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마음이 자살예방 열쇠입니다

위드하우스 쉼터지기 정진씨 자살에 상처받은 이들 아픔 치료하는 쉼터 명상·텃밭 가꾸기 등 부지런한 생활 통해 우울증 예방 효과도 ‘식구들’ 서로 의지하며 삶의 용기 되찾는 계기 김민석(38·가명)씨는 27년간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해있었다. 병원 내에서도 벌써 다섯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약효가 가장 강한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해도, 그의 망상과 발작은 나아지질 않았다. 그런 그가 7개월 전, 마음쉼터 ‘위드하우스(with house)’를 만났다. 그의 우울증은 하루가 다르게 치료되기 시작했다. 온종일 병실에 누워 꼼짝하지 않던 그가 이제는 하루 일정을 미리 계획하기 시작했다. 명상, 식사, 청소, 운동, 텃밭 가꾸기, 독서 등 잠시도 누울 겨를이 없다. 아버지를 피해 폐쇄병동에 스스로 입원했지만, 이제는 아침마다 아버지를 포옹하고, 감사 인사를 전한다. 김씨는 “매일매일이 행복해졌다”며 미소를 짓는다. 위드하우스는 김씨처럼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사람, 자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마음 쉼터’다. 지난 2년 동안 50여명이 위드하우스에서 마음을 위로받았다. “마지막 순간에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주면 삶을 포기하지 않아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지 못해 아파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위드하우스 쉼터지기 정진(55)씨가 나직이 말했다. 사회복지사이자 상담가인 정씨는 서울 연희동에 있는 자신의 주택 2층을 내어, 쉼터로 꾸몄다. “왜 이곳이었느냐”고 묻자, 정씨가 창밖 소나무 숲을 가리킨다. 8년 전, 서울 연희동으로 이사 온 그녀는 주택가를 감싼 소나무 숲이 민간에 매각돼, 보존이 어려울 것이란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소나무 숲에 살고 있는 초본 식물, 목본

“한국도 록펠러 재단처럼 전략적 자선사업 펼쳐야”

허브 서울 공동대표 정경선씨 록펠러재단·아쇼카처럼 전문적 생태계 키우고자 자선활동 전업으로 택해 업무와 카페가 결합된 코워킹 공간 ‘허브 서울’ 멤버 간 네트워크 통해 정보 교류와 협업 꿈꿔 자선도 규모의 경제 필요 열정과 진정성 가지고 인재 선발 심혈 기울여야 업무공간을 공유(일명 코워킹)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난 2005년 영국 런던에서 이런 실험을 위해 설립된 ‘더 허브(The Hub)’는 현재 암스테르담·마드리드·샌프란시스코 등 전 세계 30여곳으로 퍼졌다. 지난 1월 초 한국에도 문을 열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문을 연 ‘허브 서울’이 바로 그것. 60평 규모의 공간은 카페와 회의실, 컴퓨터로 업무를 보거나 이벤트를 열 수 있는 공간 등으로 이뤄져있다. “이 공간이 소셜 섹터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허브 서울’에서 만난 정경선(27) 공동 대표의 말이다. 지난해 2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대가(家)의 3세다. “록펠러재단이나 아쇼카처럼 전략적이고 임팩트 있는 자선 활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며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고생길을 택한 이유는 뭘까. “2008년 무렵 일본의 한 보험 회사에서 인턴을 했는데, CSR팀이 기업의 전략을 세우는 데 상당히 큰 축을 담당하고 있더라고요. 그룹사에 CSR 본부가 따로 있어서, 이곳에서 기업의 사회공헌 전략을 짜고 협력사와 고객, 직원 등을 어떻게 챙기는지 관리하는 걸 봤습니다. 그때그때 어려운 이들을 돕는 걸 넘어서서,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는 이후 대학생 문화 기획 동아리 ‘쿠스파(KUSPA)’를 결성, 자선 파티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거나

