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딸의 방을 정리하다 숙제 노트 한 구석에 적힌 문장을 발견했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 흔히 듣던 우리 속담이 영어에도 그대로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결국 좋은 친구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늘 곁에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듯하다. 요즘 국제사회는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친구인가?” 최근 미국, 영국 등 주요 원조 공여국들이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잇달아 대폭 삭감했다. 미국은 국제개발처(USAID) 구조조정과 함께 진행 중인 ODA 사업의 90%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2027년까지 원조 예산을 국내총소득(GNI)의 0.5%에서 0.3%로 줄인다고 밝혔는데, 이는 약 40%의 감축이며 줄어든 예산은 국방비를 증액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독일, 네덜란드도 10% 규모의 감축안을 내놨으며, 일본 역시 엔화 가치 하락으로 원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예산 감소가 아니다. 지금까지 다자주의를 통해 쌓아온 국가 간 신뢰와 연대, 책임의 약속이 함께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충격은 국제보건 분야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와 분쟁의 확산으로 감염병 위협은 커지고 있지만, 이를 대응하는 국제 보건 재정은 오히려 줄고 있다. 공여국들의 재원 축소로 인해 보건 시스템 강화와 백신 보급 등 주요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국제기구들조차 사업 축소를 검토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드물게 ODA를 지속 확대하고 있는 국가다.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