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미래는 이상기후로 발생하는 문제를 기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해결하는 ‘기후혁신가(Climate Innovators)’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풍력발전의 약점으로 꼽히는 생물다양성 파괴 문제를 신기술로 해결하고, 이상기후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초정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활용 폐기물을 자동 선별하는 사람들입니다. 기후위기로 자연재난이 연이어 터지고, 연쇄 작용으로 자원고갈과 식량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후혁신가들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기술과 아이디어로 끊어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인터뷰] 애스크 헬세스 스포어 CEO
평균 지름 280m. 바다 위에 떠 있는 풍력발전기의 회전날개는 생각보다 거대하다.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날개의 끝은 여의도 63빌딩보다 높게 올라가고, 최대 시속은 320km에 달한다. KTX보다 빠른 속도다. 세 개의 회전날개가 빠르게 회전할 때면 윤곽선이 보이지 않는 ‘모션 스미어(motion smear)’ 현상이 나타난다. 바다 위를 비행하던 새들은 고속의 회전날개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쳐 죽는다. 미국 조류보호협회(ABC)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에서만 117만 마리의 새가 풍력발전기에 희생됐다.
노르웨이의 스타트업 ‘스포어(Spoor)’는 인공지능(AI) 카메라로 풍력발전기 주변을 비행하는 조류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는 새와 회전날개의 충돌을 예측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기술로 활용된다. 지난 9일 화상통화로 만난 애스크 헬세스 스포어 최고경영자(CEO)는 “재생에너지 풍력발전의 약점 중 하나인 생물다양성 파괴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며 “새들이 풍력발전기에 충돌해 죽는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를 줄이면 연간 100만 마리에 이르는 새를 살리는 동시에 풍력발전의 에너지 효율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스포어는 2020년 설립된 신생 스타트업이다. IT전문가인 헬세스 CEO를 중심으로 엔지니어, 조류학자, 데이터 과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였다. 창업 3년 만인 올해는 재생에너지 분야 세계 최대 해상풍력 발전기업인 덴마크의 오스테드(Orsted)로부터 투자를 받기도 했다.
-풍력발전기에 부딪쳐 죽는 새가 얼마나 되나.
“최소 연간 100만 마리다. 회전날개에 부딪치거나 절단돼 죽는 새들의 상당수는 독수리, 매, 솔개 등 몸집이 큰 맹금류다. 맹금류 개체 수가 줄면 먹이사슬이 깨지고 생태계가 붕괴한다. 재생에너지 시장은 매년 성장하는 추세라 버드스트라이크로 인해 죽는 새도 매해 증가할 거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50년까지 미국의 풍력 발전량이 9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30년 후에는 한 해 222만 마리의 새가 죽을 수 있다는 얘기다.”
-풍력발전기에 충돌하는 개체 수를 어떻게 측정하나?
“과거에는 정부 당국에서 직원을 보냈다. 풍력발전기 꼭대기에 올라가서 2~3일간 새들이 얼마나 충돌하는지, 충돌하는 새의 종은 무엇인지 등을 일일이 기록하고 조사했다. 이제는 사람이 하던 일을 기술이 대체한다. 스포어는 AI 기술이 장착된 돔 모양의 카메라를 풍력발전기 기둥이나 인근 농가에 설치한다. 이 카메라는 풍력발전기에서 전방 2km 떨어진 새 무리의 종류, 개체 수 등을 24시간 분석한다. 풍력발전소 직원은 관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고, 당국에 제공한다.”
-큰 새와 충돌한 발전기가 고장나진 않나?
“새가 죽을 정도로 세게 충돌하더라도 회전날개가 멈추거나 터빈이 고장나지 않는 일은 드물다. 발전기에 물리적 손상은 거의 없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폐사 개체 수에 따라 보상금을 내도록 한다. 지난 2013년 미국 전기·가스 공급업체인 듀크에너지가 자사의 풍력단지에서 겨울 철새인 검독수리의 집단 폐사로 100만달러(약 10억5270만원)를 지급한 사례가 있다. 미국은 주정부는 허용한 버드스트라이크 개체 수를 초과한 풍력발전소에 운영 정지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버드스트라이크를 어떻게 막나?
“회전날개의 속도를 늦춘다. 수천t에 이르는 풍력발전소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들이 회전날개를 통과할 수 있도록 터빈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새의 비행 경로를 감지하고 풍력발전소에 데이터를 보내면, 담당 직원이 회전날개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회전날개 속도를 늦추면 전력생산량에 차질이 없나?
“생물종마다 날아가는 속도, 회전날개를 인식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스포어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재생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속도를 늦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거 같다.
“풍력발전기를 건설할 때 새의 주요 이동경로를 피해야 한다. 그래서 건설 예정지 인근 농가나 해양 부표에 AI 카메라를 설치해 사전에 모니터링을 한다. 풍력발전기를 추가 건설하는 지역에도 어느 방향으로 확대할 지 결정하는데 모니터링 데이터가 쓰인다.”
이동량이 많은 철새는 가수면 상태에서 비행한다. 뇌의 절반만 쓰고 나머지 절반은 쉰다. 북극과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에 서식하는 북극제비갈매기의 경우 연간 9만6000km를 이동한다. 한국을 거쳐가는 쇠부리슴새도 1년에 4만3000km를 날아다니며 바다에서 무리지어 생활한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EAAFP)의 자료에 따르면, 매년 250종 이상의 새 5000만 마리가 바다 위를 누빈다. 이 때문에 철새 무리가 풍력발전 단지를 지날 때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가수면 상태로 비행하는 철새들을 깨우는 방법은 없나?
“철새들이 풍력발전기를 인식할 수 있도록 회전날개에 조명·레이저 장치나 스피커를 부착한다. 소리를 듣거나 레이저를 본 새들은 풍력발전기 회전날개로부터 거리를 둔다. 혹은 회전날개에 검은색 페인트를 칠해서 새들이 풍력발전기를 쉽게 구분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대부분의 개체에 효과적이지 않다. 소리와 빛에 민감한 일부 종에만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회전날개의 속도를 조절하는 게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풍력발전기 운영사 입장에는 비용인데.
“새들이 지나가는 몇분 동안 풍력발전기 회전날개 속도를 늦추는 건 전체 생산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풍력발전소들도 납득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풍력발전소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한다는 미션을 갖고 있어 생물다양성 보존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앞으로의 시장을 전망한다면.
“현재 유럽, 동아시아, 미국 등 12개국 풍력발전소에 자사 기술을 설치한 상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전세계 풍력발전소에 스포어의 기술을 도입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다. 조만간 풍력발전기뿐 아니라 공항, 교통수단 등 조류 충돌이 많이 발생하는 곳에 AI 카메라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AI와 데이터 분석으로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