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에 ‘임팩트 측정’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까지 비영리 단체들은 관행적으로 후원금 사용 내역이나 수혜자 수, 수혜자의 사연이 담긴 ‘활동 보고서’를 발표하는 식으로 단체의 성과를 알려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단순한 성과가 아닌 ‘임팩트’를 측정해 보여주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각 단체가 사회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분석해 설명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비영리 단체의 ‘특수성’을 반영한 임팩트 측정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존에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SVI(사회가치지표)나 SK의 SPC(사회성과인센티브)와 같은 임팩트 측정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SVI나 SPC로는 비영리의 임팩트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유리 서울시NPO지원센터 정책팀장은 “비영리 활동을 통해 대중의 인식이 개선되거나 새로운 제도가 생겨나거나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기존 시스템으로는 이런 변화를 포착할 수 없다”고 했다. 더나은미래는 서울시NPO지원센터에 자문해 비영리 단체가 임팩트 측정을 할 때 고려해야 할 다섯 요소를 정리했다.
|1|단체 특성을 반영한 임팩트 측정 기준 설정
모든 비영리 단체에 통용되는 한 가지 측정 기준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환경 ▲장애 ▲아동 ▲노인 ▲여성 문제 등 단체마다 서로 다른 이슈를 다루기 때문이다. 같은 사회문제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단체의 설립 배경, 활동 방식 등에 따라 각각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옹호(어드보커시) 활동 ▲취약 계층 직접 지원 ▲자원 배분 ▲정책 연구 등 단체마다 역할이나 설립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체 특성을 반영한 임팩트 측정을 진행한 대표적인 단체는 수감자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 ‘세움’이다. 지난해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5주년 사회적가치 측정’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일반 수용자와 세움 지원을 받은 수용자의 재범률 비교 ▲심리 지원을 받은 수감자 자녀가 자비로 해당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지출했을 비용 등을 기준으로 임팩트를 드러냈다.
|2|데이터를 정리하고 축적하는 게 중요
인력이나 재원이 풍부하지 않은 소규모 비영리 단체에서는 ‘데이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막상 임팩트 측정을 하려 해도 사용할 자료가 없어서 난감해하는 경우가 생긴다. 김유리 정책팀장은 “규모가 작은 단체의 경우 기부금 영수증을 정리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곳이 많다”면서 “최소의 인력이 현장 활동, 회계, 홍보까지 하는 단체도 많아 데이터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팀장은 “단체들의 어려운 상황은 이해하지만 사업과 관련된 기본적인 데이터조차 관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센터 차원에서 데이터 아카이빙 교육이나 데이터 공동 관리 등 단체들을 지원할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전현경 아름다운재단 전문위원은 “단체들이 데이터 수집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서 “단체의 활동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정보들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현경 위원은 결혼 이주 여성을 돕는 한 비영리 단체의 데이터 관리를 예로 들었다. 이 단체는 이주 여성들의 정착을 지원하면서 그들의 ‘카톡방’ 개수를 추적해 기록했다. 지역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많아질수록 카톡방 개수도 늘어났고, 이 데이터를 임팩트 측정에 활용했다. 전 위원은 “카톡방 개수는 무척 간단한 데이터지만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주 여성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사업의 임팩트를 측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3|아웃풋보다는 아웃컴
사회적가치 측정 전문 기관인 한국사회가치평가의 정소민 본부장은 “단기적인 양적 지표를 뜻하는 ‘아웃풋(output)’보다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성과를 말하는 ‘아웃컴(outcome)’ 중심의 지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 후원금으로 ‘몇 가구, 몇 지역에 얼마를 지원했다’는 식의 기부금 사용 실적(아웃풋)보다는 단체의 활동이 실제로 어떤 사회 변화를 일으켰는지(아웃컴)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비영리 단체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나 지역이 늘었다는 것은 단체 입장에서는 ‘실적’일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문제가 점점 심각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매매 피해 청소년을 지원하는 단체인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조진경 대표는 “우리 단체의 목표는 성 착취 피해를 입는 청소년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인데, 우리 도움을 받는 피해자가 늘었다는 것을 과연 성과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김유리 정책팀장은 “다른 단체에서도 임팩트 측정 과정에서 ‘수혜자 증대’를 단체의 성과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고 했다.
|4|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성과를 찾아야
제도 개선이나 옹호 활동을 목표로 하는 단체의 경우, 오랜 기간 노력을 했음에도 원하는 제도나 법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또 막아 보려고 애썼던 법이나 제도가 생겨나는 실망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비영리 단체가 당초 목표했던 제도 개선에 실패했다고 해서 ‘임팩트 없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 등 환경 단체들은 속초시가 추진하고 있는 영랑호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활동을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다. 그러나 시가 강행 의사를 밝히고 있어 개발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환경 단체 관계자들은 “만약 개발이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지자체의 개발 방향이나 환경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한 경험이 남게 되므로 이 과정 자체를 ‘성과’로 측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비영리 단체 간 ‘임팩트 경쟁’은 금물
단체 간의 연대가 중요한 비영리 활동의 경우 특정 단체가 임팩트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에게 과도한 ‘대표성’을 부여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 변화를 특정 단체 혼자 이뤄낸 것처럼 기술하거나 다른 단체보다 낫다는 식의 경쟁적 묘사가 나타날까 우려하는 것이다.
김유리 정책팀장은 “사회문제 해결은 어느 한 단체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무리한 임팩트 측정이 시민사회의 가장 큰 동력이자 정신인 연대와 협력 문화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적으로 가다 전문 기관에 측정 의뢰를 할 수 있는 거대 단체의 공만 드러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개별 단체의 임팩트를 드러내면서도 단체 간 연대의 중요성이나 기여도를 드러내는 ‘협력적 임팩트 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