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발달장애인 전담 수사관 2000명 넘는데… “도움 못 받았다” 해마다 반복

인권위, 경찰청장에게 ‘발달장애인 조사 준칙 마련’ 권고

중증 지적장애인 A씨는 지난해 절도 피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들로부터 들은 ‘유죄증거가 될 수 있다’ ‘신문을 받는다’ 같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A씨는 지난 3월 구치소에서 국선변호인을 만났을 때 비로소 ‘발달장애인 전담 조사관’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국선변호인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으면 발달장애인지원법에 따라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후 경찰이 다시 수사접견을 왔을 때, A씨는 자신이 발달장애인이라고 밝혔지만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서울 중구의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전경.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서울 중구의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전경.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이 사건을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는 3일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발달장애인 사건 조사에 관한 준칙’을 마련하라고 권고를 내렸다. 인권위는 수사 초기에 장애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내부적인 기준이 없어 발달장애인 전담 조사관 제도 등 절차가 있어도 피의자가 안내 받기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발달장애인 전담 조사관은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전문지식과 의사소통, 수사방법 교육을 받은 경찰관으로 2015년 처음 도입됐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전담 조사관 수는 올해 기준 2256명이다. 지난 2020년 616명과 비교하면 3배 넘게 전담 인력을 늘린 것이다.

문제는 발달장애인 전담 조사관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경기 안산에서 경찰이 발달장애인에게 뒷수갑을 채워 연행한 일이 CCTV에 녹화돼 논란이 일었다. 집 앞에서 혼잣말하던 중증발달장애인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오해하고 흉기를 소지했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체포하는 사건도 있었다. 두 사건 모두 수사 초기에 경찰이 장애인인 점을 알아보지 못했고, 12월 경기 안산에서 체포된 발달장애인도 전담 조사관을 만나지 못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들은 “A씨가 지체장애 3급으로 군 면제 대상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진술할 때 비장애인과 별다른 차이점을 못 느껴 발달장애 여부를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장애인으로 인식되지 않는 상황인데, 장애가 있는지 물어보는 게 오히려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해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는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로 수사 초기에 발달장애인 여부를 확인하고 대응하는 지침의 부재를 꼽았다.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안성진 변호사는 “전담 조사관 제도가 있더라도 수사 과정에서 이들을 만나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발달장애인의 경우 장애 정도에 따라 비장애인과 구별하기 쉽지는 않지만, 일선 경찰들이 이를 구분할 수 있는 교육과정과 내부 기준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백지원 더나은미래 기자 100g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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