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7일(금)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게으른 소비 먹고 자라는 ‘포장 배송’이라는 가오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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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선 실반그룹 공동대표(루트임팩트·HGI 창립자)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꼽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는 ‘가오나시’라는 매력적인 조연 요괴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지만, 온천 직원들의 물질적인 욕망을 들어주면서 비대하게 커져가는 이 요괴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풍자라는 해석이 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이 요괴만큼이나 능숙하게 ‘편리함’이란 인간의 욕구를 빨아들이며 무럭무럭 자라는 산업이 있으니 바로 포장 배송이다.

전 세계적인 도시화, 고령화,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e-커머스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2014년 1조3000억달러였던 e-커머스 매출은 3년 만에 2017년 2조3000억달러로 증가했고,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문화로 성장세가 폭발, 2021년에는 4조500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총알 배송’ ‘로켓 배송’ 등으로 익숙한 ‘퀵커머스’도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퀵커머스는 물류 및 플랫폼 투자로 소량 주문이라도 30분 이내로 배송하는 것으로, 터키의 ‘게티르(Getir)’라는 스타트업은 초고속 식료품 배달을 기치로 올해 6월 5억50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터키 둘째 유니콘으로 부상했다. 배달 플랫폼 연합체 딜리버리 히어로의 CEO였던 랄프 벤젤도 올해 ‘조크르(Jokr)’란 이름의 퀵커머스를 설립하였다. 게티르가 진출한 영국의 한 매체가 보도한 것처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도 가기 귀찮은 사람들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MIT 부동산 혁신 연구소에서는 올해 1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을 비교하며 온라인 쇼핑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단일 배송이 아니라 여러 상품을 묶음 배송하고,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퀵커머스는 소비자 편의성이라는 절대 강령하에 탄소 발자국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대부분의 배송에 사용되는 종이, 플라스틱 포장재는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하며, 대체로 재활용도 힘들다. 2015년 기준, 전 세계의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3억t이었는데 그중 절반에 가까운 47%가 포장재였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판자 등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재활용은 용이하더라도 오히려 생산 과정에서는 플라스틱보다 71% 많은 수자원을 소비하고 2배 가까운 독성 물질을 생성한다는 문제도 있다.

‘빨리빨리 공화국’ 대한민국은 실로 온라인 배송의 성지라 할 만하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까지 장기화되면서 비대면 소비와 함께 배달 포장재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2020년 국내에서 사용된 택배 상자 수만 33억개이고, 이에 따라 플라스틱 폐기물과 종이 폐기물은 전년 대비 각각 20%, 25% 증가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가 배송 포장재 쓰레기 산더미에 매몰될 것이란 우려가 들었는지 포장 배송재의 가장 큰 원흉이던 대기업들도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미국 최고, 최대의 ‘소비자 편의성 가오나시’ 아마존은 물류 절차 간소화와 오버 박싱을 최소화하여 현재까지 5억개 이상의 배송 상자를 절감하였고, 북유럽의 이케아는 기존의 플라스틱 포장재를 자연분해가 가능한 버섯 소재의 포장재로 전환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의식 있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일회용 용기 대신 다회용 용기를 사용하고, 생활용품을 리필할 수 있는 제로 웨이스트 매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성수동에 위치한 친환경 농장 생산품과 식물성 소재의 다회용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더 피커’가 그 사례 중 하나이고, 이마트도 최근 생활용품 업체들과 협업하여 제로 웨이스트 쇼핑을 위한 리필 스테이션을 론칭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모든 종업원들의 욕망을 대가로 비대해졌던 가오나시는, 주인공인 센이 건넨 ‘쓴 약’으로 인해 자신이 먹어치운 모든 것을 게워낸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얌전한 요괴로 돌아가 늪의 마녀 제니바와 함께 조용히 살아간다. 결국 이 잠재적으로 얌전한 요괴를 통제 불가능한 괴물로 만들었던 것은 종업원들의 욕망이었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사회를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로 만들고 있는 것은 우주로 날아가는 억만장자 제프 베이조스의 음모가 아니라 집에서 뒹굴거리며 5분 거리의 편의점도 가기 싫어하는 우리 소비자들의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정경선 실반그룹 공동대표(루트임팩트·HGI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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