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6일(일)
[메타버스와 사회혁신] 친절의 별점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대학 시절 1년간 갭이어(Gap-Year)를 가진 적이 있다. 3학년을 마친 직후였다. 30kg짜리 배낭을 둘러메고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거쳐 서유럽과 중남미 여행을 떠났다. 당시 고생도 했지만 값진 경험들도 많이 얻었었다. 애초 계획은 영국 어학연수였지만, 오랜 벗이자 선배인 영곤 형이 줬던 책 한 권이 방향을 틀게 했다. 2007년 출간된 ‘어학연수 때려치우고 세계를 품다’라는 책이다. 저자의 파란만장한 여행기에 큰 자극을 받은 나는, 또 다른 오랜 벗 월호 형과 함께 긴긴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중에 얻은 대부분은 거저 주어진 것들이었다. 굶주린 여행객을 위해 기꺼이 먹을 것을 내어주는 분들도 있었고, 하룻밤 묵을 자리를 제공한 분들도 있었다. 매번 값을 치르고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 ‘여행 시장’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의와 친절, 환대의 영역이다. 그것이야말로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짜 값진 경험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생의 진짜 소중한 것들은 비용을 내고 구입했던 것들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동네 어른들로부터 받았던 사랑과 관심,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놀이와 간식의 추억, 첫사랑과 함께 주고받았던 배려와 희생 그리고 다툼의 기억들. 모든 것이 불현듯 찾아왔다. 인류와 커뮤니티를 지탱해온 실체는 거래가 아닌 공유는 아닐까.

유럽에는 전통적인 환대의 문화가 있다. 집마다 방 한 칸은 꼭 손님방(Guest Room)으로 꾸며 놓고는 하는데, 손님이 찾아오면 방과 아침식사를 제공하고 쉬어가도록 한다. 반대로 누군가의 집에 손님으로 방문하면 그런 환대를 받게 된다. 손님방 문화를 여행 상품화한 것이 바로 ‘에어비엔비(Airbnb)’다. 재독(在獨) 철학자인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에어비엔비가 유럽의 소중한 전통이었던 손님에 대한 환대마저도 상업화시킨다”며 플랫폼 비즈니스의 상업화 물결을 비판한 바 있다. 웹(WEB) 2.0 시대에 우리는 보다 편리한 시대를 살게 됐지만, 독점적 시장 확장과 수수료 비즈니스의 모델에 박차를 가한 많은 기업 탓에 환대, 돌봄, 교육 등 수많은 영역이 시장으로 포섭됐다.

프로토콜 경제 정신과 블록체인 기술의 매력을 느낀 지점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프로토콜 경제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이었던 독과점 비즈니스 모델, 사업 주체만 배부르게 하는 수수료 모델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에게 그 혜택이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고안된 ‘토크노믹스(Tokenomics)’를 통해 수수료가 없이도 사업 영위가 가능한 모델을 지향한다. 시장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커뮤니티 기반의 화폐라 할 수 있는 토큰의 성장을 통해 얻게 되는 효용을 함께 누리게 된다. 커뮤니티 내의 여러 형태의 기여와 노동력, 선의를 통해 만들진 성장과 결실이 오롯이 커뮤니티 전체에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기술적 토양이 블록체인(Blockchain)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커뮤니티 모델이 탈중앙화 자율조직(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이다.

이제 시작된 지 4개월 된 메타버스 플랫폼 ‘리비월드(Re-Be World)’의 DAO 커뮤니티에서도 혁명적인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쓰지 않게 된 가구를 무료로 나누거나 기증하는 분, 대학 입학생을 위해 노트북을 선물한 회원도 있다. 야밤에 햄버거 세트를 내놓아 다이어트 중인 이웃을 시험에 들게 하기도 한다. 지난 식목일에는 가족과 나무를 심고 인증하는 대회를 열었고, ‘지구의 날’(4월22일)을 맞아 특별한 실천 이벤트를 준비하자는 의견도 DAO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형태의 플랫폼 서비스에 부정적이다. 특히 인류가 선의의 영역으로 남겨뒀던 환대와 친절에 별점을 매기고 평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운전기사의 친절에 별점을 매기는 일은 서비스 모델의 진보가 아닌 휴머니즘의 퇴보다. 물론 플랫폼 서비스가 많은 부분에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손님을 맞이하고 방을 내어주는 것, 음식을 대접하는 것, 옆집 아이를 돌보아주는 것, 동네 꼬마에게 컴퓨터를 알려주는 것, 히치하이킹 하는 여행자에게 차를 태워주는 것 등은 선의의 영역으로 남겼으면 한다.

천혜의 자연이 보존된 지역에 머무를 때면,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들을 바라보며 감명받고는 했다. 자연이 그대로 가진 아름다움은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지 싶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저 아름다운 별을 따다가 스마트폰에 넣고 별점을 매기기 시작했을까.

김경신 파울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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