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핵심과제] ⑤ 노인- 은퇴노인 3인의 일자리 찾기

생산적 복지가 답… 맞춤형 일자리 늘려야 예상치 못한 퇴직 후 24시간 편의점 점주 10년 일자리 찾는 중 “72시간 동안 잠 못 자고 일한 적도 있었어요. 쉬울 것 같아 선택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고유석(63)씨는 지난 2002년 54세의 나이로 대형 보험회사인 K사 부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한창이던 구조조정 여파로 예상치 못한 퇴직을 한 것. “막연히 ‘나는 아니겠지’라고만 생각해 은퇴 준비도 거의 못했던 상황”이라고 당시를 기억하는 고씨는 “대한민국에서 직장 다니면서 은퇴 준비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고씨에게 은퇴는 ‘편안한 노후’와는 거리가 멀었다. 늦은 결혼을 한 탓에 자녀 2명이 모두 수험생이었기 때문이다. 양육비 부담은 고스란히 남은 상태에서 소득만 끊겼다. 고씨는 “국민연금을 10년 넘게 냈는데, 퇴직하고 나니 월 80만원 정도 받더라”면서 “무조건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퇴직금 등으로 만든 목돈 2억5000만원을 지인에게 맡겼다가 선물투자로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다급해진 고씨는 자영업으로 눈을 돌렸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 조건을 따져 선택한 것은 당시 막 생겨나던 ’24시간 편의점’이었다. 아파트 담보 대출 1억원과 편의점 본사 대출 1억원 등 2억원으로 서울 삼성동에 편의점을 오픈했다. 자주 다니던 친숙한 곳이 편의점이니만큼, 쉽게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편의점은 가족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고씨의 설명이다. 고객과의 관계도 힘든 부분. 고씨는 “보험회사에서 고객서비스 교육까지 맡았었기 때문에 서비스는 자신 있었지만 정말 별의별 사람과 상황이 많다 보니, 손님과의 마찰도 가끔 있었다”고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② 이순동 한국자원봉사문화 이사장

“자원봉사 문화 업그레이드 위해 ’30년 홍보 달인’ 재능 나눌 것” 자원봉사 참여율 20% 한계… 시혜로 여기는 인식 때문… 이런 문화토양틀 깨야 여행·콘서트 접목… “봉사는 즐겁다” 개념 확산… 기업·NGO 함께 성장해야 일간지 기자를 거쳐 삼성에서 30년 가까이 홍보·커뮤니케이션을 책임졌던 이순동(65) 한국자원봉사문화 이사장은 ‘나눔’을 통해 제3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비영리민간단체인 한국자원봉사문화 이사장직을 맡아 “자원봉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겠다”고 나섰다. 올해는 15년 동안 유지해오던 ‘볼런티어21’이란 이름도 한국자원봉사문화로 바꾸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지난 14일 서울 역삼동의 사무실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신문사 기자로, 삼성의 홍보·광고 책임자로, 이제 비영리민간단체(NPO)의 리더로 변신했습니다. 제3의 인생을 사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홍보를 하는 사람은 뒤에 숨어야 해요. 그런데 이제 자원봉사문화를 홍보하려니 안 나설 수가 없네요(웃음). 기업이나 비영리단체나 리더가 하는 일은 비슷해요. 인력과 재원을 적당히 운영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기업이 ‘이윤’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지향하는 데 반해, 비영리 분야는 근본적으로 이타적이잖아요. 남을 돕기 위한 일 아닙니까. 봉급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영리기업에선 금전적으로 보상받았지만, 비영리단체에선 봉급은 안 받아도 자기 성취를 심리적으로 보상받으니까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나눔이죠.” ―2009년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을 맡았고, 이후 삼성미소금융재단 이사장직도 맡으셨는데요. 자원봉사나 나눔 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습니까. “기업 홍보를 하면서 처음에는 판촉으로 홍보하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이미지 전쟁이 시작되었어요. 판촉이나 이미지는 ‘감정’적인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평판’의 시대예요. 이미지는 좋지만 평판이 나쁜 기업이 있어요. 기업이 지속가능한

