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공익위원회 법률 제정… 서두를 필요 없다

정부는 지난 7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법무부가 마련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켜 국회로 넘기는 작업을 끝냈다. 이 법은 민간 비영리 공익법인을 총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민공익위원회’(공익위원회)의 신설과 운영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정부가 ‘시민공익위원회’를 신설하려는 이유는 비영리 공익법인이 투명하고 건전하게 공익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선의의 취지와 달리 법안 내용을 살펴보니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점과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 법은 접근법 자체가 비영리 공익법인 활동을 ‘반부패 개혁’ 차원에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고자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민간의 자발적 공익 활동과 연관성이 적은 법무부가 이 법(안)의 주무부처가 될 뿐 아니라, 시민공익위원장을 법무부장관이 제청해서 대통령이 임명하고 실무를 총괄하는 상임위원 역시 위원장 추천→법무장관 제청→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법무부가 공익법인들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원봉사, 국제 구호, 빈곤 아동 지원, 인권, 환경, 평화운동 등 공익을 위하여 민간이 벌이는 비영리 공익 활동을 법무부가 통제하려 든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민간 공익 활동은 가능한 한 민간의 자율성·책무성을 높여가면서 통제보다는 격려 및 지원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도 담보되기 어렵다. 각 분야에서 사회적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들이 정권에 따라 또는 장관의 성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안대로라면 시민공익위원회는 법무장관 그리고 대통령의 뜻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순수하게 사회 공익을 위해 일하도록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최적화되지 않은 선의

사회 전체의 공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즉 비영리, 자선사업, 소셜벤처, 임팩트 비즈니스와 임팩트 투자 등을 하는 이들이 취약한 부분 중 하나가 철저한 ‘자기 검열’이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하이에크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했을 때는 전체주의의 폐해를 경고한 것이지만, ‘나는 스스로를 희생하고, 소명에 진정성 있으니 틀릴 리 없어’라고 맹신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도 제법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2017년 출간되었던 윌리엄 매커보이 저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중점적으로 지적하는 부분도 이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잘 쓰는 것’과 ‘가장 잘 쓰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한데, ‘선의’라는 기치를 내거는 순간 돈을 어떻게 잘 활용할지 검증하기가 지극히 어려워지는 것이다. 잠비아의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는 2012년 출간한 책 ‘죽은 원조’를 통해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이 1970년대 이래로 3000억달러 이상의 천문학적 지원금을 받았는데도 끝이 없는 빈곤과 부패의 수렁에 빠진 것을 바로 그 ‘잘못 사용된 원조’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원조를 ‘치유책을 가장한 질병’으로 부르며, 다양한 차관과 증여가 받는 이들의 부패와 갈등을 조장하고 자유 기업 체제를 방해한다고 한다. 아프리카 국가에 가장 필요한 지원을 하기보다, 서방국가들의 행정 편의에 맞춘 원조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다. 임팩트 투자 또한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글로벌 임팩트 투자자 네트워크 ‘토닉’(Toniic)의 창립 CEO였던 모건 사이먼이 올해 초 출간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에서 이러한 사례를 언급한다. 예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멕시코 테우안테펙 지협의 풍력발전 프로젝트는 지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비워낸 만큼 채워지는 것들

아주 어렸을 때, 또래 여자 아이들처럼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말았다. 고작 대여섯살 때의 일이니 남들보다 포기와 좌절을 좀 더 일찍 맛본 셈이다. ‘아이돌’이 되는 것도 나의 오랜 꿈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진학 문제를 고민할 때도 남들보다 선택지가 좁았다. 성적보다는 엘리베이터와 특수학급의 유무를 먼저 봐야 했기 때문에 그게 안 되는 곳은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장애인이라서 예기치 않게 얻은 기회와 보람도 있다. 지금 쓰는 칼럼도 그 중 하나다. 나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경험이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정보가 된다는 것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소수성을 띠기 때문에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휠체어를 탔기 때문에 더 낮은 곳까지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못해 주야장천 읽었던 책들은 마음의 양식이 됐고, 독학으로 깨우친 컴퓨터는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생에서의 ‘득과 실’은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큰 손해라고 생각되는 일이 훗날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지금은 이득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미래의 나에게 큰 피해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가 처음 소아암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걸 긍정적으로 생각한 가족이나 지인들은 없었을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임팩트] 사회적기업 vs. 소셜벤처

