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ESG가 성차별을 해결할 수 있을까?

성 격차 지수 156개국 중 102위(세계경제포럼, 2021년). 유리천장 지수 OECD 회원국 중 10년 연속 꼴찌(영국 이코노미스트, 2022년). 여성 이사 비율 72개국 중 69위(딜로이트 글로벌, 2022년). 한국의 성평등 성적표다. 우리나라는 1987년에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했다. 경력단절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법도 2008년 제정됐다. 올해부터는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의 경우 여성 이사를 1명 이상 선임해야 한다. 법과 제도가 적지 않음에도 기업의 성차별은 왜 시정되지 않을까? 물론 실효성이 낮은 법과 제도도 문제다. 그러나 법과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장과 공급망, 투자자의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ESG가 한국 기업의 성차별을 해소하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일본 공적연금(GPIF)은 2017년부터 ‘여성 지수(Empowering Women Index)’를 도입했다. 신규 채용 비율, 근속연수, 관리자 비율 등에서 성 다양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한다. 블랙록, SSGA 등 글로벌 투자회사들도 ‘젠더 관점 투자(Gender Lens Investing)’를 한다. 투자자들은 투자한 기업에 여성 다양성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여성 이사가 부족한 기업의 남성 이사 선임에 반대투표를 던지기도 한다.  여성 이사를 한 명 선임하는 것은 쉽지만, 여성 관리자 비율을 높이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여성 지수를 만들어 투자하는 것은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몇 년 전 국민연금도 젠더 관점 투자를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거래소가 여성 지수를 개발하고 있고, 젠더 관점 투자를 시도하는 회사가 생겨나는 것이다. 스타트업 투자사인 소풍벤처스는 2018년부터 젠더 관점 투자를 하고 있고, 2021년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헬로트랙터’가 바꾸는 아프리카의 농업

세계 최대 농기계 기업인 ‘존디어(John Deere)’에서 케냐의 스타트업 ‘헬로트랙터(Hello Tractor)’에 투자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거대 기업이 25명 근무하는 아프리카 스타트업에 투자했다는 게 생소했다. 어떤 배경에서 투자가 이루어졌는지 좀 더 깊이 들여다봤다.  아프리카의 농기계화율은 매우 낮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농경지 100㎢당 트랙터 수는 아프리카의 경우 28대에 불과하다. 대부분 개도국인 남아시아는 96대, 유럽은 815대, 한국과 일본은 각각 1620대, 4380대에 이른다. 아프리카에서 농기계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넓은 농경지가 있어도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은 한 가구당 1~2h(헥타르) 내외에 불과하다. 농기계의 부족은 아프리카 농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제한인자 중 하나다. 헬로트랙터는 농기계 임대 시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2014년 창업했다. 소농들이 농기계를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헬로트랙터는 농기계 소유자가 자신의 농기계가 어디 있는지, 운영은 잘 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사물인터넷(IoT) 기반 농기계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여기에는 농기계가 얼마나 많은 작업을 수행했는지, 얼마나 많은 연료를 소모했는지 추적하고, 농기계 운전자의 역량과 차량 유지관리에 필요한 사항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농작업 수요자를 그룹화하여 농작업 효율을 높이는 일부터 농기계 구매를 위한 대출 프로그램까지 시작했다.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헬로트랙터 플랫폼에 등록한 농기계 소유자는 약 3000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바일 및 웹 프로그램을 통해 농민들에게 트랙터를 임대하고, 약 50만명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빌려 쓰고 있다. 이 중 87%의 농민은 농기계를 활용함으로써 소득이 증가했다고 한다. 현재 헬로트랙터의 서비스는 아프리카 5개국과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기업가형 재단

발렌베리그룹은 2019년 기준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스웨덴 대표 기업집단이다. 발렌베리의 모태는 1856년 해군 장교 출신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설립한 스톡홀름 엔스킬다은행(SEB)이다. 1911년 스웨덴 정부는 은행의 산업자본 진출을 허용하는 은행법을 제정하였고,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ABB(발전설비, 엔지니어링), 에릭슨(통신장비), 스카니아(상용차) 등 스웨덴 대표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기업집단으로 성장한다. 아스트라제네카와 가전제품으로 유명한 일렉트로룩스 또한 발렌베리그룹의 계열사다. 이후 1930년대 은행의 산업자본 소유가 금지되자, 발렌베리재단을 중심으로 하는 재단 중심의 지배구조가 구축되었다. 발렌베리재단은 발렌베리 그룹 산하 계열사에서 나오는 주식 배당금의 80% 정도를 대학과 연구소의 연구지원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재단에서 스웨덴 과학연구와 교육에 지원하는 금액은 연간 3000억원이 넘는다. 10년 누적 규모로는 2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스웨덴 국적으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은 이들은 거의 다 발렌베리재단의 후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렌베리그룹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그룹이 재단의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스웨덴의 기초과학(의학・생명과학 중심) 분야를 발전시키고 중장기 산업기술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슈미트가족재단(Schmidt Family Foundation)은 구글 전 경영자인 에릭 슈미트와 아내 웬디 슈미트의 출연금 약 2조원으로 2006년 설립됐다. 슈미트재단은 환경과 사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관련 단체를 지원하고, 스타트업에 임팩트투자를 한다. 슈미트재단의 특징은 직원이 모두 사회문제에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팀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내에 에너지 정책 및 기술, 국제법, 광업, 인권, 식품, 재생 농업, 해양 기술, 임팩트 투자 분야의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고객의 숨은 마음