“국내 최초 재능기부 영화” 홍보가 끝난 뒤엔…

영화 ‘철가방 우수씨’ 조기 종영 이유는 개봉 전엔 ‘시끌’ 음악·의상·배우 재능기부, 배급기부 발표 기사 쏟아져 개봉 1주 만에 ‘시들’ 상영관 108개서 37개로… 밤 12시 등 관람 힘든 시각 “보여주기식 아니냐” 비판 CJ엔터테인먼트 측 “규모 면에서 배려했지만 객석점유율 따라 불가피” 지난달 27일, 손미경(27·서울시 성북구)씨는 연말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볼만한 훈훈한 영화를 찾고 있었다. 가수 션이 얼마 전에 트위터를 통해 ‘철가방 우수씨’ 영화를 언급했던 것이 생각나 인터넷으로 상영 시간표를 검색했다. 하지만, 주말 동안 서울에서 ‘철가방 우수씨’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한 곳도 없었다. 전국적으로는 단 한 곳, 인천에 있는 독립영화관에서만 영화 관람이 가능했다. 결국 다른 영화를 봐야만 했다. ◇’철가방 우수씨’, 108개 상영관에서 일주일 만에 37개 상영관으로 축소 중국집 배달부로 월 77만원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5명의 아동을 7년 동안 후원해온 고(故) 김우수씨의 삶을 영화화한 ‘철가방 우수씨’. 국내 최초의 재능 기부 영화로 주목을 받았던 이 영화는 이대로 개봉관에서 사라지는 것일까. 지난해 11월 22일, 전국 108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철가방 우수씨’는 일주일 만에 37개 상영관으로 축소됐다. 지금까지의 누적 관객 수는 9만2000명. 개봉 2주차에 접어들면서는 ‘철가방 우수씨’의 상영 시각도 아침 혹은 늦은 밤에 몰려 있어 사람들이 잘 볼 수 없었다. 지난달 5일, CGV 강변점 상영스케줄을 보면 ‘철가방 우수씨’는 아침 9시 30분, 오후 2시, 밤 12시로 세 차례 상영되고 있었다. 이마저도 ’26년’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등 세 영화와 함께 한

“고객 잘돼야 금융기관도 잘돼 제조업보다 사회적 책임 더 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불황, 금융권도 책임 있어… 경영 패러다임 바꾸고 과정부터 고객과 상생해야 생색내기에서 벗어나 특색있는 공헌 사업 필요 미국은 취약 계층·지역에 재투자했는지 평가해 성과에 따라 이익 부여 거스름돈 기부하는 등… 소액 기부가 활성화되길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은 제조업보다 훨씬 더 크다. 제조업은 물건을 팔면 끝이다. 금융은 그 물건이 바로 대출이다. 고객이 망하면 내가 망한다. 다른 어떤 업종보다 고객과 동반성장이 필요하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권혁세(57) 금융감독원장은 인터뷰 내내 ‘따뜻한 금융’을 강조했다. “사회공헌이나 복지는 내 전공이 아닌데…”라고 말문을 열었지만, 1시간 내내 조목조목 ‘사회적 책임이 왜 중요한지’ 설명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와 ‘복지’가 화두다.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요구도 높아지는데,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종전에는 영업하고 남은 일부를 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이었는데, 앞으로는 경영 과정에서도 고객과 상생해야 한다. 고객이 잘못되면 금융회사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게 저축은행 사태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낼지 몰라도 결국 망하는 길이다. 둘째가 ‘따뜻한 금융’이다. 경제 환경이 좋을 때는 돈 빌려가라고 해놓고 환경이 나빠지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서 돈을 안 빌려준다. 비 올 때 우산 뺏는 식이다. ‘금융은 원래 차갑다’고 하던 걸 바꿔야 한다. 셋째가 사후 사회공헌이다. 예전에는 일회성·생색내기식이고, 판촉과 연계된 사회공헌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 경쟁 과정에서 탈락한 이들을 치유하는 진정한 사회공헌을 해야 하고, 전담 사회 공헌본부가 있어야 한다.” ―현재 금융권의 사회적