‘사회적기업’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건 2008년 8월이다. 당시 경기 화성에 있는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총괄본부의 사회공헌을 담당하면서다. 사회공헌 담당의 역할은 농번기에 1사 1촌 봉사활동, 겨울이 오기 전에 집수리 봉사, 봄가을에 제부도나 연구소 인근 하천 쓰레기 줍기 등 주로 임직원이 참여하는 봉사활동 위주였다. 새롭게 맡은 업무가 낯설지만 흥미가 생겼고, 단순 봉사활동이 아닌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화성시 새마을회 사무국장을 만나게 됐다. 나의 고민을 들은 사무국장은 소외계층 일자리 창출형 사회적기업을 함께 만들어볼 것을 제안했다. 그분이 제안한 사회적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70세 이상 노인분들께서 새마을회에서 제공한 공간에서 뻥튀기를 생산·포장하고, 제품은 화성시 관내 공공기관에 무인 판매대를 설치해 개당 1000원에 판매하는 것이었다. 뻥튀기 생산을 위한 초기 설비비만 3000만원이 필요했다. 사회적기업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지만, 잘하면 될 것 같기도 해 거금 3000만원을 집행하기 위한 내부 승인 절차를 진행했다. 다행스럽게도 사회공헌 담당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회사의 승인을 받았고, 얼떨결에 ‘H&S 두리반’(현대차의 H, 새마을회의 S를 따온 이름)이라는 민관협력 모델의 사회적기업이 탄생했다. 자활개념으로 시작된 H&S 두리반은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성시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빵을 만들어서 화성시 전역에 납품하고 있고, 직업학교 학생들이 제빵 실습을 하는 실습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렇듯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제정될 당시 사회적기업은  대부분 자활기업, 사회복지단체, NGO 등에서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후 고용노동부 주도로 2008년 사회적기업 육성 기본 계획이 수립되면서, 대기업의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
[모두의 칼럼] 우리 회사엔 왜 여성 리더가 없나요?

지난 6월말, 위커넥트는 변화하는 일의 패러다임에 맞춰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10명의 여성 스피커를 초대해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온라인 콘퍼런스 ‘Career Navigation for Women: 계속 일하기 위한 6가지 방법’을 열었다. 이틀간의 콘퍼런스가 끝난 뒤 한 참가자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회사에 여성 리더가 거의 없어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덕분에 다양한 레퍼런스가 생겼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해왔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민간기업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19.8%였다.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훨씬 더 낮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 200대 상장사 등기임원 1441명 가운데 여성 임원의 수는 65명으로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미국의 경우 포브스 선정 200대 기업 중 여성 등기임원의 수가 전체의 29.9%에 달하는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ESG 평가 기관인 서스틴베스트는 ‘2021년 상장 기업 지배구조 성과’에서 평가 대상 997개 기업 중 여성 등기임원을 1명 이상 선임한 기업이 작년 대비 5.72%p 상승했다고 밝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 한 대기업 계열 건설사 대표이사와 여성 매니저들의 차담회에 초대됐다. 여성 임원을 더 많이 뽑고 싶지만 임원 후보로 올릴 중간관리자의 수가 너무 적다는 게 주요 어젠다였다. ▲출산과 육아 등 생애주기 변화에 따른 여성 실무자들의 중간 이탈 ▲남성 중심적 기업 문화와 제도 ▲구성원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지 않는 경직된 근로 환경 ▲여성 중간관리자의 최상위 직급 승계 경험 부재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죄악주 프리미엄’이라는 허구

2001년 9월, 책 한 권이 세상에 등장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브랜드들의 이면에 숨겨진 아동노동 착취, 전쟁, 환경파괴 등의 어두운 그늘을 조명한 서적이다. 거대 기업의 파렴치한 행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 책에는 독재 부패정권을 기반으로 기업들이 어떤 모습으로 더러운 유착관계를 맺는지 보여준다. 환경과 사회를 보호하는 관련법을 저지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것만 같은 유명 브랜드 회사가 국제단체와 어떻게 협업하는지도 밝혔다. 인권을 묵살하는 파렴치한 기업, 전자산업 내에 드리워진 아동노동의 그림자, 의약품 업계에 자행되는 실험용 모르모트 인간, 석유업계의 환경오염 실태 등 기업이 만드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에는 한두 번 욕 먹고 금방 잊힐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ESG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 투자기관 입장에서 이른바 ‘나쁜 기업’은 투자 배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투자 분야에서는 ‘죄악주(罪惡株)’라고 불리는 업종과 종목이 있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거나 사회적인 통념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류, 담배, 도박, 무기, 성상품, 대부 업종에 속하는 주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죄악주는 ESG 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윤리적, 종교적 신념 또는 환경·인권 보호와 같은 사회적 동기를 고려해 투자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ESG와 같은 비재무적 요소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재무적 가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투자 전략 관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 우리는 종종 ESG를 고려해 투자한다면서 카지노 기업의 지분을 늘렸다든지, 석탄발전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다소 비판적인 기사를 접하곤 한다. 급격히 늘어난 ESG 펀드나 ESG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낭만의 시대는 저물었는가?

