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② “인력 턱없이 부족, 기존 사례만 관리해도 더 많은 학대 막을 텐데…”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2)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동행취재 울주와 칠곡의 아동 학대 사망 사례로 인해 전국이 떠들썩하다. 아동 학대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전국 50개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선 매일 이 같은 사건을 접하지만, 정작 아동 한 명이 죽기 전에는 주목조차 받지 못한다. 지난 11일 더나은미래 주선영 기자는 경기 지역의 한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의 하루를 동행 취했다. 편집자 주 “근래 아슬아슬한 현장이 많았어요. 며칠 전 한 초등학생이 아버지로부터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맞아 긴급 분리한 사건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내 아이 돌려주지 않으면 농약 먹고 자살하겠다’고 난리였고요. 오늘 현장에선 어떤 돌발 상황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전 10시.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자 김정환(가명·30) 상담팀장이 이날 동행할 신고 사례를 설명했다. “할머니가 중학생, 초등학생 남매를 돌보는데, 아이들끼리만 지내서 보호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엊그제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우선 학교에서 해당 아동을 만나기로 하고, 김 팀장과 올해 경력 4년차인 박민주(가명·27) 상담원이 2인1조로 함께 차에 올랐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출발한 차는 고속도로로 내달렸다. 이 기관에서 담당하는 시(市)는 총 4곳이다. 서울시의 3배에 달하는 면적을 상담원 9명이 담당한다. 지자체 담당 공무원에게 “아동 학대 사건이 이렇게 많으니 인력 예산을 지원해달라”고 몇 차례 설득한 끝에 그나마 올해 계약직 상담원 1명을 늘린 것이라고 했다. 신고 현장까지는 2시간 넘게 걸렸다. 학교 담당 교사의 도움을 받아 정예솔(가명·11)양을 상담실에서 만났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정양은 “할머니가 가끔 다녀가시고, 중학생인 오빠는 집에 잘 안

지역 내 전문성·네트워크 다 무시… 乙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이상한’ 계약

“‘을'(운영법인)은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하여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 ‘갑'(지방자치단체)은 ‘을’이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다수의 민원을 야기하거나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어 사업수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 경우 계약의 해지 등을 할 수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올해 초 각 지자체로부터 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운영 위탁 표준계약서’의 일부다. 보건복지부는 지금까지 ‘지정’ 형태로 운영해온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올해 3월 안에 ‘위탁’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위탁은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엔 평가 및 경쟁을 통해 위탁 기관을 재선정하게 되어 있다. 이를 두고 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학대 문제는 일반 복지사업과 다르게 위기 상황에 개입하는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2000년부터 길게는 15년 동안 한 민간 단체가 지역 내에서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쌓아왔는데, 이제 와서 관에서 민간 단체를 ‘갑을 관계’로 규정해 단체끼리 경쟁체제를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위탁 방식 자체도 을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불공정 계약’이다. 지자체마다 위탁 기간도 다르다. 사회복지사업법 제34조에 의하면 복지기관의 위탁 기간은 ‘사례 관리 지속성’ 등을 위해 통상 5년으로 되어 있지만, 지자체에 따라 ‘지자체별 위탁조례’를 들이밀며 짧게는 3년마다 위탁 기관을 재선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법상 ‘사회복지시설’이 아닌 ‘아동복지전담기관’으로 되어 있으니 사회복지사업법을 적용해줄 수 없다는 지자체도 있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민간 단체가 아동보호전문기관 하나를 맡으면 많게는 기관당 2억원 이상씩 자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위탁으로 변경됐다고 해도 경쟁이 치열하거나 쉽게 이 사업을 수행할 단체가 많진 않다”면서도 “잇속 챙기는 사업 하는 것도

