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자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리에 종영했다. 이번 드라마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사회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균형감 있게 제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선역과 악역을 나누지 않고, 캐릭터들이 처한 사정과 논리를 세심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것도 인기몰이에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극 중 개인적으로 유독 관심이 간 에피소드가 있다. 어린이들의 해방을 외치며 아이들을 학원 대신 동네 뒷산으로 데려가 함께 뛰어논 ‘방구뽕’이란 인물이 납치법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방구뽕은 법정에서 말했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나중에는 늦는다고. 방영 시점에 ‘초등학교 5세 입학’이 이슈가 되면서 해당 방송은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위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시의적절하게 이슈를 탄 이 에피소드에서 아쉬웠던 점은 아이들의 엄마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극 중에서 그는 “대한민국 어린이의 적(敵)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부모이며, 그들은 행복한 어린이, 건강한 어린이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아이의 행복이 성적과 좋은 대학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로 그려졌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를 늦게까지 학원에 보내는 부모는 아이의 행복보다 성적을 바라는 존재이고,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은 불행한 아이일까. 부모마다 아이에게 길을 열어 주는 방식이 다른 건 아닐까. 아이가 어려운 과업을 끈기 있게 해내면서 보다 빠른 성취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부모나, 아이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자유롭게 하나씩 이뤄가며 성장하길 원하는 부모나 각자 최선을 다 하는 것이다. 모든 아이가 다르고, 모든 가정의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만큼 교육과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해방,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

8월 23일은 ‘세계 노예무역 및 철폐 기억의 날’이다. 역사 속에서 인류가 부의 축적을 이루는 가운데 노예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로마 콜로세움을 열광의 도가니로 이끈 검투사들도 노예였으며, 일본의 도예 문화를 꽃피운 조선의 장인들도 노예였다. 남미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해 세계 곳곳에 공급한 것도 노예다. 이 중에서도 16세기부터 시작된 삼각무역에 동원된 흑인 노예들은 그 이전의 노예들과 매우 다르다. 검투사는 승리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장인은 그 재주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이 고안한 노예무역은 ‘흑인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 개념화했다. 그래야만 노예선에 높이 30cm로 다섯 단을 쌓아 사람을 짐짝처럼 차곡차곡 눕혀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런 상태로 운반되는 노예가 질병이나 영양실조로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면, 바다에 밀어 넣어 수장을 시키고 보험금을 받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 된다. 영화 ‘벨(BELLE)’은 1781년 9월 자메이카를 떠난 노예선 ‘종(ZONG)’호에서 3일간 133명의 병든 노예를 바다에 수장시킨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보험금을 노린 사건이다. 종호는 영국에 도착해 보험금을 청구하나, 보험사는 거절했고 긴 재판이 이어졌다. 결과는 패소했고 이 일은 영국사회에 노예무역의 잔혹성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초기 노예무역 반대론자들의 캠페인은 어쩌면 요즘 공정무역 캠페이너들의 활동과 비슷하다. 영국의 지식인들은 식민지에서 생산한 설탕 불매운동(boycott)을 벌이면서 ‘노예의 피로 만든 달콤함을 거부한다’며 인도산 설탕을 대안(buycott)으로 소비하기도 했다.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주장이 담긴 신문이 돌고, 카페에서는 그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다. 그 카페의 커피는 공정무역이 아니었을 테니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메타버스와 사회혁신] 아바타와 페르소나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종종 컴퓨터 게임을 즐기곤 했었다. 내신 시험이나 모의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부리나케 PC방으로 달려가 가상세계에서의 특별한 조우를 즐기곤 했었다. 그곳에서는 특수부대의 유능한 스나이퍼가 되기도 했고, 멋진 도끼를 휘두르는 바바리안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대규모 우주함대를 지휘하는 외계종족의 사령관이 될 수도 있었다. 가상세계는 늘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했지만, 온종일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생의 주머니 사정도 그러했지만, 다시 학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감이 더 컸다. 그래서 매번 PC 사용 시간을 미리 결제하는 선불제를 끊고는 했다. 약속된 시간에 도달하면 컴퓨터 시스템은 1초의 오차 없이 차단됐다. 현실로 돌아올 시간. 정신을 추스르고, 등가방을 챙겨 그곳을 나설 때마다 나는 모종의 부적응을 잠시간 겪었던 것 같다. 다시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현실도 그러했지만, 조금 더 나아가자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는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에 불과하단 정체성의 자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여러 학생 중 한명 일뿐이라는 자각이, 오히려 나를 강력하게 가상세계에 매료되게끔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곳에서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나’를 잊고, 내가 바라는 ‘누군가’로 살아 볼 수 있었다. 대학 진학 이후 게임에 대한 욕구는 크지 않았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이리도 다양하고 짜릿했기에 굳이 게임이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이때부터는 가상의 나 자신을 살게 하는 게임보다, 나의 실제 삶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소셜미디어(Social Media)’에 더 관심을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기업과 사회] 한국 기업은 다양한가, 평등하고 포용적인가?