[Cover Story] [사회적 기업 2.0시대가 왔다] ① 세계 사회적 기업은 진화 중_일본의 사회적 기업 ‘고토랩’ 르포

빈방 개조해 여행객에게 내줬다… 버려진 마을, 활력이 찾아왔다‘잠자는 쪽방’ 2000여개 호스텔로 만들어 제공값싼 숙박비로 고객 유치 고령화로 물들었던 마을 어느새 여행객들로 북적“사회적 기업 수익을 지역문제 해결에 재투자 지속가능 시스템 필요”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인증사회적 기업(644개)과 예비사회적기업(1324개)을 포함한 사회적 기업 수는 2000개에 달한다(2011년 기준). 고용인원도 3만4000명으로 양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적 기업이 취약계층 고용과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다 보니 질적인 성장은 미흡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제 우리도 다양한 사회문제를 비즈니스 방식으로 해결하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사회적 기업 2.0 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 편집자주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지하철로 1시간30분가량 걸리는 요코하마시 가나가와현 고토부키 지역. 지난 17일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휠체어에 탄 노인 몇 명이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쭉 들어선 5층 높이의 건물 사이로 편의점에서 산 먹거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걸어가는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가 어디냐”는 질문에 한 할아버지가 자세히 길 안내를 해줬다.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라고 적힌 건물 1층의 안내데스크에 들어서자 30대 청년 대표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건물 한쪽 벽면에는 이곳을 다녀간 수백명의 즉석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고토부키 지역의 대표적 사회적 기업인 ‘고토랩(Koto lab)’ 오카베 도모히코(岡部友彦·35) 대표. 일본 최고 명문대인 도쿄대 건축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2005년부터 7년째 이 지역을 바꾸는 데 올인한 청년 사회적 기업가다. 원래 이곳에서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려 했던 그는 NPO 활동을 하는 이들과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①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

62년 쌓은 월드비전 ‘나눔 노하우’다양한 NGO에 아낌없이 나눌 것 가진 것이 많을 때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잃을 것이 많아 두려워하는 사람과, 나눌 것이 많아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후자가 많아지면 사회는 건강해진다. ‘더나은미래’는 2020년 우리 사회의 건강 지수를 높여줄 나눔 리더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첫 번째 인물은 올 1월 취임한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이다. “앞으로 비즈니스석은 못 탈 테니 각오하세요.” 양호승(64) 회장이 월드비전 회장에 취임하기 전, 이사장인 이철신 영락교회 담임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야간에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도, 30시간 걸리는 아프리카를 갈 때도, 월드비전의 모든 임직원은 이코노미석만 탈 수 있다. 양 회장의 이력을 보면 이런 충고를 이해할만 하다. 서울대 농과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와 MIT를 거쳐 일리노이주립대에서 MBA 석사를 한 이후 SK그룹을 거쳐 CJ제일제당 글로벌 신규사업개발 부사장을 역임했다. 억대 연봉의 영리조직(PO·Profit Organization) 부사장에서 세상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비영리조직(NPO·Non Profit Organization)의 리더가 된 소감을 들어봤다. ―’NGO에 비즈니스를 입히다’ 등 취임 당시 회장님의 이력이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공개채용이라는 특별한 형태로 월드비전 회장직에 선임되었는데, 비영리조직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내와 함께 은퇴 후의 삶을 봉사하고 나누는 것으로 준비해왔습니다. 교회에서 12주 동안 선교사 파송교육을 받았는데, 그 도중에 월드비전 회장에 선임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회장직을 맡기로 했습니다.” ―월드비전은 40만명에 달하는 후원자가 있는 국내 최대의 국제개발 NGO입니다. 40만명이 넘는 해외아동뿐 아니라

해외에선… 전국 아동권리 상황 세세히 모니터링, 뜻있는 기업의 펀드 받아 활동하기도

영국 중앙정부안에는 ‘놀이국(Play County)’가 있다. 이곳은 많은 예산을 들여 전국의 놀이터를 개선하는 사업을 한다. 그 놀이터는 아동을 위한 곳이지만, 어른이 놀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다. 세대를 초월하는 놀이터를 통해 가족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영국에서는 아동권리 옹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요소가 예체능 교육과 놀이문화를 강조하는 것”이라며 “국가가 충분히 놀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어디서나 휴대폰만 붙잡고 있는 광경은 보기 드물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4년 개정된 영국의 아동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아동권리 커미셔너(Children’s right Commissioner)’의 등장과 ‘지방정부의 역할’이다. 아동권리 커미셔너는 전국 아동들의 권리 상황을 세세히 모니터링하고, 의회와 협력하면서 아동권리 증진에 힘쓰는 단체다. 정부에서 출연해서 운영하고 있지만, 역할은 독립되어 있다. 의회에서 임명받은 대표는 우리나라의 장관급으로, 기구 별도의 조사권도 가지고 있다. 국가 위탁으로 운영되면서 국가의 영향력에 의해 움직이는 국내 모니터링 센터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황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아동들이 이른 시기에 성상품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사회적 문제인데, 일부 언론이나 관심 있는 학자에 의해서만 연구될 뿐, 정책개발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영국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아동권리 커미셔너가 이 문제를 의회에 보고해, 현재 영국 의회가 조사에 한창이고, 학부모 단체도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정부의 역할도 중요한 요소다. 영국에서는 중앙 정부의 정책을 지자체가 그대로 활용한다. 중앙정부가 아동 권리옹호에 대한 어젠다(Agenda)를 세워놓으면 지방 정부가 그것을 철저히 지킨다.