학대받는 아동 놓고 중앙정부·지자체 책임 떠밀어

아동정책조정위원회, 6년 만에야… 돈줄 쥔 기재부 요지부동 보건복지부 종합 대책 발표했지만 예산 알맹이 빠져 있어 신고 의무자 교육·가해 부모 상담 민간 위탁 기관 부담만 가중 예산 지자체마다 들쑥날쑥 지방 이양 후 학대 아동 141명 사망 지난 2월 28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제5차 아동정책조정위원회’가 열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 번도 열리지 않은 회의였다. 2007년 제4차 위원회 이후 6년 만이었다. 이날 위원회에는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 이복실 여성가족부 차관, 서남수 교육부 장관 등 아동 관련 단체의 장관 및 아동 분야 민간 전문위원 10명이 참석했다. “아동학대 예방 및 보호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보자”는 자리였다. ‘예산’ 문제가 제기되자 자리는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민간위원 측에서 “(아동예산이) 지방으로 이양된 이후 지난 10년간 아동 141명이 학대로 숨졌다”며 “아동학대 사안의 경우 중앙으로 국고 환수해서 아동보호전문기관 개수도 늘리고 지원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기관당 3억원씩 최소 100곳 정도로 300억원의 국비를 아동학대 분야로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현오석 기재부 장관은 “지방으로 이양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았겠느냐”며 “아동이 학대로 사망한 수가 지방으로 이양해서 더 많은지 아닌지는 데이터를 갖고 와서 이야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반박하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고 한다. 2015년 ‘노인’과 ‘장애인’ 예산은 국고 사업으로 환수되는 데 반해 아동예산이 지자체 사업으로 남은 데 대한 이유를 묻자 현 장관은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는 전국에 있는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 국고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이서현 보고서’

이번호 커버스토리를 다루면서 울산 울주에서 계모의 학대로 사망한 8세 소녀 ‘이서현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제2의 이서현 사건’을 막기 위해 사건의 전개 과정, 제도적 문제점, 개선 방향을 정리한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입니다. 2000년 빅토리아 클림비라는 아이가 아동학대로 숨졌을 때 영국 정부는 2년에 걸쳐 전문가들의 체계적인 조사 활동을 토대로 한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국회에 제출해 승인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서현 보고서는 2개월 동안 민간위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서현이를 살려내지 못했을까’를 짚어내는, 이른바 실패 연구집입니다. 사건 개요를 읽다 눈물과 분노, 안타까움이 일었습니다. 최초 신고를 받은 포항아동보호전문기관, 서현양 가족이 급히 이주했던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 대해 “왜 아동을 격리 조치하지 않았느냐” “왜 적극 개입하지 않았으냐”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학교, 유치원, 병원 등 신고 의무자에 대해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 서현양을 돌봤던 상담원 A씨는 사건 이후 경찰에 불려가고 각종 진상보고서를 만드느라 시달리는 등 갖은 고초를 치렀다고 합니다. 신고 의무자들 중 신고 의무자 교육이나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의사는 의과대학 시절 소아과 과목에서 학대 예방교육을 들은 게 전부요, 교사는 교사 양성 과정에서 학교폭력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을 받았을 뿐 아동학대 인지 교육은 받지 못했고, 민간 학원은 본인이 신고 의무자인 줄도 몰랐다네요. 궁금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이 보고서를 읽었을까요. 역대 정부에서 아동정책은 늘 후순위였지만,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은 좀 다를 걸 기대했습니다. ‘투표권이

[Cover Story]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① 아동학대 특례법, 이대로라면… 실효성 없는 법조문으로 끝날 가능성 크다

[아동학대 예방체계, 이대로 괜찮은가](1)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 전수조사 작년 12월, ‘아동학대 범죄 및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 특례법)이 제정됐다. 울산에서 계모의 학대로 갈비뼈 16대가 부러져 사망한 ‘울주군 서현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2000년 아동학대 예방 사업이 시작된 지 13년간의 숙원 사업이 풀린 셈이다. 아동학대 사건에 개입할 법적 기반은 확보됐지만, 과연 대한민국 아동보호 체계는 바뀌게 될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오는 9월 아동학대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아동학대 예방정책을 긴급 점검해봤다. 편집자 주 “사실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와 서현이를 돌봐주던 상담원, 많은 분에게 이 사건은 여전히 큰 아픔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당시 서현이 사례 상담 팀장이었던 김지수(가명)씨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사건 발생 3년 전인 2011년 5월 13일, 포항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상담팀장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동네 유치원에 다니는 한 아이의 몸에서 멍이 발견됐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상담원 2명을 현장에 파견했다. 긴 옷 차림의 서현이 옷을 벗기자 발바닥, 배와 등에 심한 멍 자국이 발견됐다. “학대 행위자였던 박씨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자신의 행위가 학대인지는 몰랐다고 말했지만, 폭행 사실은 순순히 인정하면서 앞으로 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습니다.” 5일간 현장 조사와 면담을 마친 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체 회의를 소집해 서현이를 ‘원가정에서 보호하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서비스 개입을 진행하자’고 결정했다. 사례를 전담하는 상담원으로는 A씨가 선정됐다. “직접 현장조사를 했던 터라 서현이 사례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일을 하더라고요.” 이후 두 달 동안 가해자인 박씨(13회)와 친아버지(1회), 유치원 교사를

