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6일(월)
전문가 50인이 말하는 올해 소셜섹터 전망은?

[2023 소셜섹터 키워드 10]

달라지는 ‘소비 문화’
활력 생기는 ‘비영리’

기후위기, 경기 침체, 인구 감소. 당면한 위기 속 불안과 무언가 일어날 거란 기대가 공존하는 계묘년(癸卯年) 새해를 맞았다. 지난 한 해 소셜섹터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유독 컸고, 재계에서는 ESG 열풍이 불었다. 2023년은 과연 어떻게 기록될까. 특히 사회문제 해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소셜섹터에서 어떤 변화의 흐름이 나올까. 더나은미래는 비영리와 사회적경제, 임팩트비즈니스, 기업, 학계, 법조 영역 전문가 50명 의견을 바탕으로 올해의 키워드 10개를 선정했다.

01. 빅벳 필란트로피(Big Bet Philanthropy)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비영리 조직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자선 활동을 말한다. 보통 한 기관에 2500만달러(약 310억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확산해왔다. 미국의 비영리 재단 브릿지스판그룹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에서 ‘빅벳’으로 집계된 기부금은 400억4800만달러(약 50조9600억원)에 달한다. 대표 사례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이다. 게이츠재단은 말라리아 종식, 소아마비 근절, 물 없는 화장실 개발 등 구체적인 사회변화를 목적으로 기부를 진행한다. 국내에서는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설립한 공익재단 ‘브라이언임팩트’가 사회문제 해결 역량이 있는 비영리 혁신 조직에 빅벳 방식으로 기부를 진행하고 있다.

02.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

기후위기 담론을 넘어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세계자연기금(WWF)은 2년마다 내놓는 ‘지구생명보고서’를 통해 1970년에서 2018년 사이 전 세계 생물 개체군의 69%가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담수 어종은 같은 기간 약 83%가 줄었다. 네이처 포지티브란 자연 파괴(negative)를 멈추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 생태계를 ‘회복(positive)’시키는 범지구적 목표다. 생물종 감소 추세를 멈추고 2030년까지 생물다양성 지표를 양수(positive number)로 반전시키자는 것이다. 각국 정부와 재계에서도 생물다양성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리더스포럼’의 주제는 ‘네이처 포지티브 사회와 경제’였고, 69국 정부, 기업 관계자 500여 명이 네이처 포지티브 실행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기업의 재무 보고 지표에 생물다양성을 포함하기 위해 자연관련재무정보공시태스크포스(TNFD)와 협의 중이다.

국내 스타트업 엔씽은 컨테이너 안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스마트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DB
국내 스타트업 엔씽은 컨테이너 안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스마트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DB

03. 기후 딥테크(Climate Deep-tech)

‘기후테크’가 고도화되고 있다. 딥테크(Deep-tech)란 특정 부문을 깊게 파고드는 독보적인 첨단 기술이다. 기술 개발에 오랜 기간과 큰 비용이 들지만, 상용화에 성공하면 과거 상상에 그쳤던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딥테크 개발과 투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감축이나 농업·조림 분야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내외 대기업들이 뛰어든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홀론IQ에 따르면, 지난해 기후테크 벤처캐피털(VC)은 701억달러(약 89조원)의 투자를 이끌어 냈다. 현재 속도로는 올해 말까지 1000억달러(약 127조원) 이상의 투자금이 몰릴 것으로 전망했다.

04. JEDI(제다이)

정의(Justice), 형평성(Equity), 다양성(Diversity), 포용성(Inclusion)의 약자다. 이제껏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뜻하는 ‘DEI’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여기에 ‘정의’를 더해 의미를 확장한 것이 JEDI다. JEDI에서의 정의란, 인종·계급·성별 등에 따른 불평등을 근절하고 모두가 존엄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개념이다. 미국 비영리 기관 B랩은 이미 2020년부터 JEDI를 핵심 미션으로 내걸고 ‘비콥(B corp) 인증’ 기업에 JEDI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전 세계 기업, 연구소, 대학, 병원 등 다양한 조직에서 JEDI의 가치를 실천하겠다는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05. 디컨슈머(De-consumer)

소비와 환경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매년 증가하는 폐기물 발생량에 대한 위기감으로 소비 행위 자체를 줄이려는 흐름이다. 유엔 국제자원전문가위원회는 “기후변화와 생물종 멸종 등 환경문제의 중심에 ‘소비’가 있었고, 소비의 증가는 인구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밝혔다. 최근 제임스 매키넌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디컨슈머(De-consumer)’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소비 집착에서 벗어나 간소함을 추구하고 내재적 가치에 집중하는 삶의 방식으로 기존 소비문화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을 뜻한다. 디컨슈머들은 질 좋은 물건을 더 적게 구매하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비영리스타트업 ‘다시입다연구소’가 주최하는 의류 교환 행사 ‘21% 파티’를 통해 지속 가능한 의생활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영리스타트업 ‘다시입다연구소’가 주최하는 중고 의류 교환 행사 ‘21% 파티’현장. /다시입다연구소
비영리스타트업 ‘다시입다연구소’가 주최하는 중고 의류 교환 행사 ‘21% 파티’현장. /다시입다연구소