[12가지 핵심과제] ④ 아동_힘없는 아동정책… 아동 애드보커시(Advocacy·권리옹호) 그룹 키우자

‘아동의, 아동을 위한 법’… 필요한 때 아동 정책 매번 후순위, 예산도 OECD 중 꼴찌 경찰·병원 협조 없어… 사건 사후 체계 조사 안 돼 국내에 아동 백서 없고 정책·방향도 성인 중심 독립적인 위상·예산 가진 아동권리 옹호 단체가 정부 감시·정책 제시해야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한 PC방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한 뒤 영아를 비닐봉지에 담아 질식사시키고, 이를 인근 모텔 주차장 화단에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26세 여성 전모씨. 이후 언론과 인터넷에선 “엄마가 인터넷 게임에 중독돼 동거하던 남성과 임신한 줄도 몰랐다”는 뒷얘기가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버려진 영아의 죽음’에 대한 목소리는 어디서도 없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식의 보도만 있을 뿐, 아이의 생존권이나 건강 등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버려진 또 한 명의 아동’이 있었다. 아이 엄마 전모씨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간암으로 잃고 정신병을 앓는 어머니 밑에서 전혀 보호받지 못한 채 가출, 수년 동안 PC방과 찜질방을 떠돌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동 권리는 찬밥 신세 이 사건이 선진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영국에선 2000년 부모의 학대로 아동이 사망하는 ‘빅토리아 크림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의회는 수차례 조사활동을 벌였고, 토니 블레어 총리는 “10개월 동안 최소 10회의 위기개입 시점이 있었으나 놓쳤다”며 기존 아동보호제도를 ‘실패’로 규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4년 아동법이 전면 개정됐다.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세이브더칠드런 김희경 권리옹호부장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학대아동을 구출하러 갔다가 아버지에게 맞아

서서 수업할 수 있는 전동의자·높낮이 조절 작업 테이블 등 지원… 매년 6000명씩 장애인 ‘홀로서기’ 돕는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 보조공학기기 무상 임대 장애인 채용 사업주에 1인당 1000만원 이내, 최대 2억원까지 지원 대체 보조기기 없는 경우, 근로지원인 서비스로업무 효율성 높여 광운전자공업고 국어 교사 김대선씨. 2009년 1월 스키를 타다 펜스에 부딪치는 사고로 흉추 4번이 손상, 하지 마비 중증 장애인이 됐다. 2년 동안 치료를 받은 후 2011년 고등학교에 복귀했으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 교사를 채용한 경험이 없는 학교의 교무실, 화장실 문턱, 계단 등이 그를 맞이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학교 측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하 ‘공단’) 문을 두드렸다. 공단은 김씨가 교실과 교무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학교 안의 각종 문턱을 없애고 자동문을 설치했다. 이뿐 아니다. 서서 수업할 수 있도록 ‘전동 특수 작업 의자’를 지원했고, 휠체어가 탁자 밑으로 쏙 들어갈 수 있는 ‘보조 공학 테이블’과 ‘높낮이 조절 교탁’을 설치했다. 김씨는 “처음 장애인이 돼 교단에 섰을 때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많이 걱정했다”며 “달라진 장애인 선생님과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의 ‘홀로서기’ 돕는 보조 공학기기 지원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사고나 질병으로 생긴 후천적 장애가 전체 장애의 90%를 차지하고 있다(2011년). 직업을 갖고 있다가 갑작스레 장애인이 될 경우, 선천적 장애인보다 훨씬 적응이 어렵다. 일상생활부터 직업활동까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인의 ‘홀로서기’를 돕는 보조기기나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유명한 서울대 이상묵 교수(지구환경과학부)의 사례처럼, 최근 IT와 첨단 ‘보조 공학기기’의 발달로 장애인에게 불가능한 직업 영역이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은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라 생각합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장애인고용 법안 만들 땐… 1년 중 5일도 안 쉬고 ‘예술작품 만들 듯’ 했다 법 시행 20년… 고용률 13배 늘었지만 이윤 추구 고용 형태, 아쉬운 부분도 많아 신체 일부가 불편할 뿐 다른 문제는 없는데… 인식 개선이 급선무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으로, 고용노동부 최초로 ‘내부 출신 장관 1호’가 된 인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그는 1982년 행정고시(25회)에 합격한 후 30년 가까이 고용노동부에 몸담으며, 장애인 고용문제 해결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이틀 앞둔 지난 18일, 경기 과천의 정부종합청사에서 이 장관을 인터뷰했다. ―1991년 ‘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주도했다고 하는데, 당시 어려움도 많았다고 들었다. “1989년 무렵 법안을 만드는 주무관으로 차출됐다. 장애인이니 더 애정을 갖고 해보란 뜻도 담겨 있었다. 당시 경영계에서는 ‘고용의무제는 시장논리에 반한다’며 엄청나게 반대했다. 당시 나는 ‘세금을 내서 장애인을 시혜적으로 도와줄 거냐, 일자리를 줘서 그들이 세금을 내도록 할 것이냐’고 경영계를 설득했다. 사무관인 나와 고용전문직 직원, 둘이서 법과 예산과 기금 마련까지 다 짜느라 1년 365일 중 집에서 쉰 날이 5일도 안 됐다. 참고할 게 아예 없어서, 모든 걸 예술작품 만들 듯 새로 짰다.” ―법 시행 20년이 넘었다. 직접 주도한 공무원으로서 공과를 평가한다면. “법 시행 초기 장애인 고용 수치가 1만명에 불과했다. 작년 연말 기준 13만명을 돌파했다. 13배 늘었다. 예전에는 장애인들이 주로 집안에만 있었는데, 요즘은 사회생활을 많이 한다. 근원적 복지가 일자리 아닌가. 일자리를

