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티브 임팩트’로 문제 해결하는 시대 왔다”

[인터뷰] 신현상 한양대 경영대학원 교수 하버드대에 경영분야 잡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있고, MIT에 기술전문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있다면, 스탠퍼드대에는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이하 ‘SSIR’)’가 있다. 글로벌 사회혁신 분야의 정론지라 할 수 있는 SSIR은 2003년 창간 이후 지금까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신현상(50)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2018년부터 ‘SSIR 한국어판’을 펴내며 사회혁신을 주제로 하는 국제 콘퍼런스를 SSIR과 함께 개최하고 있다. 올해 콘퍼런스는 SSIR과 한양대,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공동 주최하며 판이 커졌다. 오는 29일 온라인 생중계되는 ‘넥스트 임팩트 콘퍼런스’의 주제는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공동의 어젠다 아래 상호 협력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한다. “SSIR 역사상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아티클이 2011년 마크 크레이머(Mark Kramer)가 쓴 ‘Collective Impact’입니다. 무려 50만회 이상 다운로드됐죠. 다운로드 수가 그 정도니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본 겁니다. 사회 혁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용어를 한 번쯤은 들어본 셈이죠.” 지난 12일 만난 신현상 교수는 ‘임팩트’라는 말부터 쉽고 간단하게 정의했다. 빈곤, 교육 격차, 질병과 같은 사회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이 임팩트라고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해결책이 나오는 속도보다 사회문제가 생겨나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문제 자체도 복잡해지고 있어요.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문제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죠. 코로나19, 기후변화가 대표적이에요. 문제가 복잡해지고 커지고 연결되면서 하나의 기업이나 정부, 개별 단체의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진실의 방] 소셜 임팩트 기업?

인터넷 검색을 하다 못 보던 용어를 발견했다. 소셜 임팩트 기업? 처음 보는 말인데 어딘지 익숙하다. 더 검색해봤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소셜 임팩트 기업 들을 모아 포럼을 만들겠다”는 선언을 한 모양이었다. 지난달 21일 서울 명동에서 ‘소셜 임팩트 포럼’ 창립식도 가졌다고 했다. 소셜 임팩트 기업. 직역하면 ‘사회적(social) 임팩트(impact)를 창출하는 기업’ 정도가 될 것 같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미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가 있다. 해외에서는 둘 다 ‘소셜 엔터프라이즈(Social Enterprise)’로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구분해서 쓴다. 정부의 인증을 받은 곳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지 않은 곳은 소셜벤처라고 부른다. 제도상의 이런 구분 때문에 기사를 쓸 때 설명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비슷한 용어가 또 생겼다.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었다. 알아야 기사를 쓰든 뭘 하든 할 게 아닌가. 업계 전문가들에게 소셜 임팩트 기업에 대해 물었더니 “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다행히 김 전 부총리가 어느 인터뷰에서 직접 뜻을 설명해 놓은 게 있었다. “소셜 임팩트 기업은 사회적기업보다 차원이 높다. 정부 지원을 받아 장애인을 돕는게 사회적기업이라면, 소셜 임팩트 기업은 경제활동을 잘하면서 사회적 가치도 추구하는 기업이다.” 사회적기업이 들으면 좀 섭섭할 소리였다. 자활기업에서 출발한 사회적기업들 가운데 비즈니스가 약한 곳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차원이 낮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비즈니스가 약한 기업일수록 오히려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들 중에

“아름다운 미래는 끝났다… 웰컴 투 디스토피아!”

