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어렸을 때, 또래 여자 아이들처럼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말았다. 고작 대여섯살 때의 일이니 남들보다 포기와 좌절을 좀 더 일찍 맛본 셈이다. ‘아이돌’이 되는 것도 나의 오랜 꿈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진학 문제를 고민할 때도 남들보다 선택지가 좁았다. 성적보다는 엘리베이터와 특수학급의 유무를 먼저 봐야 했기 때문에 그게 안 되는 곳은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장애인이라서 예기치 않게 얻은 기회와 보람도 있다. 지금 쓰는 칼럼도 그 중 하나다. 나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경험이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정보가 된다는 것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소수성을 띠기 때문에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휠체어를 탔기 때문에 더 낮은 곳까지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못해 주야장천 읽었던 책들은 마음의 양식이 됐고, 독학으로 깨우친 컴퓨터는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생에서의 ‘득과 실’은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큰 손해라고 생각되는 일이 훗날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지금은 이득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미래의 나에게 큰 피해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가 처음 소아암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걸 긍정적으로 생각한 가족이나 지인들은 없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