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동계스포츠 지원사업]
8년간 국가대표팀 전폭적 지원
스포츠 불모지에서 금메달 영웅 탄생
스포츠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훈련 장비도 중요하다. 유니폼부터 신발까지 장비 하나하나가 메달 색깔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육상·수영·태권도 등 맨몸으로 하는 하계스포츠와 달리 동계스포츠는 썰매·보드 등 장비를 이용해 경쟁한다. 그렇다 보니 최첨단 소재와 기술이 적용된 고가 장비가 대부분이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스켈레톤 썰매 한 대는 1500만원가량이며, 선수들은 평균 1~2년 주기로 썰매를 교체한다. 유니폼 역시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고 체형에 맞춰 제작되기 때문에 수백만원에 달한다. 필수 장비들이 수백, 수천만원에 이르는 탓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대표팀은 자체 썰매를 갖지 못했다. 현장 관계자들은 썰매 종목 출전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도 국내에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아 선수들이 전지훈련차 다른 나라에 가서 중고 썰매를 빌려 대회에 나갔다고 설명했다.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동계스포츠는 대중과 스폰서의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국가대표팀을 꾸리고 운영하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비인기 종목 장기 후원 했더니… ‘金’ 나오더라
동계스포츠는 북미·유럽 국가들의 전유물이었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첫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이후 노르웨이·러시아·캐나다·미국 등이 항상 최상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1992년 제16회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첫 메달을 획득했다. 지금은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여러 종목에서 두각을 보인다. 최근에는 컬링, 스노보드, 스켈레톤 등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한 비인기 종목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지난 30년간(1992~2022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 총 79개를 획득했다. 올림픽이 4년에 1회 개최되는 걸 감안하면 매회 약 10개의 메달을 딴 셈이다.
한국 대표팀의 저력은 든든한 뒷배를 자처한 기업들의 사회공헌에서 비롯됐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대표팀을 내조하며 동계스포츠 문화 발전에 앞장섰다. 특히 LG는 스폰서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비인기 종목을 후원한다. LG는 지난 2015년 스켈레톤 국가대표팀의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고 8년째 장기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스켈레톤이라는 종목 이름조차 생소했던 시절, LG는 열악한 훈련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국내외 전지훈련과 장비를 지원했다. 그 덕에 선수들은 훈련을 하고 각종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윤성빈 선수는 후원의 결실이다. 윤 선수는 지난 2018년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썰매 종목 금메달을 획득했다.
스포츠마케팅 회사인 올댓스포츠의 구동회 대표이사는 “비인기 종목의 경우 연맹의 지원이나 상금 등이 넉넉지 않아 선수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훈련에 임하는 상황”이라며 “윤성빈 선수는 LG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장비를 구입하고 해외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성빈 선수에 이어 최근에는 정승기 선수가 한국의 스켈레톤 대표 주자로 우뚝 섰다. 정 선수는 2015년 16살에 스켈레톤을 시작했다. 같은 해 대한민국 스켈레톤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정 선수는 지난 1월27일 스위스 장크트모리츠에서 열린 ‘2022-2023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거뒀다. 정 선수가 스켈레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딴 첫 개인 메달이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미국에서 열린 2022-2023시즌 IBSF 월드컵에 참가해 1~2차 대회에서 은메달을, 3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수확했다.
‘변방의 기적’ 아이스하키 대표팀 지원
LG는 스켈레톤에 이어 아이스하키 종목도 후원 중이다. 아이스하키는 미국 4대 프로 스포츠(NFL·NBA·MLB·NHL)에 포함될 정도로 인기 종목이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예외다. 한국 국가대표팀은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폰서 기업의 로고 하나 없는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었다. 지원 부족은 얇은 선수층과 대중의 관심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LG는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남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이스하키 종목 특성상 선수들은 빙상을 달릴 스케이트와 경기 스틱, 보호구, 유니폼 등을 갖춰야 한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따르면 특수 제작된 스케이트는 약 300만원, 보호구는 약 500만원에 달한다. 경기 스틱은 개당 40만~50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하지만, 경기 중에 자주 부러지는 탓에 교체 시기가 잦다. 협회 관계자는 “선수 한 명이 착용하는 장비 값만 1000만원 이상”이라며 “더군다나 평가전이나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경기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열리기 때문에 선수·스태프의 항공료와 경비도 많이 드는 편”이라고 했다.
아이스하키 남자 국가대표팀은 지난 1월 12~22일(현지 시각) 미국의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2승3패를 기록했다. 최약체로 평가받던 대표팀은 참가 12 국 중 9위에 머물렀지만, 슬로바키아와 영국에 신승을 거두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LG는 한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꿈나무도 지원한다. 비인기 종목 특성상 유망주 발굴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월 LG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와 공동으로 유망주를 발굴하는 ‘판타지캠프’를 진행했다. 캠프에는 총 113명의 청소년이 참가했고, 3차까지 이어지는 선발 과정을 통과한 31명은 오는 2024년 1월 개최되는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에 유스 대표팀으로 출전하게 된다.
구동회 대표이사는 “기업 후원은 비인기 혹은 아마추어 종목을 육성하는 절대적인 힘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 스켈레톤과 아이스하키 등 비인기 종목들이 얼마나 저변을 확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