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미 책꽂이]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외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슬세권’이 주목받고 있다. 슬세권은 슬리퍼와 세권(勢圈)을 합친 말로, 슬리퍼를 신은 가벼운 복장으로 카페, 편의점, 영화관, 쇼핑몰 등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 지역을 일컫는다. 젊은 세대의 주거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골목길 경제학자’라 불리는 저자는 도시의 미래를 동네에서 찾는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존 유통 산업에 찾아온 위기를 집 주변 ‘동네’가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한다. 동네 상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로컬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저자는 각 지역만이 가진 역사, 문화, 공동체 등을 활용해 동네를 차별화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앞서 출간된 ‘골목길 자본론’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과 함께 저자의 ‘로컬 비즈니스 3부작’의 완결편에 해당한다.모종린 지음, 알키, 1만9000원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시리아 내전이 만 10년을 맞았다. 그간 시리아에서 발생한 난민은 115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터키, 레바논 등 이웃국가로 몸을 옮겼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들의 고통은 길어지고 있지만 이들을 향한 혐오의 시선은 누그러들지 않는다. 저자는 시리아 난민 압둘와합을 ‘친구’로 소개한다. 압둘와합은 시리아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한국으로 유학길에 오른 첫 번째 시리아인이다. 저자도 압둘와합을 처음 만났을 당시를 회상하며 이국적인 외모와 문화적 차이로 거부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후 친분을 쌓으며 속사정을 알게 되고, 이슬람과 난민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북한과 전쟁이라도 나면 한국인도 난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020년 기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난민은 3454명.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과 좀체 어울리지

[더나미 책꽂이] ‘나는 마을로 출근한다’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외

나는 마을로 출근한다 지방 인구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일부 지방 마을에는 사람이 줄며 활기도 사라지고 있다. 경남 하동의 공정여행사 ‘놀루와’가 지방 소멸을 극복하는 해결책을 책으로 내놨다. 저자는 지방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하나씩 소개한다. 매월 보름 섬진강 백사장에서 야경을 즐기는 프로그램 ‘섬진강 달마중’을 비롯해 매년 1월에 열리는 ‘논두렁 축구 대회’도 있다. 프로그램에는 주민들도 참여해 수익을 공유한다. 마을을 살리는 공정여행에 관심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 조문환 지음, 놀루와, 1만6000원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코로나19는 일상 풍경을 바꿨다. 배달 음식과 택배 주문량이 증가해 일회용품이 늘어났다. 배달 노동자들은 밤낮없이 일회용품들을 날랐다. 감염을 막기 위한 코호트 격리 조치는 장애인 시설을 감옥으로 만들었다. 노숙인들에게 주던 도움은 끊겼다. 이 모든 게 우리가 사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코로나19가 삶을 위협했지만, 모두가 똑같은 크기로 받은 건 아니었다. 인권운동가, 문화인류학자, 배달노동자, 장애인권운동가, 환경운동가 등이 모여 코로나19로 인해 심화된 장애, 환경, 노숙인, 인종주의, 돌봄 문제들을 다뤘다. 코로나19로 드러난 혐오와 차별 문제들을 직면할 때다. 미류 외 9인 지음, 창비, 1만5000원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 ‘#연대는백인여성을위한것이다(#solidarityisforwhitewomen).’ 2013년 미국 페미니즘 연대에 일침을 놓는 트윗이 올라왔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유색인과 트랜스젠더 등 소수 여성이 배제됐다는 뜻이었다. 저자는 “백인 여성이 고위직 유리천장을 논할 때, 흑인 여성은 고용불안을 겪었다”며 “모든 여성을 담지 못한 페미니즘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후드 페미니즘’이 시작됐다.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