전체 인력 중 여성 비율 19%. 관리직은 32%, 이사진 50%. 영국 물류회사인 ‘로열 메일(Royal Mail)’의 다양성 보고를 살펴보면, 직위가 높을수록 여성 인력 비율이 높다. 흑인과 아시안 등 소수인종의 비율은 14%. 장애인 비율은 놀랍게도 13%다. 성 소수자(LGBT+) 부문 통계를 보면 트랜스젠더 1%, 레즈비언, 게이 등은 5%다. 연령대로 따지면 50세 이상이 48%나 된다. 이밖에 부양책임을 가진 사람의 통계를 내는 것도 신선하다.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이 28%, 그 밖의 부양책임을 지는 사람은 9%다. 한국 기업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은 ‘다양성’ 관련하여 여성과 장애인, 연령 정도를 언급하고 있다. 인종 다양성이나 성 소수자 부분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라고 성 소수자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감히 드러낼 수 없다. 성 소수자 통계를 내는 것조차 차별적이라 느낄 것이다. 구글코리아 같은 외국계 기업이 성 소수자 지지모임을 만들고 퀴어 행사를 공개 지지하는 것과 비교된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 소수자 이슈를 접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어요. 모두가 행복하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구글코리아 임원이 어느 언론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인종 다양성은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일민족은 허구이며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순혈주의를,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을 낳는다. 글로벌 기업이 된 대기업이라면 다양한 나라의 구성원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 직원 비율을 공개하는 기업은 없고, 실제 외국인 직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 비율은 알려졌듯이 최하위권이다. 최근 딜로이트 글로벌이 밝힌 조사결과에서 한국의 여성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수직농장은 미래 농업의 주연이 될 수 있을까?

재생에너지 100%, 물 사용량 90% 절감, 무농약, 푸드마일 95% 감소, 그리고 식량자급률 향상. 만약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채소가 도시민의 식탁에 오른다면 농업의 혁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대부분은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농장이 햇빛 대신 LED(발광다이오드) 빛으로 작물을 재배한다면 어떨까? 만약 일부라면 수긍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소비할 대부분의 채소가 LED 조명으로 재배된다면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수직농장의 미래를 밝게 보지는 않았다. 초기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들어 농산물 생산비 역시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샐러드박스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구성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도 그랬다. 해외 여러 스타트업들이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두드러졌다. 여전히 예측한 범위 내에 있는 듯했다. 영국 글로스터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농장이 최근 가동을 시작했다. 존스푸드컴퍼니(JFC)에서 두 번째로 신축한 4500평 규모의 수직농장에서는 연간 1000t 규모의 엽채류를 생산할 계획이다. 국내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상추와 비교하면 단위 면적당 22배나 더 높은 생산성이다. 팜에이트의 평택 수직농장은 600평 규모에서 하루 6000포기의 엽채류를 생산한다. 일반 시설하우스 대비 40배나 높은 생산성이다. 한 시장분석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약 6조원이던 수직농장의 시장규모는 2030년에는 3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직농장은 미래 농업의 주연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남아있었다. 농학을 전공한 나에게 농업이란 태양에너지를 먹을 수 있는 유기물로 전환하는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수직농장을 과연 농업의 한 범주에 넣을 수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임윤찬 신드롬

