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의재단 사무총장 스티브 트렌트
“매년 불법 포획되는 어류는 2600만t
값비싼 어종은 90% 이상 멸종 위기”‘예비 불법 어업국’이었던 한국
신속한 대응으로 불법 어업국 해제
지난 3월엔 한국 사무소 개소까지
“전 세계 약 35억 인구가 전적으로 바다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이들에게 바다는 말 그대로 삶의 터전이자 ‘전부’다. 하루 세 끼 먹을 음식도, 일자리도, 소득도 바다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런 바다에서 누군가가 불법으로 온갖 고기를 싹쓸이하고 바다를 오염시킨다면? 이들은 정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환경과 생존권, 인권 문제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
영국 환경·개발 분야 비영리단체 환경정의재단(Environmental Justice Foundation) 사무총장 스티브 트렌트(Steve Trent·사진)의 말이다. 2000년 설립돼 올해로 15년 된 조직의 영국 사무국 직원은 열댓명 남짓,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국제사회 내 영향력은 상당하다. 철저한 자료 수집, 수년에 걸친 연구 및 애드보커시(advocacy·옹호) 활동에 기반해, 정부와 기업 등 거대 공룡 기관들을 상대로 싸워왔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2013년, 유럽연합(EU)과 미국으로부터 ‘예비 불법 어업국’으로 지정됐다. 환경정의재단에서 한국 원양어선들의 불법 어업 실태를 촬영한 영상을 EU 측에 제출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예비 불법 어업국으로 지정됐던 1년 5개월간 한국 정부에선 ‘난리가 났다’는 후문이다. 예비 단계를 넘어 불법 조업국으로 확정되면 EU로의 해산물 수출도, 한국 배가 EU국 항구에 들어가는 것도 전면 금지되기 때문. ‘수산물 해적 국가’ 꼬리표가 달리는 셈이다보니 외교적으로도 큰 망신이다. 불법 조업 처벌을 강화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 모니터링과 감시를 위해 선박의 위성추적장치 의무화, 부산 지역에 조업감시센터(FMC) 설립…. 1년여간, 불법 어업 근절을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한 끝에, 지난 4월 EU는 한국을 예비 불법 어업국에서 공식 해제했다.
어떤 단체이기에 한 나라의 정책을 뒤흔들 수 있는 걸까. 지난 3월, 환경정의재단은 본격적으로 한국 사무소를 개소했다. 독일, 스페인, 코트디부아르, 가나,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에 뒤이은 7번째 해외 사무소이자 아시아 지역에선 처음이다. 지난 12일, 한국을 찾은 스티브 트렌트 사무총장을 만나 환경정의재단의 활동에 대해 물었다.
-환경정의재단은 어떤 단체인가.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일수록 환경 파괴, 기후변화는 ‘생존의 문제’다. 기후변화 이면에는 작물 재배가 어려워져 영양실조에 걸리는 이들, 해수면 상승으로 살던 터전을 떠나 기후 난민으로 전락하는 이들이 있다. 이렇듯, 환경정의재단은 가난한 이들에게 환경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불법 어업 근절’은 현재 가장 주력하는 분야다. 불법 어업이 바다에 기대 먹고사는 이들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데도 불구하고 다른 단체에서 거의 뛰어들지 않았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2011년, 한국 원양어선의 불법 활동을 담은 자료를 EU에 제출했다. 불법 어업이 환경과 현지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서아프리카 연안, 특히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지역에서 위성이나 현장 실사를 통해 오랜 기간 관찰한 결과, 불법 어업을 하는 어선의 90%가량이 한국 배였다. 해안가에 너무 가까이 접근해 현지인들이 쳐놓은 그물을 자르는가 하면, 정해진 조업량과 원칙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금지된 어획도구 사용도 포착됐다. 당시 우리는 한국 어선들의 불법 어업을 증명하는 온갖 종류의 증거자료를 모아 EU에 제출했다. 이런 불법 어업은 현지를 완전히 파괴한다. 시에라리온 같은 작은 연안 국가 사람들에겐 바다가 곧 생존 기반이다. 시에라리온 주민들이 섭취하는 단백질의 65%가 수산물에 달려 있을 정도다. 또한 이런 불법 어선은 환경 파괴, 생물종 파괴 주범이기도 하다. 1950년 이후 상업적으로 값이 비싼 어종의 90%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어종 번식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잡아간 까닭이다. 가격이 비싼 참치 등을 잡는데 혈안이 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잡히는 고기들이 죽어서 다시 버려지는 일도 많다. 연간 약 1100만~2600만t의 어류가 불법 포획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한국에 사무실을 낸 이유는 뭔가.
“EU ‘예비 불법 어업국’으로 지정된 이후, 한국이 보여준 행보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1년 5개월 내에 법안을 개정했고 기술을 활용한 모니터링 체제를 구축했다. 지난 4월 한국이 ‘불법 어업국’ 명단에서 빠질 수 있었던 이유다. 한 산업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런 리더십을 보여준 사례는 흔치 않다. 우리는 한국에 머물면서 정부와의 관계도 이어가고, 다른 지역에 한국의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는 게 좋겠다고 봤다. 현재 우리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은 태국이다. 태국 정부에서도 한국의 리더십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환경정의재단은 올해 초 태국 불법 어업과 노예 노동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Pirates and Slaves, EJF 2015)를 통해 EU의 태국 예비 불법 어업국 지정에 영향을 미친 바 있다.)
-불법 어업 외에 해온 활동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면화 생산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가장 흔히 거래되는 품목이다. 그러나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2005년, 우리는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면화 생산망을 추적했다. 두 가지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대규모 지역 면화 생산을 위해 아랄 해(海)로 들어가던 강물을 끌어들였는데, 그 과정에서 아랄 해가 완전히 말라버렸더라. 한때는 세계에서 넷째로 큰 내륙 바다였던 데다 구소련 시대엔 통조림 가공공장이 있었을 만큼 어종이 풍부했던 곳이다. 27종에 이르던 지역 어종도 다 멸종됐고, 연안 어부들의 삶도 완전히 파괴됐다. 지역의 기후변화도 극심해졌다. 더불어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면화 생산 과정에서 아동 강제 노동을 동원했다. 그렇게 생산된 면이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우리는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보고서를 발표했고, 아동노동 반대, 환경보호 등을 위한 국제 연합을 조직해 정부를 압박했다. 결과적으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에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바다 외에도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추적해 환경과 인권 보호에 힘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소비가 투표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고 믿는다. 각자의 소비 결정으로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삶은 송두리째 날아갈 수도, 자연환경이 완전히 파괴될 수도 있다. 물론 그 모든 생산망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그게 바로 우리의 일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선택할 권리를 주면, 옳은 선택을 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 믿는다. ‘거대한 문제’라고 손놓고 방관하는 대신,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