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아동 재학대 고리 끊으려면?

신한금융그룹 학대피해아동 지원

아동학대 매년 증가
재학대 비율도 높아져

신한금융·굿네이버스
3년간 31억원 투입해
학대피해아동 지원

전북에 사는 중학생 A양의 아버지는 부부싸움을 할 때면 A양에게까지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가했다. 2021년 12월 아버지는 아동학대로 신고됐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에서 사례 관리를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욕설은 멈추지 않았다. 2022년 5월 두 번째 신고를 당했다. 전문가 상담을 20회가량 받으면서 아버지는 점점 바뀌었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그동안 자녀에게 했던 행동을 후회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지난 2월 상담이 종결될 무렵 A양은 말했다. “아빠가 욕하는 방법을 까먹은 것 같아요. 너무 신기해요.”

아동 재학대 고리 끊으려면?

신한금융그룹은 굿네이버스와 함께 2021년부터 학대피해아동을 지원하는 ‘신한-SOL Guard’ 사업을 펼친다. 아보전과 학대피해아동쉼터(이하 ‘쉼터’)에 피해아동을 위한 의료비, 심리치료비, 생필품 구입비 등을 지원한다. 지난해부터는 ‘재학대가정지원’ 항목을 추가해 학대 행위자를 교육하고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A양의 아버지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된 케이스다. 전문가들은 “부모 상담 등 적극적인 외부 개입이 없다면 학대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면서 “반복되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학대 행위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기적인 상담치료와 교육이 의무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소 20회 보호자 상담…재학대 예방해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1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발견된 재학대 사례는 5517건으로, 전체 아동학대 사례의 14.7%를 차지했다. 2018년 10.3%에 비해 4.4%p 증가한 수치다. 재학대 행위자는 대부분 부모(96%)다. 조현경 전라북도전주시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학대 신고 후에도 시설보다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아이들이 많고, 부모들도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한다”면서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원가정을 해체하는 것보다는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신고된 전체 학대 유형 중 신체학대는 15.4%, 정서학대는 32.8%를 차지했다. 재학대에서는 신체학대 비율이 11.1%로 감소했지만 정서학대 비율은 38.9%로 늘었다(신체·정서 중복학대 제외). 정서학대는 신체학대보다 개선이 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상적인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자녀 앞에서의 부부싸움, 가정 내 공포분위기 형성, 아이를 향한 조롱이나 비하 발언 등이 모두 정서학대에 해당한다. 조현경 기관장은 “보호자의 학대 행위를 줄이려면 보호자 스스로 그동안 유지해 온 사고방식과 습관, 양육 태도를 모두 바꿔야 한다”면서 “단시간에는 개선이 어렵고 외부의 도움도 필요한데, 최소 20회의 장기적인 상담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상담 치료는 일반적으로 회당 10만원 수준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최소 횟수인 20회를 받으면 200만원가량이 든다. 정부 지원만으로는 이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가 어렵다. 보건복지부는 재학대 예방을 위해 부모 상담과 교육 등을 지원하는 ‘홈케어플래너 서포터즈’ 프로그램을 2017년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2021년 기준 참여한 보호자는 1350명으로 참여율이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신한-SOL Guard’ 사업은 아동학대 판정을 받은 적 있는 가정에 상담, 교육, 심리 검사와 치료 등을 무료로 지원했다. 2022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75가정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조현경 기관장은 “재학대가 일어나는 가정에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며 “신한금융그룹 지원으로 예산이 확보되면서 개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겨울에 내복차림으로 쉼터 오는 아이들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대피해아동에 대한 지원도 늘려가고 있다. ‘응급 보호조치 아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 게 대표적이다. 학대 정황이 발견된 직후 원가정에서 분리된 아동에게 의류비, 생필품, 의료비, 학습 비용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1차년도(2021년 3월~2022년 2월)에는 아보전을 통해서만 지원했지만 2차년도(2022년 4월~2023년 3월)에는 쉼터로 범위를 넓혔다.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보호자와 분리 조치된 아동이 학대 판정을 받아 아보전의 사례관리 대상으로 지정되기까지 최소 한 달을 쉼터에서 대기해야 한다”면서 “이 기간 아동은 행정상 신분이 불분명한 대기 상태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많지 않다는 맹점이 있어 2차년도 사업부터는 쉼터까지 지원을 확대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학대 신고 후 응급 보호조치 된 아동은 당장 필요한 게 많다. 김승진 충남좋은이웃그룹홈(쉼터) 시설장은 “한겨울에 내복 차림에 맨발로 오는 아이들도 있다”며 “당장 두꺼운 옷부터 챙겨줘야 한다”고 했다. 겨울에는 패딩, 니트에 속옷, 양말까지 구입하면 50만원이 훌쩍 넘는다. 최근 물가가 오르면서 비용 부담은 더 커졌다. 병원 방문도 필수다. 보호자에게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기간이 오래된 아이들은 치아 상태가 좋지 않고 필수 예방접종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학습 공백의 기간이 길었던 아이들에게는 학습지 등 사교육도 제공해야 한다. 김 시설장은 “쉼터 예산이 빠듯한 상황에서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응급 보호조치 아동들을 위한 비용을 따로 마련해 두기는 어렵다”면서 “신한금융그룹과 굿네이버스의 지원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정기탁 기금을 통해 ‘신한-SOL Guard’사업에 2024년 4월까지 총 25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쉼터에 렌트 차량과 유류비를 지원하는 ‘신한-SOL Mate’ 사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쉼터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학교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려면 차량 운행이 필수다. 후원 물품을 받거나 아이들과 문화체험을 할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내년 4월까지 총 6억원이 차량과 유류비 지원 사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김승진 시설장은 “차량은 보건복지부 지원항목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월 100만원이 조금 넘는 운영비 중 차량 운행비로 50만원가량을 지출하는 것이 기관에서는 큰 부담이 된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런 지원이 민간을 넘어 정부 정책을 통해 보다 안정적으로 제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아동학대가 증가하면서 전문적이고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도 아이들이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선한 영향력 전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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