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상은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 실장
전쟁, 지진, 기근, 가뭄…. 재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중, 삼중으로 재난이 겹치는 경우도 흔하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인구는 2023년 5월 기준 3억 6000만명. 지난 1년동안에만하루 평균 17만명씩 급증했다.
글로벌 위기 대응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한국도 인도적 지원 예산을 빠른 속도로 늘리고 있다. 2019년 1432억원이었던 예산이 올해 4036억원으로 약 3배 증가했다. 현 정부도 ODA(공적개발원조)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정책적 의지를 담아낼 ‘법적 기반’이 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인도적 지원의 근거법은 ‘해외긴급구호에 관한 법률(이하 해외긴급구호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은 인도적 지원의 일부인 ‘긴급구호’만 다루고 있어요. 인도적 지원의 목적이나 정의도 규정하고 있지 않죠.” 지난 13일 만난 남상은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옹호실장은 “정부가 원칙과 기준을 가진 인도적 지원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의 개념부터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인도적 지원이란 해외에서 발생한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는 활동입니다. 생명을 구조하고 고통을 경감해주고 존엄성을 유지해주는 게목적이죠. ‘대응’ ‘복구’ ‘예방’ 활동을 아우르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해외긴급구호법은 ‘대응’,즉 긴급구호에만 집중하고 있어 보완이 필요합니다.”
―‘복구’와 ‘예방’이 빠져있군요.
“재난을 입은 이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삶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예방체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6월 13일자로 이재정 국회의원이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주요 내용이 무엇인가요.
“우선 법률의 제명(이름)을 ‘해외재난의 인도적 지원에 관한 법률’로 바꾸자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단어를 제명에 넣어 법의 목적과 방향성을 명확히 표현했어요.”
―내용은 어떻게 바뀌나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긴급구호만 다루던 현행법과 달리 개정안은 재난예방과 위기경감, 재난복구와 조기회복, 만성재난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의 다양한 활동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둘째, 기존에는 ‘천재지변’이라는 말로 재난을 표현했는데 개정안에는 자연재난·사회재난 등 재난을 유형별로 구체화해 명기했습니다. 셋째, 인도적 지원이 인도주의 원칙(인류애·공평성·중립성·독립성)과 국제인도법, 난민법 등 국제사회 규범에 기반한 기본 원칙이라는 게 명시됐습니다. 넷째, 인도적 지원에 관한 ‘국가의 책무’에 대해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이 부분에는 국가가 민간단체와의 협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어요.”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이 중요하죠.
“물론입니다. 인도적 지원의 주체는 정부, 국제기구, 글로벌NGO, 로컬NGO 등 다양합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 따로 민간 따로 하지 말고 협력하는 게 중요해요. 어떤 경우엔 정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NGO들입니다. 재난 현장에서 정부보다 빠르게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조사도 할 수 있어요. 법 개정을 통해 정부와 민간이 더 긴밀한 파트너십을 갖게 되길 기대합니다.”
―배우 김혜자씨도 이번 법 개정을 위한 ‘청원 캠페인’을 시작했지요.
“김혜자 선생님은 1991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임명된 이후 30년이 넘게 에티오피아, 파키스탄 대지진, 케냐 기근 현장 등을 돌아보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인도적 지원이 제도화돼야 더 많은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지킬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셨기에 이번에 월드비전과 함께 ‘김혜자의 국민청원캠페인, OUTCRY’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오는 30일에는 월드비전과 이재정 의원실이 공동으로 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한다.이재정 의원과 조명환 한국월드비전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법 개정의 취지와 필요성을 설명할 예정이다. 내전으로 12년째 고통받고 있는 ‘시리아 아동’이 영상 메시지를 전하고, 서울 독산초 학생이 한국 아동 대표로 토론회에 참석해 법 개정을 청원한다. 인도적 지원의 발전 방향에 대한 주제 발표와 패널 토론도 진행된다.
“재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에요.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로힝야의 아이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 재난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누구나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월드비전 홈페이지의’김혜자 국민청원캠페인, OUTCRY’ 페이지에 편지(14세 미만)나 서명(14세 이상)을 남겨주세요.인도적 지원의 법적 기반이 마련될 때까지 국민들의 편지와 서명을 국회(외교통일위원회)와 정부(외교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할 생각입니다.”
김시원 기자 blindlette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