[Cover Story] ‘디스토피아 빌런’으로 돌아온 정경선 HGI 의장 정경선(34)은 전기면도기를 못 찾아서 수염을 깎지 못했다고 했다. 까칠하게 자란 수염 때문인지 인상이 좀 변한 것 같았다. 예전과 느낌이 좀 달라진 것 같다고 했더니 “가르마를 바꿔서 그런가” 하며 웃었다. “한쪽으로만 가르마를 타면 탈모가 올 수도 있다고 해서 얼마 전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르마를 바꿨다”며 딴소리를 늘어놓는다. 현대가(家)의 일원인 정경선은 그간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선하고 스마트한 재벌 3세’ 이미지로 그려졌다. 지난 2012년 비영리단체인 ‘루트임팩트’를 만들 때부터 남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4년에는 임팩트투자사 ‘HGI’를 설립해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셜벤처들에 투자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에 2017년 오픈한 혁신가들의 공간 ‘헤이그라운드’도 그의 작품이다. 지상 8층 지하 1층 규모의 건물에는 60곳이 넘는 소셜벤처가 입주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런 선한 이미지가 이제 지겨워진 걸까. 지난달 21일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정경선은 작심한 사람처럼 ‘센’ 이야기를 쏟아냈다. “8년 전 루트임팩트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세상에 수많은 사회문제가 존재하지만 우리 모두가 ‘체인지메이커’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 모든 게 해결되는 날이 오리라 믿었어요. 참 순진했죠.” 가르마만 바뀐 게 아니었다. 정경선이 딴사람이 돼서 돌아왔다. 체인지메이커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 입으로 암흑의 시대 ‘디스토피아(dystopia)’를 선언했다. “네, 맞아요. 세상은 망했어요. 성장과 번영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암울한 시나리오가 펼쳐질 거예요. 웰컴 투 디스토피아!” 디스토피아 빌런 ―충격 받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갑자기 세계관이 뒤집힌 이유가 뭔가요. “인류에게 남은

수해로 터전 잃은지 한 달,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지…

[Cover Story] 구례 어느 농장주의 이야기 나는 김정현입니다. 나이는 스물아홉 살이고 전남 구례 양정마을에서 소를 키우고 있어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260두나 되는 소를 키우고 있었어요. 양정마을에서 소를 가장 많이 키우는 농가가 우리 집이었습니다. 그날, 끔찍한 물난리가 나기 전까지는요. 지난달 8일 새벽, 아버지와 나는 폭우로 불어나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근심에 잠겨 있었어요. 생전 처음 겪는 사나운 비에 우리 농장 근처에 있는 둑이 넘치기 직전이었어요. 섬진강댐과 주암댐을 방류한다는 안내문자가 왔고, 잠시 후 둑이 터졌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아버지와 함께 농장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물이 무릎까지 들어와 있었어요. 소를 대피시키려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물은 허리까지 차올랐어요. 이러다 사람이 죽겠다 싶어 도망치듯 농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이미 축사 지붕이 물에 잠겨 있었어요. 우리 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키우던 소 100두가 죽거나 유실됐어요. 어떤 놈은 지붕에 올라가 죽어 있었고, 어떤 놈은 축사 기둥 사이에 머리가 끼인 채 매달려 죽어 있었어요. 슬펐느냐고요?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요. 여기저기 엉겨 있는 사체들을 확인하고 처리했던 닷새간의 기억. 그게 또렷하지가 않아요. 억지로 정신을 차린 건 살아남은 소 때문이에요. 임신한 소가 있었는데 물난리 겪고 바로 조산을 했어요.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가망이 없어 보였죠.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허약해요. 다른 소들도 상태가 안 좋아요. 물에 빠졌다가 폐렴을 얻은 소도 있고, 외상이 심한 소도 있어요. 마을에서는 지금도 하루 두세 마리씩 소가 죽어나가고 있어요.

