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8일(금)

홀로서기 아닌 ‘나’로 서기, 자립준비청년 4명이 책에 담은 이야기

자립준비청년 4명이 자신의 삶을 담은 에세이 ‘아름담다’를 출간했다. 아름답다의 어원 중에는 ‘아(我)’답다라는 표현이 있다. ‘나답다’, ‘나와 같다’ 등의 말로 해석될 수 있는 것. 지난달 말 출간한 책 ‘아름담다’에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아름담다’는 기아대책의 자립준비청년 인식개선 캠페인 ‘마이리얼캠페이너’에 참여했던 자립준비청년 4인(마린보이, 쏘양, 태리, 트리버)이 작가로 나선 에세이집이다. 열 달에 걸쳐 제작한 이 책은 템북 출판사가 재능기부로 함께했다.

지난 17일 저녁, 서울 강남에 위치한 최인아 책방에서 책 ‘아름담다’ 발간 북토크가 열렸다.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최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아름담다’의 저자 박태양(쏘양) 씨와 김용민(마린보이) 씨의 책 집필 과정, 성장기 에피소드 등이 공유됐다.

(왼쪽부터) 마린보이 작가, 쏘양 작가, 최희 아나운서가 기아대책의 마이리얼캠페이너 활동 일환으로 발간한 책 ‘아름 담다’ 북토크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채예빈 기자

에세이집 프로젝트를 기획한 박태양 씨(쏘양)는 “누구나 혼자가 될 수 있고, 자립준비청년들은 혼자가 되는 경험을 남들보다 조금 빨리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며 “책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낸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가 겪었던 일이 별거 아니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18살에 그룹홈에 들어가 3년 3개월을 지냈다. 5살 더 어린 동생과 함께 입소하면서 동생에게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눈치도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현재는 4년 차 자립 청년이다.

김용민 씨(마린보이)는 가정위탁으로 다섯 형제와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일곱 평 남짓한 방에서 이불 하나를 덮고 자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열아홉 살의 나이에 원양어선에 올라타 태평양에서 참치를 잡았다. 배에서 내린 지금, 그는 자립 5년 차 청년이다.

자립의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의지할 어른이 없다는 것. 박 씨는 “자립하면서 집을 구하는데 아르바이트 월급, 지원금까지 모아도 500만원이 부족했다”면서 “이런 어려움을 어디에 털어놓을 수 없었던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배에서 할머니의 부고를 들었던 순간을 회상했다. 할머니의 다리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70kg 남짓한 참치와 사투를 벌였다. 그는 “부고 소식을 듣고 모든 게 무너지는 감정이었다”며 “삶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절망을 이겨내면 힘들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살아보려고 애썼다”고 전했다.

기아대책의 마이리얼캠페이너 활동 일환으로 발간한 책 ‘아름 담다’ 북토크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아대책

이들에게 자립의 동력으로 작동하는 것은 ‘공동체’라 했다. 박 씨는 서로 울타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자립준비청년들이 모인 커뮤니티 ‘한울’을 만들고, 한 달에 한 번 모여 밥을 먹는 ‘월간식구’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김 씨는 “자립준비청년들은 절대 혼자가 아니며 기아대책 같은 기관을 통해 친구와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장 과정에서 가족처럼 응원해 준 어른들도 있었다. “광주 자립준비 전담기관 과장님 덕분에 사회복지사라는 꿈도 꾸게 됐어요. 사람에 대해 상처가 많았는데, ‘잘 커 줘서 고맙다’, ‘너를 위해 살아 보라’고 말을 계속 해주셨거든요. 점점 마음의 문도 열렸어요.” (박태양씨)

(왼쪽부터) 최창남 기아대책 회장,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 마린보이 작가, 쏘양 작가, 최희 KBS 아나운서가 기아대책의 마이리얼캠페이너 활동 일환으로 발간한 책 ‘아름 담다’ 북토크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기아대책

두 청년은 모두 ‘세상을 돕는 사람’의 꿈을 꾼다. 박 씨는 “자립준비청년으로 활동하며 여러 도움을 받았기에 이를 다시 베풀어야겠다 다짐했다”면서 “자립준비청년들과 함께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남들에게 베풀 때 행복을 느꼈기 때문에, 사회복지사로의 진로도 고민하고 있다.

“눈 앞에 벽이 있다면 벽을 무너뜨려 다리로 만들자.” 박 씨가 후배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지원책을 최대한 활용해 많은 경험을 하고 이를 기회로 만들자는 것. 김 씨는 후배들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살면서 불행한 일도, 고민할 일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그냥 일어섰으면 좋겠다”며 “포기하지 않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응원을 보냈다.

최창남 기아대책 회장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자기 마음의 그릇을 직접 꾸미고 또 그 그릇 안에 자신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청년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며 “이 자리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또 우리 어른들은 청년들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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