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윤곤의 더나은미래] 보이는 삼성 상속세 12조 vs 보이지 않는 ‘승계의 기술’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이 납부한 약 12조 원의 상속세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도 이례적인 규모다. 여기에 약 10조 원 규모의 문화예술품 기증,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까지 더해지면서 삼성의 승계는 상속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이정표를 남겼다. 넥슨 고(故) 김정주 회장 유족이 지주사 NXC 지분으로 약 4조7000억 원의 세금을 물납한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두 사례는 총수의 사전 승계 준비가 미비한  상황에서, 상장사 중심의 지배구조가 ‘사후 상속’이라는 정면돌파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삼성의 3남매 초기 승계과정 역시 결과 이면에는 정교한 기술이 작동했다. 과거 삼성SDS 상장과 에버랜드를 통한 삼성물산 중심의 지배구조 확립은 그 정당성을 두고 오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최근 시장이 주목하는 방식은 더 정교하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자녀들 승계 과정에서 김동관 부회장 등 3형제가 100% 지분을 가진 비상장 계열사 한화에너지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비상장사가 지주사의 지분을 확보하며 지배력을 키우는 방식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교하게 기획된 ‘설계된 승계’의 전형이다. 호반, 중흥, 부영 등 건설 기반 그룹들은 제조 대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형성해 왔다. 호반그룹 김상열 회장은 장남 김대헌 사장에게 건설·시행 중심의 계열 구조 속에서 지분 이전과 사업 확대를 병행하게 했으며, 중흥건설 고(故) 정찬선 회장과 장남 정원주 부회장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반면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은 아직도 여전히 견고한 1인지배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향후 어떤 ‘기술’이 작동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현행

[하지원의 에코 NOW] 지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 ‘시민’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차 안의 안전띠는 그저 ‘답답한 끈’에 불과했고, 식당이나 버스 안에서 담배 연기를 뿜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었다. “내 차에서 내가 안 매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밥 먹고 담배 한 대 피우는 게 낙이다”라는 말이 지금보다 훨씬 크게 들리던 시절이다. 하지만 나와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그 ‘말도 안 되던 소리’는 어느덧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작은 인식의 변화가 여론이 되고, 그 여론이 정책을 움직여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약속인 ‘안보’를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야 할 변화 앞에 서 있다. 바로 ‘환경 안보’라는 과제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세계 곳곳의 갈등이 우리의 일상까지 파고드는 ‘안보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 있는 분쟁보다 더 가까이에서 우리의 평온한 하루를 위협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후위기다. 당장 지난달만 해도 그렇다. 한낮 기온이 여름을 방불케 하는 4월, 어느 때보다 이르게 찾아온 더위에 우리는 벌써 에어컨 리모컨에 손이 간다. 작년 여름 서울의 열대야가 46일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던 것처럼, 지구가 보내는 경고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아도 폭염으로 도시 기능이 멈추고 누군가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안보의 얼굴이다. 바로 ‘환경 안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위협 앞에서 지구를 지키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올해 지구의 날 테마인 ‘Our Power, Our Planet(우리의 힘,

[영리한 비영리] 이름 없는 노동의 시대

나의 시어머니는 청소노동자였다. 건물 계단을 쓸고 닦는 일은 삶을 보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계단에서 넘어지며 크게 다치셨고 뇌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산재보험이 적용돼 수술비와 요양비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경우는 그나마 다행한 편이었다. 적어도 다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고, 산재보험으로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곁에는 다쳐도 어디에 말해야 할지 모르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혼자 참아 넘기며, 끝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불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사회는 그들의 노동을 매일 필요로 하지만, 정작 그 노동에는 이름이 없다. ◇ 한국 사회의 중심에 들어온 ‘불안정 노동’ 이제 불안정 노동은 한국 사회 노동시장의 한복판으로 들어와 있다. 비정규직은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니며, 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특수형태 종사자는 이미 한국 사회의 익숙한 노동 풍경이 되었다. 사회 변화는 돌봄노동·경비노동·청소노동을 필수적으로 만들었지만, 이들을 향한 보호는 여전히 얇다. 재활용 선별 노동처럼 우리의 편리함과 친환경 담론을 떠받치는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이름은 제각각이다.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요양보호사, 경비노동자, 청소노동자, 재활용 선별 노동자. 그러나 현실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고용형태는 불안정하고 협상력은 낮으며, 사회보장은 취약하고 산재보호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문제가 생겨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건강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회는 이들의 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그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는 한없이 인색하다. 그래서 이들은