[더나미 책꽂이] ‘기후위기, 과학이 말하다’, ‘협동의 재발견’ 외

기후위기, 과학이 말하다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는 40개국 과학자 91명이 전 세계 과학자들의 검토 의견 4만건을 받아 만들었다. 기후위기는 현실이고, 이에 과학자 97%가 동의한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기후위기를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대중들은 과학을 부정하는 음모론에 선동된다. 미국 조지메이슨대 기후변화커뮤니케이션센터 교수인 저자는 기후위기 회의론자들이 왜 기후위기를 부정하는지를 직관적인 그림과 함께 설명해준다. 그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도 안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고집불통 과학 부정론자와 대화하기 전에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존 쿡 지음, 홍소정 옮김, 청송재, 1만9000원 협동의 재발견 노인이 혼자 사는 집에 전구가 나가면 누가 갈아줄까.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노인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이런 사소한 것도 ‘도와달라’고 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형성된 소규모 협동조합 덕분이다. 일본의 노인 인구는 전체의 약 28%다. 노인 돌봄이 사회 문제로 대두될 무렵 소규모 협동조합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책은 작은 협동조합에선 도움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모두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고령 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어떤 대비가 필요한지 알려준다. 다나카 히데키 외 4명 지음, 세이프넷지원센터 국제팀 옮김, 쿱드림, 1만5000원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 기후위기에 이어서 식량위기가 다가온다. 하지만 무력하게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식량이 사라지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희망을 찾는 것을 택했다.

[더나미 책꽂이] 몸과 말, 문밖의 사람들 외

몸과 말 경증 근육병 환자로 살아가는 ‘바디 에세이스트’ 홍수영이 겪은 장애인 차별과 침묵에 대한 에세이. 열네살, 근육긴장이상증으로 불리는 ‘디스토니아’가 갑작스레 찾아왔다. 멀쩡히 있다가도 얼굴이 붉게 물들고 이마와 등에 땀이 맺힌다. 목이 꺾이고 안면은 굳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저자를 향해 “네가 뭐기에 교통약자석에 앉느냐”는 말을 내뱉는다. 그렇게 장애는 그를 차별의 늪으로 끌어당겼다. 발성 장애가 있는 저자는 점점 위축되고, 주변 사람들은 침묵하는 그를 제멋대로 판단하고 의심한다. 책은 저자의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을 고발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장애의 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섣부른 오해에서 비롯된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홍수영 지음, 허클베리북스, 1만5000원 문밖의 사람들 2016년 파견노동자 ‘메탄올 실명 사건’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 청년들의 노동 현실을 꼬집는 르포 만화다. 고향인 창원을 벗어나고 싶었던 진희는 홀로 서울로 올라가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일을 시작한 지 불과 나흘, 진희는 눈이 멀어 버린다. 같은 공장에서 진희를 포함해 모두 6명이 실명한다. 작업의 위험성을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피해자들은 앞이 안 보이게 된 이유조차 몰랐다.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건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인 박행를 만나면서다. 이들은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다. 시사만화를 그리는 김성의·김수박 작가는 지난 3년간 직접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파견노동의 현실과 시민활동가들의 노력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주관 ‘2020년 다양성 만화제작지원사업’

[더나미 책꽂이] 지구에서 스테이, 좋은 일을 멋지게 멋진 일을 바르게 외

좋은 일을 멋지게 멋진 일을 바르게 단체의 목적과 성격에 맞는 이사회를 꾸리고 운영하는 방법을 총정리한 가이드북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단체에 맞는 이사진을 고르고 선임하는 법부터 좋은 이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 대표·이사진의 역할까지 한 권의 책에 정리돼 있다. 저자인 에드가 스토에즈는 미국의 저명한 비영리 분야 전문가로, 해비타트·슈바이처 병원 등 200여개 비영리단체에서 이사와 이사장직을 수행했다. 책에는 저자가 한평생 비영리 분야에서 일궈온 이론과 실무 지침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국내 비영리 분야 거버넌스를 연구하는 ‘비영리거버넌스 연구소’가 비영리 이사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번역·출판했다. 에드가 스토에즈 지음, 김경수 옮김, 누림북스, 1만2000원   지구에서 스테이 한국·일본을 중심으로 전 세계 18개국 시인들이 ‘코로나 19 이후의 삶’에 대해 함께 썼다. 지난 9월 일본의 한국 문학 전문 출판사인 쿠온출판사가 코로나19 기록 프로젝트로 출판한 시선집의 국내 번역본이다. 김혜순, 김소연 등 국내 유명 시인과 영국의 피오나 샘슨, 대만의 천이즈, 일본의 야마자키 가요코 등 5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코로나19가 덮친 세상을 노래했다.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코로나 19로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상상도 못했던 세계’에 대한 진한 슬픔, 전 세계가 힘을 모아 ‘거대한 고통’을 이겨낼 거라는 간절한 희망이다. 홍콩 시인 재키 유옌은 ‘나는 빛이 되었고 언어와 함께 있으며 나는 어디 가든 다신 안에 있다’고 말을 걸고, 김소연 시인은 ‘빛이 된 나를 당신이 잊어버려도 보리수는 그윽한

