에게 계속 ‘모링가는 기적의 나무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처음에는 의심쩍었지만 모링가 나무를 연구할수록 그들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링가는 내건성(가뭄에 잘 견디는) 열대 나무로 성장이

들리지 않는 이들을 위한 콘텐츠, 우리가 만듭니다

열린책장 청각장애인들에게 ‘책’은 ‘암호’로 가득 찬 문서다. ‘보는 것’은 문제가 없으니, ‘읽는 것’은 쉽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청인들은 어릴 때부터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 ‘언어 능력’이 자연스럽게 발달되나, 농아인(聾啞人·청각장애로 수화를 쓰는 사람)들은 듣는 단계에서부터 장벽에 막힌다. “청각장애인 아이들을 만났는데, 책을 못 읽는 거예요. 금도끼은도끼, 선녀와 나무꾼도 몰라요. 농인들이 자라온 환경이 그렇습니다. 이들을 위한 그림책, 동화책이 전무하죠. 청각장애인에게 한국어가 제1언어가 아니더군요. 그렇다면 이들의 언어인 ‘수화언어’로 책을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강화평(31)씨가 지난 2013년,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예비)사회적기업 열린책장을 창업한 이유다. 20대 중반부터 온라인 교육 벤처 창업 멤버로 4년 가량 일하며, 회사를 엑싯(Exit᠂ 투자 회수)한 경험까지 있었지만 ‘갈증’은 여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좋은 일을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던 강씨. 그는 ‘사회적기업’이란 개념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며, 지역아동센터에서 실습를 하던 그는 “모든 아이들에게 책 읽는 기회는 공평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부자들의 책장을 보면 서재에 멋있는 그림도 걸려있고, 무려 사다리를 타고 책을 꺼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저희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어요. 20살까지는 책을 거의 안 읽었는데, 군대에 가서 책을 많이 읽으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요. 거의 하루에 1권씩 읽었어요. 이 좋은 걸 어릴 때부터 경험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본인의 어린 시절에 보상을 하기 위해서라도, 책 읽기가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문자메시지로 누구에게나 공부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프리카 케냐 시골, 자원은 부족하고 학생은 넘쳐났다. 교사 한 명이 맡는 학생은 70명도 훌쩍 넘었다. 교육 자재도, 공간도, 기회도 부족했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방법은 없을까?’ 10여 년 경력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미국에서 건너온 교육자가 손을 잡았다. 201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시작한 사회적기업 에네자 에듀케이션(Eneza Education)의 이야기다. 모두가 사용하는 핸드폰을 활용해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구석진 시골에도 핸드폰은 있었다. 웹 기반이 아닌 문자 서비스 위주라면 저가 핸드폰에서도 이용이 가능했다. 공교육 체계에 기반을 둬 ‘문자 교육 과정’이 구성됐다. 수학, 영어, 케냐의 모국어인 ‘키스와힐리’ 등 교과도 다양하다. 한 주에 10 케냐 실링, 약 100원 정도면 ‘1대 1 과외교사’가 핸드폰으로 찾아온다. 이용자들은 적은 돈으로 배움의 기회를 얻고, 기업은 교육 문제를 해결하며 수익을 내는 셈.  설립한 지 올해로 5년, 안드로이드와 웹 기반 서비스도 개발했지만, 여전히 문자를 활용해 교육 서비스를 듣는 이들이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다. 지금까지 1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들이 에네자 에듀케이션을 거쳐갔다. 이제는 케냐를 넘어, 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 9개 국가에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골 외지에서부터 난민 캠프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유로 학업을 중단했던 이들도 에네자 에듀케이션을 요긴하게 쓰는 주요 고객이다. 에네자 에듀케이션을 설립한 창립자 카고 가기치리는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Top 30 사회적기업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재무적 수익에  사회·환경적 가치를 고려하는 ‘임팩트 투자’도 이어졌다.    오는 11월 3일, 에네자 에듀케이션 설립자 카고 가기치리씨가 한국을 찾는다.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제주에서 열리는 글로벌 임팩트 투자