[날아라 희망아] 영하 30도가 계속되는 몽골의 겨울… 엄마 없는 오트자르갈군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세요

오트자르갈(9)군은 마늘을 송송 썰고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손으로 차분히 썬 마늘을 몽골식 수제비에 넣었습니다. 손님들의 눈치를 보며 먹을지 말지 고민하기에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 채로 후루룩후루룩 삼키듯 밀가루 수제비를 넘겼습니다. 방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담배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내복만 입은 아버지, 삼촌,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 친구,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 등 어른 네 명이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여동생 호랑(3)이 맨바닥을 뒹굴며 놀고 있었습니다. 오트자르갈군의 아버지는 건축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일감이 있는 날은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뿐입니다. 매서운 혹한이 계속되는 겨울에는 모든 공사가 올스톱 됩니다. 공사장에서 일해 매달 30만투그릭(30만원 남짓)을 받으면 그걸로 가장 급한 석탄부터 사놓습니다. 밥은 한두 끼 굶어도 견딜 수 있지만, 난로를 때지 못하면 추운 겨울을 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트자르갈군의 아버지는 “요즘은 물가가 너무 올라서 고기를 사먹기가 힘들다”며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거나 빵을 먹는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몽골인들의 주식은 고기입니다. 하지만 오트자르갈군의 가족은 내장을 삶은 국물로 고기를 대신합니다. 오트자르갈군의 새엄마는 1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그를 버리고 도망간 친엄마 대신 ‘진짜 엄마’처럼 따뜻했던 새엄마였습니다. “배가 고파서 많이 울었어요. 엄마가 아파서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거든요. 목소리가 너무 이상했어요. 아프지 않았을 때는 엄마가 잘해줬어요. 밥도 만들어주고,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해줬는데…. 지금도 보고 싶어요. 엄마가 돌아가셔서 너무 슬퍼요.” 오트자르갈군은 부엌 바닥을 쳐다보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단순한 일자리 아닌꿈을 선물받았어요

‘굿쉐어링’ 직원 오가나·어뜨남씨 몽골 울란바토르시 외곽에 위치한 성근하이르항. 이곳은 시내에서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다. 한파에 가축을 잃고 도심으로 몰려든 유목민이 많아서다. 이들은 천막으로 된 몽골 전통 가옥 게르를 짓고 산다. 일자리가 없어 실업률도 높다. 이 지역에 지난 2010년 굿네이버스는 사회적 기업 ‘굿쉐어링(Good Sharing)’을 세웠다. 직원은 총 8명. 굿쉐어링이 현지 지역 주민에게 주는 ‘일자리’는 상상 이상의 의미였다. 굿쉐어링 공장에서 만난 오가나(31)씨는 “매달 41만투그릭(40만원 남짓)씩 월급을 받는데, 2년 동안 매달 5만~10만투그릭씩 저축한 돈에 사장님께 일부 빌린 돈을 합쳐 올해 내 땅을 샀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 방 두 개짜리 벽돌집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41만투그릭은 몽골 중소기업 수준이라고 한다. 그의 고향은 시내에서 차로 8시간 걸리는 시골 마을 우르항가이. 그는 부모님과 함께 염소 250마리, 양 200마리, 소 40마리, 말 45마리를 키웠던 부유한 유목민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의 혹독한 겨울 날씨에 먹을 게 없던 가축이 대부분 죽었다. 도시로 나온 그가 선택한 곳은 금광 채굴 광산. “끈을 타고 지하 17m로 내려가 금가루가 담긴 흙을 자루에 담아 위로 올려 보내는 일이었어요. 하루에 3~5명 정도가 죽었어요. 금을 찾기가 점점 어렵고, 주변에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많아 시내로 다시 돌아왔죠.” 아이들은 시골 친척집에 맡겨놓은 채 아내와 함께 가구 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12시간 일해 받는 월급은 25만투그릭. 주말 근무는 기본이요, 때때로 밤을 꼬박 새워 일했지만 생활비 대기도 벅찼다.