코로나19 ‘엔데믹’과 세계 경제 여건의 급변 등이 겹치면서 각계각층의 시장 변화가 격동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스타트업의 대표로서, 기업이 앞을 내다보고 더 빠르게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음을 최전선에서 느끼는 중이다. 자란다에서도 ‘고객에게 물어보기’와 같은 세미나를 열어, 고객의 대답 속에 숨은 요구를 찾아내기 위한 인터뷰 기법을 논의하는 등 어떻게 한발 앞서 고객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고객의 요구를 확인하는 것은 기업에서 가장 치열하게 임하는 과업이다. 동시에 항상 어려움에 부딪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고객들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수많은 요구를 표출한다. 그중에서 어떤 요구를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포착해서 서비스에 반영할지는 기업이 결정할 몫이다. 그 결정의 차이는 때로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데이터 전문가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저서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넷플릭스의 사례를 소개한다. 넷플릭스 창업 초기에 사용자들에게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해 물으면, 사용자들은 다큐멘터리나 심오한 외국 영화를 많이 골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즐겨보는 건 코미디나 로맨스 영화였고, 고객이 솔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데이터로 확인한 넷플릭스는 시청 이력 위주로 추천 방식을 바꿔 큰 성공을 거뒀다. 자란다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 사용하는 서비스다. 부모님이 서비스를 신청하지만 선생님과 시간을 보내는 당사자는 아이들이다. 부모님이 작성한 내용 속에 숨겨진 내심, 그리고 부모님이 미처 알지 못한 아이들의 요구까지 읽어내야 하는 것이 숙제다. 부모님의 신청 글과 선생님이 방문 후 기록한 수업내용, 관찰내용을 비교해보기도 하고, 이 만남이 얼마나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한국 쌀에도 공정무역이 필요한 이유

유례없이 큰 태풍 ‘힌남노’가 추석 직전 몰아닥쳤다. 여름부터 간헐적으로 이어진 큰비, 연초부터 줄줄이 인상된 금리와 환율 등 추석 차례상 물가 걱정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각종 식품 제조 가공업체들은 추석 대목까지만 버티고, 이후 가격 인상을 예고한다. 사실 장바구니 한번 들어본 사람이라면, 추석 차례상 아니라도 익히 체감한 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밀값 상승의 불안감이 이어지고, 작년부터 이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은 우리 먹거리 시장을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위기를 체감할 상황은 닥치지 않았다. 한국 정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식량위기를 느낄 정도가 되면, 개발도상국에선 이미 식량 위기로 폭동이 나도 여러 번 났어야 한다. 즉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의 백성들에게 식량 위기는 늘 먼저 닥친다. 다행일까. 이렇게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으로 불안한 가운데 한국의 주곡인 쌀 자급률은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연속 풍년으로 너무 선방한 나머지, 물가는 오르는데 쌀값만 폭락하고 있다. 햅쌀 본격 출하 시점을 앞둔 지난 8월 농민들은 쌀값 안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농민들은 “정부가 시장에 있는 쌀을 사들이는 ‘시장격리’ 조치를 세 차례 발동했지만, 쌀값은 작년 대비 23.6% 폭락했다”며 필수 농기자재에 대한 지원과 햅쌀이 풀리기 전 신속한 시장격리, 농업 생산비 보전 등을 요구했다. 농민들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 방면으로 향하며, 화물차에 실린 볍씨를 도로에 뿌렸다. 판로가 없어 헐값으로 커피를 팔아야 하는 개발도상국가 농민들은 항의할 관계 기관이 없어 스스로 커피나무를 갈아엎었다 하는데, 우리 농민들은 항의할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파타고니아의 목적

