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6일(목)

“‘제주 4·3 사건’ 비극 알리고 싶어 역사 게임 만들었죠”

“‘제주 4·3 사건’ 비극 알리고 싶어 역사 게임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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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회민 코스닷츠 대표

게임 ‘언폴디드: 동백이야기’, 각종 인디게임 대회서 수상
숨겨진 역사·이야기 담은 게임 계속 만들고 싶어요

지난 9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김회민 코스닷츠 대표는 “게임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사회적인 가치 둘 다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며 “제주 4·3 사건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역사나 사회문제에 대한 게임을 만들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이한솔 C영상미디어 기자

“누구랑 지내고 있지?”

토벌대가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묻는다. 주어진 시간은 3초. 잘못 대답하면 죽는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혼자 지낸다고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탕’ 소리가 들린다. 화면이 캄캄해진다. 죽은 것이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게임 ‘언폴디드: 동백이야기’.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어머니와 동굴에 몸을 숨긴 소년 ‘동주’ 캐릭터로 변해 선택의 기로에 선다. 먹을 것을 찾아 동굴 밖으로 나온 동주는 숲에서 토벌대를 만나 허무하게 희생된다. 어떤 대답을 해야 살 수 있었을까.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직전 상황으로 되돌리며 생각과 고민에 잠긴다. 게임을 만든 김회민(29) 코스닷츠 대표는 “제주 4·3 사건 당시 토벌대는 붙잡은 피란민들을 심문하기도 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린아이까지도 죽였다”면서 “동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실제 있었던 역사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제주도에서 남로당 제주도당 산하 무장대와 군경토벌대의 충돌이 일어나 3만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학살되거나 행방불명됐다. ‘언폴디드: 동백이야기’는 제주 4·3 사건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8년 11월의 이야기를 재현한 어드벤처 게임이다. 키보드 없이 마우스로 캐릭터를 움직이며 얻은 힌트를 활용해 퍼즐을 풀고 스토리를 진행한다. 게임이 출시된 건 지난달 24일이지만, 그 전부터 철저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한 게임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DDP 독립게임어워드’ 스토리텔링상, 글로벌 인디 게임 제작 경진대회(GIGDC) 동상을 받았다.

‘제주 4·3 사건’을 그대로 담은 역사 게임

지난 9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김회민 대표는 “플레이어들을 당시 사건의 현장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고 했다. 마을이 불타는 장면, 무장대의 근거지였던 관음사의 풍경, 산속으로 도망쳐 동굴에서 지내는 주민들의 모습 등을 역사 고증을 통해 실제와 가깝게 묘사했다.

“‘빗개’라는 게 있었어요. ‘picket(경계병)’에서 나온 말인데, 마을 주변 동산에 올라가서 토벌대나 무장대가 오는지 감시하는 아이들을 말해요. 빗개가 깃발 등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면, 마을 주민들이 그걸 보고 도망을 치죠. 게임 캐릭터인 동주가 빗개를 하는 장면을 넣었어요.”

메뉴 코너에 탑재된 ‘역사사전’은 김 대표가 일부러 집어넣은 요소다. “플레이어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자세히 알려주고 싶어서 역사사전을 따로 만들었어요. 물론 사전을 안 봐도 게임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웃음).”

김 대표는 고증을 위해 2018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제주 4·3아카이브를 뒤지고 제주 4·3진상조사보고서를 찾아 읽었다. ‘제주 4·3범국민위원회’에 소속된 유가족들을 만나 직접 증언도 들었다. 스토리는 완성됐지만 배경을 그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 사진과 영상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림을 그릴 때 참고할 자료가 없었던 것이다. 직접 제주도에 가서 당시에 불타 없어진 의귀마을 터를 둘러보기도 했지만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건물 등 배경은 일제강점기와 1950년대 사진 자료들을 참고해 그릴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가치’와 ‘재미’ 둘 다 잡아야죠

김 대표는 고등학교 때 문과생이었지만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어렵게 공과대학에 진학했다. 대학교 때는 게임 개발 동아리 회장도 지냈다. 고액 연봉을 받는 ‘대형 게임 회사’ 개발자가 되는 대신 ‘인디 게임 회사’를 차리기로 한 건 게임으로 사회문제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2017년에 대학 과제로 게임을 만든 적이 있어요. 2016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수리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구의역 김군’ 사건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고, 여기에서 생각을 발전시켜 노동문제를 다룬 게임을 만들었어요.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죠. 사회적 가치를 담은 게임을 계속해서 만들어도 좋겠다는 확신이 이때 생겼어요. 큰 회사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게임을 만들기가 어려우니까 인디 게임 회사를 차리기로 했죠.”

제주 4·3 사건으로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을 읽고 나서였다. “순이 삼촌이라는 인물이 무척 괴상하게 나와요. 환청을 듣는다거나,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죠. 책 후반부에서 삼촌의 이상 행동이 제주 4·3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게 나옵니다. 제가 알던 한국사에서는 제주 4·3 사건을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까 생각해서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앞으로 코스닷츠는 한국의 숨겨진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게임들을 만들 예정이다. 사회문제를 엮은 게임도 구상 중이다. “사회적 가치를 담은 게임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가치와 재미, 둘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해요. 진지하기만 하면 팔리지 않아 회사를 지속할 수 없고, 재미만 추구하다 보면 가치가 훼손될 테니까요. 게임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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