대한민국 마당극의 산 역사 ‘마당극패 우금치’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이 장(場), 저 장 만 장 중에 으뜸이라 ‘대전장’.” 지난달 21일 오후, 대전시 중구 중앙로에 위치한 ‘별별마당’ 1층에 들어서자 신나고 경쾌한 우리 가락 소리에 저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북과 꽹과리 소리에 맞춰 15년 차 배우들이 우렁차면서도 한(恨)이 느껴질 정도로 깊이 있게 소리를 내니 건물 전체가 울렸다. 연습실은 실제 마당극이 펼쳐지는 장터 한복판처럼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날 연습한 마당극 ‘별을 먹는 장돌뱅이’는 ‘마당극패, 우금치(이하 우금치)’가 만든 창작극으로, 오늘날 대형마트와 대비해 정겨웠던 재래시장을 재연하며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우금치가 풍물 소리와 전통 춤 등에 사회문제를 담아 만든 마당극은 지난 26년 간 100여 편이 넘는다. 대한민국 마당극에 ‘살아있는 역사’인 셈이다. ◇10년 간 산 속 연습, 마당극 쇠퇴 위기 속 발휘된 단합의 힘 우금치가 처음 결성된 건 1990년, 충남대‧배재대 등 대전 지역 대학 내 탈춤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던 학생들 7명이 졸업 후 다시 뭉친 것이다. 창단 멤버인 이주행 우금치 운영위원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마당극은 농민 등 소외된 계층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사회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내는 창구 역할을 했다”고 떠올렸다. “같이 모여 문제를 고민하고, 춤추고 소리 내면서 땀 흘려 연습하다보니 벌써 30년지기가 됐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식구’죠(웃음).” 하지만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매번 연습실을 옮겨 다닐 때마다 악기를 두드리고 큰소리를 내는 것이 시끄럽다며 민원이 빗발쳤고, 결국 산속에 들어가 기숙사 등 연습촌(村)을 만들어 10여

장애 극복하고 기술력으로 지역 명물 빵 만드는 사회적기업 ‘한터’

“빵 만드는 게 정말 재밌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지난달 22일, 이른 아침부터 고소하고 달콤한 빵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던 사회적기업 ‘한터’의 베이커리 작업장. 그곳에서 만난 장인미(30‧지적장애 2급)씨는 아침에 만든 크로와상, 단팥빵 등을 빠른 손놀림으로 능숙하게 포장하며 밝게 말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3시간가량 인미씨를 포함해 9명의 중증 장애인들과 두 명의 전문 제빵사가 만든 빵은 무려 20여종. 5년 이상 함께 손발을 맞춰온 덕분에 반죽하고 오븐에 굽는 것부터 포장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미씨 역시 올해 10년차 제빵사. “일을 하면서 동생에게 용돈 주는 재미도 알고, 꿈도 생겼죠. 부모님 해외여행도 보내드릴 거에요(웃음).” 장애인 직원들에게 제과제빵 교육을 하며 함께 일하는 제빵사 박선미씨는 “장애인들이 일을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하나씩 천천히 가르쳐주면 충분히 자기의 몫을 다한다”고 말했다.  ◇10년 노하우와 정성 쌓여 재활시설에서 기업으로 탈바꿈 한 ‘한터’ 중증 장애인들이 빵과 참기름 등을 생산하는 ‘한터’는 2000년,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엔 수익보다 장애인들의 직업 적응 훈련과, 취업 상담 등을 돕는 재활시설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후 10년 간 전날 주문된 제품만 우리 밀과 당일 배달된 우유 등 신선한 재료로 생산‧배송하며 제품 신뢰도를 높였다. 장애인들도 한 달 간 손 씻기나 위생복 입기 같은 기초 교육부터 빵 반죽 등 기술적 부분은 물론 심리 치료까지 적응훈련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개별 평가를 통해 실력을 쌓아갔다. 이런 노하우들이 쌓이며 본격 사업을 시작, 2011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장애인의 ‘두 발’이 되어드립니다

헬프카 협동조합 장애인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2007년, 부인을 따라 시작했던 중증장애 활동 보조가 그의 삶을 바꿨다. 2014년,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는 ‘헬프카 협동조합’을 시작한 이득우(63·사진) 대표의 이야기다. “중증장애를 지닌 분들을 보조하면서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휠체어 타는 분들에게는 이동하는 일이 여간 큰 일이 아니더라고요. 전동 휠체어는 일반 자동차에 들어갈 수도 없어요. 그래서 보통 일반 휠체어로 옮겨서 차에 태워서 학교나 사무실로 이동한 다음에 그곳에 비치해 둔 전동휠체어로 다시 옮겨드려야 했고요. 번거로운데다 쉽사리 이동하기 힘들었죠.”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시작됐다.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기 위한 여러 대안이 있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장애인 분들 위해서 저상버스가 많이 보급됐지만 당사자들은 거의 쓰지 않아요. 장애인 한 분 타려면 버스가 멈춘 다음에, 리프트가 내려오고 기사가 안전벨트까지 채워드려야 하는데, 다른 승객들이 기다리면서 시선이 집중되는 시간이 불편한 거죠. 노선이나 운영 대수가 많지도 않고요. 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도 한계가 많아요. 하루 전날, 오전 8시에 다음날 타고 싶은 시간을 미리 예약 해야 하는데, 급한 경우엔 쓸 수도 없어요. 예약 하기도 거의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고요. 차량 보유 수 자체가 제한적이다 보니, 몇 분 안에 마감이 되거든요.” 크기가 큰 전동휠체어는 일반 택시나 버스에 실을 수도 없었다. 사고가 난 이후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 장애등급 판정을 받지 못한 이들이나,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들도 사각지대였다. 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할 수 없기 때문. 저녁 10시 이후로는

