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위안부’ 피해자부터 쪽방촌 노인까지… 마지막 길 함께합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 치러주는 ‘나눔과나눔’의 10년

가족해체·빈곤으로 외로운 죽음 맞는 사람 위한 ‘공영 장례’
무연고 사망자 6년 새 2배 늘었는데… 지자체 조례 적용 부족

장례 비용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와 가족·친구가 없는 무연고자의 쓸쓸한 마지막을 함께하는 단체가 있다. 비영리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가족 해체와 빈곤 등의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영 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연고가 없는 사망자의 장례를 치를 땐 직접 상주가 돼 고인을 애도하기도 하고,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고인의 지인을 찾기 위해 부고를 작성하기도 한다. 공영 장례 절차 상담, 장례식 참석자 안내 등의 일도 맡아서 한다.

나눔과나눔이 지난달 20일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그간 나눔과나눔이 진행한 장례는 2400여 건. 박진옥(49) 상임이사는 “1인 가구, 비혼 가구가 증가하면서 무연고 사망자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공영 장례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진행된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 참석한 추모객들이 국화 꽃잎을 유골함 위에 뿌리고 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은 ‘무연고 추모의 집’에 5년간 봉안되고, 이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합동 매장된다. /나눔과나눔 제공

가난해도 삶의 마무리는 존엄하게

시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장례 지원이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근무했던 박진옥 이사는 2011년 1월 ‘위안부’ 피해자인 김선희 할머니의 장례를 돕겠다고 자원했다. 할머니의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한 일이었다. ‘위안부’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그는 또 다른 ‘외로운 죽음’들에 대해 듣게 됐다. 장례 비용이 없어서 곧바로 화장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해 6월 박진옥 이사는 나눔과나눔을 설립했다. 50명의 후원자에게 매월 1만원씩 받아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장례를 치러주기 시작했다. 부족한 비용은 사비를 털어 보탰다. 사연도 다양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아버지가 지병으로 사망하자 고시원 살던 아들이 수중에 30만원밖에 없다면서 나눔과나눔에 연락을 해왔다. 아들은 “가족이 시신 위임을 포기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욕을 했는데 그 상황이 나에게 닥치니 시신을 병원에 두고 도망치고 싶었다”며 도움을 청했다. 한 남성은 “기초생활수급자인 동생이 폐암으로 임종 직전인데 장례를 도와줄 수 있느냐”고 나눔과나눔에 문의했다. 이 남성은 장례를 치른 후 “형편이 어려워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고맙다”며 “사정 나아지면 단체에 조금이나마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고 얼마 뒤 실제로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2015년 나눔과나눔은 서울시의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 활동 지원 사업’에 선정돼 3년간 운영비 지원을 받게 됐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지원에 뛰어들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겐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하는 가족이라도 있지만, 곁에 아무도 없는 무연고 사망의 경우 곧바로 화장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나눔과나눔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몇몇 지역 공무원들이 무연고 사망자 발생 소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민간이 아닌 공공에서 장례를 치러주는 ‘공영 장례’가 시작된 건 2018년부터다. 서울시가 광역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공영 장례 조례를 제정하고 무연고 사망자와 기초생활수급자의 장례를 치르기로 한 것이다. 장례식은 경기 고양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의 공영 장례 전용 빈소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실무를 여전히 나눔과나눔이 맡아서 하고 있다. 박진옥 이사는 “서울시가 나눔과나눔에 인건비 등 비용을 지원하는 건 전혀 없다”고 했다. “사망자 가족 중 한 분이 시신 위임서에 ‘저도 기초생활수급자라 장례 치를 능력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쓴 걸 봤어요. 가난한 게 죄송한 일은 아니잖아요. 사망자의 가족이 죄책감을 내려놓고 고인을 애도할 시간과 공간을 주고 싶어요. 그런 사명감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박진옥(왼쪽) 나눔과나눔 상임이사가 사후 장례 지원을 약속한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나눔과나눔은 지난 2014년부터 형편이 어려운 종로구 홀몸 노인들과 장례 결연을 맺고 있으며, 현재 결연 노인은 12명이다. /나눔과나눔 제공

무연고 사망, 청년 층에서도 관심

나눔과나눔은 오래전부터 쪽방촌 주민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장례를 마친 후 사과나 배 등 제물을 가져다주면서 안부를 묻고 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노인들이 대부분인 쪽방촌에는 자신을 ‘예비 무연고 사망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눔과나눔의 전화번호를 아예 벽에 써서 붙여놓는 사람들도 있다. 박진옥 이사는 “얼마 전 저희와 알고 지내던 쪽방촌 주민 한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공영 장례를 치러 드렸는데 이웃에 사는 많은 분이 함께 승화원에 와서 조문하고 가셨다”면서 “그분들이 장례식을 보시고는 ‘나중에 내 장례도 저렇게 치러지겠구나’ 하며 안심하시더라”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4년 1379명이던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5년 1676명, 2016년 1820명, 2017년 2008명, 2018년 2447명, 2019년 2536명, 2020년 2880명으로 6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박진옥 이사는 “비혼 가구,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 사는 청년들이 무연고 장례 관련 상담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면서 “청년층이 무연고 사망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법제처에 따르면 현재 공영 장례 조례가 적용되는 곳은 기초지방자치단체 226곳 중 126곳이다. 절반에 가까운 44%의 지자체에서는 공영 장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나눔과나눔은 2019년 서울시와 업무 협약을 맺고 ‘공영 장례 지원 상담센터’를 열어 방문 상담과 유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강원도,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서 하루 평균 30건의 전화가 걸려온다. 박진옥 이사는 “상담자가 거주하는 지자체에 조례가 마련돼 있지 않아 장례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했다.

현재 나눔과나눔의 후원자 수는 400여 명이다. 상임이사를 포함한 직원 4명이 최저 시급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년 뒤에 문을 닫는 것’이 10주년을 맞은 나눔과나눔의 목표다. 박진옥 이사는 “무연고 장례는 궁극적으로 우리 같은 민간 단체가 아니라 공공에서 담당해야 할 일”이라며 “한 세대가 30년이니, 다음 세대에는 모든 사람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권리’를 누리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태연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kit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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