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체류자 된 혜원씨 이야기
7년 전 입국해 국적 얻었는데
계모 학대로 가족관계 정리하자
하루아침 ‘미등록 체류자’ 신세
불안정한 신분에 생계도 빠듯
공익변호사들 국적 회복 돕기로
혜원(21·가명)씨는 무국적자다. 북한이탈주민의 자녀인 혜원씨는 2014년 입국하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인으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성실하게 공부해서 간호대학에 진학했지만, 지난여름 국적이 사라졌다. 계모의 지속적인 학대에 가족관계를 정리했고, 그 즉시 무국적 상태가 됐다. 졸지에 미등록 체류자 신세가 된 것이다.
이후 혜원씨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통장도 새로 만들 수 없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도 개설할 수 없다. 지금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바꾸지도 못한다. 가장 걱정되는 건 학교다. 혹시 학교에서 알게 돼 퇴교 조치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온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지내는 날이 지속하면서 몸무게가 10㎏이나 줄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공익변호사 13명이 혜원씨의 국적 취득을 돕기 위해 나섰다. 변호인단은 지난해 12월 말 서울가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국적 회복을 위한 법적 절차에 돌입했다.
계모 학대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데… ‘무국적’ 날벼락
북한이탈주민은 헌법을 비롯해 현행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된다. 이들의 자녀도 마찬가지다. 국적법 제2조에 따르면, 출생 당시 부모 중 한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이면 그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혜원씨의 어머니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는 1990년대에 북한을 탈출했고, 중국에서 중국 국적 동포 남편을 만나 2000년 혜원씨를 낳았다. 가족은 한국행을 여러 번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혜원씨의 어머니가 중국 공안에 잡혀가기도 했다. 아버지는 쌈짓돈을 들고 집을 나섰고 수소문 끝에 어머니를 구해왔다. 하지만 공안에 두 번째로 붙잡혔을 때는 손쓸 수 없었다. 어머니는 행방불명됐다. 혜원씨 다섯 살 때 일이다.
혜원씨처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가 소멸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상황이 이렇게 복잡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혜원씨가 한국에 들어온 건 7년 전 여름이다. 그 사이 아버지는 중국으로 탈북한 북한이탈주민을 숨겨주다가 아내로 맞았다. 동생도 두 명 생겼다. 다섯 가족은 한국행을 시도했고, 계모가 입국하면서 나머지 가족들도 들어올 수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입국 당시 계모가 혜원씨를 친딸로 등록하면서다.
다섯 가족이 한국에 둥지를 튼 2014년. 당시만 해도 단출하지만 행복한 삶을 꿈꿨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계모는 6개월 만에 태도가 돌변했다. 친자식들과 차별하기 시작했고 “너만 없으면 잘 살 텐데” “중국으로 쫓아버린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폭언은 손찌검으로 변하기도 했다. 또 걸핏하면 짐보따리를 싸서 집 밖으로 내던졌다. 결혼 비자로 한국에 체류 중인 아버지는 아내의 눈치를 봤다.
혜원씨 가족을 돕던 사회복지사 최지숙(가명)씨는 “중학교 때 혜원이가 계모에게 학대를 당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아동 학대로 신고하자’는 얘기도 했지만, 혜원이는 혹시 아버지의 체류 자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 나를 말렸다”고 했다. 혜원씨는 “새어머니의 학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성인이 되자마자 모녀 관계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는데, 국적이 소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무국적 북한이탈주민 2세, 최소 1만명
혜원씨가 다시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친모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친모의 존재를 입증할 서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혜원씨 친부모는 중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도망자 처지라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아닌 제3국에서 태어난 북한이탈주민의 자녀가 흔히 겪는 상황이다. 어머니의 형제들이 한국에 들어왔다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입증하는 방법도 있지만 혜원씨는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친모와 함께 한국행을 시도했던 북한이탈주민과 5촌 친척의 진술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희망이다.
불안정한 체류 신분도 문제지만 최근엔 생계도 빠듯해졌다. 학교 성적이 좋은 편이라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신분이 밝혀질 것이 염려돼 장학금을 포기했다. 지금은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계모는 자식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감이 끊겼다. 혜원씨도 식당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태지만 팍팍하기만 하다. 사회복지사 최지숙씨는 “혜원이에게 정 안 되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살자고 했는데, 힘들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잘 살겠다고 하더라”라며 “미성년자일 때 계모 등쌀에 하루도 잠잠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와 무국적 신분이라니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했다.
혜원씨처럼 중국 등 제3국에서 태어난 무국적 청소년 수는 매년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 자녀 가운데 제3국 출생자는 지난 2011년 608명에서 2013년 840명, 2015년 1249명, 2017년 1437명, 2019년 1549명 등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제3국에서 태어난 학생 비율은 2015년을 기점으로 전체 탈북 학생의 절반 을 넘어섰다.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중국 내 무국적 북한이탈주민 2세의 규모만 최소 1만명으로 추산된다.
제3국에서 태어난 북한이탈주민 2세들은 대부분 무국적인 상태로 입국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실종되거나 가족과 단절됐을 경우 한국에 발을 들여도 국적을 얻기는 쉽지 않다. 이번 소송을 무료로 대리하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 소속 이은영 변호사는 “북한이탈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제3국에서 태어난 자녀도 마찬가지”라며 “마땅히 한국 국민으로 권리를 누려야 할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이 무국적 상태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될 가능성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탈주민 2세가 소송 끝에 한국 국적을 얻어낸 사례는 존재한다. 지난해 6월 중국에서 태어난 북한이탈주민의 딸인 김지혜(8)양은 법무부 상대로 낸 국적인정 소송을 통해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까지 간 긴 소송이었다. 법무부는 같은 해 7월 김양의 입국 5년 10개월 만에 한국 국적을 인정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딸이 태어나기 전 북한 당국에 체포된 뒤 소식이 끊겼고, 어머니는 출산 직후 미국인 선교사 부부에게 딸을 맡기고 떠났다. 김양의 경우 혜원씨처럼 친부모의 정보가 기록상 확인되지 않았지만, 법원은 진술의 구체성과 신빙성을 받아들였다.
2019년에는 인천 지역의 북한이탈주민 자녀 A양이 무국적 상태로 지내다 이모와 외할머니를 극적으로 찾아내 국적을 취득한 일도 있었다. 무국적 신분으로 학교에도 다니지 못한 북한이탈주민 자녀 B양은 지난 2015년 공익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받아내기도 했다.
이은영 변호사는 “친부모의 결혼식 사진과 중국에서 같은 동네에 살다가 한국에 입국한 지인들의 구체적인 진술을 주요 증거로 친모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한다”면서 “하루빨리 국적을 회복해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