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K2인터내셔널그룹 해외 연수 프로그램
사회 부적응자 뽑아 ‘자립의 기술’ 가르쳐
“다코야키 먹고 가세요. 한 세트에 3000원이에요!”
지난 1일 온도가 30도를 웃도는 더운 여름날, 공덕동 ‘늘장’에서는 뜨거운 불판위에 다코야키(밀가루 반죽에 잘게 썬 문어를 넣고 구운 일본과자)를 파는 일본 청년 2명을 만날 수 있었다. 까만 천막에 ‘일본 사람이 팔아요’라는 하얀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일본의 ‘K2인터내셔널그룹’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일본인이다. 1986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K2인터내셔널’은 20년 넘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니트족(일도 공부도 할 의지가 없는 젊은이) 등 학교·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2012년부터 한국에서 연수 사업을 시작했고, 현재 교육생 4명은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의 한 주택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공덕동 늘장, 홍대 앞, 합정동 숙소 앞에서 ‘다코야키’를 판다. 일종의 자립 기술을 익히는 프로그램이다.
시작은 일본의 한 요트회사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1988년 일본 요트회사 ‘테크노랜드’는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인터내셔널 콜롬버스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학교나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모여서 요트를 타고 한 달 정도 바다로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가나모리 가쓰오(Kanamori Katsuo)씨는 회사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프로젝트를 포기하자, 회사를 나와 비영리단체인 ‘인터내셔널 콜럼버스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들은 히키코모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생활’까지 시작하게 됐다. 현재 연 상담 건수는 3000건이며, 합숙 프로그램 참가자는 평균 150명 정도다. K2인터내셔널 코리아 책임자인 고보리 모토무(Kobori motomu·31)씨는 “동일한 고민을 갖고 있는 청년들과 이들을 지지해주는 스태프가 함께 생활하면서 건강하게 성장해 갈 수 있다”고 했다. 고보리씨도 15년 전, K2인터내셔널 뉴질랜드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이다.
“중학생 때 개인적인 문제로 학교에 갈 수가 없었어요. 부모님은 걱정이 많았고, 저도 더 이상 폐를 끼치기 싫었습니다. 고민하던 터에 ‘K2인터내셔널’을 알게 됐고 뉴질랜드로 연수를 갔죠. 공동생활을 하면서 저와 같은 경험을 한 친구를 만나게 됐습니다. 새로운 환경이다 보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됐죠. 중학교 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어요. 졸업 후 K2인터내셔널 호주에서 자원봉사자 스태프로 일하다가 2009년엔 정직원으로 취직까지 했습니다.”
K2인터내셔널에는 5가지 자립 단계가 있다. 충전 기간(1단계), 생활 기술 익히기(2단계), 직업 기술 익히기(3단계), 취업 경험(Work Experience·4단계), 돌려주기(Pay Forward·5단계) 단계를 차례차례 거치며 사회로 나가게 된다. K2인터내셔널의 지원 사업을 통해 성장 과정을 모두 수료한 이른바 ‘졸업생’에겐 준직원 역할을 할 수 있는 ‘J-스태프(J-Staff)’라는 직책을 준다. K2인터내셔널 직원 100명 중 30여명이 J-스태프로 일하고 있다. 학생이 공동기숙사에 입주하면, J-스태프와 사회복지사, 간호사, 상담사로 구성된 PS팀(personal-supporter)의 생활 지원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개개인의 특성을 바탕으로 취업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센터도 활용할 수 있고, 요코하마시의 외부 기관과 연계된 취업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오코노미야키 콜롬버스(‘오코노미야키’를 파는 레스토랑) 3곳, 250니코마루(250엔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등 자체적인 일터를 만들어 졸업생 중 80%를 자체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K2인터내셔널 그룹은 이 때문에 비영리법인뿐만 아니라 주식회사와 레스토랑까지 사업을 펼치면서 ‘그룹’으로 운영된다.
고보리씨는 “취업했다고 끝이 아니라 자립하려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먼저”라면서 “커뮤니티 속에서 친구들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관계 맺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각종 장터나, 홍대 앞 등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다코야키를 파는 경험도 이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침에 30분 정도 함께 한국말을 배우고, 오후엔 다코야키를 팔거나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2주 전 한국에 온 친구는 다코야키를 팔면서 벌써 한국인 친구가 생겼어요. ‘포장마차’라는 개방된 공간에서 음식을 만드니깐, 자연스럽게 손님과 대화도 하게 되고 목소리도 커지게 되죠. ‘어서오세요’ ‘기다리세요’와 같은 영업용 한국말이 먼저 늘기도 합니다(웃음). 이 친구들은 지금껏 주목받는 경험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편견 없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긍정적인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큰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