[더나미 책꽂이] ‘이제 시골’,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외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 20대 손녀가 치매 걸린 90대 할머니를 돌보며 써내려간 2년의 기록. 취업준비생이라는 이유로 얼떨결에 맡게 된 일이지만, 손녀는 할머니를 돌보며 새로운 사실을 알아간다. 양갱만 좋아할 줄 알았지만 달디단 마카롱을 좋아하고, 자연과 농사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입체적인 할머니의 모습은 좋은 면만 보여주진 않았다. 할머니는 평생 고된 집안일과 농사로 가족을 돌보면서도 그 가치를 존중받아본 적 없는 피해자면서, 딸과 손녀에게 그 노동을 당연하게 대물림하려는 가해자였다. 가부장제의 피해자라고만 여겼던 엄마도 할머니 돌봄을 거부하는 올케를 비난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돌봄으로 얽힌 가부장제의 입체적인 모습을 찬찬히 이해해나간다. 노년 여성의 삶과 돌봄 노동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기록한 훌륭한 구술사. 윤이재 지음, 다다서재, 1만4000원   커밍 업 쇼트 ‘노동 계급 밀레니얼 청년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2030세대의 삶을 연구하는 저자는 청년 100여 명의 인터뷰 끝에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연구의 시작은 “왜 밀레니얼들은 결혼이나 정규직 일자리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성인됨’의 지표들을 가지지 않고 있는가”하는 질문이었다. 혹자는 비혼이나 자유로운 이주, 다양한 일의 방식 등 선택권이 넓어진 탓이라고 했지만, 저자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노동 계급 청년의 인생 궤적을 추적했더니 타의로 인해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를 살려 기록했다. 기댈 곳 없는 청년들은 질병·실업 등의 위험으로 금세 헤어나올 수 없는 불안정한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노력하면 된다’는 신념은 쉽게 무너진다. 저자가

[더나미 책꽂이]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외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자칭 ‘쓰레기 박사’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한국 현실에 맞는 분리배출 방법을 꼼꼼히 정리했다. 이 책의 묘미는 단순히 분리배출법을 나열하는 지침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저자는 우유팩, 플라스틱 용기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나오는 쓰레기가 분류되고 처리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왜 올바른 분리배출법을 따라야 하는지 대중 눈높이에 맞춰 전달한다. 특히 분리배출 기준을 지키는 ‘소비자 실천’에 이어 생산자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소비자 행동’까지 강조한다. 홍수열 지음, 슬로비 펴냄, 1만6000원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1969년생인 저자가 살아온 지난 50년의 지구 환경 변화를 살펴본다. 저자는 자신을 포함한 인류가 누려온 풍요로운 삶과 이를 뒷받침한 물질문명이 지구를 망가뜨렸다고 말한다. 이 책의 장점은 “당신이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분노를 쏟아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오히려 작은 실천으로 지구를 구하면서 풍요로운 삶도 지킬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대표적인 예가 매주 고기 섭취를 절반으로 줄여나가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조금만 애쓰면, 지구 환경과 우리 일상의 즐거움 모두를 지킬 수 있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김영사 펴냄, 1만5500원   왕진 가방 속의 페미니즘 서울 은평구에는 ‘여성주의’를 내건 병원이 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세운 ‘살림의원’이다. 의료협동조합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은 2012년부터 건강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온 곳이다. 이 병원엔 진기한 풍경이 있다. 바로 의사가 직접 ‘마을 주치의’를 내걸고 왕진을 간다는 점이다. 추혜인 원장은 서울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돈다. 그는 동네 안에서의 따뜻한 돌봄과 존엄한