[진실의 방] 사과 없는 사과문

  “고(故) 최숙현 선수가 제 길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뒤통수 한 대를 (때린 것을) 인정합니다. 이런 신체접촉 또한 상대방에게는 폭행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저의 안일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다시 한번 반성하고 깊이 사죄드립니다.” 사건·사고의 주인공들이 올리는 ‘사과문’이라는 게 대체로 형편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기대 이상이었다. 감독과 동료에게 가혹행위를 당하고 지난 6월 극단적 선택을 한 최숙현 선수. 그를 괴롭혔던 동료 선수가 얼마 전 써서 올린 자필 사과문은 뉘우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허술한 변명들로 가득했다. 문장을 곱씹어보자. 우선 ‘뒤통수 한 대’라는 말로 일회적이고 예외적인 사건이었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사안을 축소하는 건 ‘거짓 사과문’에 흔히 등장하는 수법이다. ‘때렸다’는 말을 생략한 것도 흥미롭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때렸다는 표현만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음 문장에서 바로 드러난다. 가해자는 그날 자신이 했던 행동을 ‘신체접촉’이라고 표현했다. 접촉은 ‘닿았다’는 뜻이다. ‘퍽’ 소리 날 정도가 아니었음을 넌지시 알린 셈이다. 고인과 유족을 향한 사과문에 감히 신체접촉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는데,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그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아무래도 매뉴얼이 있는 것 같다. 세간에 떠도는 사과문들을 찾아 읽어보면 유형과 패턴이 거기서 거기다. 책임질 말은 쏙 빼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유형,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 본질을 흐리는 유형, ‘잘못한 건 별로 없지만 사과할게요’라고 이야기하는 대인배 유형도 있다. 지난 2018년 12월 16일, 태안화력발전소 운영사인 한국서부발전이 발표한 사과문은 ‘거짓 사과문’의 전형적인 문법을 보여준다.

착한, 선도하는, 연결하는 ‘선’한 기업이 사랑받을 것

경영학과 교수 3인이 말하는 ‘사회가치경영’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사무실에 하나 둘 배달되는 우편물이 있다. 기업들이 매년 여름쯤 발간하는 ‘지속가능성보고서’다. 지난 1년간 기업이 창출한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성과를 소개하는 책자다. 기업의 목표와 비전은 무엇인지, 고객에게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직원들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협력사와 공정하게 거래했는지, 어떤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는지 등을 각자의 방식으로 자세히 담아낸다. 현재 국내 기업 수백곳이 이런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보고서들을 연도순으로 놓고 살펴보면 기업들의 경영 방식이 점점 ‘사회적 가치’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기업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사회가치경영’의 흐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치경영의 개념이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왔지만, 구체적 실천 전략이나 방법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경영학과 교수 여섯 명이 모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가치경영의 실천 전략'(클라우드나인)이라는 책을 펴낸 이유다. 1년 가까이 함께 토론하고 정리하며 만든 책이다. 저자로 참여한 김재구·이정현(이상 명지대)· 이무원(연세대) 교수를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인터뷰했다. 셋은 경영학계의 소문난 ‘절친’이기도 하다. “사회가치경영을 하는 기업은 ‘선’한 기업이에요. 세 가지 의미의 ‘선’이죠. 착한(善) 기업, 먼저(先) 실행하는 기업, 이해관계자들을 연결(線)하는 기업.” 책 출간 뒤풀이 비슷하게 시작된 만남은 금세 열띤 토론으로 번졌다. 기업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사회가치경영에 관심 갖는 국내 기업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김재구=SK,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선도하고 있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해요. 미국 주요 기업 CEO들의

[진실의방] 자연재난은 없다

불어난 황토물이 세차게 휘몰아친다. 인간이 애써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가소롭다는 듯 유유히 쓸어버리는 힘. 물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위협적이고 공포스럽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이런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이달 초부터 이어진 집중호우로 전국 곳곳이 물에 잠겼다. 산사태만 700건 가까이 발생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장마를 난감해하고 있다. 패턴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우리나라 여름 기후에 영향을 미치면서 극단적 기상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재난 분류 체계에 따르면 호우(豪雨)는 ‘자연재난’이다. 폭염·태풍·홍수·가뭄·지진 등도 자연재난에 속한다. 감염병 사태, 붕괴 사고, 침몰 사고 등 인간의 부주의나 고의로 발생한 재난은 ‘사회재난’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이런 유형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재난을 사회재난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로 자연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폭우나 폭염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는 것도 자연재난을 사회재난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가 쓴 ‘폭염 사회’라는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1995년 여름, 단 일주일 만에 사망자 739명을 낸 ‘시카고 폭염 사태’를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시카고 폭염을 단순한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비극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혼자 사는 노인, 에어컨 없이 사는 빈곤층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소외 계층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호우라는 재난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재난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들이 무심코 밖에 나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고,

청년들을 사회적기업가로 이끈 건…16년 전 세상에 나온 ‘작은 책 한 권’

