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전신마비 아들 휠체어 밀며 40년 마라톤… ‘철인’ 아버지 하늘나라로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아버지’ 딕 호잇 81세로 별세
BAA 특별 성명 “보스턴 마라톤의 아이콘이자 전설”

아들과 함께 마라톤 72회 비롯 총1130개 대회 완주

1977년 아버지 릭 호잇이 아들 릭과 함께 자선달리기 대회에 참가할 당시 모습. /팀호잇 홈페이지

참가번호 00. 아버지는 아들의 휠체어를 밀고 또 밀었다. 전신마비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1977년, 장애 라크로스 선수를 위한 자선 달리기 대회에 참가한 부자(父子)는 5마일(약 8km) 코스를 끝에서 두 번째로 완주했다. “아빠, 달리고 있을 때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돼요.” 아들의 말 한마디에 아버지는 인생의 도전을 결심한다. 이날 이후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각종 대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라톤 72회, 트라이애슬론 257회, 듀애슬론 22회 등 총 1130개 대회를 완주했다. 40년간의 긴 여정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아버지’라 불리던 딕 호잇(Dick Hoyt)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17일(현지 시각)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딕 호잇은 이날 오전 매사추세츠주 홀랜드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영면에 들었다. 가족들은 그가 심장 질환을 오랫동안 앓았다고 전했다.

딕 호잇은 군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매사추세츠주방위군으로 입대했다. 육군으로 복무를 시작한 그는 2년 뒤 항공대대로 전환했고, 웨스트필드의 반스 항공방위군 기지에서만 35년간 근무했다. 1995년 중령으로 전역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장남인 릭 호잇(59)은 태어날 때 목에 탯줄이 감겨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서 중증 장애를 얻었다. 뇌성마비로 걷거나 말을 할 수 없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릭이 열한살 되던 1972년, 그는 터프츠대 엔지니어그룹의 도움을 받아 아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컴퓨터를 제작했다. 릭의 첫 마디는 “가자, 브루인스!(Go, Bruins!)”였다. 보스턴 브루인스는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소속팀으로 당시 시즌 결승전에 올라있었다. 스포츠에 대한 아들의 열정을 확인한 딕 호잇은 이후 아들과 함께 ‘팀 호잇(Team Hoyt)’을 꾸려 각종 레이스에 도전했다.

2013년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아버지 딕 호잇이 아들 릭을 태운 휠체어를 밀며 레이스를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팀 호잇’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80년 보스턴 마라톤에 참여하면서다. 아버지는 아들을 태운 특수 휠체어를 밀며 42.195km를 완주했다. 이후 매년 대회에 참여하면서 32차례나 완주했다. 마지막 참가 대회였던 2014년 당시 딕의 나이는 74세였다.

보스턴체육협회(BAA)는 딕 호잇을 보스턴마라톤의 상징이자 전설이라고 불렀다. 이날 BAA는 특별 성명을 통해 “보스턴마라톤의 아이콘인 딕 호잇의 사망 소식에 매우 슬프다”며 “그는 30년 이상 결단력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2018년 4 월, 제122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딕 호잇(왼쪽)과 아들 릭 호잇의 모습. /AP·연합뉴스

딕 호잇의 도전은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연이어 완주해야 하는 트라이애슬론도 257차례 완주했다. 딕 호잇은 허리에 묶은 로프를 아들을 실은 고무배와 연결해 바다 수영을 했고, 사이클 코스에서는 아들을 자전거 앞쪽에 설치한 특수 의자에 앉혀 레이스를 펼쳤다. 또 1992년에는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며 45일에 걸쳐 6011km를 완주하기도 했다.

첫 번째 마라톤 완주에 16시간 14분이 걸렸던 기록은 2시간 40분 47초까지 단축됐다. 트라이애슬론 기록도 13시간 43분 37초까지 줄였다. 주변 사람들은 아들 없이 출전하면 놀라운 기록이 나올 거라고 했지만, 그는 “아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딕 호잇의 아들인 러스 호잇은 “아버지는 삼 형제를 장애와 무관하게 동등하게 대했다”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아버지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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