[더나미 책꽂이] ‘슬기로운 뉴 로컬생활’, ‘서로 다른 기념일’ 외

슬기로운 뉴 로컬생활 ‘지방이 소멸한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시대, 서울 아닌 곳에서의 삶을 일궈가는 9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나왔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운영하는 비즈니스를 통해 자신이 사는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서울 이외의 변두리라는 ‘지방’이라는 말을 거부하고 지역의 특색이 살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로컬’이라는 단어를 쓴다. 책에는 광주, 속초, 남원, 목포 등 각지에서 서점, 게스트하우스, 브루어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로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기가 생생하게 담겼다. 그렇다고 로컬에서의 삶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자원과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현실과 그 안에서 사업을 일구는 과정의 어려움도 솔직하게 담았다. “망망대해에서의 외로움과 막막함을 떨쳐내는” 노력이 드러나는 개별 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이들이 ‘지방에 사는 사업가’가 아니라 ‘로컬 혁신가’로 불리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윤찬영, 전충훈 외 7명 지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기획, 스토어하우스 펴냄, 2만2000원   서로 다른 기념일  농인 부부의 일상을 아름답게 풀어낸 에세이. 농인은 청각장애를 치료 대상으로 보지 않고, 스스로 ‘보는 문화권의 구성원’이라 칭한다. 비장애인을 ‘청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때문이다. 청인 가정에서 태어난 저자는 자신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을 괴로워하다, 스무살 되던 해 농인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보청기를 제거했다. 아내 마나미는 농인 가정에서 자랐고,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청인이었다. 저자는 ‘서로 다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소리로 듣는 대신 더욱 섬세히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지만, 아이가 듣는 노래에는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저자는 이

[더나미 책꽂이] ‘우리에게는 참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음식과 자유’ 외

우리에게는 참지 않을 권리가 있다 20대 직장인이 상사의 성희롱을 신고한 이후 일어난 100일간의 일을 책으로 엮었다. 2017년, 여성 친화 기업으로 이름난 대기업에 다니던 유새빛씨는 반복되는 상사의 성희롱과 성추행을 참다못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회사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 피해자를 협박하고, 가해자를 두둔했다. 저자는 “조직 내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말고 경찰에 가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떠나지 않고 살아남는 피해자가 되겠다”는 결심이 그를 버티게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유새빛씨는 여전히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저자는 침묵하지 않았다. “피해 사실을 묻지 않는 동료와 일할 권리”를 지켜낸 그는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을 남겼다. 그 결과가 이 한 권의 책이다. 유새빛 지음, 21세기북스, 1만7000원 음식과 자유-슬로푸드 운동은 미식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 1980년대 슬로푸드 운동을 이끈 저자가 ‘미식’을 재정의했다. 저자는 미식이 단순히 식탐을 충족시키는 쾌락과 소비 행태로 전락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모두가 함께 아름다운 식탁’으로 의미를 재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서 특히 강조하는 건 식재료 조달 과정에서의 공정성이다. 저자는 친환경·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음식 역시 생산자를 착취하는 소비 과정을 거쳤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는 음식이 담고 있는 한 사회의 전통과 문화다. 맛있는 음식을 널리 퍼뜨린다는 명목으로 그 음식을 만들어온 사회의 전통을 파괴하거나 경시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준비 과정부터 공정하고 평화로운 식사가 진정한 ‘美食(미식)’, 아름다운 식사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카를로 페트리니 지음, 김병순 옮김,

[더나미 책꽂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적가치경영의 실천 전략’ 외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레즈비언인 저자가 그의 아내와 공식적인 동반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결혼 분투기’다. 연상의 연인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결혼이라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가족과 동료, 친구에게 500번에 걸친 커밍아웃부터 난관이었다. 무지함과 무례함, 따뜻함과 담담함에 걸친 다양한 반응은 그를 ‘커밍아웃 전문가’로 만들었다. 차별적 시선을 넘고 부모님의 인정까지 받아내고 미국 혼인신고까지 마친 이들은 단 한 곳, 한국 구청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책 곳곳엔 절망 대신 용기와 유머가 스며들어 있다. “30년 후엔 되겠지!” 나답게 살고 싶은 모두를 위한 응원가와 같은 책. 김규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1만3800원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적가치경영의 실천 전략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 등이 현장에 바로 접목할 수 있는 ‘사회적가치 실천 지침서’다. 지난 2018년 발간된 ‘기업의 미래를 여는 사회가치경영’의 후속작이다. 사회적경제 분야 전문가인 여섯 명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짚어내는 사회적가치 창출의 핵심은 ‘네트워크’다. 이들은 사회적가치 창출을 협동과 연대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조언한다. 책에는 사회적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해관계자의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협력 사례를 담았다. 지금 당장 사회적가치 창출에 뛰어들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필독서다. 김재구 외 5명 지음, 클라우드나인, 1만8000원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옥스퍼드대학 난민연구센터 부교수인 저자가 401일간 아프리카 가나의 부루두람 난민캠프에서 체류하며 쓴 에세이. 책 표지를 가득채우고 있는 긴 제목은 난민으로서 한 개인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저자는 논문 작업을 마치고 “난민을 ‘있는 그대로’