“이제 낭만이 없어졌군요.” 성수동의 과거 분위기를 잘 아는 어느 지인이 대화 중에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최근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성수동도 그 파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사회적·경제적으로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한 소셜벤처들과 임팩트 투자 생태계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낭만의 시대가 저문 거죠’라고 말했지만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성수동을, 우리가 하는 일을, 낭만이라 생각한 적이 었었던가를 떠올리면서. 낭만.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낭만이라는 단어 뜻을 검색해봤다. 임팩트투자사와 소셜벤처,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 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들이 성수동에 터를 잡은 지 7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성수동은 현대식 마천루가 즐비하고 각기 다른 디자인과 매력을 뽐내는 크고 작은 식당과 편집 매장이 골목마다 들어선 곳이 되었다. 나날이 높이를 더해가는 성수동 빌딩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이상은 얼마나 쌓여가는지를 생각한다. 성수동을 대표하는 기관 중 상당수는 설립 10주년을 맞이하거나 이미 2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2008년에 설립한 소풍 역시 성수동에 터 잡은 지 7년째이자, 설립 13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그간 텀블벅, 스페이스클라우드, 동구밭, 비플러스, 자란다, 스티비, 뉴닉 등 국내를 대표하는 소셜벤처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임팩트투자 생태계도 몰라보게 커졌다. 2018년도부터 연간 2000억원 규모의 투자 조합을 계속 결성해내며 총액만 해도 1조원을 내다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 사이 협력보다는 경쟁이, 연대보다는 자기 증명이 더 중요해졌다. 축적하는 경험, 양적 규모는

[아무튼 로컬] 로컬의 세계관

개그맨 이창호씨가 지난 2월 유튜브 개그 채널에서 자신이 시가총액 500조원의 김 만드는 대기업 ‘김갑생할머니김’의 미래전략본부장 이호창이라며 너스레를 떨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러려니 웃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호창 본부장’의 활약상을 담은 후속 영상들이 이어지고 정부의 요청으로 그가 출연한 P4G 서울정상회의 홍보영상이 100만 회 넘게 재생되면서 ‘김갑생할머니김’은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아니 모두가 그렇게 믿기로 해주는 진짜 기업이 되어갔다. ‘김갑생할머니김’을 실제로 생산해 판매하는 곳까지 나타났다. 지상파 개그 코너가 점차 사라지면서 설 곳이 줄어든 방송사 개그맨 몇몇이 만든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13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과시하는 피식대학의 상황극들은 종래의 개그 코너처럼 1회적 웃음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 스토리가 연결되어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해 간다. 요즘은 이걸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롤플레이 모놀로그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가고 있는 개그우먼 강유미씨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은 80만명이 넘는다. 구독자들은 이들이 만들어 가는 세계관에 몰입하고 참여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현실과 허구의 구분 자체가 애매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마블 스튜디오가 만드는 수퍼히어로 영화 시리즈가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으로 연결돼 있는 것과 비슷하다. 유튜브는 최근 발표한 트렌드 리포트에서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적극적인 연결과 소통에 활용하는 이런 현상을 한국 콘텐츠 소비자들의 새로운 특징으로 꼽았다.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기존의 게임들은 제작사가 만든 세계관을 사용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어둠 속의 속삭임

계속해서 이어지는 변이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곳에서도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거론 자체가 터부시 되는 ‘정신 건강’ 문제가 그중 하나다. OECD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한 2020년 3월부터 전 세계적으로 불안과 우울증 유병률이 증가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두 배까지 증가하였다고 한다. 재정적 불안, 실업, 감염에 대한 공포 등 정신 건강에 대한 위험 요소가 증가한 반면 사회적 연결, 고용, 신체 운동, 의료 서비스 접근성 등 보호 요소는 감소한 결과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문제 해결이 더욱 까다로운 정신 건강은 이미 국제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보건기구에 따르면 2017년 전 세계 인구의 약 13%인 9억 7100만명이 정신 질환을 겪고 있으며, 유병률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가장 흔한 정신 질환은 우울증(3억명)과 불안증(2억 8000만명), 그리고 약물 사용 장애(1억 5000만명)이다. 한국도 정신 건강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18세 이상 국민 중 25.4%는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과적 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OECD 국가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인 지표가 악화하고 있고, 특히 20대와 30대 우울 위험군 비율이 각각 30%와 30.5%로 60대(14.4%)보다 2배 이상 높아 젊은 층의 정신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정신 건강이 중요한 이유는 질병을 앓는 사람뿐 아니라 그 주변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영국 의학지 ‘The Lancet(더랜싯)’에서 발행한 리포트(Lancet Commission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임팩트] 공간의 가치

