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종종 컴퓨터 게임을 즐기곤 했었다. 내신 시험이나 모의고사가 끝나는 날이면, 부리나케 PC방으로 달려가 가상세계에서의 특별한 조우를 즐기곤 했었다. 그곳에서는 특수부대의 유능한 스나이퍼가 되기도 했고, 멋진 도끼를 휘두르는 바바리안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대규모 우주함대를 지휘하는 외계종족의 사령관이 될 수도 있었다. 가상세계는 늘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했지만, 온종일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생의 주머니 사정도 그러했지만, 다시 학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감이 더 컸다. 그래서 매번 PC 사용 시간을 미리 결제하는 선불제를 끊고는 했다. 약속된 시간에 도달하면 컴퓨터 시스템은 1초의 오차 없이 차단됐다. 현실로 돌아올 시간. 정신을 추스르고, 등가방을 챙겨 그곳을 나설 때마다 나는 모종의 부적응을 잠시간 겪었던 것 같다. 다시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현실도 그러했지만, 조금 더 나아가자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는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에 불과하단 정체성의 자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여러 학생 중 한명 일뿐이라는 자각이, 오히려 나를 강력하게 가상세계에 매료되게끔 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곳에서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나’를 잊고, 내가 바라는 ‘누군가’로 살아 볼 수 있었다. 대학 진학 이후 게임에 대한 욕구는 크지 않았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이리도 다양하고 짜릿했기에 굳이 게임이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이때부터는 가상의 나 자신을 살게 하는 게임보다, 나의 실제 삶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소셜미디어(Social Media)’에 더 관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