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일(토)

돈에서 공간으로… 기업 기부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유휴 공간 기부하는 기업 증가
기업의 연수원·공연장 등 시민단체에 개방하고 문화·소통의 場으로 활용

지난해 한국농어촌공사(이하 농어촌공사) 김포지사에 색다른 공간이 마련됐다. 2층 소회의실을 개조한 이곳엔 ‘농업인 사랑방’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김포시에 사는 농민들은 이곳에 모여 자유롭게 정보를 나눈다. 영농 교육이나 상담도 이뤄진다. 농어촌공사 직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3층 회의실도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했다. 누구든 신청만 하면 100명 수용 가능한 회의실을 사용할 수 있다. 농어촌공사 직원들은 부서별 회의시간을 조정해 시민들의 공간 이용 시간을 확보했다. 인근에서 행사가 있을 땐 주차장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공기관이 가진 내부 공간을 기부해, 시민들과 소통의 장(場)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박우임 한국농어촌공사 김포 지사장은 “김포시 내에 대형 회의공간이 없어서 타 기업이나 시청 등에 회의실을 빌려준 것이 계기가 됐다”면서 “공간 기부를 통해 농어촌공사가 김포시민들의 사랑방처럼 친근해졌다”고 말했다.

기업 기부 트렌드가 바뀌었다. 회의실ㆍ강당ㆍ연수원ㆍ주차장 등 기업 내부 공간을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일반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기업 기부 트렌드가 바뀌었다. 회의실ㆍ강당ㆍ연수원ㆍ주차장 등 기업 내부 공간을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일반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유휴 공간 기부하는 기업들

돈과 시간, 재능을 기부하던 기업들이 이제 내부 자산인 ‘공간’을 기부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기업이 가진 유휴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거나, 비영리단체·사회적기업 등에 기부하기 시작한 것. 회의실·세미나실·강당을 무료 대관함으로써,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사회공헌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전국 30곳 사옥에서 공간을 개방하고 있다. 한순기 국민연금공단 총무지원실 차장은 “각 사옥 건물 운영 상황에 따라 평일 근무시간에는 회의실을 빌려주고, 주차장은 평일 퇴근시간 이후와 주말에 종일 개방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도 건물 1층에 있는 회의실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회의에 필요한 기자재·인터넷 등의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홈페이지에서 직접 신청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마련했다.

직원들의 교육 목적으로 건립된 기업 연수원은 평소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 인재개발원과 LIG손해보험은 건물 내부 공간을 비영리단체·사회복지기관 등 공익 활동을 하는 단체에 무료로 대관하고 있다. 경기도 인재개발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체육관·운동장·강의실 등을 저소득층 아동 교육 장소로 개방(평일 야간, 공휴일 및 방학 기간)했고, LIG손해보험은 수원에 있는 연수원 ‘LIG인재니움’ 대강당을 주말 무료로 개방했다. 이도희 LIG손해보험 사회공헌팀장은 “대다수 비영리단체 및 시민들이 기업들의 공간 기부 소식을 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면서 “언제든 편하게 신청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공익재단법인들도 공간을 적극 기부하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해외 각국과의 상호 교류를 위한 세미나·워크숍·강연 등을 개최하려는 비영리기관에 세미나실을 무료로 대관한다. 동그라미재단은 최대 120명까지 수용 가능한 행사·강연장과 30명이 앉을 수 있는 강의실을 무료로 개방한다. 김정민 동그라미재단 매니저는 “올해 공간 기부를 전면 확대할 계획이고, 관련 내용은 3월 중순쯤 재단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에 안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소셜벤처를 위한 공간 기부 늘어

“기업에서 먼저 공간을 기부하겠다고 연락이 온 건 처음이었어요. 건물 로비에 카페가 오픈되자마자 기업이 나서서 직원들에게 열심히 홍보하고, 바자회까지 열어 수익금을 기부했습니다. 임대료가 부담스러워 매장을 열기 어려운 사회적기업들엔 정말 고마운 일이죠.”

공정무역 브랜드 아름다운커피 황희성 팀장이 2011년 1월, 패션기업 세정으로부터 공간을 기부받은 사연을 이야기했다. 사회적기업 및 소셜벤처 육성사업이 활성화되고 협동조합법이 통과되면서, 사회적 경제 영역에 대한 기업의 관심도 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기업 내부 공간을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에 기부하는 사례가 증가했다. 한화리조트는 지난해 리조트 1층 공간을 사회적기업인 ‘신라문화원’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신라문화원은 이곳에 ‘신라문화관광센터’를 개설해 한화리조트와 함께 실버세대를 위한 문화해설사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김주리 한화호텔앤리조트 홍보팀 매니저는 “지역사회 상생을 위해 사회적기업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랜드·롯데슈퍼·현대중공업·울산행복신협·㈜두진은 건물 내 공간을 사회적기업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했다. 이곳엔 시민들이 기증한 재활용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들어섰다. 소셜벤처나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위해 공간을 후원하는 기업도 생겼다. 소셜커머스사인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는 본사 사옥의 지하 공간을 공익활동을 하는 개인 및 단체에 무상으로 대관한다. 모임 공간 전문기업인 토즈는 스타트업 기업에 1년간 센터를 무료 개방 및 이용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청년 창업자들에게 1년간 다양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문화공헌의 바람, 예술활동 공간 개방으로

250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을 무료로 대관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올림푸스홀’이다. 2010년부터 올림푸스한국은 문화공헌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개인 및 단체에 올림푸스홀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 재즈의 날 콘서트, 한국입양어린이 합창단 공연, 벽산장학재단 소외아동 초청 공연 등 다양한 공연에 공간을 기부해왔다. GS칼텍스는 여수에 건립한 문화예술센터 ‘예울마루’의 리허설룸, 대극장, 공연장, 전시실 등을 지역 예술가들에게 30% 할인된 가격에 대관한다. 화장품업체 ‘키엘(Kiehls)’은 삼청동에 있는 매장 2층 공간을 디자이너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이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작업·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받는다. 공간을 활용해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사회공헌이 확대되고 있는 것. KT는 전국 21개 사옥에 30~50평 규모의 ‘KT꿈품센터’를 설립했다.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을 위한 음악 교육, 영화 관람 등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 및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3년간 총 22만8895명의 아동이 KT꿈품센터에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지원받았다.

정유진 기자

문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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