[기후 유니버스] 기후와 늑구의 시간을 넘어

올해부터 야구 경기 관람에 취미를 붙였다. 초보 야구팬으로서 처음으로 원정 경기를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도착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지자체에서 안전 안내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며칠 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늑구를 찾기 위한 수색이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보고 나서야 SNS와 포털 사이트에서 스쳐 지나갔던 뉴스 헤드라인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혹시 대전을 돌아다니다 늑대와 마주치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한편으로는 동물원에서 나고 자라 야생성이 거의 없어 스스로 먹이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대전에 간 날은 늑구가 탈출한 지 나흘째였다. 늑구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시민들의 반응이 뉴스를 뒤덮고 있었다. 공포로 시작된 관심이 어느새 한 생명체를 향한 걱정과 애정으로 바뀐 것이다. 너무 오래 발견되지 않아 어디선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은 아닐까 싶던 무렵, 늑구 생포 소식이 들렸다. 일면식도 없고 대전 사람도 아니며 오월드를 가본 적조차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다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 것이 늑구가 진정으로 바라던 삶이었을까 하는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늑구의 탈출기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국회에서 진행한 장기 감축경로 공론화 과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해 2월, 탄소중립기본법 입법 시한을 앞두고 국회는 대국민 공론화를 통해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주권자인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공론화의 특성상 짧은 기간 안에 진행될 경우 충분한 학습과 숙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헌법불합치 판결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후기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정신장애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 

정신장애 당사자와 대화를 나눠본 것은 2018년 홈리스 법률상담 현장에서였다. 당시 의뢰인은 ‘나를 단톡방에 계속 초대해 욕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청소년들의 사이버 따돌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던 터라, 유사한 피해를 입은 것이라 짐작하고 상담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휴대폰 어디에도 욕설이 담긴 대화창은 존재하지 않았다. 홈리스 상담에서는 명의도용, 파산 등 경제 관련 문제가 많았고, 이혼이나 가정폭력 사건도 적지 않았다. 그런 사건들도 해결이 쉽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앞선 사례와 같이 현실과 망상의 경계에 서 있는 분과 대화를 이어 나가기에는 당시 필자의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도, 상담 경험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 당혹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홈리스 인권을 주제로 강의할 기회가 생기면, 홈리스는 고정된 지위가 아니라 ‘일시적 상태’이며 개인의 실패나 의지 부족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문제라고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정신장애에 대해서는 달랐다. 소송과 상담 현장에서 종종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의뢰인들을 마주해 왔음에도, 이를 개인의 불행이거나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던 중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 문제를 다룬 화우공익세미나에서 당사자와 가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를 가졌고, 더 결정적으로는 정신장애인 옹호기관 설립을 위한 자문변호사단 활동 중 맡은 한 형사 사건이 필자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정신장애 역시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 나가야 할 인권 문제임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공무집행방해죄 변호를 위해 만난 의뢰인은 차분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해 왔고, 성인이 된 후에는

[필란트로피 인사이트] 우리는 왜 ‘어떻게’만 묻는가: 필란트로피 재고

필란트로피(Philanthropy)에 관한 정기 칼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였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 필란트로피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관심사와 고민을 살펴보았다.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질문은 한 방향으로 수렴했다. ‘필란트로피란 무엇인가’보다 ‘필란트로피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훨씬 더 큰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필란트로피에 대한 실천적 요구가 커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려도 남는다. 필란트로피를 하나의 사회적·문화적 가치로 성찰하기보다, 공익을 실행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접근 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개념에 대한 올바른 탐구 없이 방법론부터 묻는 방식은, 한국적 맥락에서 필란트로피 고유의 방향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어떻게’를 묻기 전에, 반드시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개념에 대한 성찰 없이 이루어지는 실천은 쉽게 방향을 잃는다. 이 칼럼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필란트로피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필란트로피라는 영어를 최초로 사용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대 그리스어 philanthrōpía—’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그 개념의 뿌리를 찾는다. 또 어떤 이는 18세기 계몽주의 전통에서 등장한 독일의 Philanthropismus를 언급하며 사상적 기반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런 접근은 철학적 기원을 이해하는 데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필란트로피를 이해하려면, 어원보다는 그것이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해왔는지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 특히 미국에서 필란트로피는 19세기 후반 ‘과학적 자선운동(Scientific Charity Movement)’을 계기로 기존의 자선(charity)과 명확하게 구별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단순한