“열여덟 살 청년에게서 나오는 이 믿을 수 없는 고귀함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황홀한 상태로 베이스퍼포먼스홀(텍사스 포트워스)을 걸어나온 기억이 난다.”(장-에프랑 바부제) “임윤찬은 18세 어린 나이에 세상이 주목하는 연주를 창조했고, 이 연주는 그와 함께 또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아주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앞으로 라흐마니노프는 임윤찬의 것이다.”(앤 마리 맥더모트) 지난달 미국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임윤찬이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뒤 나온 반응이다. 장-에프랑 바부제는 프랑스의 피아노 거장이며, 앤 마리 맥더모트는 미국의 피아니스트다. 콩쿠르 이후 인터뷰에서 임윤찬에 대한 감동과 놀라움을 표현한 두 사람은 이번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진행한 피아노 전문 평론가이자 유튜버인 벤 라우더는 “내 평생 콩쿠르에서 협주한 오케스트라가 솔리스트의 연주에 이렇게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임윤찬의 연주 직후에 모든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손에서 놓고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것은 진심으로 솔리스트에 대한 존경을 넘어 경외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임윤찬은 전투에 나선 장수와 같이 오케스트라를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이끌었고, 전장을 호령했다”고 그의 유튜브 방송에서 말했다. 1962년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기 위해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개최된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는 냉전 시대에 이념을 뛰어넘는 음악의 힘을 상징한다. 1958년대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이 극에 달하던 긴장 상황에서 구소련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를 개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24세인 미국의 피아니스트 클라이번이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다. 핵전쟁의 위협과 미국과 소련의 군비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 풍월을 읊는 시대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래 있으면 어느 정도의 경험과 지식이 쌓인다는 뜻이다. ‘ESG’라는 단어는 약 3~4년 전부터 많이 사용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누구나 웬만큼 ESG 관련 풍월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해졌다. 투자자와 기업으로부터 시작된 ‘ESG 경영’ 열풍은 공공기관과 비영리조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ESG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도 많아졌고, ESG 전략 컨설팅을 필요로 하거나 ESG 보고서 발간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기업과 기관도 늘고 있다. ESG를 투자자의 용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기업이 ESG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를 투자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과연 ESG는 투자자 관점의 용어인가? 그렇다면 공공과 비영리는 왜 ESG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ESG와 유사한 지속가능경영·기업시민과 같은 단어도 있는데 굳이 ESG라는 표현을 써야 할까? ESG 경영을 해야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현재 ESG는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 됐지만, 위와 같은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전문가들이 말하는 ESG 항목과 실행방안 등에서 다루는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면 ESG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며, ESG 분야에 제대로 된 솔루션을 제공하기도 어렵다. 먼저 ESG 경영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살펴보자.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ESG가 처음 등장한 2004년으로 거슬러가 보자.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은 9개국 20여개 금융기관을 초청해 변화하는 세상에 금융시장이 연결돼야 한다며 ESG를 강조하는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의 제목은

장서정 자란다 대표
[오늘도 자란다] 내게 당연한 것은 상대에게도 당연하다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 줄 선생님을 매칭해주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가끔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는 경우는 없나요?” 그리고 이 반대의 질문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아마 어른인 선생님이 아이보다 우위에서 일방향적인 소통을 하는 환경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선생님이 아이를 나무라고 혼내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아이나 가족으로부터 선생님이 고통을 받는 일을 걱정하진 않는다. 선생님이 방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아이가 혼자 방치되는 상황을 우려하는데 비해, 선생님과의 약속을 가정에서 지키지 않아 아무도 없는 집 앞에서 곤란함을 겪는 선생님의 상황을 떠올리는 이는 거의 없다. 자란다와 같이 수요자와 공급자, 양쪽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매치메이커’라 한다. 서로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관계를 적절하게 매칭하는 것이 곧 플랫폼의 역할이다. 쌍방의 니즈가 한 점에서 만나기 때문에 일방향적인 요구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충분히 할 수 있고 어렵지 않은 것을 맡기기 위해 굳이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는 없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일을 처리할 에너지 혹은 전문성이 부족할 때, 다른 사람의 시간과 수고를 플랫폼을 통해 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플랫폼에 투입한 금전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이 투입한 시간과 수고 역시 소중하게 바라봐야 한다. 자란다에서는 선생님의 활동이 금지될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 ‘당일 취소’와 ‘노쇼’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객센터를 통해 접수되는 자란다 선생님들의 불편사항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부모님들의 ‘당일 취소’와 ‘노쇼’다. 프리랜서 플랫폼으로 유명한 한 플랫폼에서는 견적요청서만 올려놓고서 프리랜서가 플랫폼에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드라마 속 우영우의 충고 “핵심을 봐야 해요”