“기업은 누구를 위해 사업을 해야 할까요? 기업에게 자원을 제공하는 지구를 위해 이뤄져야 합니다. 자연 환경 없이는 주주도, 직원도, 고객도 그리고 기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 얼마 전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는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했다. 이 회사의 창업주인 이본 쉬나드 회장과 아내, 두 자녀는 약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4조원이 넘는 파타고니아의 소유권을 신탁 및 비영리단체에 양도한 것이다. 암벽등반 등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던 이본 쉬나드는 암벽 등반시 필요한 바위 틈새에 박는 강철 쇠못인 피톤(piton)을 생산해 상당한 이익을 얻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가 만든 피톤이 바위를 심하게 훼손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결국 사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1973년 지금의 파타고니아를 설립하여 아웃도어 의류 중심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후 파타고니아는 이들의 비즈니스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목도하며, ‘환경’을 우선시하는 기업의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라는 사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부 경제학자들과 자본가들은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의 학설로 알려져 있는 ‘신자유주의’는 시장 실패시 정부의 개입이 중요하다는 케인즈의 경제이념과는 반대로,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고 시장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1947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주도로 스위스에서 결성된 몽펠르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펠르랭회는 신자유주의를 명시적으로 표방하며, 모든 형태의 국가 개입에 반대한다고 선포했으며,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한국 기업에는 왜 우영우가 없을까?

한국 로펌에 우영우 변호사는 없다. 자폐성 장애뿐 아니라 다른 장애를 가진 변호사도 찾기 어렵다. 로스쿨 도입 이후 장애인 법률가는 대폭 늘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35명의 장애인이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런데 대형 로펌에서 장애인 변호사를 채용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기업 일반으로 보면 어떠한가? 2020년 말 기준 한국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48%다. 100인 이상 사업장에는 법률로 장애인 고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하면 고용부담금을 부과하는 현실이다. 지난해 9039개 기업이 고용부담금을 냈다. 그 액수는 7893억원에 달한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자회사’를 만들어 장애인을 ‘따로’ 고용한다. 법률이 자회사를 통한 고용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다. 이 또한 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의의는 있지만, ESG의 흐름이나 국제사회의 장애인 포용(Disability Inclusion)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게다가 고용된 장애인들은 주로 청소나 세탁 같은 단순 업무를 한다. ESG는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DE&I)을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 DE&I는 기업이 다양한 구성원을 가지고 이들을 차별 없이 포용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 안에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함께해야 한다. GRI 등 국제적 공시기준은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을 항목에 포함하고 있는데, 자회사에서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은 인정될 수 없다. 영국 로얄메일의 다양성 보고에서는 장애인 비율이 13%라고 보고하고 있다. 놀라운 수치다. IBM은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회사로 유명한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IBM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이유는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혁신, 사회 그리고 재능입니다. IBM은 다양한 고객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낼 넓은 스펙트럼의 직원을 원합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우리에게도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하다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을 지나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리아드네 공주가 전해 준 실타래 덕분이었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면서 현대는 정보전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한다. 무차별 폭탄을 쏟아붓던 과거의 전쟁은 드론을 통해 정밀하게 관측하고 정확도 높은 유도무기를 사용하여 표적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 국가의 군사력은 가지고 있는 무력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질에 달려있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식량위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는 게 느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와 식량의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세계 각지에서 기상재해가 빈발하면서 식량위기를 먼 미래라기보다 눈앞에 닥친 현실로 인식하는 듯하다. 강의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식량은 안전하냐’고 묻는다. 때로는 대안까지 제시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렇지만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는 있어도 대안까지 제시하기는 어렵다. 문제를 분석하는 것은 현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대안은 실증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한다. 최근 농수축산물 무역 거래 플랫폼 스타트업인 ‘트릿지(Tridge)’가 농업계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 농식품 분야 최초의 ‘유니콘’에 등극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낯설게 느껴진 이유는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국내 농업계와 접점이 거의 없어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트릿지의 핵심 서비스는 농수축산물이 필요한 구매자에게 세계 여러 농업 현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연결해주는 ‘풀필먼트 솔루션’이다. 세계 각국의 농업과 무역에 대한 폭넓은 정보망과 전문인력이 뒷받침해줘야 가능한 사업모델이다. 트릿지는 수년에 걸쳐 국제

[진실의 방] ESG에도 설민석이 필요한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실소와 개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ESG 열풍을 틈타 ‘애매한 전문가’들이 등장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정도가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ESG와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기존 발표 자료에 ‘라벨 갈이’만 해서 강의를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다 밥그릇 싸움이지, 싶었다. 요즘은 전혀 다른 분야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전문가 행세를 한다. 근본을 알 수 없는 민간 ESG 자격증도 양산되고 있다. ESG의 ‘찐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확실히 인사이트가 넘친다. ESG가 등장하기까지의 역사적 맥락, 자본시장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않고서 환경, 사회공헌,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ESG가 아니라고 말한다. 공부가 부족한 사람들이 얕은 지식으로 여기저기 강의를 하고 다니니 ESG에 대한 오해가 쌓이고 혼란이 가중되며 발전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연극영화과 출신 한국사 강사 설민석이 한창 방송계를 주름잡을 때 역사 전문가들이 했던 지적과 비슷하다. 애매한 전문가, 가짜 전문가들이 늘어나는 건 싫지만 ESG 분야에 ‘스피커’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ESG를 아십니까’라고 물으면 열에 일고여덟은 ‘잘 모르겠다’고 하지 않을까. 관계자들끼리는 내가 맞고 네가 틀렸다고 하지만 그런 논쟁은 대중의 관심사가 아니다. 전문가들도 대중의 무관심에 대해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관심이 없다. 가짜들 입장에서는 참 날뛰기 좋은 환경이다. 설민석은 역사 왜곡과 논문 표절로 물의를 일으킨 뒤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가 한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낸 것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특유의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Z의 휠체어] 자퇴해도 안녕하게 해 주세요