[탄소와 사회를 잇는 방식] 전쟁과 기후 리스크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내 핵·군사 시설을 타격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그 시각 나는 탄소감축사업 타당성조사를 위해 아프리카 케냐에서 말라위로 향하고 있었다. 전쟁과 탄소감축. 전혀 다른 두 단어 사이를 오가며 나는 한 가지 질문을 오래 붙들게 되었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그 폐허의 시간은 동시에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을까. 눈에 보이는 폭발과 화염 뒤에서, 전쟁은 대기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배출은 기후위기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이 만들어내는 배출의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전쟁의 탄소배출은 단순히 전투기와 미사일이 사용하는 연료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투기, 군함, 장비 수송과 같은 직접적인 군사 활동은 물론, 폭격으로 파괴된 정유시설과 저장 인프라에서 발생하는 연료 손실, 무너진 주택과 학교, 산림 파괴, 도로를 복구하는 재건 과정, 그리고 군수물자 생산과 물류 재편까지 모두 막대한 온실가스를 유발한다. 다시 말해 전쟁은 한순간의 군사행위가 아니라, 파괴와 복구 전 과정에 걸쳐 배출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탄소 생산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훨씬 오래 지속된다. 실제로 전쟁이 만들어내는 탄소배출 규모는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개전 이후 18개월 동안 누적 배출량이 약 1억 7천만 tCO₂e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중소 규모 국가의 연간 배출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최근 가자지구 분쟁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박훈의 나눔과 세금] 미래를 위한 기부 조기교육

아이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부모는 많다. 그런데 기부를 가르치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세금은 국가가 걷는 것이지만, 기부는 스스로 내어주는 것이다. 그 차이가 작은 것 같아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세금은 의무이고 기부는 선택이다. 그래서 기부는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는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성장해 왔다. 재난이 닥칠 때마다 국민은 놀라운 연대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기부, 특히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 기부’나 ‘계획 기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많다. 더 큰 문제는 기부를 하려는 마음이 있어도 가족의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유산 기부의 현장에서는 유류분 제도와 유언의 방식 문제가 자주 발목을 잡는다. 어느 대학에서는 백억 원대 규모의 기부 약정이 기부자 사망 후 유족의 문제 제기로 무산된 사례도 있었다. 생전에 뜻을 세워두었더라도, 법적 절차와 가족 간의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뜻은 실현되기 어렵다. 기부는 개인의 결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족이 함께 동의하고, 제도 안에서 설계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의 세법은 기부에 여러 혜택을 마련해 뒀다. 개인이 공익법인 등에 기부할 경우 소득세 신고 시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할 경우 상속세·증여세 과세가액에서 제외되는 혜택도 있다. 나아가 유산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이른바 ‘유산기부 세액공제’ 법안이 현재 국회에서 개정 논의 중에 있어, 제도적 기반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어도, 기부하겠다는 마음이 먼저 자라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세금 혜택은 기부의 동기가 아니라 조력자여야 한다. 요즘 어린이 경제교육, 세금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설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아이가 받은 세뱃돈으로 통장을 만들어주고, 주식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사회적기업이 자본시장에서 힘들 때, 고용노동부는 어디에 있는가?

“2개월밖에 분석할 시간이 없어 그 부분까지는 살피기 어려웠습니다.” 한 증권사 담당자가 상장 주관사 선정 평가회의에서 이렇게 답했다. 이 회사가 인증 사회적기업이라는 점을 상장 전략에서 어떻게 분석했는지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즉답을 피하면서도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내겐 실망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날 참석한 것은 한 인증 사회적기업의 상장 주관사 선정 평가회의였다. 100페이지에 가까운 제안서를 바탕으로 상장 시점, 비교기업군, 투자자 설득 포인트, 평가 가치 논리가 설명됐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기업’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사회적 가치’라는 표현도 찾을 수 없었다.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시작되자 잠시 망설였다. 상장의 본질적 질문들이 오가는 자리에서 ‘사회적기업’ 운운하는 것이 괜히 한가한 질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옆자리에서 나를 평가 회의에 초대한 사회적기업 대표가 채근했다. “대표님, 사회적기업 관련해서도 질문해 보세요.” 그날의 장면은 지금 한국 자본시장이 사회적기업을 대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기업이 상장을 준비할 만큼 성장했는데도, 시장은 여전히 그 기업을 이해하는 언어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익숙한 재무 프레임으로만 해석하려 한다. 사회적기업이라는 정체성은 가치평가와 상장 내러티브의 중심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회사의 일반 연혁 소개에서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 사회적기업의 ‘사회적’은 어떻게 해석되고 있나? 공교롭게도 일주일 전, 고용노동부 정책 담당자들과 인증 사회적기업 대표들이 만나는 자리에 투자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대표들이 전한 목소리는 비장했고 무거웠다. 정부가 만든 사회적기업 인증 제도가 넓게는 자본시장에서, 좁게는 같은 정부 체계 안의 거래소 주변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문제제기였다. 어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썸네일 가로형
[영리한 비영리] 서울 반전세에 비영리재단 다니는 사무총장 이야기