暗_청각장애인 청강문화산업대학 안태성 前 교수

교수 임용 등 매순간 불이익… 장애학생 위한 지원 없어 안태성(53) 전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씩 국립서울농아학교에 나간다. 방과후교실에서 농아인 학생들에게 만화를 가르친다. 작업할 돈도 없고, 의욕도 나지 않아 작품활동은 쉬고 있는 상태다. 한때 대학에서 만화를 가르치던 교수였던 그는 학교의 부당해고에 맞서 지난 5년간 긴 법정투쟁을 벌여왔다. 인권위 진정제기, ‘해직처분무효확인청구각하결정취소’ 행정소송 대법원 승소, 복직 위한 행정소송 1,2,3심 승소, 대학 측 항소…. 소송은 끝났지만 상처는 오래 남았다. 그는 선천적 청각장애 4급으로, 왼쪽 귀는 전혀 안 들리고 오른쪽 귀는 큰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별명은 ‘귀먹쟁이’. 야간공고 졸업 후 공장에 다니던 그는 우연히 그의 그림을 본 목사의 소개로 동양화가를 만나 미술과 연을 맺었다. 24세에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 배려가 별로 없었어요. 교수가 1시간 내내 강의를 해도, 들을 수가 없으니 쉬는 시간에 친구들 노트를 빌려 베끼기도 했어요. 실기는 넘어가도 교양과목은 그냥 포기하고 출석체크만 한 후 뒤에 앉아 엎드려 잤어요.” 돈이 없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던 그는 대학 3학년 때 만난 아내 이재순(46)씨가 선물하면서 보청기를 처음 사용해보았다고 한다. 사회에 직접 부딪쳐본 그의 삶은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겪어도 참아야 하는 것’투성이었다. 1999년 그는 청강문화산업대에 애니메이션 전임강사로 임용됐다. 채용공고에선 분명히 전임강사였음에도, 임명장엔 ‘전임강사 대우 6개월’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월급도 불이익을 당했지만 그냥 감수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배려도 없었다. 강의를 위한 보청시스템이나