[인터뷰] 사회적경제 ‘동탑산업훈장’ 받은 정선희 카페오아시아 이사장 ‘사회적기업’의 개념을 설명할 때 지겹도록 회자되는 말이 있다. “빵을 팔기 위해 직원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고 했던 미국의 사회적기업 루비콘 베이커리의 슬로건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대통령도 인용할 만큼 유명해진 말이지만, 2004년 문고판 책자에 담겨 국내에 처음 소개될 당시만 해도 신선하고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한국의 수많은 청년과 대학생을 사회적기업가의 길로 이끌었던 조그마한 책. 정선희(59) 카페오아시아 이사가 쓴 ‘사회적기업’이라는 책이다. 고용노동부가 이달 초 정선희 이사에게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오랜 기간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하는 훈장이었다. 정선희 이사는 사회적경제 분야에 몸담았던 지난 16년을 돌아보며 ‘잘한 일’ 세 가지를 꼽았다. ‘사회적기업’이라는 책을 쓴 일,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세스넷)를 만든 일, 카페오아시아(cafeOasia)라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한 일이다. “세스넷 할 때까지만 해도 ‘훈수 두기’ 전문이었는데, 카페오아시아 하면서 그동안 내가 떠들었던 게 얼마나 멋모르고 한 소리였는지 알게 됐어요(웃음). 사회적기업 하는 사람들이 진흙 속에서 걷듯이 무겁게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이제는 함부로 훈수 안 둡니다!”  인생을 바꾼 책 지난 14일 만난 정선희 이사는 절판된 작은 책 한 권을 기자에게 건넸다. “이 책이에요. 보잘것없죠. 책이라기보다는 자료집에 가까워요. 미국 사회적기업 사례를 모으고 분석한 내용이죠. 이 책 읽고 사회적기업가가 되고 싶다며 찾아온 청년이 여럿 있었어요. 내 인생도 이 책 때문에 달라졌고요.” ─인생이 달라졌다니요? “비영리 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이 책 쓰고 나서 사회적경제로 완전히 분야를 옮겼으니까요.”

[기후금융이 온다] 해외에선 기후변화 대응, 환경부 아닌 ‘재무부’가 한다

④기후금융 준비하는 금융위 최근 환경부가 우리나라 정부 기관 최초로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지지 선언을 했지만 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환경부가 ‘기후변화’ 이슈를 다룰 수는 있어도 TCFD와 같은 ‘기후금융(Climate Finance)’ 이슈를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 2015년 설립된 TCFD는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의 요청으로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만든 조직이다. 기업의 재무보고서에 기후변화 리스크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2017년 발표했고, 전 세계 1000여 개가 넘는 기관과 영국·프랑스·캐나다 등 7개 정부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에 환경부가 지지 선언한 것도 이 권고안이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환경부의 선언도 좋지만 돈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획재정부나 금융 당국의 선언이 나와줘야 영향력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에 도움이 되는 금융 정책이나 제도를 만드는 게 기후금융의 핵심인데, 환경부는 금융 정책에 관여하기가 어려워 기후금융 어젠다를 이끌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환경부가 아닌 재정 당국이나 금융 당국이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은 재무부 주도로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영국 재무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자동차 보유세를 차등적으로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에 세금을 더 매기는 식이다. 올해 4월부터는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의 세금을 0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2011년에는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이 CPF(Carbon Price Floor)라 불리는 탄소세 정책을 펼쳐 성과를 거뒀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추가로 탄소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통해 석탄발전소