결혼 22년 차, 내 이름으로 된 집은 아직 없다. 지난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속 주인공의 서사와는 거리가 먼 삶이다. 나는 서울 행촌동의 작은 빌라에서 보증금 2억에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산다. 보증금의 절반은 대출이었고 지금도 그 무게를 성실히 감당하며 갚는 중이다. NGO 활동가인 남편과 맞벌이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2000만 원 전세로 시작한 결혼생활에서 ‘자가 마련’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돈이 조금 모이면 남편과 나의 학비로 나갔고 아이가 생기면서 저축은 늘 뒤로 밀렸다. 청약도 몇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비켜갔고 정부가 바뀔 때마다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제도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제도적 혜택마저 비켜갔다.  “무리해서라도 대출받아 산 집이 올랐어”라고 말하는 친구를 보며 ‘영끌’이라도 해서 작은 빌라라도 한채 샀어야 하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20여 년 가까이 사회 제도 개선을 외치며 비영리 영역에 몸담아온 내게, 시세차익을 전제로 한 자산 경쟁에 뛰어드는 일은 스스로에게 이율배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선택을 끝내 하지 못한 채 어느덧 오십이 되었다. 그 사이 집값은 억 단위를 넘어 수십억 단위로 뛰었다. 이제 집은 온기를 품은 ‘내 집’이 아니라 숫자와 자본의 계급을 증명하는 차가운 잣대로 읽히는 시대가 됐다.   ◇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보이지 않는 노숙’을 겪는 청년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수백년의 데이터를 분석해 자본에서 얻는 수익이 노동으로 버는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를 증명했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 경계를 넘어선 사람들, 그 곁을 지키는 법

법은 여전히 차갑고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법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법은 마지막 안전망이자, 무너진 존엄을 다시 세우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 법을 통해 권리를 회복해가는 과정에는, 그들 곁에서 함께하며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다. 이 칼럼의 제목이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法’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펌을 중심으로 한 공익활동은 점차 조직화·전문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법무법인(유) 바른은 공익사단법인 ‘정’을 설립해 다양한 공익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난민과 이주민, 북한이탈주민 등 경계를 넘어선 사람들을 대상으로 법률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난민 법률지원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온 난민신청자들을 위한 상담과 소송을 포함한다. 많은 난민신청자들은 통역의 한계와 낯선 재판 절차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채 난민불인정결정을 받는다. 재판 절차를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그들은 자신의 삶이 판단되는 과정에서조차 배제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이 겪는 좌절은 쉽게 위로하기 어렵다. 소송대리인으로서 내가 하는 일은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이를 재판부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더 마음을 쓰는 부분은 그보다 사소한 지점에 있다. 반가운 인사와 따뜻한 태도로 맞이하고, 차 한 잔을 나누며 일상의 대화를 이어가는 일이다. 그들의 여정 속에서 잠시라도 고단함을 내려놓고, 소소하지만 따뜻한 기억 하나를 남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에 고향을 두고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먼저 온 통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제도와 정보의

조대식 KCOC 사무총장 가로 썸네일. /KCOC
[사회혁신발언대] 위기 현장에서 배운 인도주의 가치, 한국 국제개발협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15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는 날이 있다. 2011년 리비아 내전이 시작되던 날이다. 당시 나는 주리비아 대한민국 대사로 트리폴리에 있었다. 평온하던 도시의 공기는 순식간에 긴장으로 바뀌었다. 거리 곳곳에서 총성이 들리고 공항과 항만이 잇따라 폐쇄되면서 도시의 질서는 빠르게 무너졌다. 대사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리비아 전역에서 일하고 있던 한국인과 한국 기업 직원들의 안전한 탈출이었다. 당시 리비아에는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던 우리 기업 직원 약 1만4천 명이 체류하고 있었다. 통신이 불안정해지고 공항이 폐쇄되면서 이들의 안전은 순식간에 불확실해졌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공항이 막히면 항구를, 항구가 막히면 육로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현지 정부와 국제기구, 여러 국가들과 협력하며 가능한 모든 탈출 경로를 모색했다. 도시의 긴장은 계속 높아지고 있었지만 탈출 항공기와 선박, 버스에 오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수많은 긴박한 순간을 지나 결국 1만4천여 명을 안전하게 탈출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했다. 분쟁 속에서 집을 떠나야 했던 수십만 명의 리비아 시민들, 병원으로 가는 길조차 막혀 치료를 받지 못하던 환자들, 식량과 물을 구하지 못해 불안에 떨던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전쟁과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언제나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 경험은 나에게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위기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적이나 이해관계를 넘어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