교육 격차 해소? 대학생들이 직접 나섭니다

미담장학회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대학을 일찍 갔어요. 새내기때부터 과외를 많이 해봤는데, 부조리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학비 때문에 과외를 했는데, 저의 돈벌이가 누군가에겐 불평등한 기회를 조장하고 있을 수 있겠구나᠁ 돈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누구나’요.” 21살 한 청년의 ‘오기’는 매년 5000명의 청소년이 꿈을 꿀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카이스트 전자전자공학과에 재학중이던 장능인(27)씨는 2007년, 모교를 중심으로 대학생 자원봉사 그룹을 구성하며 첫 발을 내디뎠다. 만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09년에는 카이스트 미담장학회를 설립, 미담봉사단을 발족했다. 다른 멘토링이나 공부방과의 차별점은 바로 학생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학생들은 사실 대학에서 뭘 가르치는지도 모르고, 입시 면접 때 처음 가보잖아요. ‘상아탑’이라며 멀게만 느껴지는데, 문턱을 낮추는데 의의가 있었어요.” 미담장학회 대학생 멘토들은 주말을 활용해, 대학교 강의실을 대여해 대전 지역 중·고등학생 멘티들에게 수학, 과학, 영어 수업을 무료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미담장학회’. 학생들 스스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2010년에는 대전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되면서, 조직으로서의 모습이 점차 정비됐다. 무료 교육 봉사와 동시에, 대전 시내 각 학교와 ‘방과후 학교’ 사업을 벌이면서 조직 운영비를 마련하는 전략을 세웠다. 미담장학회의 이사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장능인씨는 “미담장학회는 인력이 필요한 학교에 대학생 명예교사를 파견하고, 인건비의 20%를 미담장학회에 기부하게 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방과 후 학교, 진로 캠프 등 교육 관련 다양한 공익 사업을 펼치던 미담장학회는 2013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으로 인증까지 받았다. 4년 전만해도 상근 인력 1명으로

‘전기차 택시회사’에서 ‘수제맥주’까지… 네덜란드 사회적기업이 궁금하신가요?

전체 인구 1600만명, 1인당 GDP 세계 13위. ‘작지만 강한’ 네덜란드의 사회적기업들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6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코워킹 스페이스 ‘하이브아레나’에서 열린 ‘네덜란드 사회적기업 알아보기’ 행사에서 만난 스테판(Stefan Panhuijsen·사진)에게 네덜란드 사회적기업의 현주소를 물었다. 스테판은 네덜란드 사회적기업 협의체 조직인 ‘소셜 엔터프라이즈 네덜란드(Social Enterprise NL)‘의 정책 및 리서치 담당자다. (하이브아레나는 ‘기술을 통해 사회 내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코워킹 스페이스다.)  -네덜란드의 ‘사회적기업 생태계’는 어떤가. “걸음마 단계다. 네덜란드는 유럽 내에서 사회적기업 논의의 ‘블랙홀’이라 불렸다. 사회적기업 관련한 제도나 정책이 전무했다. EU에서 수년간 사회적기업에 관한 여러 논의가 이뤄진 것과는 달랐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할 때 법·제도적 장벽도 높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2012년 ‘소셜엔터프라이즈 네덜란드(Social Enterprise NL)’가 만들어졌다. 사회적기업을 위한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사회적기업에게는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네트워크의 장을 마련한다. 동시에 정부를 대상으로 법이나 정책 개정을 요구하고, 사회적기업가와 임팩트 투자자를 연결하고, 생태계 전반에 필요한 연구를 진행한다. 언론 홍보도 한다. 현재 네덜란드 내 300여곳의 사회적기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가입한 사회적기업으로부터 받는 회비나 재단 후원금, 행사 참가비 등으로 운영한다. 정부 지원금은 전혀 받지 않는다.” -‘소셜 엔터프라이즈 네덜란드’가 설립된 지 올해로 4년째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난해 중순, 네덜란드의 사회고용부 산하 사회경제위원회(Social and Economic Council)에서는 지역정부가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EU내  ‘블랙홀’이라 불렸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변화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수도 암스테르담을 비롯, 여러 지역정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