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일)

“의미 있는 제품? 소비자는 몰라요, 우린 처음부터 품질에 사활 걸었죠”

에코디자이너, ‘젠니클로젯’ 이젠니 대표
버려진 데님 활용해 가방·소품 제작
6개월 새 매출 10배… 단독매장도 열어
돌잔치 맞은 우리나라 업사이클링
자본 없이 창업 쉽지만 성장은 어려워
사업 전 고객 피드백 반드시 받아야

이젠니 '젠니클로젯' 대표
이젠니 ‘젠니클로젯’ 대표

“2010년 ‘에코그린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았던 순간이 10년 디자인 인생 최고의 순간이자, 진정한 출발점이었다.”

최근 가장 ‘핫(Hot)’한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이젠니(30·사진) ‘젠니클로젯’ 대표의 말이다. 지난 2006년부터 각종 미술 대전에서 입상하며 촉망받는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이 대표는 2010년 돌연 에코 디자이너로 전향했다. “자기 색깔과 가치관은 없고 파리와 뉴욕의 트렌드만 좇던 기성 디자인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부터 자연 친화적인 디자인에 조예가 깊었던 이 대표는 이후 친환경 브랜드 ‘맵엔젠(MAP&ZEN)’ 설립(2010), 에코 디자인숍 ‘드림(DREAM)’ 운영(2011) 등을 거치며 노하우를 쌓았다. 이 대표는 지난 2013년 비영리단체 ‘열린옷장’으로부터 남성 정장을 기부 받아 여성 의류로 업사이클링 한 후 네이버 해피빈에 기부하는 3개월 프로젝트를 계기로 젠니클로젯을 설립했으며, 지난해 4월에는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 회사는 버려진 데님(청바지의 원단) 소재를 활용, 세련된 디자인의 가방과 소품 등을 만들며 설립 6개월 만에 매출 10배 달성, 업사이클링 브랜드 최초로 동대문(롯데피트인)에 오프라인 단독 매장을 여는 등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여줬다. 이젠니 대표를 만나 한국 업사이클링 디자인의 현주소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조언, 나아갈 방향 등을 들어봤다.

―최근 업사이클링 디자인 분야에 뛰어드는 업체 수가 급증하고 있다. 시장성이 높아졌다고 봐도 되는가.

“최근 패션은 한마디로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밥’과 같다. 똑같은 스타일이 복사본처럼 양산돼 오히려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대량으로 찍히다 보니 품질도 떨어진다. 소비자들은 금방 버리고, 그걸 아는 제작자들은 큰 공을 들이지 않는다. ‘패스트(Fast)’ 패션에 지친 소비자들이 개성과 독특함, 정체성을 갖고 싶어 한다. 시장 전망이 밝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소셜벤처나 1인 기업 형식의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양산되고 있는 것에는 우려도 있다.

‘버려지는 것은 쉽게 구할 수 있다’ ‘가치와 디자인만 있으면 자본금이 없어도 창업할 수 있다’는 자세가 그것이다. 창업하기는 쉽지만, 성장하기는 쉽지 않은 게 이 분야다. 수거와 제조 공정에 워낙 품이 많이 들고, 자동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계도 명확하다. 흔히 스위스 ‘프라이타크’의 성공을 얘기하지만, 이는 업사이클링에 한한 얘기다. 매출 700억원 규모인데, 국내에서 잘되는 온라인 쇼핑몰만 해도 1000억원이 넘는 곳도 많다.”

―업사이클링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대학 때부터 쇼핑몰을 운영했었고, 2011년부턴 서울시립대 앞에서 5평짜리 에코 디자인숍을 2년 동안 했다. 그때 느낀 교훈은 ‘내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건 따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고객과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원피스’를 만들어 달라는 고객에게 체형과 성향을 고려해 패턴을 달리해줬더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골들이 생겼다. 젠니클로젯이 재활용 원단으로 데님을 선택한 것도 소비자에게 사계절 친숙한 원단이고 소비자의 호응도가 높다는 것을 오랜 기간에 걸쳐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템이든 이를 사업화하기 전에 고객을 접해보고 피드백을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카페에 딸린 작은 부스에서라도 시험해봐야 한다. 소비자의 반응이 없다면, 그건 안 되는 거다. 뭔가 반응을 얻었으면 그걸 두 배, 세 배 더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의미가 있으니 알아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소비자의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얘기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버려지는 자원을 좀 더 활용하자’는 메시지는 일종의 ‘운동’이다. 소비 문화와는 동떨어진 얘기다. 모든 소비자에게 ‘운동’을 강요할 순 없다. 게다가 소비자를 학습시키기도 쉽지 않다. 매장에서 설명을 해주려고 해도, 바쁜 소비자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제품으로 먼저 임팩트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우린 처음부터 제품력에 사활을 걸었다. 가방도 수작업이 아닌, 전문 핸드백 공정으로 만들었다. ‘업사이클’이 아니라 가죽보다 가볍고, 친숙하며, 디자인이 우수한 ‘독특한 데님 가방’이라는 개념으로 먼저 다가갔다. 그렇게 해서 제품을 알게 된 손님들은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무엇이고,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오는 고객들도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공감이 이뤄진다.”

―디자이너로서, 업사이클링 디자인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 준다면.

“본질은 결국 환경이다. 결과적으로 얼마나 자연친화적이며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느냐를 고려해야 한다. 지난해 가을 모 대기업이 ‘우리 재고 의류를 업사이클링 해달라’고 제안해 공장을 방문했는데, 반품이나 불량 처분을 받아 수거된 재고품이 수백 상자나 쌓여있더라. 그게 일주일 분량인데, 처리하는 비용도 엄청나다고 한다. 많이 버려지고, 낭비되는 현상이 탄생시킨 것이 바로 업사이클링 아닌가. 생산 공정에서 필요한 만큼만 수작업으로 꼼꼼히 만들어 불량품과 재고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상품이 소비자에게 갔을 때 질리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 제품은 에이랜드(Aland)라는 디자인숍에 입점해 있는데, 그 매장은 20대를 대상으로 유행이 굉장히 빨리 바뀌는 곳이다. 계절마다 상품을 바꿔줘야 하고, 이월 상품은 즉각적으로 반품한다. 하지만 우리 제품은 작년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매출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반품도 재고도 생기지 않는다.”

이젠니 대표는 우리나라의 업사이클링의 현재를 말해달라는 질문에 ‘돌잔치를 맞았다’고 답했다. ‘이제 시작’이라는 의미와 ‘더 성장할 것’이라는 희망이 섞인 대답이다. 이 대표는 “소비자들이 관심을 보여주기 시작한 만큼, 업체 스스로가 디자인부터 제조 공정부터 이르는 과정에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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