明_시각장애인 KBS 앵커 이창훈씨

523대 1 경쟁률 뚫고 앵커… 다양한 부서 돌며 취재 현장 배워 지난 4월 17일, KBS 본관 뉴스제작팀에 들어서자 스튜디오 너머로 부드럽게 정제된 음성이 들려왔다. 이창훈(27) 앵커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의 양손은 기사를 점자로 변환해주는 점자정보단말기 위에서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시각장애인임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목소리도, 시선도 안정돼 있었다. “5분이 금방 지나가죠?” 방송을 마친 이 앵커가 기자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52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KBS뉴스 앵커로 채용된 그는 현재 KBS1TV ‘뉴스12’의 생활뉴스 코너를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다. 기자가 그의 손에 들린 점자정보단말기를 신기한 듯 쳐다보자 이 앵커는 “노트북 기능과 비슷하다”며 차근차근 사용 방법을 알려준다. 점자키는 키보드 역할을 하고, 9개의 원형 버튼은 방향키 역할을 한다. 그는 “갑작스레 단말기가 고장 날 때를 대비해 점자로 출력된 프린트물도 함께 준비한다”며 부연설명을 했다. 생후 7개월,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은 그는, 정식으로 아나운서 공부를 한 적이 없다. KBS에 최종 합격 후 3개월 만에 능숙하게 뉴스를 진행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앵커는 “혹독한 훈련”이라며 목소리를 낮춘다. 보도국 오리엔테이션 직후 그가 배치된 곳은 뉴스제작 3부. 홍수 피해로 전국이 혼란스러운 시점이었다. “재난 상황에서 속보가 어떻게 준비되는지 그때 비로소 배울 수 있었죠. 숨 가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경험은 사회2부에 배치됐을 때다. 이 앵커는 사회부 기자들과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12가지 핵심과제] ③ 장애 극복한 판사·앵커 뒤에 훌륭한 시스템 있었다

사법연수원 시각장애인 판사 최영씨 모든 교재·기록 음성 변환 시험 시간 약 2배 제공 KBS 앵커 이창훈씨 위해 장애 등급·배려 사항 공부 점자프린터 등 장비 마련 동료로 곁에서 지내보니 장애 대한 편견 사라져 정부, 유형별 직업 개발 기업, 의무고용률 지켜야 21세에 갑자기 얻은 루게릭병. 온몸의 근육이 마비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손가락 두 개와 얼굴 근육 일부뿐. 목소리까지 잃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던 스티븐 호킹(70) 박사가 ‘세계적 물리학자’가 된 데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호킹 박사가 간단한 버튼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 인텔은 음성변환장치(전용 PC)를 개발, 지원하고 있다. 호킹 박사의 전용 PC는 그의 건강 상태에 따라 계속 진화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도 장애의 벽을 허문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초의 시각장애인 앵커 이창훈(27)씨가 KBS에 채용된 데 이어, 올 2월에는 최영(32)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판사로 임용됐다. 장애인의 직업적 한계를 뚫은 이 최초 기록 뒤에는 숨은 조력자와 지원 시스템이 함께하고 있었다. ◇모범 사례 찾아 일본으로 떠난 사법연수원 교수진 2008년 10월, 경기도 일산의 사법연수원 교수진 8명이 회의실에 모였다. 이들은 최초의 시각장애인 사법시험 합격자인 최영씨의 적응을 도울 태스크포스(TF)팀이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수업을 받고, 시험을 치르며, 현장 실무수습을 할 것인가.’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가 필요했다. 일단 해외의 비슷한 사례부터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법연수원 기획총괄교수(판사) 2명이 2009년 1월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1981년 시각장애인 판사를 배출한 일본의 20년

공연 지원 등 ‘문화 복지’로 영역 확대해야

기업의 사회공헌은 전통적으로 사회복지나 교육·장학 사업과 같은 지원 사업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화 예술 영역으로도 그 저변이 확대되고있는추세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일반인들의 인식에서도 문화 예술에 대한 사회공헌 요구가 높았다. 문화 예술 사회공헌의 필요성에 대해 ‘반드시 필요하다(40.4%)’와 ‘필요하다(51.7%)’는 응답이 90%를 넘었다. 반면 ‘현재의 문화 예술 사회공헌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는 ‘못한다(42.6%)’나 ‘아주 못한다(10.8%)’는 부정적인 답변(53.4%)이 긍정적인 답변(29.8%)을 압도했다. 플랜엠의 김기룡 대표는 “학력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문화 예술 사회공헌의 현 수준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많았기 때문에, 향후 사회가 발전해가면서 문화 예술 사회공헌에 대한 욕구가 동시에 늘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문화 예술 사회공헌 활동은 대부분 공연 지원이나 현물 기부와 같은 마케팅성 협찬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문화 예술 사회공헌의 향후 지원 분야가 소외 계층의 문화 예술 교육 지원(38.2%)이나 소외 계층의 문화 예술 관람 및 향유 지원(10.7%), 또 지역사회 예술 단체나 예술 공연 지원(16.3%) 등으로 ‘문화 복지’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존의 메세나 형태로 이뤄져 온 고객이나 일반인 문화생활 지원(14.6%)이나 신진 예술가 발굴 및 지원(9%), 예술가의 창작 활동 지원(7.7%)은 상대적으로 응답자가 적었다.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김민지 사무국장은 “문화 예술 사회공헌에 대한 욕구는 매우 큰 데 반해,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라며 “앞으로 현장의 욕구를 반영한 정교한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 예술 사회공헌은 기업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될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