[진실의방] 일 잘하는 사람

코리아나호텔 주차장에 차를 대기 시작한 건 2011년이었다. 수개월간 회사 주차장을 비롯해 여러 주차장을 배회하다가 마침내 정착한 곳이었다. 월 주차비 12만원. 도심 한복판에 있는 주차장치곤 가격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차 관리하는 분들이 다 좋았다. 세 명의 관리자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책임이 많았던 그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소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계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업무를 했고 바쁜 와중에도 늘 단정하고 친절했다. 두 달 전쯤 주차장 입구에서 뚝딱뚝딱 공사를 하더니 차량 드나드는 시스템이 자동으로 바뀌었다. 예전 시스템이 참 구식이었단 걸 그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부스에 앉아서 차단기를 일일이 열어주는 방식이었으니까. 시스템이 바뀐 뒤에도 한동안 관리자분들이 보여서 별문제 없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모두 사라져버렸다. 소장님과 10년간 매일 얼굴 보며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하는 모습으로 그를 기억할 뿐이다. 일을 참 즐겁게 하는 사람. 그러므로 좋은 사람. 공익제보자 A는 기부금단체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사표를 썼다. 조직이 갑자기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 꼴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만뒀다고 했다. 새 직장을 찾은 그는 전 직장의 갑질 비리 의혹을 제보하겠다며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A를 만나러 나가는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좀 길게 했다. 우리가 궁금한 건 제보자의 개인적인 사연이 아니라 팩트다, 기사를 쓰는 이유는 개인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공익제보자라고 다 좋은 사람은

자가격리 중증장애인 돌보려 동반 입소 “다음에도 첫번째로 달려갈 겁니다”

[Cover Story] 오대희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장애인활동지원사 “긴급 상황이야.” 지난 3월 31일. 장애인 활동지원 일과를 마치고 잠시 사무실에 들른 오대희(33)씨를 센터장이 다급히 찾았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중증장애인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확진자는 장애인의 엄마였다. 엄마는 격리 치료를 앞두고 있었고, 밀접접촉자였던 아들은 14일간 자가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센터장이 물었다. “혼자서는 생활이 안 되는 중증장애인인데, 함께 격리시설로 들어가서 돌봐줄 수 있겠느냐”고.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가야죠. 그런데 언제요?” “내일 당장.”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명에 근접하며 맹위를 떨치던 때였다. 중증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자가격리’라는 말이 퍼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는 장애인들에게 자가격리는 사형선고와 같았다. 대구 등 확진자가 많이 나온 지역에서는 자가격리된 장애인을 도울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었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나서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구로구의 중증장애인은 3세 수준의 지능을 가진 발달장애인 청년이었다. 오대희씨는 집으로 돌아가 곧장 짐을 쌌다. 다음날 그는 서울시내 한 격리시설에 장애인과 ‘동반 입소’했다. 그를 포함해 총 3명의 장애인활동지원사가 퇴소 때까지 2주 동안 장애인 청년 곁을 지켰다. 자가격리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활동지원사가 시설까지 따라 들어간 건 서울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용히 잊힐 뻔했던 활동지원사들의 이야기. 세상에 꺼내놓고 싶어서 오대희씨의 일터로 찾아갔다. 지난 3일 서울 미아동의 주택가 골목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전담하는 중증장애인 부부가 사는 동네였다. “부모님께는 말 못

[진실의방] 라떼를 끓이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비영리 활동가 출신 ‘어른’을 만났다. 지금은 공공기관의 높은 자리에서 일하느라 말쑥한 정장 차림에 넥타이까지 매고 다니지만 조금만 대화를 해보면 빼도 박도 못하는 ‘현장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몸으로 때우고 싸워가며 속도감 있게 일하다가, 단계와 절차가 많은 큰 조직에서 일하려니 어려움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게 보였다. 저기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피’ 말이다. 한마디로 흙바닥에서 시작한 사람이다. 공익의 개념조차 흐릿하던 시절에 NGO 단체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그때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며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느낌이 왔다. 라떼 이야기다.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런 종류의 무용담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독 라떼를 잘 끓이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 선배 중에 특히 많다. 마치 구비문학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청중의 호응이 좋으면 양념이 살짝 뿌려지면서 더 스펙터클해지는 스토리. 자세를 고쳐 앉고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공정무역이라는 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온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의도는 훌륭했으나 초창기에는 일반 커피보다 가격도 비쌌고 맛도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어서 장사가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커피 농부들을 떠올리며 아침에는 교회에 가서 커피 팔고, 오후에는 절에 가서 커피를 팔았다는 웃기면서도 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기부금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기업들을 찾아다녔던 추억도 꺼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돈이 드니까, 라고 그는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