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일(수)

아이들 목소리 모아 법·제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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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 옹호 사업 10년 성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사건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올 초 국민적 공분을 샀던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지난해에는 이른바 ‘n번방’이라는 디지털 아동 성착취 사건도 있었다. 2019년 ‘민식이법’ ‘하준이법’ 등 피해 아동 이름을 딴 교통 안전 강화를 위한 법률 개정도 화제였다.

사건이 벌어지면 굵직한 변화가 일어나지만, 목소리를 내고 국정에 의견을 반영하는 건 성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국내 아동 옹호 비영리단체들은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의 의견을 모아 국회에 보내고, 국민 대상의 서명운동을 벌인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해서 무슨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느냐”고 푸념하기도 하지만 원근감을 달리해 수년간의 활동을 보면 괄목할 만한 성과가 보인다.

안전한 통학로 만들기 프로젝트로 진행된 ‘노란전신주’ 사업은 한국전력공사와 협력해 초등학교 인근의 전신주를 노란색으로 바꿔 운전자들이 감속 운행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징계권 규정, 6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아동 옹호 사업의 핵심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제도나 정책에 반영시키는 것이다. 올해로 아동 옹호 사업 10년을 맞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활동 내역을 살펴보면 공(功)을 들인 만큼 성과도 있었다.

최근 주목할 성과는 올해 1월 민법상 친권자의 징계권 규정(제915조) 삭제다. 징계권은 ‘친권자가 아동의 보호나 교양을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조항으로 가정 내 체벌을 합리화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징계권 폐지가 포함된 민법 개정안은 재석 264명 중 찬성 255명, 기권 9명으로 지난 1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사단법인 두루,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과 함께 지난 2019년부터 징계권 폐지를 요구하는 캠페인 ‘Change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를 벌였다. 당시 국민 서명운동에만 3만2000명이 참여했다. 재단은 민법 징계권 삭제 촉구 의견서를 보건복지부와 법무부에 전달하고, 21대 국회의원 후보자와 정당에 ‘민법 징계권 조항 삭제’가 공약에 포함되도록 압박했다. 그 결과,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63년 만에 징계권 규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동 폭력 예방은 아동 옹호 사업의 주요 테마 중 하나다. 재단은 2011년 아동 성폭력 근절 캠페인 ‘나영이의 부탁’을 진행하면서 본격적인 아동 옹호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발생한 조두순 사건 이후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기 위한 서명운동이었다. 이후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범죄자의 공소시효가 폐지됐고, 양형 기준도 10년 이상 또는 최대 무기징역으로 강화됐다.

이 밖에도 2013년 울주 아동 학대 사망 사건 당시 진상 조사와 제도 개선 위원회를 구성해 이듬해 범정부 차원의 ‘아동 학대 예방 및 피해 아동 조기 발견 보호 종합대책’을 이끌어냈다. 지난해에는 아동 성착취 근절 캠페인 ‘지금 바꾸지 않으면 또 다른 n번방이 탄생합니다’를 통해 모든 성착취 피해 아동에게 피해자 지위를 보장하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에 기여했다.

민간 주도 옐로카펫 설치, 정부 정책으로

아동의 동선을 파악하면 문제가 보인다. 재단이 주목한 건 통학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만 13세 이하 아동의 보행 중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1만7824건이다. 같은 기간 사고로 사망한 아동은 129명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과속 차량, 불법 주정차, 쓰레기, 흡연 등 통학로에서 아이들을 위협하는 다양한 요인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10여 년 지속했다”면서 “통학로 환경 조성 활동은 캠페인, 연구 보고서, 공모전 등 여러 갈래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대표 사례가 초등학교 인근 횡단보도에 설치된 ‘옐로카펫’이다. 옐로카펫은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하는 공간 주변을 노란색 삼각형으로 표시해 운전자들이 차량 속도를 감속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구조물이다. 효과성은 이미 입증됐다.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옐로카펫 인지 후 운전자의 76.4%가 ‘평소보다 감속 주행했다’고 답했다.

옐로카펫은 지난 2015년 국제아동인권센터 제안으로 시작된 민간 주도 사업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주관해 전국 확산을 이끌었다. 지금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됐다. 행정안전부는 2018년 ‘옐로카펫 제작 및 설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지난해부터 교육부 주도로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후속 사업으로 진행된 ‘노란 전신주’ 설치도 교통사고 예방 효과가 높은 사업으로 꼽힌다. 재단은 한국전력공사와 협력해 초등학교 인근의 전신주를 노란색으로 바꾸고 어린이보호구역 제한 속도 ‘30′이 표시된 표지판을 설치했다. 교통 안전을 주제로 그림 공모전을 개최해 당선작을 전신주에 그려넣기도 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아동 옹호 사업 일환으로 마련된 온라인 심리테스트 ‘눈치력 테스트’.

전국의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인근에서 흡연하지 못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 됐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마련된 건 불과 5년 전이다. 재단은 2017년 아동 환경 개선 캠페인 ‘아동이 있는 곳, 그곳이 금연 구역입니다’를 통해 전국 유치원·초등학교 200곳을 대상으로 흡연 실태를 조사해 아동의 간접 흡연, 담뱃재로 인한 화상, 흡연자를 피하기 위한 충돌 사고 등의 피해 실태를 연구 보고서로 발표했다. 동시에 국회를 통해 통학로를 금연 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고, 같은 해 12월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노란 조끼 부대를 양성한 ‘그린로드 대장정 캠페인’도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통학로 주변 이면 도로의 보행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의 폭과 길이 등을 직접 조사해 기록으로 남긴다. 해결 방안을 도출하면 관할 기관에 개선 요청서를 보내는 방식이다.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은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 사람의 한 발자국이 더 의미 있다는 말처럼 계속해서 숨겨져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전달하면 사회의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아이들이 독립적인 주체로서 존중받고 아동의 입장이 반영된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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