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비교과 ‘워크스테이션’ 5년의 성과
참가인원 누적 4183명, 투자유치 63억원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오픈AI의 인공지능 언어모델 ‘GPT’, 구글의 ‘팜(PaLM)2’ 등을 활용하는 포털 서비스를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이들의 AI 포털 ‘뤼튼 2.0’에서는 누구나 AI 언어모델을 활용해 글쓰기 훈련을 받을 수 있다. 기술력과 확장성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했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2023’에서 혁신상을 수상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이 참여한 AI 컨퍼런스인 ‘GAA 2023’를 개최하기도 했다. 누적 투자 유치액은 190억원에 달한다.
올해 설립 3년차. 창업 준비는 대학 캠퍼스에서 이뤄졌다. 연세대 비교과 프로그램인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에 참여하면서다. 청소년 대상으로 글쓰기 교육을 하고, 기술로 교육 격차를 줄이려는 목표는 뚜렷했지만 외부 지원 없이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태호 뤼튼테크로놀로지스 이사는 “고등교육혁신원의 워크스테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언론정보학·국제학·공학 등 다양한 전공의 팀원들을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교육 불평등 해소라는 공통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성형 AI’ 기술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전공자 모여 ‘사회혁신’ 만든다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누리에서 워크스테이션 성과공유회 ‘2023 상반기 IHEI 페스타(Festa)’가 열렸다. 올해 1학기 워크스테이션에 참여한 팀들이 사회혁신 활동에 대한 성과를 공유하고, 최우수팀을 선정해 시상하는 자리다.
연세대는 2018년 사회혁신에 기여하는 미래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 기구인 고등교육혁신원을 출범했다. 사회문제 해결에 특화된 강의를 개설해 지원하는 교과(Curricular) 프로그램과 사회혁신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팀을 조직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교과(Co-curricular)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비교과 프로그램은 전공과 상관없이 사회문제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재학생·대학원생은 물론 타대생도 참여할 수 있다.
교과 과정은 ‘사회혁신 역량 교과’로 개설된 강의를 수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학생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개념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사회혁신 관련 전공을 별도로 개설하지 않고, 교양 강의로 개설됐다. 여러 전공의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창의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도록 협업의 장을 만든다는 취지다. 사회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해 볼 수 있는 강의인 ‘사회혁신과 기업 CSR’, 직접 사회적 가치 창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보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사회혁신’ 등이 있다.
비교과 프로그램으로는 ‘워크스테이션’이 대표적이다. 워크스테이션은 사회혁신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조직해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UN이 정의하는 17가지 지속가능 발전목표(SDGs)와 더불어 2020년부터는 저출산, 학교밖청소년, 학벌주의 등 국내 상황에 적합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표도 도입됐다 . 지난 2020년 워크스테이션에 참가한 오송민(24)씨는 “상대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교육 체계 안에서 워크스테이션 참가를 통해 자신만의 기준과 목표를 세워볼 수 있었다”며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개인의 성장과 더불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매년 워크스테이션을 찾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시작 첫해인 2018년에는 54개팀, 298명이 참가했지만, 시행 5년 차인 지난해 참여 규모는 234개 팀, 1324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5년 누적으로 809팀, 4183명에 달하는 규모다. 고등교육혁신원이 5년간 투입한 지원금은 37억원이 넘는다. 고등교육혁신원은 연간 지원금을 확대해 올해만 1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학생들이 거둔 성과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워크스테이션 참가팀이 유치한 누적 투자금은 약 63억원에 달했다. 팀 프로젝트 수준을 넘어 법인·사업자로 등록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 팀도 늘었다. 2022년 기준 법인·사업자 등록 팀은 총 59곳이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사회혁신가 DNA 심는다”
워크스테이션 참가 팀들이 주목하는 사회문제는 소득·주거·고용 불안정, 교육불평등, 안전위협, 기후변화, 에너지 불균형 등 다양하다. 장기 실종아동 홍보 캠페인을 펼치는 ‘파동’은 2021~2022년 워크스테이션에 참가했다. 장기 실종아동 정보 확산을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불분명한 실종아동의 이미지를 고화질 이미지로 개선했다. 이후 정보 확산을 위해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와 협업하거나, 지하철 역사, 버스정류장 등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정보 확산에 힘썼다. 한 달 간 수도권 지하철 역사 플랫폼 내 실종아동 관련 광고를 게재해 13명의 실종아동의 정보가 1300만명에게 도달하는 성과도 얻었다. 이외에도 담배꽁초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거함 디자인을 개선하는 ‘소브먼트’, 재활용률이 높은 알루미늄을 이용해 화장품 용기에 적용하는 ‘더리마인더스’ 등이 있다.
교육혁신원은 워크스테이션을 통해 학생들이 사회문제 해결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풋(Input)·쓰루풋(Throughput)·아웃풋(Output) 등 세 단계로 구분해 지원한다. 인풋 단계에서는 워크스테이션 활동 지원금을 통해 학생들이 팀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회혁신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교육과 자문, 워크숍도 진행한다. 쓰루풋 단계에서는 워크스테이션 운영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해 팀 간 네트워킹을 돕는다. 특히 ‘프로 리그’ 제도를 통해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연관된 주제를 가진 팀끼리 한 구단으로 묶어 구단 내, 구단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복잡다변해진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했다. 아웃풋 단계에서는 소셜벤처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소셜벤처 IR대회 등을 통해 지원한다. 특히 국내 기업·비영리·사회적기업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사회적가치 민간 축제 ‘SOVAC’에서 우수 사례를 소개할 기회도 주어진다.
비교과 프로그램의 선택지는 조금씩 넓어졌다. 고등교육혁신원은 방학 기간에 진행하는 ‘시즌 워크스테이션’을 운영해 학기가 끝나고도 사회혁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시즌 워크스테이션은 약 5주 동안 진행되고, 여름·겨울 방학에 각각 1회씩 운영된다. 대학 입학 전 사회혁신 활동을 체험해볼 수 있는 ‘리틀 이글 인턴(Little Eagle Intern·LEI)’은 신입생들이 학교 입학 전 5주간 워크스테이션 선배와 함께 사회혁신가 활동을 경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2021년 2월 리틀 이글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도연(21)씨는 “리틀 이글 인턴 프로그램으로 대학 입학 전부터 사회문제 해결 방법에 대한 고민을 일찍부터 구체화할 수 있었고, 이후 워크스테이션이나 사회혁신가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며 “현재는 지속가능한 도시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용석 연세대학교 고등교육혁신원장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사회를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공감과 나눔을 실천하는 따뜻한 사회혁신가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고등교육혁신원은 대학이 학생들의 사회혁신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