모금전문가 3인의 기부·모금 분석

최영우 대표 – 기부자 일상 바꾸는 참여형 캠페인 뜬다 황신애 부장 – 기부형태 다양해질 것 모금전문가 양성해야 강철희 교수 – 고액 기부 토대 마련 제도 변화 대응할 때 최영우 ㈜도움과 나눔 대표 “2000년대 중반까지 유니세프, 월드비전 등 자선NGO들이 주도하는 시기였다면, 2000년대 중반부터 대학을 중심으로 고액기부문화가 등장했다. 2000년대 중반 서울대가 처음으로 하버드대에서 쓰던 고액기부자 대상 모금을 진행, 모금담당 직원이 1명에서 20명으로 늘어났다(하버드대는 모금담당 직원만 500명이다). 이 현상은 다른 대학과 대학병원까지 확산되고 있다. 메릴린치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1년에 100만불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이가 13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대학과 병원을 중심으로 한 고액기부자 모금시장과 그 기술은 앞으로 비영리단체로도 확대될 것이다. 비영리단체의 근본적이고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가벼운 감동만으로는 안 된다. 교육이나 의료 등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집요함,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협업 시스템 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비영리단체의 경영 전문성과 조직적인 힘이 늘어나야 한다. 또 기부자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자기 성숙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참여’의 장을 열어줘야 한다. 황신애 건국대 발전기금본부 모금기획부장 “개인 기부는 활발해지겠지만, 기업 기부는 경기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대학, 사회복지 및 국제구호 단체들의 모금이 두드러졌다면, 앞으로는 문화예술단체, 병원 등 다양한 기관의 모금 활동이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비용 대비 효과성이 높은 모금은 ‘거액 대면 모금’이다. 비영리단체가 이를 위한 전담팀을 두고자 한다면 그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한 모금 전문가(펀드레이저) 교육을 통해 역량 강화에

“한국도 WFP 지원으로 배고픔 극복… 전 세계에 이런 나라 많아져야 할 것”

60년대 지원받은 한국, 경제성장·발전 놀라워 WFP 한국 사무소 개소, 세계와 희망 공유 의미 北 영양 실조 해소 사업 투명한 식량 배분 위해 한국어 구사 요원 채용, 건강 상태도 직접 체크 “한국 공적개발원조로 더 많은 성공 보여주길” 전 세계 식량 원조의 55%를 담당하는 유엔세계식량계획(WFP·World Food Programme·이하 WFP) 한국 사무소가 지난해 말 서울대에서 개소식을 열었다. 2005년 문을 연 WFP는 지난해 12월 10일 서울대와 업무협정 조인식을 갖는 한편 사무실 이전식을 가졌다. 이를 계기로 WFP는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UN인도주의 단체로는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한국위원회,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WFP 한국사무소 등이 있다. WFP 한국 사무소는 서울대와 양해각서를 체결, 서울대 내에 둥지를 틀었다. 개소식을 위해 방한한 페드로 메드라노 로자스(Pedro Medrano Rojas) WFP 대외협력 사무차장을 지난 연말 인터뷰했다. ―국내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해온 유니세프와 달리, WFP는 아직 한국인들에게 낯설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도주의 기관이라는데, 한국 사무소 개소의 의미는 뭔가. “(예전 기사 스크랩을 보여주면서) WFP는 1964년부터 80년대 말까지 유엔 기구 중 둘째로 한국을 많이 도와줬다. 식량 지원을 토대로 한국은 괄목할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을 이뤄냈다. WFP는 이런 경험을 배우고 싶고, 전 세계 수십억 명에게 나눠 주고 싶다. 다른 나라도 또 다른 한국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한국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자 이머징 도너(Emerging Donor·신생 기부자)다. 2011년 부산에서 세계개발원조총회를 개최했고,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다크)에도 가입했다. 유엔