최근 온오프라인에서 고객 또는 이해관계자와의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브랜드 체험공간, 커뮤니티 공간, 오픈 이노베이션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디지털 기술 기반의 온라인 소통이 대세이지만, 물리적 공간을 통해 직접적인 소통의 강점을 무시할 순 없다. 기업과 단체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공간에서의 체험을 통해 이해관계자의 로열티를 높이는 옴니채널 형식의 브랜드 커뮤니티 공간의 중요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미국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의 저서 ‘리테일 4.0’에서는 오프라인 공간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소속감과 생활방식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터로서 공간을 찾는다. 공간은 경험하는 장소가 되며 단순히 가야 하는 곳에서 가고 싶은 곳으로 인식 전환된다.’ 국내에서는 청년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인 창업지원 강화, 혁신적 비즈니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소셜벤처 또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 증가, 기업의 기술혁신과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니즈의 확대 등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창업, 협력 및 융합의 문화가 확산하면서 공간 플랫폼이 확대되는 추세다. 유형은 다양하다. 기업형 공유오피스로는 위워크와 패스트파이브, 창업 지원형 공유오피스로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가 운영하는 프론트원, 아산나눔재단의 마루 180, 서울시의 대표적인 창업지원기관인 서울창업허브 등이 있다. 특히 루트임팩트가 성수동에서 운영하는 헤이그라운드, 소풍의 카우앤독, 서울혁신파크 등은 소셜벤처 코워킹 스페이스로 잘 알려졌다. 또한 기업들이 운영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공간으로는 현대차의 제로원, 한화 드림플러스 등이 있다. 이외에도 지역에서는 로컬라이즈 군산, 통영 리스타트 플랫폼, 제주 낭그늘, 커먼필드 춘천 등이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그린워싱과 커뮤니케이션 사이 그 어딘가

날이 조금씩 더워지는 이맘때가 되면 기다려지는 소식이 있다. 바로 기업과 기관들이 매년 내놓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다. 일부에서는 CSR 보고서 또는 기업시민보고서라는 이름으로도 발간하며, 올해는 ESG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공시한 기업도 적지 않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각 기업이 지난 1년간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했고, 그로 인한 성과와 미흡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전략으로 비즈니스를 할 계획인지를 담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의 재무적인 정보는 재무제표로 확인하고 비재무 정보는 지속가능보고서로 확인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재무·비재무 정보를 통합한 보고서를 만드는 기업도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지속가능보고서는 2001년 2개를 시작으로 작년 기준 135개로 늘었다. 최근 10년간 보고서 발간율을 따지면 약 64% 증가했다. 기업은 언제부터, 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만들게 되었을까? 1989년 3월 미국에 본사를 둔 정유회사 엑슨(Exxon)의 유조선인 엑슨 발데즈호가 미국 알래스카 해안에서 암초와 부딪혀 좌초하면서 24만 배럴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된 사고가 있었다. 이로 인해 근처 바다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고 수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알래스카 원주민의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엔 환경계획(UNEP)의 지원을 받아 환경단체인 세레스와 텔루스 연구소는 1997년 GRI라는 조직을 설립하고 기업의 경제, 사회, 환경과 관련된 공시기준 초안을 만들었다. 이후 지속가능성 보고지침 및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GRI가 만든 가이드라인은 회사 및 공급망의 활동으로 인한 환경, 사회 및 거버넌스와 관련된 비용과 이익을 표준화하고 정량화해 제3자가 객관적으로 기업을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GRI가 만들어진 후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 현황을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에 맞춰 공시하기

[최수종이 말하는 ‘내 인생의 나눔’] “도움 필요한 곳에 손길 내미는 이웃 많아져 참 다행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좋은 인연을 만나기 마련이다. 평생 연기자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 선후배 동료 배우와 스태프, 수많은 팬까지 매일 만나는 모든 사람이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워낙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기에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람도 있다. 1999년 이른 봄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한 NGO가 친선대사 제의로 찾아왔다. 그때만 해도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단체였지만, ‘한국인의 힘으로 세계 곳곳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는 말에 나는 그 자리에서 선뜻 친선대사 자리를 승낙했다. 무엇보다 몇 마디 기관 소개에서 느껴지는 자부심과 당당함에 더욱 믿음이 갔다. 당시 창립 8주년을 맞은 굿네이버스는 국내외 사업을 통해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친선대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국내 사업장에 방문할 기회가 많았는데, 우리 주변에도 학대와 빈곤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막상 사업 현장에서 아이들의 다양한 아픔과 현실을 맞닥뜨리고 보니 당장 몇몇 사람의 나눔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기자로서 왜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눔’을 알려야 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해 10월 방글라데시로 첫 해외 봉사활동 떠나게 됐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굿네이버스 사업장이 위치한 곳은 수도 다카의 최대 빈민가 지역으로 평소 TV나 신문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 빈민가의 한 학교에 학용품을 나눠주기 위해 방문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