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금)
[굿네이버스×더나은미래 공동기획 ‘새로운 나눔이 온다’] (1)대중의 기부 시계가 빨라진다

코로나19 이후 ‘기부 의지’ 촉발
연대 의식, 국경 넘어 세계로 확장
“나와 관련…” 2030세대 기부 늘어

“예상 모금액은 3억원이었는데 7억원 넘게 들어왔어요. 추가 캠페인을 열어야 할 정도로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많았죠. 산불 이슈로 이렇게 많은 금액이, 빠르게 모일 거라고는 전혀 예측 못 했어요. 내부에서도 놀랐다니까요.”

강인수 굿네이버스 사업기획팀장은 최근 긴급구호 모금을 진행할 때마다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다. 지난 3월 경북 울진 산불로 모금을 시작한 지 닷새 만에 목표액을 웃도는 4억원이 모였다. 2년 전 강원 고성 산불 당시 한 달 넘게 모금한 금액보다 많았다. 참여자도 급증했다. 5일간 고성 산불 긴급구호에 기부한 사람은 2866명이지만 올해 강원·경북 산불(동해안 산불) 때는 같은 기간 7만2770명이 동참했다.

대중이 달라졌다. 재난이 터지면 수많은 사람이 지갑을 열고 빠르게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 국내외 이슈를 가리지 않는다. 강 팀장은 “2년 전 산불과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대중의 관심은 몇 배나 높아졌다”면서 “이전에는 재난 피해 수습을 정부가 해야 할 일로 여겼다면 지금은 ‘내가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국내 코로나19 모금액은 총 3000억원 이상 모여 국내 재난 사상 최대 규모를 달성했다. 이전 기록인 2014년 세월호 참사 모금액(1273억원)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팬데믹 이후 발생한 강원·경북 산불, 우크라이나 전쟁 긴급 모금에서도 폭발적인 기부 공세가 이어졌다. 재난이 휩쓴 자리에서 대중의 연대가 피어오르고 있다.

[새로운 나눔이 온다] 더 많이, 더 빨리… 달라진 기부 문화

기부 참여자, 4년 전보다 49배 증가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굿네이버스가 오픈한 온라인 모금함은 하루 만에 1억원이 찼다. 3월 2일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이 직접 개설한 후원 계좌에는 하루 만에 8억원이 모금됐다. 황성주 굿네이버스 나눔마케팅본부장은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꽤 낯선 나라인데도 모금이 많이 돼서 의외였다”면서 “대중의 연대 의식이 국경을 넘어 세계로 확장된 것 같다”고 말했다.

2018년 9월 인도네시아에 쓰나미가 덮쳤을 때는 초기 5일 동안 1250명이 2590만원을 기부했다. 올해 우크라이나 긴급 구호에는 동일 기간 6만894명이 동참했다. 2018년 인도네시아 구호보다 49배 많은 사람이 결집했다.

변화의 분수령은 코로나19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팬데믹 상황이 대중의 기부 의지를 촉발했다. ‘기빙코리아2020′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 2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인식이 강할수록 기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커졌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의 정도가 높기 때문이다. 황성주 본부장은 “우리나라 국민은 IMF 때도 기부가 줄지 않을 정도로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 도와야 한다는 정신이 강한데, 코로나19를 계기로 내 가족, 내 지인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십시일반 정신이 발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안성민(23)씨는 팬데믹 이후 매달 1만원씩 기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려워진 이웃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다. “국가 재난이라는 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거잖아요. 저도 대부분 사람처럼 ‘나는 재난의 피해자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근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니까 나도 언젠가 해당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후원을 시작했어요. 나중에 취직하면 더 큰돈을 기부하고 싶어요.”

비영리도 대중의 관심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굿네이버스는 코로나19 당시 타 단체보다 선제적으로 긴급구호 활동에 돌입했다. 긴급구호 대응체계 수립부터 실제 지원까지 1.5일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모금액이 초기에 확보되면 더 계획적이고 안정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다. 기부자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투명성도 강화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긴급구호 때는 실시간 결과 보고 페이지를 만들어 모금 현황과 지원 현황 등을 수시로 업데이트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나이·소득 무관… 기부 공식이 깨지다

HP코리아의 사내 2030 직원 모임 ‘넥스트젠서울(NextGen Seoul)’은 우크라이나 구호 기금으로 600만원을 마련했다. 구성원이 ‘StandWithUkraine’ 해시태그(#)가 적힌 문구를 들고 ‘평화의 빛’ 캠페인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다른 직원들과 이메일로 공유하면 1인당 2만원을 적립하는 방식이었다. 평화의 빛 캠페인은 세계 주요 도시 랜드마크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조명을 비춰 우크라이나에 연대의 뜻을 표현하는 행사다. 50명이 참여해 총 100만원을 기존에 확보한 기금 500만원과 함께 굿네이버스에 기부했다. 김보성 HP코리아 CS팀 매니저는 “가족까지 함께 평화의빛 장소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은 분도 많았다”며 “정해진 장소에 방문하고, 해시태그까지 써서 사진을 찍는 게 번거로울 법도 한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전 다른 재난에 비해 언론 보도량도 많고, 대중의 집중도도 훨씬 높았다”면서 “기사를 쓰는 기자도, 대중 개개인도 전쟁 난민의 어려움에 공감했기 때문에 협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의 ‘기부 공식’도 깨졌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연령이 높을수록, 경제적 여유가 있을수록 적극적으로 기부에 참여했다. 기부의 주축은 경제적 기반이 잡힌 4050세대였다. 코로나19 모금에서는 2030세대의 기부가 눈에 띄게 늘었다. 노연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20대의 기부액은 23.8%, 30대는 19.9% 증가했다. 40대 증가율은 11.9%, 50대 11.8%, 60대는 10.2%에 그쳤다. 소득과의 상관관계도 사라졌다. 노연희 교수는 “젊은 층은 특히 자신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면서 “최근 산불, 우크라이나 전쟁 등 이슈에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나의 삶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실용적인 연대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부는 또 다른 기부로 이어진다. 송정숙(53)씨는 2020년 이후 세 개의 정기기부를 신청했다. 여학생 생리대 지원, 해외 어린이 결연 아동 돕기,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 등에 매달 10만원을 입금한다. “자식 같은 여학생들이 형편이 어려워서 생리대도 못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부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한번 하고 나니까 제가 도리어 너무 기뻤어요. 기부에 조금 더 보탠다고 생활에 큰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더 돕지 않으면 두고두고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서 기부를 늘렸어요.”

정익중 교수는 “기부는 처음에 한 번 하는 것이 어렵지 시작만 하면 계속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 대중이 실행에 쉽게 옮길 수 있게끔 다양한 시도를 통해 기부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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