“아프리카 아이들 교육 위해 NGO 세우고 선생님부터 가르쳤죠”

HoE와 친구들 현지 교사·아이들 돕는 비영리단체 ‘호이’ 맞춤 교재 연구 개발 등 효율적인 교육방법 전달 연주회 통한 모금활동 등 지인·친구 도움도 계속 “아프리카에는 일회용 쓰레기가 많습니다. 구매력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 샘플 같은 걸 쓰거든요. 바람이 불면, 쓰레기들이 한곳으로 모여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치우질 않더라고요. 왜 쓰레기를 안 줍느냐고 물었더니 NGO가 와서 다 수거해가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 그러더군요.” 박자연(34)씨는 고민에 빠졌다. 아프리카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우리가 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리더가 필요했다. 작년 여름, 박씨는 아프리카 케냐 코어 지역 20여명의 선생님을 모아 구글 맵으로 자신이 사는 마을을 보여줬다. ‘왜 지리적으로 이 쓰레기가 한곳에 모이는지’ 알려주며 ‘왜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지’ 등 위생 문제에 대한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다. 현지 교사와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선생님이 ‘쓰레기를 치우자’고 하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3년 동안 매년 여름이면 코어 지역을 방문하면서 현지 교사와 신뢰를 쌓으면서 일궈낸 결과였다. 4년 전, 박자연씨는 아프리카 지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교사의 중요성을 처음 깨달았다. 박자연씨는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현지 교사”라며 “선생님 1명을 지원하면 1년엔 50명, 30년이면 1500명의 아이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코어 지역은 약 1만5000명의 아이 중, 단 6.6%만이 교육의 기회를 갖는 극빈층이 거주하는 곳이다. 교과서도 과거 식민 통치를 받았던 영국식을 따르고

[나눔의 리더를 찾아서] ⑭ 에스더 라던트 미국 프로보노 인스티튜트(PBI) 회장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변호사 인식부터 바꿨죠” 35년간 공익 변호사 활동… 전문적인 지식·서비스 공익 위해 재능기부하는 프로보노 활성화 위해 1996년 ‘PBI’ 설립 로펌 총 근무시간 3~5%… 프로보노 활동 쓰기 운동 140여개 대형 로펌 및 기업 법무팀 100곳 참여 PBI 회원 된 로펌에는 자가 검진 프로그램 제공 콘퍼런스로 고민도 나눠 에스더 라던트(Esther F.Ladent) 회장은 폴란드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1939년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독일군에 의해 아버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어머니는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강제로 보내졌다. 4년 동안 모진 고문과 죽음의 문턱에서 절반이 넘는 가족을 잃었다. 갈 곳도, 머물 곳도 없이 떠돌던 이들은 오스트리아 난민 캠프로 향했다. 음식과 약품을 찾는 피란민들 틈에서 에스더 회장은 태어났다. ‘사회적 약자들이 외면당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그녀는 35년간 공익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미국변호사협회(ABA) 의장에 올랐다. 그러나 성공이 보장되는 자리를 마다하고, 1996년 동료 한 명과 함께 워싱턴에 ‘프로보노 인스티튜트(Pro Bono Institute, 이하 PBI)’를 설립했다. PBI는 대형 로펌 변호사들의 프로보노(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서비스를 공익을 위해 재능 기부하는 것)를 활성화하고, 모니터링하는 NGO다. 에스더 회장은 로펌 변호사들이 총 근무시간의 3~5%를 프로보노 활동에 쓰기로 서약하는 운동(로펌 프로보노 챌린지 프로젝트)을 벌여, 미국 내 140여개 대형 로펌과 기업 법무팀 100곳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변호사 개인의 자율에 맡겨졌던 프로보노 활동을 로펌의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로 인식 전환을 일으킨 것. 이를 통해 미국 로펌의 프로보노 활동은 지난 15년간 300% 이상 증가, 2010년 역대 최고인

“건강 기업으로서 도움되고 싶었죠”

