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분야부터 공시 의무화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이하 KSSB)가 30일 ‘국내 ESG 공시기준 초안’을 공개했다. ESG 공시기준 초안에는 기후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 공시부터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금융위원회는 앞서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ESG 금융추진단 제4차 회의’를 개최하고 기업·투자자, 학계·전문가, 유관기관과 함께 국내 ESG 공시기준 공개 초안의 주요 내용에 대해 논의했다.
‘ESG 금융추진단’은 기업·투자자, 학계·전문가, 유관기관과 함께 ESG 공시, 평가, 투자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정책 과제들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2월 구성된 회의체다. 지난 22일 열린 회의는 지난해 2월과 4월, 10월에 이어 네 번째였다.
금융위는 지난 22일 제4차 회의에서 국제적으로 공감대가 마련된 기후 분야에 대한 공시 의무화를 먼저 추진하고, 저출산·고령화 등 정책적 지원 필요성이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공시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회의에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2년 12월 회계기준원에 KSSB를 설립하고 국내 ESG 공시기준을 준비해왔다”면서 “기업과 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이번 초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어 “초안은 주요국 및 국제기구의 기준을 참조해 글로벌 정합성을 충분히 반영했다”면서 “한국 기업들의 이중 공시 부담 최소화를 위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과 같이 미국, 유럽연합 등의 공시기준과 상호 운용 가능한 글로벌 기준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스코프3 온실가스 공시 의무화 여부, 관계부처 협의 거쳐 결정 예정
이날 공개된 ESG 공시기준 초안에 따르면, 보고 기업은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관련 ‘위험’ 및 ‘기회’에 대한 정보를 시장에 공시해야 한다. ▲지배구조 ▲전략 ▲위험관 ▲지표 및 목표에 따라 기후 관련 정보를 공시하는 게 골자다. 저출생·고령화 등 정책적 지원 필요성이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공시기준이 마련됐다.
구체적으로 제품을 생산·판매하기 위해 직접 연료를 활용하며 뿜어낸 온실가스 배출량(스코프 1)과 전기·열 사용에 따른 간접적 배출량(스코프 2)을 계산해 공시해야 한다. 재계에서 가장 반발하던 스코프 3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의 의무화 여부와 시기 등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스코프3는 기업 공급망 내에서 발생하는 ‘기타 간접 배출량’에 대한 공시 규정으로, 기업 공급망 안에 있는 협력업체는 물론 자사 해외 법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해 공시해야 하는 규제다. 온실가스 배출량 산출은 GHG(Greenhouse Gas) 프로토콜이 국제 표준이다.
국내 기업들은 스코프3에 대해 측정 범위가 방대하고 산출하는 과정이 복잡하다는 불만을 제기해왔다. KSSB는 온실가스 측정의 어려움 등을 감안해 GHG 프로토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요구하는 다른 측정 방법(예: 탄소중립기본법상 기준)의 사용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공시 대상 기업들은 기업 전망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기후 관련 위험 및 기회를 알려야 한다. 기후 관련 사안은 기업의 재무 보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다른 주제 대비 정량화가 용이해 기업의 공시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설명이다.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기업이라면 ESG 공시기준도 연결 실체를 기준으로 작성해야 한다. 기업이 기후 외에 생물다양성 등 다른 지속가능성 관련 사안을 공시하고자 할 경우에도 내용을 선택해 공개할 수 있다. 육아 친화 경영, 산업 안전, 인권 경영, 장애인 고용 등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의 이행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8월 31일까지 공개초안 의견 조회
금융당국은 2026년 이후부터 도입을 전제로 공시 시작 시점을 따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추후 논의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KSSB는 다음 달부터 오는 8월 31일까지 4개월간 공개초안에 대한 의견을 조회한다.
이번 발표로 ESG 공시 도입 시점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앞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2일 제4차 회의에서 ESG 공시 의무화 도입 시기와 대상 기업 등에 대해서는 “검토해 나가겠다”고 발표를 미뤘다. 회계기준원은 지난 3개월 동안 약 200개 상장사 및 이해관계자들과 이번 ESG 공시기준 초안에 대해 사전 협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은 한국보다 2년 빠르게 초안을 발표해 최종안까지 확정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6일(현지시각) 현지 상장기업들에 온실가스 배출량 등 기후위기와 관련된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는 ‘기후 공시 의무화 규정 최종안’을 승인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부담을 고려해 2022년 초안에 있던 스코프3를 최종안에서는 제외했다.
김강석 더나은미래 기자 kim_ks0227@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