“핵심을 봐야 해요.” 최근 인기를 끄는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충고다.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지만,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가진 변호사다. 그녀는 지금 일어난 현상 너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미래를 지켜주기 위해 사건의 핵심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어떤 마음과 의도를 갖고 그 일을 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지난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었다. 그즈음, 바다의 미래에 대한 매우 중요한 무역협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협정은 강대국과 개도국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21년을 끌고 왔다. 어떻게 바다를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우리의 미래를 지킬 것인지 그 ‘핵심’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역협정을 다루는 사람 중에 우영우 같은 변호사가 없기 때문일까. 무역협정이란 국가 간 산업의 개방 또는 보호를 위해 수출입 관세와 시장 점유율 제한 등의 무역장벽을 제거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또한 수출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협상국가 내의 보조금도 규제한다. 보조금을 받은 생산농가는 국제시장에 낮은 가격으로 팔 수 있고, 이는 무역질서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1년째 타결하지 못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협정 주제는 바로 ‘수산업 분야에 대한 보조금’이다. 이런 협정은 매우 전문적이고 실생활에 대한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체감하기 어려워 시민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무역협정과 관련 우리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몇 장면이 있는데, 2008년 ‘광우병 위험물질이 포함된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그렇다. 당시 협정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은 광우병을 일으킬 수

이기권 전 노동부 장관
‘기업 시민’은 共生이다

1990년 주쿠웨이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노무관으로 근무할 때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쟁이 벌어지자 대사관은 한국 근로자들부터 안전한 장소로 철수시켰다. 나를 포함한 대사관 직원들, 그리고 몇몇 교민도 요르단 암만으로 피신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1500㎞ 거리를 달려 막 국경을 넘으려는데 요르단 국경 수비대에 붙잡혔다. 검문하는 군인 앞에 나섰는데, 그가 내 가슴에 총구를 댔다. 순간 머리를 스친 생각은 ‘이 군인에게 우리가 그들 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사적으로 그들이 알 만한 한국 기업 이름을 서넛 외쳤다. 순간 놀랍게도 군인이 총구를 내렸다. 호감과 명성이 목숨을 살린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대한민국의 명성은 누가 형성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결론은 정부나 공직자보다는 근로자와 기업이었다. 집과 도로를 건설하고,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생산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근로자와 기업 말이다. 2005년 광주지방노동청장으로 근무하던 당시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철강 회사의 하도급 업체 근로자가 크레인에 올라 시위를 벌였다. 열흘을 설득해 겨우 내려오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들은 부장·차장급인 중간 간부 20여 명이었다. 분규 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누구인지 물었더니, 포스코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포스코 정신, 그 근간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이 누리는 명성의 근간을 지탱하는 기업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포스코는 지난 수년간 ‘공생적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협력회사의 임금 체계 개선에만 약 7700억원을 지원했다. 2021년에는 ‘포스코·협력회사 상생 발전 공동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업의 미래, 미래의 농업] 해조류는 ‘소 산업’을 구할 수 있을까?

세계에는 약 15억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이 소들은 연간 70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우리나라가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10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소 사육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40%는 메탄으로 주로 소가 되새김질할 때 위 속에서 밖으로 배출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비해 온실효과가 28배나 더 강하다. 따라서 탄소중립 요구가 거세질수록 소 산업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탄소중립은 소 산업의 가장 큰 위협으로 등장했다. 호주의 한 농민은 방목하던 소의 무리 중 유난히 건강하게 잘 자라는 소들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찾아봤다. 그런데 건강한 소들 사이의 공통점은 바닷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조류를 먹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사실은 연구자들에게 알려졌고 해조류 효과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연구자들은 해조류에 들어있는 물질이 소의 위에서 메탄을 생성하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해 최대 90%까지 메탄 발생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에 소의 사료전환 효율을 20%까지 개선하면서 소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1300마리 규모의 젖소 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부는 아스파라고프시스라는 해조류와 카놀라유로 조제한 첨가제를 소에게 먹이고 있다. 이 농부는 해조류가 세계 축산업의 미래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아스프라고프시스는 전 세계 학계와 언론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해결하기 힘든 과제도 남았다. 그중 가장 큰 제약은 생리활성물질을 함유한 해조류를 상업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이 뉴스를 봤을 때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이미 해조류의 최대 생산국 중 하나다. 미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생산국이고, 김은 독보적인 1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