“자녀를 학대한 부모들은 항상 훈육했다고 우기더라”

김정미 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장 15년 동안 아동 학대 관련 전문 상담가로 활동한 김정미 경기도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 학대는 부모가 적절한 자녀 양육 방법을 잘 모르는 데서 출발한다”면서 “부모의 생각, 생활 습관부터 차근차근 바꿔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동 학대’에 대한 국민 인식의 변화가 궁금하다. “2000년을 기점으로 아동 학대에 관한 인식 전환이 일어났다. 아동복지법에 ‘아동 학대’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심각한 신체 손상만을 아동 학대로 인정하던 분위기에서 아동을 방치하거나 정서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도 학대로 인식하게 됐다. 실제로 2000년까지는 신체 학대 신고율이 가장 높았지만 2001년부터는 방임(35.2%)이, 2009년부터는 정서 학대(36.2%)가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동 학대의 유형이 변화했다기보다는, 국민이 아동 학대를 인식하는 범주가 신체 학대에서 정서 학대까지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서 학대의 유형이 궁금하다. 정서 학대는 자녀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좁은 공간에 자녀를 혼자 가두어 두거나, 벌거벗겨 내쫓는 행위, 잠을 재우지 않거나, 아동의 나이에 적절치 않은 과도한 일을 시키는 것도 정서 학대다. 실제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싸움을 보면서 자란 초등학생이 심각한 원형 탈모와 학교생활 부적응을 호소한 예가 많다. 지속적인 정서 학대는 우울증, 낮은 학업 성취, 도벽, 거짓말, 타인에 대한 공격성 등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을 해친다. 특히 세 살 이전에 경험한 정서 학대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낳는다.” ―’훈육’과 ‘학대’를 혼동하는 부모가 많다. 자녀를 올바르게 훈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담하다 보면 부모는 ‘아이가 도통 얘기를 하지

“학원 운영자·강사도 아동학대 신고해야”

장화정 관장 인터뷰 지난해 대검찰청에서 분석한 범죄 현황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지난 2002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2007년을 기점으로 무려 1000건을 넘어섰다. 아동·청소년과 범죄자가 서로 ‘아는 사이’거나 ‘가족 및 친척’ 관계에 있는 경우도 46.9%를 차지한다(2011년 여성가족부).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국내에 기형적으로 자리 잡은 아동 성범죄 문제를 지적하며 “최근 개정된 아동복지법이 잘 실행될 수 있도록 세밀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개정된 아동복지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군을 12개에서 22개로 확대한 점이다. 초중등학교 교원·의료인·아동복지시설의 장에 한정됐던 신고 의무자군이 학원 운영자·강사, 의료기사, 건강가정지원센터·다문화가족지원센터·정신보건센터 관계자 등으로 대폭 늘어났다. 의무 위반자에겐 100만원의 과태료도 부과한다. 아동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의 아동 보호 역할이 강화된 것이다.” ―개정된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가. “아동 성범죄 가해자들의 교정·교화를 위한 치료와 교육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진 아동 성범죄자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들이 치료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 이젠 5년 이상의 형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가해자들의 어린 시절 분석부터 일대일 치료, 집단치료 등 세밀화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아동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지역사회 내에서 서로 관심을 갖고, 함께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 통영 사건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아이는 자장면 아저씨한테 ‘배고프다’고 문자를 보내거나, 마을을 혼자 돌아다니는 등 동네 어른들에게 관심을 호소했었다. 경남 지역에서 엄마들이 4명씩 조를 짜서 가가호호 방문하는 ‘마을지킴이’처럼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