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英은 동네 가게서도 팔아, 韓에선… “공정무역이 뭐예요?”

우리나라 공정무역 현황

공정무역 제품을 사기 위해 지난 9일 오전 은평구의 한 대형 할인점을 찾았다. 2시간 동안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식품 관련 코너를 돌며 찾은 공정무역 제품은 딱 하나. 한국 YMCA에서 동티모르 평화재건과 커피 농가의 수익창출을 위해 들여온 ‘피스커피’뿐이었다. 공정무역 제품이 또 있느냐는 질문에 점원은 “공정무역이요?”라고 되물었다.

석달 전, 취재차 영국을 찾았을 때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테스코(TESCO)나 세인즈베리(Sainsbury) 같은 대형 할인점에는 공정무역 인증마크가 붙은 커피와 차, 초콜릿 등이 소비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돼 있었다. 막스앤스펜서(Marks&Spencer)는 대형 수퍼마켓으로는 처음으로 커피와 차 제품을 모두 공정무역 상품으로 바꿨다. 공정무역 라벨이 붙지 않은 상품은, 아예 판매조차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심지어 조그만 동네 가게에서도 공정무역 제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영국 내 489개의 도시가 ‘공정무역’도시로 인정받았다는 외신을 봤을 때는 실감 나지 않았던 공정무역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의 한 대형 할인점에서 소비자가 공정무역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가는 모습(왼쪽)과 공정무역 커피를 고르는 모습. /FLO(공정무역상표협회) 제공
독일의 한 대형 할인점에서 소비자가 공정무역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가는 모습(왼쪽)과 공정무역 커피를 고르는 모습. /FLO(공정무역상표협회) 제공

공정무역의 역사는 1946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시민단체 텐사우전드빌리지(Ten Thousand Villages)가 푸에르토리코산 손바느질 상품을 구입한 것을 기원으로 본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공정무역’의 이름을 달고 상품 거래가 이루어진 것은 1950년대부터다. 거래 규모가 늘어나자, 1997년에는 공정무역상표협회(Fairtrade Labelling Organization)가 설립됐고, 2002년부터는 커피, 차, 바나나 등 농산물에 대한 공정무역 상품 인증 업무를 시작했다. 지난해 FLO의 인증을 받은 상품은 1만9000여개, 전 세계 판매액은 34억유로(5조3000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공정무역의 시초는 2003년 9월 ‘아름다운가게’가 동남아시아에서 들여온 수공예품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아름다운가게의 공정무역 커피는 매년 300%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아름다운가게가 2010년 2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단 11%만이 공정무역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한국공정무역연합 박창순(63) 대표는 “소비자가 공정무역 상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유통 통로가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에 인지도가 낮다”고 분석했다.

유통업계는 공정무역 상품을 본격적으로 취급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인증 절차나 상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마트 수입지원팀 김평철(33) 대리는 “수입 상품의 가장 중요한 점은 품질인데, 공인된 기관이 인증한 공정무역 제품이 아니라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인증을 받고 품질까지 좋다면 소비자에게 충분히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내년 한국 진출을 앞두고 있는 FLO(공정무역상표협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름다운가게 공정무역사업부 엄소희(27) 간사는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인증제도가 생기면 기업의 참여가 쉬워질 것이다”라며 “공정무역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FLO연차보고서_그래픽_공정무역_인증_2010FLO의 신시장(New Markets) 매니저 마티아스 알트만(Matthias Altmannㆍ36)씨는 “한국은 G20 의장국으로 선정되는 등 국제무대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동남아시아 등 아직 가난한 주변 나라에 무엇인가 돌려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는 것 같아 진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개별 상품에 대한 인증이 아닌 생산자와 공정무역 관련 기관이 회원으로 참가하는 형식의 세계공정무역기구(The World Fair Trade Organization)는 농산물만 인증하는 FLO의 보완으로 수공예품에 대한 인증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인증제도의 도입을 반기고 있지만, 공정무역을 꾸준히 해왔던 단체들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의 이미영(43) 대표는 “FLO의 공정무역상표가 붙은 상품이 모두 높은 수준의 공정무역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공정무역상표의 맹신(盲信)을 경계했다. 뜻있는 단체가 마을과 1대1로 관계를 맺고 생산자와 마을의 변화까지 지켜보며 제품을 만드는 것과, 공정무역 시스템 안에서 원가를 조금 높여주고 대량으로 제품을 유통시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그동안 뜻있는 단체들이 길을 열고 해 온 뜻있는 공정 무역이 홀대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무역이란?
저개발국의 소외된 생산자와 노동자가 만든 상품에 정당한 대가를 주며 이들의 이윤을 보호하자는 운동이다. 생산자에게 좋은 무역 조건을 제공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줌으로써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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