[더나미 책꽂이]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월경’ 외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뇌과학자와 자폐증을 앓는 아들의 특별한 성장기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 교수이자 세계적인 뇌과학자인 헨리 마크람은 자폐증을 앓는 아들 카이를 이해하기 위해 뇌와 자폐의 상관관계를 연구한다. 평생 뇌를 연구해왔지만, 아들의 머릿속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버지는 끝없이 절망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연구 끝에 자폐는 무감각하고 지능이 낮은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외부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증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른바 ‘강렬한 세계’ 이론이다. 저자는 연구와 사랑으로 아들을 이해하려 노력한 아버지의 노력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로렌츠 바그너 지음, 김태옥 옮김, 김영사, 1만3800원   월경 사회가 닦아놓은 ‘안전한 길’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여성 청년들이 있다. 청년 농업인 박푸른들, 정의당 대변인 강민진, 뉴미디어 ‘닷페이스’ 설립자 조소담, 여기공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민재희 등 농업·정치·교육·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2030 여성 청년 10명이 자신들의 분투기를 솔직하게 기록했다. 이들은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빛나는 성취를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우리가 세상이 만든 ‘빛나는 성취’라는 허상이 어떻게 우리를 가두고 억압했는지를 예민하게 알아차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세상의 기준과 ‘나다움’이 부딪힐 때 자신을 세상에 맞추기보다 계속해서 ‘담을 넘는(월경·越經)’ 선택을 한 이들의 이야기다. 박푸른들, 리조 외 8명 지음, 교육공동체벗, 1만7000원   가난한 사람들의 선언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자선을 거부하라.” 공정무역의 창시자로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 신부인 프란치스코 보에르스마의 말이다. 그는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기부하는 방식 대신, 수익을 독점하는 소수의

[더나미 책꽂이] ‘신을 기다리고 있어’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 외

신을 기다리고 있어 이 책은 “스물여섯, 나는 아침에 홈리스가 되었다”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고 검소하게 살았지만 결국 비정규직 파견 사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은 갑작스런 해고로 한순간에 홈리스가 된다. 소설은 ‘빈곤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한 청년이 극빈곤층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실제 극심한 가난을 경험했고 이를 글로 녹여냈다. 청년 빈곤과 이를 대하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드러내는 ‘논픽션에 가까운 픽션’이다. 하타노 도모미 지음, 김영주 옮김, 문학동네, 1만3800원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 공원, 벽화, 지하철 엘리베이터…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느끼는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낸 시민의 숨은 노력을 한 권에 모았다. 저자에 따르면,‘시민들이 만든 도시 풍경’의 대표 사례는 광화문 한복판에 있는 서울광장이다. 지난 2004년 서울광장이 만들어진 데는 2002년 월드컵의 광장 중심 응원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그보다 한참 전인 1996년부터 서울 한복판에 광장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 조례를 바꾸자는 운동을 해온 시민들이 있었다. 이 밖에도 지체장애인들의 오랜 노력으로 도로의 턱이 사라지고 저상버스가 운영되기 시작한 사연 등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시민들의 노력이 잘 정리돼 있다. 최성용 지음, 동아시아, 1만6000원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은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일어난 모든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뜻의 영미의 법리다. 가해자는 상대방의 머리를 한 대 쳤을 뿐인데, 피해자가 계란 껍질처럼 얇은 두개골을 가진 사람이라 그 일로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