고등학교를 자퇴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대안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가고, 차근차근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 없는 10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스스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학교 밖 청소년’이 되니 그 고민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그중 가장 큰 고민은 자기증명에 대한 막막함이다. 자퇴 후 깨달은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발판을 전부 마련해주는 것이다. 시험이나 수행평가 같이 주어진 일을 해내기만 하면 결과가 남고, 그 결과를 모두가 인정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 꾸준한 상담을 통해 다양한 진로 및 진학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퇴 후 내 미래의 A부터 Z는 모두 내 손에 달려있다. 더 이상 미래의 길잡이가 되어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불안감을 느낀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나만 하는 것도, 소수의 일도 아니다. 국가교육통계센터 학업중단 현황에 따르면 2016년 4만7070명이던 학업중단 청소년은 2020년 5만2261명으로 늘었다. 또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전체 청소년 중 학교 밖 청소년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실질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주무부처는 교육부가 아닌 여성가족부다. 여성가족부가 기본 계획을 세우면 이 계획을 지자체의 지원 센터가 실천하는 형식인데, 지자체별로 운영 방침이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학교 밖 청소년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고, 이 혼란은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중지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지구 생존에 인간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을 살고 있을까? 최근 ‘ESG 경영’이 강조되면서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완성하는 비재무적 요소를 ESG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일까?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강타하는 기상이변 뉴스가 심상치 않다. 100년만의 기록적 폭우를 쏟아낸 한국, 유럽과 러시아는 최고기온을 갱신했고 영국과 독일, 중국의 일부 지역은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지난달에는 이상고온으로 빙하가 녹아서 알프스산맥의 인기 탐방로인 몽블랑과 마터호른의 일부가 통제됐다. 이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2030년, 즉 8년 후면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이 소셜미디어에 등장하기도 했다. 즉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알려져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에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oth)’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750년경에 실재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도시국가 중 하나인 우루크의 왕인 길가메시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 작품이다. 이 서사시는 환경과 자연을 훼손해 문명이 멸망했다는 단서를 남겼다. 길가메시가 신들에게 반항하며 광대한 삼나무 숲을 벌채한 탓에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자라지 못해 살 던 곳을 떠나 바빌론과 아시리아로 피난해야 했다는 것이다. 마야(Maya) 문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대 마야는 ‘보존의 우주론(A Cosmology of Conservation)’으로 불리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당시 마야인은 의식, 농사, 사냥, 삼림 관리, 사교 활동 등 일상 생활에서 지속가능한 관행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전통적인 마야 세계관은 인간이 그들이 공유하는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책임을 지는 많은 부분, 즉 동물, 새, 나무,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자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이번 드라마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사회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균형감 있게 제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선역과 악역을 나누지 않고, 캐릭터들이 처한 사정과 논리를 세심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것도 인기몰이에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극 중 개인적으로 유독 관심이 간 에피소드가 있다. 어린이들의 해방을 외치며 아이들을 학원 대신 동네 뒷산으로 데려가 함께 뛰어논 ‘방구뽕’이란 인물이 납치법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방구뽕은 법정에서 말했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나중에는 늦는다고. 방영 시점에 ‘초등학교 5세 입학’이 이슈가 되면서 해당 방송은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위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시의적절하게 이슈를 탄 이 에피소드에서 아쉬웠던 점은 아이들의 엄마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극 중에서 그는 “대한민국 어린이의 적(敵)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부모이며, 그들은 행복한 어린이, 건강한 어린이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아이의 행복이 성적과 좋은 대학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로 그려졌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를 늦게까지 학원에 보내는 부모는 아이의 행복보다 성적을 바라는 존재이고,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은 불행한 아이일까. 부모마다 아이에게 길을 열어 주는 방식이 다른 건 아닐까. 아이가 어려운 과업을 끈기 있게 해내면서 보다 빠른 성취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부모나, 아이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자유롭게 하나씩 이뤄가며 성장하길 원하는 부모나 각자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모든 아이가 다르고, 모든 가정의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만큼 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