06. 유산기부(Legacy giving)

유산기부는 사후 남을 재산의 일부나 전부를 정해 계획적으로 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 재산을 기부 서약하는 경우가 있지만, 가족에게 일부 재산을 남기고 나머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사례도 매년 늘고 있다. 유산기부 전문 연구단체 ‘레거시 포어사이트’에 따르면, 영국의 유산기부 규모는 1990년 기준 8억 파운드(약 1조2800억원)에서 2020년 30억 파운드(약 4조8200억원)로 급증했고, 오는 2030년이면 한 해 50억 파운드(약 7조5000억원)를 유산기부로 모금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흐름은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와 자산 가격 상승 등으로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모금단체 입장에서는 향후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약속받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단체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07. ‘S’의 부상

ESG에서 사회(S) 부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 지금까지는 환경(E)에 대한 주목도가 높았다. 비교적 솔루션이 명확하고 성과를 나타내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변화를 위해서는 결국 ‘사람’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조직 구성원과 이해관계자,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 안전, 노동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유엔 책임투자원칙(PRI)은 지난달 1일 이니셔티브 ‘어드밴스’를 출범시켰다. 기관투자자들이 협력해 인권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스튜어드십 이니셔티브다.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30조달러(약 3경8200억원)에 달한다.

08. 비영리스타트업

비영리스타트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신생 비영리단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성, 환경, 다문화, 장애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신선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소셜섹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비영리스타트업을 규정하는 법제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지만 민간 차원에서 이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흐름은 강화되고 있다. 다음세대재단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지난 2019년부터 매년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진행한다. 브라이언임팩트 재단도 지난해부터 다음세대재단의 사업에 지원금을 내놓고 함께 조직을 발굴하고 있다.

09. 스케일임팩트(Scale Impact)

비영리단체·소셜벤처·사회적기업 등 소셜섹터 조직의 임팩트 확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리나라 소셜섹터도 조직의 성장이 아닌 ‘성숙’을 고민할 단계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다. 스케일임팩트는 조직의 사업 규모나 구성원 등을 늘리는 ‘스케일업’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사업의 고도화를 통해 조직의 임팩트 자체를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더 큰 변화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스케일임팩트 전략과 과정, 동인 등에 관한 연구가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10. 풀뿌리 솔루션

인구 감소, 지역 소멸, 기후 문제의 솔루션을 지역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강화된다. 문제 해결의 주체로는 지역의 고령자, 청년, 여성 등 당사자가 나선다. 고령자가 지역에서 노인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봄 봉사에 참여하고, 여성이 지역의 여성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에 도전한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에서 지난 3년 동안 진행한 ‘안녕캠페인’에는 전국에서 8만6000여 명이 참여해 마을의 사회적 고립, 일회용품 사용량 증가 등의 문제에 대응했다.

충남 태안 송암2리 주민들은 지난해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안녕캠페인’을 펼쳤다. /태안군자원봉사센터
충남 태안 송암2리 주민들은 지난해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안녕캠페인’을 펼쳤다. /태안군자원봉사센터

더나은미래 취재팀

<설문에 참여해준 분들>
▲비영리·사회적경제
권미영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장, 김동훈 더프라미스 경영총괄이사, 김성태 월드비전 ESG사회공헌본부장,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 김태우 아모레퍼시픽공감재단 사무국장, 박미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연구소 팀장, 박선영 대한적십자사 모금전략본부장, 박수봉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3지역본부장,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 안지훈 소셜혁신연구소 이사장, 안인숙 행복중심생협연합회장, 이재현 NPO스쿨 대표, 이지현 재단법인 숲과나눔 사무처장, 정영일 이랜드복지재단 대표,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 홍윤희 무의 이사장, 황성주 굿네이버스 나눔마케팅 본부장,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황애경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 이사(이상 20명)
▲임팩트비즈니스
곽제훈 팬임팩트코리아 대표, 김영덕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대표,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양경준 크립톤 대표, 이덕준 D3쥬빌리파트너스 대표, 정경선 실반그룹 공동대표,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상 10명)
▲기업·기관
권연주 스마일게이트 희망스튜디오 사회공헌실장,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장, 김형돈 서울사회적경제센터 시민경제연구실장, 나영훈 포스코건설 기업시민사무국 사회공헌그룹장, 박필규 GS칼텍스 CSR추진팀장, 송정민 LG전자 사회공헌팀장, 우용호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사회공헌센터장,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연구센터 실장,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정란아 서울시NPO지원센터장(이상 10명)
▲학계·법조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노연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 손원익 한국비영리학회장, 신현상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장용석 연세대 고등교육혁신원장(이상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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