윤병호 부사장 인간문화재는 기업 사회공헌 활동의 보편적인 대상자는 아니다. 한독약품과 문화재청, 전국 11개 의료기관이 함께 진행하는 협력 의료봉사 모델도 새롭다. 지난 21일, 한독약품 윤병호(60·사진) 부사장을 통해 ‘인간문화재 지킴이’ 캠페인을 펼친 의미와 계획을 들었다. ―왜 인간문화재인가. “인간문화재는 나라의 살아있는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문화재의 평균 연령이 69.3세로 고령이기도 하고, 130만원의 정부지원금은 전승 유지에 쓰기에도 부족하더라. 건강관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건강을 책임지는 기업이니, 인간문화재들이 전수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해 드리자고 생각했다. 제약회사로서 가지는 기업의 비전과 사회공헌 활동의 방향도 잘 맞았다.” ―캠페인 비용을 ‘매칭그랜트(Matching Grant)’ 방식으로 마련한다는데…. “직원들이 자신의 급여 중 일부를 기부하고, 회사에서 동일 금액을 기부한다. 2009년, 처음 ‘인간문화재 지킴이’ 캠페인을 시작할 때, 직원들에게 이 활동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했다. 이에 공감한 직원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었던 것도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주효했던 것 같다. 매월 5월이면 가족을 초청하는 ‘패밀리투어’ 행사를 여는데, 인간문화재에게 강강술래를 배우는 시간도 갖기도 했다. 지난 15일 열린 ‘조선왕조 궁중음식 만들기’ 행사에 임직원들도 참여하도록 독려했는데 이도 같은 이유다.” ―지난 3년 동안 ‘인간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지난 6월이었다. 충북 음성지역 다문화 가정 120여명을 한독의약박물관에 초청해 ‘남사당놀이’를 보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과연 우리 전통 공연을 좋아할까’ 의문이 있었다. 북과 꽹과리 소리가 울리자, 다문화 가정 부모와 아이들,

집 고쳐주며 태풍 피해당한 분들 마음까지 위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_최영진씨 “처음 봉사활동을 할 땐, 아침 9시에 모여 도배를 시작하면 밤 10시에 끝났어요. 지금은 5~6시면 모든 작업을 완료합니다. 지난번에 고향집에 가서는 부모님 방 도배도 제가 해드렸어요(웃음).” ‘이제 도배라면 자신 있다’는 최영진(23)씨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봉사자다. 인하대학교 ‘트인’ 봉사 동아리 회장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 여수, 정읍, 청도 등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피해지역 복구활동에 참여했다. 3년간 총 538시간을 봉사한 최씨는 지난 22일, 희망브리지 봉사의 날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난 8월, 최씨는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400㎜가 넘는 집중호우의 피해를 입은 전북 군산에서 2박3일 동안 세탁봉사에 참여했다. 파주 물류창고를 방문해 구호현장에 보낼 생필품 세트를 2000세트를 제작하기도 했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인천지역 가정을 방문해 도배 봉사도 한다. 남구청, 부평구청 등 구청에서 봉사자 요청이 오면, 대상자를 방문해 집 상태를 확인하고 도면을 그린다.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아침부터 동아리원들은 10명씩 팀을 이뤄 도배를 진행한다. 도배지나 장판은 희망브리지에서 지원을 받고, 풀·실리콘 등의 자재는 학생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마련한다. 그가 이런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TV나 신문을 보면 본인도 살기 힘든데 남을 도와드리는 분들 있잖아요. 길거리에서 김밥 판 돈으로 기부를 하는 할머니처럼요. 그분들을 볼 때마다 마음에 죄책감이 있었어요. 전 편안하게 사는 거였으니깐요. 무거운 마음을 벗어보고자 봉사동아리에 들어가긴 했어요. 막상 시작하니,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근데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면 다시 힘이 나요. 친구들에게 권유도 하게 되고요. 도배 봉사는 취업하고 나서도 계속 꼭 하고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