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4일(일)
보험금부터 조의금까지… 이웃 위해 남깁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유산기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유산기부 후원자 모임 ‘그린레거시클럽’에 이름을 올린 권유진(왼쪽)씨와 김지혜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유산기부 후원자 모임 ‘그린레거시클럽’에 이름을 올린 권유진(왼쪽)씨와 김지혜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언젠가는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학창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웠을 때 급식비를 지원받았고, 사회에서 도움받은 게 많았거든요. 마음의 빚 같은 게 있었어요. 학교를 마치고 직장이 생기면 이번에는 내가 다른 아이들을 도와야 할 차례 아닐까 생각했어요.”

김지혜(29)씨는 올 초 종신보험금 5000만원의 수익자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으로 변경했다. 그렇게 재단의 유산기부 후원자 모임인 ‘그린레거시클럽(Green Legacy Club)’의 46호 기부자가 됐다. 김씨 이후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유산기부가 잇따르면서 그린레거시클럽은 출범 3년 만에 후원자가 55명으로 늘었다. 김씨는 유산기부를 결심하고 일곱 살 터울 남동생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보험금을 기부하려다 보니까 부모님보다는 동생에게 먼저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속 깊은 친구라 덤덤하게 기부 의지를 그대로 존중해줬다”고 말했다. 기부 사실을 가족 외에는 알리지 않았다. 주변에 권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누군가는 월급을 모아 여행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삶의 만족을 찾잖아요. 저는 기부를 통해 즐거움을 느껴요. 강요할 수도 권할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사람들의 유산기부가 늘고 있다. 그간 자산가들이 고액 현금이나 부동산을 내놓는 방식에서 직장인들이 보유 주식이나 종신보험 수익금, 조의금 등을 기부하는 것으로 형태도 다양해졌다.

소방관인 권유진(34)씨는 지난해 8월 유산기부로 주식 계좌를 통해 1억원의 후원금을 약정했다. 그린레거시클럽 36호 후원자다. 권씨는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며 “혹시라도 어떤 사고를 당하면 유산의 일부나마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년 시절 사회복지 기관의 도움을 받고 자랐다. 안정적 직업을 갖고 소득이 생기면 마땅히 후원해야겠다고 늘 생각했다. 권씨는 “지금 이만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건 운이 좋아 한국에 태어났고 이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이라며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라도 사회적·경제적 능력을 더욱 키울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가 택한 방식은 유언 녹화다. 유언으로 유산을 기부하려면 법적 효력을 갖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민법에서 허용하는 유언 방식은 ▲자필 증서 ▲비밀 증서 ▲공증 증서 ▲녹음 ▲구수 증서 등 다섯 가지다. 권씨가 선택한 유언 녹화는 녹음으로 하는 유언에 해당한다. 다른 절차에 비해 간단하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승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나눔마케팅본부 그린노블팀장은 “변호사나 금융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기 때문에 기부자들이 느끼는 부담은 거의 없다”며 “특히 보험 기부는 상품 설계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일주일 안에 기부 절차를 마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가족이 고인 이름으로 유산을 기부하는 사례도 꽤 많다. 지난 7월에는 장례를 치르며 마련한 조의금 1000만원을 유가족이 기부한 사례도 있었다. 가족들은 평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해 고(故) 강원여 여사 이름으로 유산을 기부했다.

이보다 앞선 6월에는 지난해 작고한 어머니의 상속 재산을 익명 후원자가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의 재산을 뜻깊게 사용할 방법을 고민하다 재단을 찾았다. 기부 규모는 현금 3억원. 변호사를 통한 유언 공증이라는 방법으로 기부 결정을 법적으로 확실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한 달여 만에 유산기부를 마치고 재단에서는 고인의 이름으로 감사패를 만들어 전달했다. 유산기부 업무를 맡고 있는 양태욱 대리는 “기부자 예우로 고인이 계신 납골당을 찾았을 때 ‘엄마가 물려주신 재산은 내가 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기부했어’라는 후원자의 말을 듣고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전창원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변호사는 “기부자마다 나이, 가족 관계, 자산 규모 등 환경이 제각각이라 유산기부할 때 검토해야 할 사항도 모두 달라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며 “복잡한 절차 때문에 기부를 주저하지 않도록 법적·행정적 지원을 통해 기부 문화 확산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산기부 진행 과정>

자료=초록우산어린이재단

1. 가족과 충분히 상의
유산 이야기를 가족과 충분히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다.

2. 유산기부 상담
기부할 단체와 유산기부의 법적·행정적 절차를 상담한다.

3. 서약서 작성·유언 진행
기부자와 기부 단체 간 유산기부 서약서를 작성한다. 유언 공증에 따른 기부는 후원자와 증인 2명이 참석해 공증인 앞에서 유언의 존재와 내용을 확정한다.

4. 자선단체 유산기부자 등록·예우
유산기부를 받은 자선단체에서 운영하는 유산기부자 모임에 등재되며, 기부 당사자와 가족들이 기부자 예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유산기부의 종류와 방법>

생전 유산기부
· 자산 일부를 사망 전에 기부하는 방법으로, 사전 증여 기부로 상속세 누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생전 유산기부를 집행하면 기부금을 통해 지원되는 사업을 볼 수 있다.

유언 공증에 따른 유산기부
· 민법 제1068조에 따른 공정 증서에 의한 유언을 남기면서 유산기부 내용을 명확히 하고 효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신탁에 따른 유산기부
· 기부자가 금융회사와 자산 신탁 계약을 맺은 뒤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을 얻다가 사후에는 기부자 뜻에 따라 절차를 밟는다.

보험으로 유산기부
· 이미 가입한 종신보험 수익자를 자선단체로 변경하거나, 사망 보험금 수익자를 비영리단체로 지정하는 기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경매로 유산기부
·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나 도자기, 사진 같은 물품을 감정한 뒤 경매로 현금화해서 기부하는 방식이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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