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발달 장애 예술강사의 편견 깨뜨리는 하모니

장애인 문화복지 사업, 어디까지 왔나

발달장애 청소년 ‘윈드오케스트라’ 단원 26명, 대학 음악학과 입학까지
하트해피스쿨, 초등학교 인식 개선
“발달장애인 예술강사 수요 커져 사회적일자리 운영 등 공급 맞춰야”

“발달장애인의 문화복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슴 한편에는 ‘지속 가능할까’라는 불안감과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전문적인 지원 체계입니다. ‘발달장애인 문화복지 네트워크’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 필요합니다.”

신인숙 하트하트재단 이사장의 말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졌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화복지를 통한 발달 장애인의 사회통합 방안모색’ 세미나에서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 시행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행사에서 하트하트재단을 포함한 전국 16개 복지관은 파트너십을 맺고 ‘발달장애인 문화복지 네트워크’ 출범식을 열었다.

지난 2013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하트 투 하트 콘서트(HEART to HEART CONCERT)' 모습.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시작해 올해 10회째를 맞았다.
지난 2013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하트 투 하트 콘서트(HEART to HEART CONCERT)’ 모습.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시작해 올해 10회째를 맞았다.

◇불모지였던 발달장애인 문화복지 영역에 싹을 틔우다

‘발달장애인 문화복지’라는 개념은 아직 국내에 생소하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국내에서는 아직 문화복지라는 연구와 통계자료도 없고 문화복지가 무엇인지 개념도 학자마다 다르다”며 “경제가 안정화됨에 따라 앞으로 문화 영역에 대한 요구와 논의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달장애인은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김미옥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발달장애인은 문화와 동떨어진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동·청소년들의 문화 향유권이 중요해지면서 빈곤 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화복지의 기회가 활발했던 것에 비해, 발달장애인의 문화복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낮다는 것.

척박했던 국내 문화복지 영역에서 하트하트재단은 지난 10년 동안 발달장애인 문화복지 사업을 계속해 왔다. 지난 2006년 발달 장애 아동으로 구성된 ‘윈드오케스트라'(관악기와 타악기만으로 구성) 창단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전국 25개 장애인복지관과 협력해 발달장애 아동 그룹에게 음악 활동을 제공하는 ‘하트포르테’ 사업 등 음악을 매개로 한 문화복지 사업을 다양하게 펼쳐오고 있다.”

이성민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색소포니스트)이 공연을 마친 후 어머니와 찍은 사진.
이성민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색소포니스트)이 공연을 마친 후 어머니와 찍은 사진.

‘사회성이 생기지 않을까?’ ‘아이들이 즐거워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문화복지 사업은 기대 이상 효과들을 가져왔다. 14명이었던 오케스트라 단원은 올해 1월 기준 64명이 됐고, 창단 이후에 공연 횟수도 330회를 넘었다. 발달장애 청소년 개인의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심리·행동상의 긍정적인 변화 여부를 3점 척도로 평가한 결과, 자신감 증가(2.87점), 집중력 향상(2.87점) 등의 결과가 나왔다. 단원 개개인의 꿈도 생겼다. 지금까지 단원 26명이 삼육대, 백석예술대, 숭실대 등 국내 4년제 대학 음악 관련 학과에 입학했다. 특히 이영수 단원(플루티스트)을 시작으로 김동균 단원(플루티스트), 이한결 단원(트럼피터)이 차례로 한국종합예술학교에 입학했는데, 김동균 단원은 내년도 같은 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예술전문사 오케스트라 전공)에 합격했다.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화음은 장애 인식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하트하트오케스트라 공연이 이루어진 고등학교의 학생 15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4%가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답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와 ‘하트포르테’ 성과와 효과성 발표를 맡은 김미옥 교수와 김지혜 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문화복지가 발달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모와 지역사회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러한 증거를 통해 발달장애인에 대한 문화복지가 확대될 필요성을 사회 전체가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문화복지 10년, 향후 과제는?

지난 2013년, 하트하트재단은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발달장애 당사자가 예술 강사로 학교를 찾아가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진행하는 ‘하트해피스쿨’을 마련한 것. 지금까지 참여한 학생만 7만4000명에 달한다. 지난해 10월부터 2015년 2월까지 하트해피스쿨을 수료한 초등학생 287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82.3%가 장애 인식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으로 ‘발달장애 예술 강사의 연주’를 꼽았다. 전문 직업인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하트해피스쿨 효과성’ 발표를 맡은 서동명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재능을 활용한 직접 참여가 장애 인식 개선에 주는 효과가 크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직업인’으로 자립할 기회가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발달장애인 문화복지의 발전을 위해 하트하트재단을 포함해 전국 16개 장애인복지관이 ‘발달장애인 문화복지 네트워크’ 출범식을 가졌다. 신인숙 이사장이 발달장애인을 상징하는 푸른빛 스카프를 전달하고 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지난 9일, 발달장애인 문화복지의 발전을 위해 하트하트재단을 포함해 전국 16개 장애인복지관이 ‘발달장애인 문화복지 네트워크’ 출범식을 가졌다. 신인숙 이사장이 발달장애인을 상징하는 푸른빛 스카프를 전달하고 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하지만 발달장애인 예술 강사는 하나의 직업 형태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장진아 하트하트재단 사무국장은 “지난 10년은 문화복지의 기반을 조성하고 아이들의 가능성을 봤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직업 재활의 목표를 생각하려고 한다”며 “인식 개선 강사로 활동하는 발달장애인의 확산과 법제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동명 교수도 “발달장애인 예술강사를 직업 형태로 인정하고, 국가에서 장애인 고용의 일환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에 대해 고귀염 한국장애인개발원 일자리개발담당팀장은 “발달장애인 예술강사는 사회적으로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시장성이 부족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협동조합 운영 등 가능성에 대해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동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발달장애인법 시행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지만 내용을 채우며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며 “세미나에서 공유된 성과는 향후 정부의 발달장애인 문화복지에 대한 관심과 제도를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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